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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2012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새누리당 선대위원장이 13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해단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선대위원장이 13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해단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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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끝나고 그에 대한 평가가 백가쟁명 식으로 나오고 있다. 평가의 대세는 '차려준 밥상'도 제대로 못 먹은 민주통합당에 대한 비판과 돌아온 '선거의 여왕' 박근혜의 대세론이다. 기본적으로 선거가 결과의 싸움이고 그 결과가 다시 국민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상호작용의 과정임을 감안하면, 필자도 이 같은 분석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세적인 평가에 나까지 밥숟가락을 하나 더 얹는 것에는 약간 주저하게 된다. 필자는 이미 지난 칼럼('답답' 민주당,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에서 야권의 130석 이상은 현실적으로 쉬운 목표가 아님을 지적한 바 있다.

결국 선거는 막판 집중력의 문제였는데, 박근혜는 선거 운동 기간 동안 부산을 5차례나 방문해 영남지역의 새누리당 이탈을 막아내면서 이른바 '낙동강 벨트'를 사수했다. 반면 야당은 '김용민 막말 파문' 등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지지층 결집에 실패한 측면이 있다. 새누리당 152석, 민주통합당 127석이란 총선 결과는 박빙 승부에서 최대의 결과를 끌어내지 못한 민주통합당의 패배로 귀결되었다.

사실 결집된 영남표를 가진 보수 세력은 소선거구제 하에서 상당히 유리하다. 이를 두고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한국 정치판을 보수 쪽 골문이 약간 올라가 있는 축구장에 비유했다. 한 마디로 진보진영은 기를 쓰고 공을 차야만 보수 쪽 골대를 공략할 수 있는 반면, 보수 진영은 공을 슬쩍 차기만 해도 진보의 골문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치지형에서 진보진영은 총선 전망을 할 때 비관적인 것에서 시작해 어떻게 집중력을 발휘해 승리를 이끌어낼 것인가로 고민을 끝맺어야 한다. 마치 한국 축구가 월드컵에 나갈 때 기본기가 부족하니 조직력을 겸비한 세트 플레이와 국민들의 성원, 선수들의 분전을 더해 16강이나 8강을 노리는 것과 같다.

새누리당 승리, 박근혜에게 낙관적이지 않다

그런데 이번 총선은 요상하게도 '야권이 기본적으로 유리한 선거'라는 프레임으로 시작해 새누리당의 선거를 이끈 박근혜가 오히려 거대 야당의 출현을 막아야 한다는 견제론을 설파하였으니,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여기에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부정확한 총선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민주통합당이 제1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으면서 선거판을 오인하게 하는데 크게 한 몫 했다. <한겨레신문> 4월 8일자 기사에 의하면 전문가 28명 중에 22명이 민주통합당의 승리를 예측했다.

전문가들 마음 속 논리적 귀결 과정은 알 수 없지만, 추측하건대 그들은 과학적 데이터와 세밀한 분석보다는 감에 의존해 예측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특히 그들이 사는 지역적 배경이 총 48개 의석 중에서 민주통합당에게 30석을 몰아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이라는 점도 이러한 오류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서울은 SNS와 2030세대의 표심이 전국 어느 지역보다 강하게 대표되는 곳이다. 이 같은 배경은 민주통합당이 새누리당(16석)에 거의 더블 스코어로 이길 수 있게 만들었다.

