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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살메르 성
 자이살메르 성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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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푸르를 떠난 일행이 파키스탄과 국경도시인 자이살메르로 가는 도중 본 차창 밖 모습은 이제껏 보아왔던 모습과는 다르다. 몇 시간을 가도 산이 보이지 않고 들판에 듬성듬성 서 있는 마른 풀과 물통에 물을 길어 나르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사막이 가까워졌음을 말해준다.

자이살메르는 1156년 라지푸트인인 라왈 자이살(Rawal Jaisal)이 로두루비로터 이곳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자이살메르는 대상무역의 거점도시로 비단, 아편, 향료 등의 무역으로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법. 18세기에 들어 수에즈 운하의 개통과 뭄바이 항의 건설로 주요 운송 수단이 해상으로 바뀌자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사람이 살며 옛 골목길을 그대로 간직한 자이살메르성

지정학적으로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경계선에 있었던 자이살메르는 기원전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쟁을 치러왔다. 그래서일까 사막에서도 10미터쯤 우뚝 솟은 부분에 성을 건설해 적이 쉽게 공략하지 못하도록 했다.

자이살메르성 골목길 모습. 사람들이 떠나지 않고 옛날 그대로 살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자이살메르성 골목길 모습. 사람들이 떠나지 않고 옛날 그대로 살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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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살메르는 한때 유럽-중동-페르시아와 인도를 연결하는 사막교역로의 핵심기지 역할을 해 엄청난 부를 쌓았다. 넓이 3~4미터의 골목길은 옛 모습 그대로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것은 9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부잣집으로 보이는 집의 대문은 갖가지 현란한 조각들이 지금도 그대로 붙어있어 웬만한 유적지와 같다.

불살생 주장하는 자인교의 성지에 사티 흔적... 부인을 남자의 종속물로?

성안에는 7개의 자인교 사원이 있다. 12~16세기 상인들의 대규모 기부로 조성된 각 사원들은 좁은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사원에 새겨진 정교한 조각들은 마치 인형 같은 모습이다. 자인교는 BC 6~5세기 무렵. 부처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마하비라(Mahavira)가 주창한 종교이다. 자인교의 목표는 영혼을 완전히 정화하여 삶의 비참한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

자인교 사원. 돌에 새긴 조각들이 정교하다
 자인교 사원. 돌에 새긴 조각들이 정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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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라왈 궁전 입구에 선명히 찍혀있는 손바닥 자국.  사티의 흔적이다
 마하라왈 궁전 입구에 선명히 찍혀있는 손바닥 자국. 사티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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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인교의 특징 중 하나는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그 때문에 자인교 수행자들은 극단적인 무소유인 나체수행을 지향한다. 또 하나의 특징은 불살생과 비폭력을 추구하는 것. 동식물은 물론이거니와, 수많은 여러 생물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 생명의 존엄성을 지켜주자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이 성을 다스리는 지방 군주가 사는 마하라왈 궁전 입구에는 사람의 손바닥 문양 10여 개가 선명히 찍혀 있었다. 인도여행을 출발하기 전 여행서적을 읽을 때 가장 충격을 받았던 풍습이 사티제도이다.

사막여행을 위해 낙타를 타고 떠나는 낙타사파리. 낙타 등에 올라탄 일행은 일주일 내내 엉덩이가 아팠다
 사막여행을 위해 낙타를 타고 떠나는 낙타사파리. 낙타 등에 올라탄 일행은 일주일 내내 엉덩이가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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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도 꽃이 피어 깜짝 놀라 낙타몰이꾼에게 물었더니 '핀폴'이란다
 사막에도 꽃이 피어 깜짝 놀라 낙타몰이꾼에게 물었더니 '핀폴'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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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와서 법으로 금지된 사티제도는 오랜 역사를 가진 힌두교의 풍습이다. 본래는 '정숙한 아내'라는 의미로  남편의 시체를 화장하는 불에 몸을 던져 죽은 여자를 뜻한다. 그들은 "가문에 화를 불러온 재수 없는 여자" 또는 "남편을 잡아먹은 년"으로 낙인찍혀 바깥출입을 금지 당한 채 일평생 집안에 틀어박혀 살아야 했다.

죽은 여인 중에는 굴욕을 겪으며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 불타는 남편의 시신 곁으로 걸어 들어가 죽음을 택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강제로 던져졌다고 한다. 힌두교의 모순에는 강하게 반대하면서도 내부 모순에는 눈감은 흔적에 씁쓸해 하면서 옛 우리 조상들의 순장 풍습이 떠올랐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오랜만에 한국 음식 실컷 맛보다

자이살메르로 가는 도중 열차 안에서 한 인도인을 만났다. "자이살메르에 가면 예약된 숙소가 있느냐?"며 값싸고 깨끗한 숙소가 있으니 자신이 안내하는 숙소로 가잔다. 아그라에서 숙소 때문에 혼이 난 일행은 자이푸르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전화 연락했지만 방이 없다고 했었다. 그래도 "인근 숙소를 연결시켜줄 테니" 오라는 전갈을 받았다.

