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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 127석, 통합진보당 13석으로 야권 연대가 140석을 확보한 이번 선거 결과는 지난 18대 총선에서 야권이 원내 의석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던 결과(민주당81, 민주노동당 5, 창조한국당 3석)와 비교해 볼 때 대단한 약진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권에서 이번 결과를 패배로 받아들이는 것은 선거를 앞두고 정부 여당에 유독 많은 악재들이 노출돼 있었고 그로인해 야권이 압승할 것으로 예상했었기 때문이었다. 여당의 입장에서 한나라당이란 이름을 버리고 새누리당으로 간판을 바꾸어 달기까지의 과정은 굴욕의 연속이었다. 그 과정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정권 실세의 비리연루사건과 치솟는 물가와 실업률 서민가계의 위기 등 일일이 손꼽아 셀 수 없을 만큼의 악재로부터 어떻게든 거리를 두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국정의 총체적 난맥, 살인적 물가상승, 실업률 상승, 엥겔지수 상승 등 경제분야 에서의 실정과 표현과 언론자유의 위축 같은 민주주의의 후퇴, 권력의 핵심층이 연루된 갖가지 비리 등은 집권 여당이 선거과정에서 숙명처럼 안고 갔어야만할 문제들이었기에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번 선거에서 야권의 무난한 승리를 점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새누리당은 민주통합의 원내1당과 야권의 과반확보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단독으로 원내 과반의석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강원지역 석권과, 충청지역에서 몰락한 자유선진당의 지지층을 대부분 흡수함으로서 영남권 패권정당의 지역색을 희석시키고 명실상부한 전국 정당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할 수 있게 되었다.

일부 언론은 이러한 선거 결과를 새누리당의 압승으로 보고  소위 '선거의 여왕'이라는 박근혜 새누리당 선대위원장의 역할을 부각시키고 있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새누리당의 압승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박위원장의 영향력이 미쳤다고 볼 수 있는 곳은 영남을 제외하고는 강원. 충청지역에 국한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중 9개 의석을 모두 석권한 강원도의 경우에도 접전 지역이 많았다는 점에서 박위원장의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고 볼 수 있고, 특히 유권자의 절반이 몰려 있는 수도권에서 새누리당 후보들이 야당에 크게 밀린 부분은 박근혜 대세론의 한계를 드러낸 부분으로 평가받고 있기도 한 것이다.

이런 요소를 감안한다면 이번 선거 결과를 '새누리당의 승리'로 규정하고 승인을 규명하는 것보다는 '야권의 과반의석 확보 실패'로 보고 그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선거를 통해 드러난 민심의 소재를 보다 명확하게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야권 패배의 네 가지 이유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총선을 앞둔 야권의 상황은 호재 일색이었다. MB 정권의 실정 즉, 여러 생활 경제지수는 최악의 수치로 서민가계를 압박하고 있었고, 정권의 도덕성은 바닥이었으며 안보와 외교는 난맥상에 빠져 있는 등 그야말로 민심은 폭발 직전에 이른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이고 보니 야권은 모든 선거구에서 여야 1대 1대결구도로만 가면 쉽게 승리할 것이라는 등식을 산출할 수 있었고, 그 차원에서 야권 연대가 이루어졌으니, 만약 야권이 이러한 호재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면 선거는 단지 야권의 승리를 확인하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했을 뿐 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안철수 교수와 나꼼수의 등장이 2,30 대의 정치참여와 야권지지층 결집에 큰 역할을 했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 서울 광장의 나꼼수 공연 안철수 교수와 나꼼수의 등장이 2,30 대의 정치참여와 야권지지층 결집에 큰 역할을 했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 이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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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에서 아군이 준비한 무기를 적군이 탈취하여 오히려 아군이 공격당했다면 얼마나 치명적일까?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한 요인을 살펴보면 이런 자충수가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1. 대안세력으로서의 신뢰감을 주지 못했다.

