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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4·11 총선에서 철저하게 외면받은 유권자들은 과연 누구일까?

나는 해외동포 유권자라고 생각한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국내언론들은 국외부재자 투표가 마치 예산낭비의 대표적인 것처럼 기사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것도 소수다.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해외동포를 단 한 번도 다루지 않은 언론들도 있었다.

그런데 여기 실상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런 말 못할 것이다. 국외부재자 신고도, 투표도 직접 공관을 찾아가서 해야 한다. 그러나 이 공관이 동사무소처럼 동네마다 하나씩 있는 그런 게 아니다.

예를 들어 별로 땅도 크지 않는 도쿄에 사는 나도 국외부재자 신고를 하기 위해선 집에서 무려 1시간 30분이나 떨어진 도쿄총영사관까지 가야 한다. 평일밖에 안 한다니까 월차를 내야 하고 물론 교통비도 든다. 처음하다 보니 공관직원들도 잘 몰라 나 같은 경우엔 두 번이나 가야 했다.

나만 해도 이런데 캐나다나 미국같은 대륙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어려웠을까? 뉴욕에 사는 지인은 왕복 열 두 시간 걸려 국외부재자 신고를 하고 다시 투표날 열 두 시간 달렸단다. 이쯤되면 웬만한 정치의식 가진 사람이 아니면 투표자체가 어렵다는 것을 알 것이다.

총선 국외부재자 투표를 한 해외유권자들이 기표소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있다. 오른쪽 '브이자' 때문에 선거기간 중에는 쓰지 못했다.
▲ 총선투표에 처음으로 참가한 재일동포 및 뉴커머들 총선 국외부재자 투표를 한 해외유권자들이 기표소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있다. 오른쪽 '브이자' 때문에 선거기간 중에는 쓰지 못했다.
ⓒ 박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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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평가위해 모인 재일동포들

그래서일까? 선거당일 SBS 개표방송을 보니 국외부재자 투표는 대부분 야당쪽(노란색)을 지지한 것으로 나왔다. 백중세 지역도 많았지만 정작 여당쪽(빨간색)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투표하고 싶어서 이런 복잡한 절차를 참고 참았던 사람들이다. 얼마나 이 날을 기다려왔겠는가. 4·11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과반 이상을 획득하고 민주통합당 및 통합진보당은 140석에 그쳤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도쿄에 사는 우리들도 한번 검토를 해보자는 취지에서 지난15일 총선평가회를 열었다.

참고로 일본사회에서는 어떤 일이 끝나면 평가회라는 걸 열고 그 자리에서 반성을 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중지를 모은다. 재일동포들은 물론이고 뉴커머(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일본에 건너가 정착한 한국 주민등록 소지자를 말한다. 특히 1988년 해외여행자유화 이후로 일본에 건너가 정착하기 시작한 사람을 일컫는다)들도 대부분 5년 이상 일본사회에서 생활하다 보니 이런 평가회에 거부감이 없다.

한 25명 정도가 모였다. 과반만 획득했더라도 두 배이상 모였을 법한데...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평가회 초반부터 설전이 오고 갔다.

도쿄민주포럼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양동준 박사는 "과반은 획득하지 못했지만 서울에서 승리했고 정당별 투표를 보면 야권이 앞서니까 다가오는 대선은 잘 준비하면 이길 수 있다"며 "승리한 선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같은 단체의 장영식 공동대표는 "한명숙과 문성근 등 친노 중심이 된 지도부의 리더쉽, 선거전략 부재 및 한계가 그대로 드러난 선거"라며 "이명박 심판론이 더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라며 반대의견을 폈다.

또한 그는 "새누리당 간판으로 나오면 제수씨를 강간미수를 해도, 논문을 복사해도 당선되는 게 현실이다. 그쪽은 무슨 짓을 해도 무조건 120석, 30% 지지는 먹고 들어간다. 이런 상황을 민주통합당이 인식해야 하는데 근거없는 낙관론을 보였다. 이런 자세로 나가면 대선에서는 필패한다"고 주장했다.

"사찰당하면 안 되니까 익명으로 말하겠다"고 한 재일동포 김아무개씨는 "정책면에서 새누리당이 오히려 미래지향적이었고, 민주통합당은 반대만 하는 인상이 깊었다. 원래대로라면 반대가 되어야 하는데 정작 뉴스나 언론에 나오는 건 항상 민주당이 반대만 하는 것으로 비추어 지더라"라며 정책에서 실패했다고 말했다.

다른 뉴커머 박아무개씨는 "김용민의 막말파문이 나왔을 때 지도부가 결단을 내리지 못했던 것이 컸다. 한 이틀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새누리당에게 헤게모니를 뺐겼다"라고 구체적인 전술에서의 실수를 언급하기도 했다.

