메뉴 건너뛰기

close

희망식당의 야외 전경.
 희망식당의 야외 전경.
ⓒ 최지용

관련사진보기


기사를 읽기 전에 각자의 수첩, 다이어리, 스마트폰부터 꺼내보자. 그리고 다음 주 일요일(6일) 일정을 살펴보라. 비어 있다면 그 자리에 '희망식당'이라고 적어보자. 점심이든 저녁이든 시간은 상관없다. 공간이 남으면 같이 갈 사람의 이름을 적어 넣자. 가족, 친구, 애인 누구든 좋다. 물론 그런 거 없는 사람은 혼자도 괜찮다. 선약이 있어도 실망할 거 없다. 그렇다면 그다음 일요일(13일) '희망식당'을 미리 예약하자.

눈치챘겠지만 이 기사는 한 식당을 소개하는 글이다. <오마이뉴스>가 특정 식당을 '맛집'으로 주요하게 소개하거나 홍보하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다. 아니 한 번도 그런 추천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도저히 이 특별한 식당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어 과감하게 쓴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부인 가게에서 해고노동자가 요리하는 식당. 수익금 모두를 해고노동자, 비정규직노동자를 위해 기부하는 식당. 일주일에 단 하루, 매주 일요일만 문을 여는 '희망식당 하루'(이하 희망식당)가 그곳이다.

맛있고, 깨끗하고, 친절하고... 이만한 식당 있나?

알싸한 김치와 담백한 고등어의 조합이 훌륭한 김치고등어조림.
 알싸한 김치와 담백한 고등어의 조합이 훌륭한 김치고등어조림.
ⓒ 최지용

관련사진보기


29일 준비된 표고버섯나물과 숙주나물.
 29일 준비된 표고버섯나물과 숙주나물.
ⓒ 최지용

관련사진보기


29일 오전 11시 희망식당이 문을 열었다. 서울 동작구 지하철 7호선 상도역 1번 출구에서 약 40걸음 정도 떼면 '상도실내포장마차'라는 간판의 작은 술집이 나타난다. 이곳이 일요일 하루만 식당으로 변한다. 장사 시작은 정오부터다. 점심을 준비하는 모습으로 식당이 분주하다. 주방을 담당하고 있는 블로거 '오후에'(필명)와 이날 희망식당의 일일 호스트(주인)인 르포작가 이선옥씨가 열심히 쪽파를 다듬고 있다.

이곳은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의 부인이 운영하는 실내포장마차를 빌려 운영된다. 식당의 쉐프(주방장)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신동기(35)씨다. 그러나 그는 이날 "뻗어버렸다"는 말만 남기고 나오지 못했다. 지난달 11일 문을 연 식당이 벌써 8주째 이어지고 있으니, 주중에 계속되는 투쟁과 주말 식당운영을 동시에 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주방장이 빠진 이날 음식이 전만큼 못하면 어쩌나 걱정되기도 했다.

사실 정말 그랬다면 이렇게 소개하기 어려웠을 거다. 아무리 좋은 취지로 운영하는 식당이라도 일단 맛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매번 다른 음식이 준비되기 때문에 이날의 메뉴를 소개하는 게 별 의미가 없지만,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가늠해 보기 위해 '오늘의 상차림'부터 살펴보자. 전혀 과장됨이 없음을 미리 말해둔다.

먼저 간이 살짝 돼 있는 고등어와 김치가 잘 어우러진 김치고등어조림이 이날의 메인이다. 맵거나 자극적이지 않고 '짭조롬'한 맛이 밥숟가락을 부른다. 대량으로 해놓은 조림을 퍼나가는 게 아니라 주문이 들어오면 냄비에 조림무와 김치를 깔고 그 자리에서 전골처럼 조리해 나간다. 같이 차려지는 나물반찬에는 윤기가 난다. 지리산에서 보내온 표고버섯은 향이 진하고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숙주나물은 간이 '퍼펙트'다. 준비한 반찬이 떨어져 급하게 마련한 시래기나물과 감자나물도 훌륭했다.

또 희망식당의 밥통은 주방 밖에 나와 있다. 밥이 부족한 사람은 누구든 그 밥통을 열고 밥을 퍼 담으면 된다. 점심시간 내내 실내 테이블은 꽉 찼고 야외 마련된 테이블에도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다. 바로 앞에 왕복 6차선 대로가 지나는 걸 제외하고 인적 드문 야외석은 웬만한 소풍 이상의 분위기를 제공한다. 그 자리에 앉은 단체 손님이 봄날의 분위기에 취해 자리를 뜨지 않아 장사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남도 한정식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보편적인 백반 식당 수준 이상이다. 주방장과 호스트는 특1급 호텔 수준의 친절도를 보여준다. 주방에도 직접 들어가 본 결과 청결도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거기다 가격은 착한 5000원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 정도면 별 5개, 리본 5개를 줘도 될 듯하다. 다음 주 일요일에는 제주도산 흑돼지 수육이 준비된다고 하니 참고들 하시길.