각종 경제지표가 나쁠 경우 이것이 선거에서 여당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경제가 나쁘면 유권자는 반사적으로 야당을 지지하게 되는데 이것은  야당을 집권세력에 대한 대안세력 이라고 잠재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드러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연일 최저치를 갱신하고 있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선거 결과는 무능하고 부패한 MB 정권에 고개를 돌린 유권자 중 상당수가 현실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지면서도 야당을 대안으로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집권당 내부에서 대안을 찾고 있다는 점을 읽을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유권자들이 선거를 앞두고 급격한 변화를 경계하는 성향으로 드러나는 탓도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야당을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그들이 야당에 쉽사리 마음을 열지 못하는 것은  야당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고 있다"는 인식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거나, 야당이 뚜렷한 정책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정권심판론'을 앵무새처럼 반복한 측면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2. 자만과 판세 오판

작년 10월에 있었던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2012년 총선이나 대선에서 아무도 야권의 승리를 점치지 못할 만큼 야권은 침체와 무기력에 빠져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반전시킨 계기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과정이었다. 안철수 교수의 등장은 2,30대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나꼼수>열풍이 야권지지자의 결집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에 이의를 표명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2,30대의 정치무관심과 지지자 분열 문제는 그 때까지 야권이 아무리 해소하려고해도 출구를 해법을 찾지 못한 난제 중의 난제였었음을 감안하면 안철수, 나꼼수의 등장은 야권에게 있어서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았다. 지난 4년 동안 요지부동이던 박근혜 대세론이 흔들리고 야권 인사나 지지자들이 비로소 "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품게 된 것은 전적으로 이들의 등장으로 인한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여기부터였다. 변화를 감지한 여당은 '쇄신위'를 구성하고 당명을 변경하는 등 민심의 변화에 대해 기민한 대응 움직임을 보였으나 야권은 외부로부터 조성된 호재들을 마치 마치 민주당 스스로 이루기라도 한 것처럼 누리기만하며 지지자를 실망시켰다.

선거 과정에서 돌발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은 한대표, 그러나 민주당 리더십의 부재가 보다 큰 총선 패배의 요인이다.
▲ 한명숙대표 선거 과정에서 돌발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은 한대표, 그러나 민주당 리더십의 부재가 보다 큰 총선 패배의 요인이다.
ⓒ 이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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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 과정에서의 불통은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는데, 무원칙한 공천으로 인한 지지자들의 불만과 우려가 표출되는 상황에서도 한명숙 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해 "민주통합당이 원내 1당을 바라보고 있으며 단독으로 과반정당도 되고 싶다"고도 했는데 이것은 야권이 얼마나 판세를 잘못 읽고 있었는지 잘 드러낸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역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현재의 야권이 단독 정당으로 과반의석을 차지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제17대 총선의 예를 보자. 당시 국민은 탄핵을 의결한 야당에 분노하고 있었고 선거는 야당의 압승으로 예고됐었다. 거대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80석도 어렵다는 예상이 공공연히 나돌 만큼 열린우리당의 압승이 예상됐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얻어 단독과반에 성공했지만 한나라당 역시 121석을 확보함으로서 아무리 여건이 좋아도 진보 정치세력이 선거에서 압승하는 결과는 쉽게 나오지 않는 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당시 한나라당이 최악의 상황에서도 정당득표율 35.8%를 기록했다는 사실은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이다.

지역별 선거구의 분포만 보아도 총선에서 야권의 압승을 점치기 어려운 상황임을 알 수 있다. 현재 국회의원 선거구는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 110석, 부산과 대구를 포함한 영남권 67석, 호남권 30석, 충청권 25석, 강원 9, 제주 3석이다. 그 중 영남권 67석을 새누리당이 석권한다고 가정했을 때 야권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호남과 충청 그리고 강원. 제주 지역을 석권하고 수도권에서도 우세를 점하거나, 수도권에서 압승하고 강원 충청 지역에서 절반 이상을 승리해야만 가까스로 과반에 도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반면 새누리당의 입장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영남을 석권하고 수도권과 강원 충청 지역에서 웬만큼만 성적을 내면 기본적으로 120석 이상을 무난하게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여건을 감안할 때 이번 선거결과 역시 야당에 유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야당은 쉽게 승리를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새누리당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35%의 무조건지지층을 가졌을 뿐 아니라, MB 정권이 사유화한 공권력과 언론 그리고 각종 기득권의 비호를 받고 있어 비록 약간의 호재가 있다고 할 지라도 야권이 모든 화력에서 절대적 열세에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3. 전략의 실패

야권은 이번 선거에서 정권심판론을 부각시켰다. 하지만 모든 선거는 항상 집권 세력에 대한 심판적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이번 선거에서 야권이 들고 나온 '정권심판론'은 MB정권의 정치. 경제. 외교. 도덕성 등 총체적난맥상을 유권자들이 공감하는 데 오히려 방해요소로 작용하였다.