한국인 '써냐'씨가 운영하는 '디저트 뷰'는 인심 좋은 주인과 푸짐한 음식,맛으로 정평이 나 한국인 여행객들이 많이 이용한다. 사진은 '써냐'씨의 모습
 한국인 '써냐'씨가 운영하는 '디저트 뷰'는 인심 좋은 주인과 푸짐한 음식,맛으로 정평이 나 한국인 여행객들이 많이 이용한다. 사진은 '써냐'씨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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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살메르역 앞에는 여러 대의 차와 가이드들이 안내 간판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친구를 따라 가려고 할 찰나다. 한국말을 잘하는 인도인이 다가와 "한국인들입니까? 차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 따라가면 안 됩니다. 사기꾼들이에요"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미 몇 번에 걸쳐 학습을 한 일행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에 가기로 결정했다. 설마 한국인이 사기를 치지는 않겠지 하는 심정으로. 아니 조금 비싸더라도 한국인을 도와줘야 재정적으로 튼튼해진 한국인들이 인도에서 큰소리치며 살아남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여행하다가 우연히 이곳에 자리 잡은 지 6년 됐다는 '써냐"씨의 한국 음식 솜씨는 일품이었다. 수제비국, 김치덮밥, 라면, 오므라이스 등은 국내 식당에서 먹은 것보다 양도 많고 훌륭했다. 입맛에 맞지 않아 못 먹고 장기간의 여행에 지친 학생들은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쌩떽쥐베리 "눈에 보이는 것 다 진실 말하는 것 아니다... 마음의 눈으로"

누구나 한 번쯤은 사막에서 낙타를 타고 여행을 해 보고 싶다는 낭만에 젖어본다. 오전 9시 반에 숙소를 떠난 일행은 자동차로 40㎞를 달려  낙타사파리가 시작하는 지점에 도착했다. 낙타몰이꾼 대장은 "낙타는 타고 내릴 때가 가장 위험하니 스틱을 꼭 잡으라"는 주의사항을 줬다.

태양이 기지개를 펴는 가운데 낙타몰이꾼과 낙타가 출발 준비를 했다
 태양이 기지개를 펴는 가운데 낙타몰이꾼과 낙타가 출발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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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반쯤 걸려 나무가 있는 그늘에서 휴식을 취한 일행은 낙타 몰이꾼들이 해주는 짜파티로 점심을 해결했다. 짜파티는 우리나라의 부침개와 비슷한 생김새다. 낙타몰이꾼들을 따라다니는 아이들은 모래로 식기를 씻어 가방에 집어 넣었다. 그동안 "낙타몰이꾼들은 모래사막에서 어떻게 밥을 하고 그릇은 어떻게 씻나?" 했던 궁금증이 풀렸다. 그들은 단단한 땅을 파 부엌을 만들고 주위에서 나뭇가지들을 모아 불을 피운 후 밥을 지었던 것이다.

말라 비틀어지고 바람에 풍화되어 모래만 날리는 사막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과 낙타에 놀란 사막쥐가 고개를 내밀고 경계를 하며 연신 땅속으로 들락거린다. 시속 100㎞로 달리며 차가 막히면 짜증을 냈는데, 시속 5㎞ 밖에 안 되는 낙타여행은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낙타몰이꾼들이 새벽에 일어나 일행을 위해 아침밥을 짓고 있다. 밥이라야 짜파티와 우유 한 잔, 삶은 계란이 전부다
 낙타몰이꾼들이 새벽에 일어나 일행을 위해 아침밥을 짓고 있다. 밥이라야 짜파티와 우유 한 잔, 삶은 계란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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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몰이꾼들의 심부름을 하는 아이가 모래로 식기를 씻고 있다. 물이 없는 곳이니 어쩔 수 없지만 음식물 찌꺼기를 그대로 두는 것보다는 훨
씬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낙타몰이꾼들의 심부름을 하는 아이가 모래로 식기를 씻고 있다. 물이 없는 곳이니 어쩔 수 없지만 음식물 찌꺼기를 그대로 두는 것보다는 훨 씬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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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저 끝으로 황홀한 모습의 해가 지고 사막의 밤이다. 캠프파이어를 하는 동안 재속에 묻어둔 감자와 통닭이 익어간다. 피곤에 지친 학생들이 졸리기 시작할 즈음 각자의 살아온 얘기가 시작됐다. 몇 명을 제외하곤 귀 기울이지 않는 아이들. 여행에 별 의미를 찾지 못했다는 학생도 있었다. "더럽고, 냄새나는 이런 여행을 그만두고 빨리 한국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학생도 있었다. 

쌩떽쥐베리는 <어린왕자>에서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진실은 마음의 눈으로 볼 때에만 보인다"고 했다. 겨울방학을 접고 편안한 집을 떠나 인도까지 와서 고생하는 학생들. 관광지의 겉모습만이 아닌 사회적, 역사적 의미에 눈뜨기 빈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과 '문화촌뉴스'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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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인권, 여행에 관심이 많다. 가진자들의 횡포에 놀랐을까? 인권을 무시하는 자들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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