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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기지 문제가 불거진 후 5년 만에 찬성과 반대 입장을 떠나 강정마을 주민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잔치를 벌였다.
 해군기지 문제가 불거진 후 5년 만에 찬성과 반대 입장을 떠나 강정마을 주민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잔치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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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제삿밥 나눠 먹고, '갑장 계'하며 애경사 함께 치르던 강정 마을주민들이 무려 5년 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한 노인의 이야기처럼 "다툼 한 번 없이 60년을 넘게 살아왔는데 그놈의 해군기지 때문에 원수만도 못한 사이가 되어 버린지 5년"만이었다.

15일 정오 강정마을 의례회관. 얼추 잡아 약 2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제주 전통음식인 몸국과 삶은 돼지로 차려진 잔칫상을 받았다. 이날 잔치는 강정마을 노인회가 마련했다. 제주해군기지 문제로 갈린 마을 주민들이 서로 소통하고 화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가자는 취지에서였다.

김정민 강정마을 노인회 회장은 "우선 서로 다시 만나 손이라도 잡아보자고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했다. 그러나 5년이라는 세월은 잔인할 정도로 길었다. 서로 손잡는 것조차 서먹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특히 약 40여 명의 찬성 측 노인들은 의례회관으로 바로 들어오지 못하고 저 멀리서 쭈뼛거렸다. 이를 지켜보던 일부 주민들은 쓴 눈물을 훔쳤다. 김정민 노인회장 등이 나서서 반갑게 인사하며 손을 이끌고 나서야 쑥스러운 얼굴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김정민 노인회장은 "찬성 측에서 한 명만 와도 성공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왔다는 것은 그만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니 대성공"이라고 기뻐했다.

김 회장은 "지금까지 등 돌리고 살다가 오늘 만나 서로 술잔도 주고받으니 사라졌던 이웃 간의 정이 살아난 것 같다"며 "오늘 만난 것 자체가 의의가 있으니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자주 만남의 시간을 갖다보면 옛정이 살아오지 않겠냐"고 했다.

"국가가 주민들의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가장 비열하고 나쁘다"

윤호경 강정마을회 사무국장은 청년회 팀으로 윷놀이 시합에 출전했다. 윤 국장은 특유의 자세로 윷놀이판을 압도했지만 정작 그가 속한 청년회 팀은 여성들로 구성된 민속보존회에 져 2위를 했다.
 윤호경 강정마을회 사무국장은 청년회 팀으로 윷놀이 시합에 출전했다. 윤 국장은 특유의 자세로 윷놀이판을 압도했지만 정작 그가 속한 청년회 팀은 여성들로 구성된 민속보존회에 져 2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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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잔치에 손이 많이 가는 제주 전통음식인 몸국을 준비한 것도 이유가 있다. 제주도에선 동네 큰 잔치나 '큰 일'이 있을 때 몸국을 끓여 함께 나눠 먹는 오랜 전통이 있다. 몸국은 단순한 음식이 아닌 공동체 성향이 강한 '탐라 제주'의 전통 그 자체인 셈이다.

김 회장은 "먹는 것에서라도 정 나누고 살았던 옛날 전통을 되새기자는 의미에서 편한 음식이 있긴 하지만 몸국을 준비했다"고 소개했다.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누구보다 앞장 서 하고 있는 윤상효 할아버지(75)는 "국가가 주민들의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가장 비열하고 나쁘다"며 "5년 만에 손잡고 만난 것인데 얼마나 서로들 반가웠겠냐"고 말하며 눈물을 스쳤다. 

윤 할아버지는 "이번에 40여 분이 오셨으니 많이 온 편은 아니지만 처음 만남치고는 정말 많이 온 것"이라고 기뻐하며 "5월 8일 어버이날 행사 때 다시 만나기로 했고, 또 자주 이런 자리를 만들기로 했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은 "설촌 450년간 오순도순 돈독했던 지역공동체가 제주해군기지 문제가 터진 후 갈갈이 찢겨지고 말았다"며 "오늘 행사를 기점으로 해서 앞으로 우리 주민들이 오순도순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정마을 윷놀이 시합에서 1위를 하며 파란을 일으킨 민속보존회. 이 팀은 모두 여성들로 구성됐다.
 강정마을 윷놀이 시합에서 1위를 하며 파란을 일으킨 민속보존회. 이 팀은 모두 여성들로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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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팔순 노인부터 이십대 청년까지 한 자리에 모인 강정마을 주민들은 몸국으로 점심을 먹은 후 윷놀이 시합을 했다. 주민들은 노인회와 마을회, 청년회, 부녀회, 민속보존회 등으로 경기를 진행했다. 이날 윷놀이대회의 최종 우승은 민속보존회가 차지했다.


태그:#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윷놀이, #제주도,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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