이처럼 서울 지역에서 바라보는 프레임의 한계에 갇혀 새누리당의 지지 기반인 영남의 의석 수 67석을 간과하게 만들었을 때, 자칭·타칭 전문가들의 총선 전망 오류가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민주통합당 입장에선 낙동강 벨트에서 3~4석을 가져와도 제1당이 어려울 판이었는데도 안이하게 서울·경기 등 수도권 지역의 대승을 바탕으로 안일한 민주통합당 제1당 전망을 내놓았다. 결국 이것이 역설적으로 보수층의 표 결집을 불러온 점도 총선 결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같은 오류는 2000년에 있었던 16대 총선에서도 나타난 바 있다. 앞서 1997년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뤘던 김대중 정부는 당시 총선에서 제1당의 희망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대선 과정에서도 JP(김종필)와의 단일화를 통해 겨우 39만표 차의 아슬아슬한 승리를 했으면서, 당시의 그 어이없던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2000년 총선 때 거의 모든 지역에서 새천년민주당이 이겼지만, 단 4곳 대구·경북·부산·경남에서 의석의 99%를 한나라당이 가져가면서 한나라당은 제1당 명패를 가져갔다. 한나라당은 비례대표 득표율에서도 39%를 얻어 35.9%에 그친 새천년민주당을 눌렀다.

내용적으로 비교하면 이번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강원도를 싹쓸이해 지역적으로 2000년 총선보다 확장된 모습이지만, 비례대표 득표율은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득표율을 합하면 46.75%로 새누리당이 얻은 42.8%를 넘어서고 있다. 새누리당의 영남 지역구 싹쓸이가 얼마나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는지 새삼 실감케 할 수 있는 데이터다. 그러나 이것은 대선을 앞두고 다시 박근혜의 한계로 나타날 수도 있다.

박근혜 대세론은 이념적으로 보수, 지역적으로 영남이라는 상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또 한국 선거에서 나타나는 특유의 '중도층 쏠림'을 바탕으로 변수가 작용하는 사회과학적 현상이다. 이번 총선에선 중도층의 진보 쏠림 현상이 미약해 새누리당의 승리로 나타났으나, 이것이 대선이었다면 결코 박근혜에게 낙관적인 상황은 아니다.

10·26 재보선 때 켜진, 민주당을 향한 경고등

지난 13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4·11총선 패배에 따른 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히기 위해 영등포 당사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지난 13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4·11총선 패배에 따른 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히기 위해 영등포 당사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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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많은 언론에서 이 점을 다루고 있지만, 대선을 앞두고 핵심을 놓치고 있다. 여당이 승리한 이번 총선 결과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의 대승으로 기록된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 선거를 돌이켜보자.

당시 서울시장 선거라는 빅 이벤트에 가려서 그렇지 강원과 충청, 영남에서도 기초자치단체장 보궐선거가 있었고 한나라당이 싹쓸이 했다. 이미 그때부터 지역적으로 진보진영에겐 경고의 빨간불이 켜져 있었음에도, 워낙 서울시장 선거 승리가 강렬해서 이것을 눈여겨보는 이가 없었다.

당시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10·26재보선을 두고 이긴 선거도 아니고 진 선거도 아니라고 자위를 하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패배한 정당의 대표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방편으로 이러한 선거결과를 활용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선거의 향후 전망을 해야 할 때는 분명히 참고해야 하는 결과였다.

따라서 이번 총선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며 사퇴의사를 표명한 한명숙 대표의 처신은 분명 올바른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적 책임의 문제고 향후 정치세력이 선거를 전망하거나 자칭·타칭 정치전문가들이 과학적 분석을 할 때는 또 다른 잣대가 필요하다.

새누리당 위기의식 반영한 문대성·김형태 출당 요구

앞서 필자는 소선거구제와 현 정치구도가 진보세력에게 불리하니, 기본적인 총선 구도를 부정적인 전망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게임의 룰이 다른 대통령 선거에서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해야 겠다.

과학적 예측으로 한정해 이번 총선 결과를 보자면, 박근혜 대세론에는 결정적인 빨간불이 켜졌다. 민주통합당 유력 후보들은 이번에 부산지역에서 4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과거 노무현 후보만 홀로 30%대로 선전했을 시절과는 분명 다른 상황이다. 12월에 치러지는 대선에서 이슈파이팅과 후보 선정의 적절성만 이뤄진다면, 민주통합당이 영남(그 중에서도 PK)지역에서 40% 이상의 득표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여기에 대통령 선거는 총선보다 투표율이 올라간다는 법칙성을 더해야 한다. 보수 세력의 표 동원력은 이번 선거에서 어느 정도 최대치를 달성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례대표 정당 지지율에서 새누리당이 야권 연대에 뒤졌다는 사실은 새누리당의 대선 전망을 어둡게 만드는 요인이다.