현재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가계경제의 위기, 청년실업, 양극화의 심화, 불안한 미래 등에 대해 사안별로 콕 찝어 인식시켜주지 못함으로서 집권 세력의 무능을 유권자에게 각인시켜주는 데 실패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새누리당의 박근혜 위원장이 집권 세력이 책임져야할 부분인 '민생'문제를 거론하며 오히려 '야권심판론'을 제기하며 역공을 가해오도록 방치한 것도 야권의 중대한 과실로 볼 수 있다.

민주당이 제기한 정권심판론은 오히려 야권심판론으로 역공을 당했다.
▲ 정권심판 피켓을 들고 있는 야당지지자 민주당이 제기한 정권심판론은 오히려 야권심판론으로 역공을 당했다.
ⓒ 이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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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중대한 실수는 (박근혜의 새누리당 = 실패한 MB 정권의 한나라당) 등식을 국민에게 인식시키는 데 실패한 점이다. 대세론이 흔들리면서 박근혜측은 재빠르게 당명을 바꾸고 친이계를 숙청하여 당권을 장악했고 이 과정을 [쇄신]으로 위장하며 MB정권의 실정에 대해 여당이 책임져야할 부분에서 발을 뺏는데도 야권은 이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4. 리더십의 부재

선거기간 동안 야권은 "정권심판론"을 거론하며 '민간인 불법 사찰'등의 문제로 여당을 공격했지만 이 전략이 잘 먹히지 않았던 것은 이미 당명까지 바꾸고 MB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심지어는 "저도 사찰을 당했다"며 역공을 취한 박근혜의 새누리당 전략에 말려든 측면이 없지 않았다.

특히 민생도탄에 막중한 책임을 가진 여당이 적반하장으로 '민생'을 거론하며 야권을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무리'로 매도하도록 방치한 부분은 부동층이 유독 많은 강원. 충청지역에서 야권이 패배를 자초한 중대한 원인이 된다.

이처럼 여당의 적반하장에 가까운 공격이 먹힐 수 있었던 것은 야당이 집권했을 경우 유권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데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야권 리더십의 부재 탓인 것이다.

선거의 본질은?

선거는 정권에 대한 심판적인 성격을 강하게 가지지만 보다 중요한 본질은 임기 동안 사회를 이끌 일꾼을 뽑는 다는 것에 있다. 바꾸어 말해서 유권자는 과거에 대한 심판보다는 능력 있는 일꾼을 선택하는 데 더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난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도덕적으로 많은 하자를 가지고 있었던 이명박 후보가 야권 정동영 후보에 압도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이명박 후보는 비록 허황되지만 747 공약 등으로 자신이 집권했을 경우 어떤 식으로 나라를 운영하겠다는 비전을 보여준 반면, 정동영 후보는 이명박 후보의 도덕적 약점을 공격하는 데 전력을 소진하며 막상 자신이 집권 했을 경우 어떻게 우리 사회를 운영할지 국민에게 각인시켜 주지 못한 것이 승패를 좌우한 가장 큰 요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을 심판하고 상식과 정의가 되는 세상을 열고자 하는 지지자의 열망이 담긴 총선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 채 막을 내렸다. 야권은 비록 패배했지만 그 과정에서 지지층의 결집과 젊은층의 투표참여 확대 같은 성과도 없지 않았다. 따라서 얻은 교훈을 잘 활용하고 더 이상 자충수를 두지 않아야만 12월에 있을 대선에서 무능하고 부패한 세력을 몰아내는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태그:#민주통합당, #411총선거, #새누리당, #박근혜, #나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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