다만, 술을 팔지 않는다. 원하는 분들은 각자 마실 술을 챙겨오면 되지만 딱 한 병만 가능하다. 안주는 주방장이 알아서 준비해주고 돈도 적당한 값을 알아서 내면 된다. 선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훌륭한 시스템이다.

희망의 밥을 먹는다... "반드시 승리할 것"

29일 희망식당 일일 호스트(주인)을 맡은 르포작가 이선옥씨
 29일 희망식당 일일 호스트(주인)을 맡은 르포작가 이선옥씨
ⓒ 최지용

관련사진보기


조치원에서 올라온 블로거 '부추꽃청'이 싸온 미역과 시래기나물 한 봉지.
 조치원에서 올라온 블로거 '부추꽃청'이 싸온 미역과 시래기나물 한 봉지.
ⓒ 최지용

관련사진보기


무엇보다 희망식당은 아무리 유명한 맛집도 주지 않는 '마음'을 제공한다. 지난해 경험한 두 번의 '아름다운 연대'를 기억하는가? 새해 첫날 해고당한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의 싸움에서 시작한 이 연대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사회적 살인인 '정리해고'에서 구출하기 위한 희망버스로 이어졌다. 그때와 같은 싹이 이곳에서 피어난다.

이날 식당의 첫 손님은 조치원에서 올라온 블로거 '부추꽃청'(필명)이었다. 오전 7시 30분 기차를 타고 일찌감치 올라왔지만 '상도역'을 '상계역'으로 잘못 알고 서울 끄트머리까지 올라갔다 내려온 길이다. 땀을 흘리며 그는 가방에서 말린 미역, 가시오가피순, 시래기 한 묶음을 꺼내 놓았다. 직접 만들었다는 도자기도 선물했다.

멀리까지 찾아오게 된 계기를 묻자 그는 "남편이 철도노조에 있는데 예전에 파업할 때 경찰이 헬기까지 동원해 노동자들을 해산시키던 모습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며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문제는 그들만이 아닌 모든 노동자의 문제"라고 말했다.

상계역을 헤매다 온 그에게 또 다른 사연도 있었다. 완전히 잘못된 곳에서 헤매던 그는 작은 카페에 들어가 희망식당을 물었고 그 가게 주인이 인터넷 검색으로 상도역을 알려줬다. 그러면서 희망식당에 전해 달라며 봉투 하나를 건넸다. 그 봉투에는 2만 원이 들어 있었다. 카페주인은 희망식당을 몰랐다며 미안해했다고 한다.

그 뒤로 손님은 계속 이어졌다. 쌍용자동차노조와 일일 호스트 이선옥 작가의 지인들도 많았지만 트위터를 통해 소식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혼자 식당에 들어선 김경서(18)씨도 그랬다. 그는 식당에 들어서자 바로 "희망식당에 왔다"는 인증 트윗을 날리고 자리에 앉았다. 아직 고3이지만 "트위터 친구들과 쌍용차 이야기를 많이 했다"는 그는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져서 (정리해고가) 빨리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량진학원에서 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하다가 고향으로 내려간다던 20대 여성은 "마지막 식사를 희망식당에서 하려고 왔다"고 말했다. 큰 짐을 여러개 들고 선 그는 "희망식당에서 '희망'을 먹으러" 왔다고 한다. 희망식당을 그에게 소개했다는 함께 온 친구는 "경제발전이라는 이유로 희생해온 노동자들인데 회사가 어려워 고용하지 못한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라며 "계속 희생시켜놓고 또 희생하라고 말하는 사회가 잘못"이라고 말했다.

점심이 한참 지난 오후 식당을 방문한 프로레슬러 김남훈씨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반드시 승리할 것으로 믿는다. 파이팅!"이라고 응원했다. 그는 "희망식당의 장점은 무엇보다 메뉴를 고를 필요가 없다는 점"이라며 "일요일에 뭐 먹을까 고민하지 말고 그냥 희망식당에 오면 맛있는 음식을 알아서 차려준다"고 말했다. 그는 음식값으로 5천 원이 아닌 5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실수로' 꺼내 웃음을 주기도 했다.

이날 하루 손님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은 이선옥 작가는 "이곳에 사람들이 온다는 것 자체가 큰 힘이 된다"며 "여기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가게이고 해고노동자가 주방장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쌍용자동차 문제를 이야기하면 각자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대한문에 차려진 분향소와 이곳 희망식당에 관심을 가지고 찾는 것만으로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희망식당 입구에는 '밥을 구하다가 밥이 되어버린 우리 삶을 희망으로…'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밥이 모자랐던 사람들이 밥통 앞에 서서 연신 빈 밥그릇을 채운다. 비록 노동자의 삶이 무엇의 '밥'이 돼 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는 희망이 '밥'이 되고 있는 게 분명하다.


태그:#쌍용자동차, #쌍용차, #희망식당, #정리해고, #김남훈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