일본거주 27년차인 뉴커머 김달범씨는 "선거는 감동이 가장 중요한데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은 감동이 없었다. 민주당은 핏발오른 정권심판구호를 외쳤을 뿐 가슴에서 나온 감동의 외침이 전무했다"고 말한다.

그는 "친박에 의한 친이 죽이기라는 세간의 비판에 직면한 새누리당은 김무성 의원이 백의종군했다. 김무성의 백의종군 선언이후 이어진 새누리당 낙천자들의 눈물겨운 백의종군 대열 합류선언이 보수층 유권자들에게 감동을 줬고 이 감동이 그들의 결집을 이끌어냈다"라고 주장했다.

다른 뉴커머 참가자 역시 "패배원인은 너무나 쉽다. 그냥 민주당은 부동층을 움직이는데 실패했다. 30대 투표율이 낮은 것도 그들을 움직이지 못했다는 것인데 정치적 부동층은 머리로 계산하고 FTA가 어쩌고 이런 것 잘 모른다. 논리보다는 감동이 있어야 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런 걸 잘 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런 것이 하나도 없었다"라며 '감동부재'가 패배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한 여성 참석자는 "투표라는 게 지금까지는 아무것도 아닌 정말 말그대로 무(無)였는데 이번에 투표하고 나니까 평생 안 볼 줄 알았던 한국 정치뉴스를 보게 되고 내 지역구 누가 됐는지 궁금해지더라. 아줌마가 이래도 되는건지 사실 걱정"이라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다섯 시간에 걸친 토론회...어떤 내용들이 나왔나

열띤 토론은 예정시간을 훨씬 넘겨 자정에까지 약 다섯 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다음은 평가회에서 발표된 내용들을 간추려 모아 본 것이다.

첫째, 지도부가 단합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분열상을 보였다. 한명숙 대표체제 출범 직후부터 최고위원들이 회의에 불참하고 비례대표 공천과정에서 사퇴하는 등 불협화음이 컸다. 이는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중심으로 똘똘뭉친 새누리당과 정반대의 모습으로 내부결속력 약화를 불러 왔다.

둘째, 제대로 된 정책이 없고 전부 반대가 붙어있었다. 반FTA, 반 해군기지, 반 사대강 등등. 설령 정책이 있었다 하더라도 유권자들에게 침투되지 못했다. 조중동 등 언론이 장악됐다면 지도부와 후보자들은 밤낮을 새서라도 유권자들과 만나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민주당은 무조건 반대만 하는 인상을 심어줬다.

셋째, 야권단일화 논의가 지지자들은 물론 일반 유권자들에게 전혀 공감을 받지 못했다. 야권단일화 취지는 권력 나눠먹기로 일반유권자들에게 비쳤고, 똘똘 뭉쳐 싸워도 이기기 어려운 상황에서 선거운동 초기에 겪은 통합진보당과의 단일화 내홍이 추동력을 떨어뜨렸다.

넷째,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공천과정과 지역구 경선방식이 민주당 당력을 소모시키고 지지자들을 피곤하게 만들어 버렸다. 새누리당은 '표'만 생각한다면 아주 세련되고 전략적으로 비례대표를 공천했다. 귀화외국인과 탈북자 표만 해도 200만을 넘어간다. 이들이 누굴 뽑겠는가? 또 경선조차 기회를 받지 못해 탈락한 정통민주당 후보들이 지역구에 출마하는 바람에 표가 분산됐다. 1천여 표 차이로 당락을 가른 지역도 있어 아쉽기만 하다.

다섯째, 민주당은 총선운동에서 단 한 건의 감동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야권연대 과정, 공천심사위 구성과정, 지역구 후보와 비례대표 후보 공천과정 등등에서 일반유권자의 가슴을 후려치는 감동이 하나도 없었다. 중간층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의 표심을 움직일 수 있는 '감동'의 생산이 매우 중요하다.

아무튼 정치권과 언론에서 버림(?)받았지만 우리들은 우리 식대로 뚜벅뚜벅 나아갈 생각이다. 일부러 관심받으려는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국땅에서도 그 어려운(?) 투표를 하기 위해 고생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다. 제발 대통령 선거 땐 투표 좀 많이 해 주길 바란다.


태그:#총선, #도쿄민주포럼, #대선, #해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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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부터 도쿄거주. 소설 <화이트리스트-파국의 날>, 에세이 <이렇게 살아도 돼>, <어른은 어떻게 돼?>, <일본여친에게 프러포즈 받다>를 썼고, <일본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를 번역했다. 최신작은 <쓴다는 것>. 현재 도쿄 테츠야공무점 대표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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