총선 기간에 표절과 성추행으로 논란이 되었던 문대성, 김형태 당선자에 대한 당내 일부의 출당 요구도 새누리당의 위기의식을 반영한다. 새누리당도 대선에서는 자신들이 후발 주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87년 체제가 성립한 이후로 한동안 한국 정치에서는 선거 윤회설이 작동했다. 선거 윤회설은 전국단위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다음 번 전국단위 선거에서는 반드시 패배를 한다는 경험론에 근거한 가설이다.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 당선, 1988년 여소야대, 1992년 총선에서 야당의 약진, 1992년 김영삼 당선, 1995년 지방선거 야당 승리, 1996년 총선 여당 승리, 1997년 김대중 당선으로 이어지는 승패의 뒤바뀜 현상이 그것이다.

이를 두고 '승자의 오만'이나 '국민들의 견제 심리'라는 방식으로 설명해 왔지만, 가만히 분석해보면 지지율의 변화는 생각만큼 급격하지 않았다. 다만 승리의 기준점이 달라지는 바람에 그런 오인된 평가가 존재했을 뿐이다. 가령 1987년 노태우 당선과 1988년 여소야대는 여야 승패의 정반대 결과를 가져왔지만 정당 지지율 순서에는 변화가 없었다. 1988년 여소야대 결과도 대선으로 상정해 승패를 다시 따졌다면 당시 여당의 대승으로 결론이 난다.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 인식 조화가 관건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기자실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원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4·11 총선 결과에 대한 감사의 인사말을 하고 있다.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기자실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원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4·11 총선 결과에 대한 감사의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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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박근혜 대세론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논리를 제기하는 것은 홍준표 대표처럼 진보 세력의 마음을 위안하고자 함도 아니고 근거 없는 낙관론으로 상황을 오판하게 만들자는 것도 아니다. 일찍이 김대중 대통령도 주장한 바 있듯이 정치인은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 감각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 역사에 대한 소명 의식을 가지고 정치에 뛰어든 사람이라면 선거를 치를 때 이러한 균형 감각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원론을 상기시켜 주고자 함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모든 정치세력에게는 선거에 대한 근거 없는 낙관도 비관도 모두 금물이다. 국민들에게 내일의 희망을 이야기할 정치 비전을 설파할 전도사도 필요하지만 이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는지 냉철히 파악할 정치분석가도 필요하다.

지금 진보진영 내에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전도사들이 여기저기 넘쳐난다. 이명박 정부 심판과 복지를 이야기하는 전도사들이 넘쳐나지만 냉철한 상인 감각을 가진 사람은 턱없이 부족하다.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겠으나, 향후 대선을 앞둔 냉철한 접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박근혜는 이번 총선을 통하여 분위기가 중요한 정치에서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이 기선 제압이 대세 흐름으로 이어지는 성공을 거둔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탄생할 것이고, 밑바닥에 흐르는 빨간불이 다시 힘을 발휘한다면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지 못한다.

축구 경기장이 기울어져 있고 기본기가 달려도 축구공은 둥근 법이고, 매번 이어지는 전국 단위 선거는 이변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미래에서 왔다는 터미네이터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처럼 미래는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선거 결과는 아무도 예측 못한다. 다만 모든 선거에서는 기본적인 구도의 유리함과 불리함, 유리함을 극대화할 혹은 불리함을 극복할 최선의 후보,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극대화하는 선거 캠페인이 존재할 따름이다.

대통령 선거는 지지자와 대표 선수인 정치 세력이 한 몸이 돼 벌이는 거대한 전투다. 모든 정치 세력이 자신을 지지해달라고 읍소하겠지만,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 인식이 조화를 이루는 정치 세력에게 승리의 월계관이 돌아갈 것이다.


태그:#박근혜, #4.11총선,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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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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