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엊그제는 자료를 검색하다가 깜짝 놀랄만한 뉴스를 보았다. 공직선거법 9조 위반으로 민주통합당으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6일 열린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3월 소비자 물가가 19개월 만에 2%대로 떨어졌다"며 "물가안정에 적극 동참해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박 장관 말을 따라 19개월 전(2010년 8월) 가계부를 뒤져봤다. 어이가 없었다. 당시 재래시장 할머니들은 상추 1000원, 깻잎 1000원, 호박잎, 고사리 2000원, 애호박은 3개 2000원에 팔았다. 그러나 지금은 옛날 얘기가 되었다. 상추와 깻잎은 양이 줄었으며 고사리는 3000원 어치도 팔지 않으려고 한다.

단골 반찬가게 파김치. 작년 가을부터 3000원어치는 팔지 않는다.
 단골 반찬가게 파김치. 작년 가을부터 3000원어치는 팔지 않는다.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장보기를 마치고 오다가 출출하면 사 먹던 잔치국수도 19개월 전에는 2000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3000원으로 50% 올랐다. 겉절이, 열무김치, 파김치도 3000원 어치씩 사면 며칠 먹었다. 그런데 지금은 손이 부끄러워 돈을 내놓지도 못한다. 단골 반찬가게도 3000원어치는 팔지 않기 때문이다.

작년 3월에 비해 생선(고등어)값이 내렸다는 한국 농수산식품유통공사 발표는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해서 답답한 마음에 지난 8일 오후에는 '주꾸미 축제'를 며칠 앞둔 군산시 해망동 수산물센터를 돌아보았다. 요즘 제철인 주꾸미와 서민들 밥상에 자주 오르는 건어물(미역, 멸치, 오징어 등) 시세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충북 청주에서 왔다는 아주머니 네댓이 조기 상자를 놓고 얘기를 하고 있기에 다가가 물으니까 한 상자(300~320마리)에 18만 원 주고 샀단다. 한 아주머니가 "비싸게 샀나요?"라고 묻기에 요즘 시세는 모르고, 지난해 11월에 비해 조금 비싼 것 같다니까 "작년보다 물가가 많이 올랐잖아요"라며 살짝 웃었다. 웃으니까 좋긴 한데, 상인을 이해하는 것인지 하도 물가가 뛰니까 그러려니 하고 포기하는 것인지 속마음은 알 수 없었다.

2%대 안정? 20% 올랐다고 해야 맞을 겁니다

수산물센터에서 참조기 30kg 한 상자(340~350마리)에 14만 원을 호가했으며 20kg은 7만 원, 22kg은 9만 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조기장수 아주머니는 "국산 조기는 한 상자를 모두 같은 크기로 채우는 게 아니고 3종류가 섞여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집에 가져가면 금방 알기 때문에 정확히 알려주는 게 신용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 그는 조석으로 변하는 게 생선 시세여서 구매할 때 고려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1kg에 23000원 하는 죽은 주꾸미, 예전엔 생물의 절반 값이었는데 지금은 생물과 비슷하다 한다.
 1kg에 23000원 하는 죽은 주꾸미, 예전엔 생물의 절반 값이었는데 지금은 생물과 비슷하다 한다.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한쪽에서는 아주머니 넷이 둘러앉아 주꾸미와 바닷가재를 안주로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낯익은 얼굴들이어서 가까이 다가가 장사할 주꾸미를 술안주로 먹어버리면 어떻게 하느냐니까 "하도 귀한 거(주꾸미)니까 남 안주고 우리가 먹을라고 허요"라고 받아쳤다. 손님이 없어서 술을 마시고 있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하고 있었다.

"엊그제 뉴스를 보니까 정부에서는 물가가 2%대로 안정됐다고 하던데 이곳은 그게 아닌 모양입니다."

"2%대 안정 좋아하네. TV나 신문이나 다들 모르고 하는 소리에요. 20% 올랐다고 해야 맞을 겁니다. 주꾸미 시세도 그래요. 오늘만 해도 주꾸미 생물은 1kg에 2만8천~3만 원, 죽은 것은 1kg에 2만3천 원씩 팝니다. 생물은 작년보다 조금 올랐지만, 죽은 것은 1kg에 5천 원 이상 올랐거든요. 그만큼 주꾸미가 귀하다는 얘기죠.

그나저나 며칠 있으면 축제가 열리는데 주꾸미가 잡히지 않아서 걱정입니다. 그렇게 귀하니까 가격도 조석으로 변합니다. 어제하고 3일 전하고, 일주일 전하고 가격이 다 다르다는 겁니다. 내일은 또 얼마 나갈지 귀신도 모르죠. 그래서 시세를 말하려면 최소한 날짜를 얘기해줘야 손님이 헷갈리지 않습니다. 우리도 장사하기 편하고···."

"정부의 '물가 2%대 안정'은 말도 안 돼!"

 멸치 값을 물어보는 손님과 주인아주머니. 손님은 값만 물어보고 발길을 돌렸다.
 멸치 값을 물어보는 손님과 주인아주머니. 손님은 값만 물어보고 발길을 돌렸다.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건어물센터 가게들은 더 어려워했다. 4년 전 개업했다는 현명진(50)씨는 상인들이 입을 딱딱 벌릴 정도로 모든 건어물 가격이 올랐다고 전했다. 서민이 가장 많이 찾는 미역은 5000원(400g) 하던 게 8000원에 거래된다고. 한 축(20마리)에 3만8천 원 하던 오징어는 5만5천 원을 호가하며, 볶음용 멸치는 한 상자(1.5kg)에 2만3천 원에서 2만8천~3만 원으로 올랐단다. 한 봉지(150g)에 1만 원 하는 새우도 엄청나게 뛰었다며 한 포(10kg)에 6만 원가량 올랐다고 했다.

예전에는 변두리 노점상에서 취급하던 쥐포가 지금은 황제 대우를 받는단다. 국내산 쥐포 A급 20kg 한 상자에 42만 원~45만 원 나가던 것이 올해는 1백만 원을 넘어가고, 38만 원 정도 나가던 B급 20kg 한 상자에는 1년 만에 배가 넘는 78만 원으로 올랐다는 것. 가격을 묻고는 화내고 가는 손님에게 뭐라고 말도 못한단다.  

미역을 사러 나왔다가 대화를 듣던 주부 김아무개(41)씨는 "정부의 물가 2%대 안정은 말도 안 된다"며 "10마리 1만 원이던 고등어도 지금은 6마리 1만 원인데 무슨 안정이에요?"라며 되물었다. 의사표시를 시원하게 해주어 반가웠다.

6개월 만에 찾은 수산시장을 1시간 남짓 돌아보면서 놀라운 경험을 했다. 예년과 달리 상인들이 조심해야 한다며 인터뷰를 거절하거나 자신의 이름과 상호가 나가는 것을 꺼리는 등 무척 민감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시장을 나오면서도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물가, #주꾸미 , #멸치, #미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