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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강신주 박사가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김수영 다시읽기'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철학자 강신주 박사가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김수영 다시읽기'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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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품이 단독성을 가지게 되면 그 작품은 보편성을 띠게 됩니다. 여러분이 아는 어떤 위대한 작가들이 자신들의 작품 속에서 독자들을 향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본 적 없지요? 영화를 볼 때 감독이 '이 부분이 감동적인 부분'이라고 설명하지 않잖아요. 다만 어떤 캐릭터가 우리의 눈을 끄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캐릭터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알아요. 공감하게 되지요. 이런 의미에서 단독성은 그 자체로 보편적이에요."

'단독적인 것이 곧 보편적'이라는 강신주 박사의 말에 수강생들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단독적이라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인데 그게 어떻게 보편적일 수 있다는 것일까.

<철학 VS 철학>의 저자인 강 박사는 지난 4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열렸던 '김수영 다시 읽기' 다섯 번째 강의에서 '단독성의 시인' 김수영의 시 세계와 그가 획득했던 보편성의 의미에 대해 강의했다. 그는 이날 강의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단독성을 실현할 때, 비로소 다른 사람들이 공감하는 보편성도 기대할 수 있다"며 "구체로의 비약을 실천하고 싶어하던 그의 성향은 시 <폭포>에 잘 드러나 있다"고 말했다.

내가 사랑에 성공하면 타인의 사랑도 이해할 수 있어 

강 박사는 지난 강의에서 설명했던 '단독성(singularity)' 개념을 수강생들에게 다시 한 번 알리며 강의를 시작했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가 단독성과 함께 도입했던 '보편성(universality)'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단독성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강 박사는 "모든 위대한 연애시는 사랑을 경험한 시인 개인에게는 다른 사랑과 바꿀 수 없는 단독적인 것이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라면 모두 그 시를 보고 공감하게끔 만드는 보편성도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 박사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흉내내는 순간, 우리의 사랑은 제대로 된 모습을 가지기 어렵지만 우리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하는 데 성공한 순간, 우리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바로 여기서 보편성이 발생한다"며 "다만 주어진 규범과 같은 보편성은 존재하지 않는데,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인문학적 통찰"이라고 설명했다.

"단독성이란 비교 불가능한 시점으로 무엇인가를 바라볼 때 얻어지는 것이라고 설명 드렸습니다. 단독성이 개인의 자유를 가능하게 한다면, 보편성은 그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를 가능하게 하는 개념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단독성을 실현해야만 하고 그럴 때 비로소 다른사람들이 공감하는 보편성도 지니는 것입니다. 김수영은 이런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강 박사는 "김수영은 이런 신념을 '구원의 시를 낳는 동력'이라고 표현했다"고 말했다. 생전에 김수영은 '구원의 시'를 쓴 작가들로 호메로스, 이백, 찰스 디킨스, 에드거 알랜 포우 등을 꼽은 적이 있다. 강 박사는 "김수영이 꼽았던 작가들의 공통점은 외부에서 구원자를 찾지 않고 스스로 글을 통해 단독적인 삶을 살아내려고 했던 이들"이라며 "결국 김수영에게 '구원의 시'란 '단독성 = 보편성'에 이르는 데 성공한 시였던 셈"이라고 말했다.

"단독적인 것이 곧 보편적인 것"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철학자 강신주 박사의 '김수영 다시읽기'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철학자 강신주 박사의 '김수영 다시읽기'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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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박사는 김수영이 눈이나 비 같은 이미지를 즐겨 쓴 이유를 단독성을 지향했던 그의 독특한 인문학적 신념에서 찾았다.

"김수영은 진정한 시인의 진정한 시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단독성 = 보편성'의 회로를 회복하려는 의지의 발현이라고 봤습니다. 시인의 눈에는 지금 존재하는 모든 인간과 사물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것으로 경험되기 때문이지요. 이런 시각은 높은 자리에서 낮은 곳의 사람들을 관조하고 지배하려는 해묵은 지배욕을 극복해야만 가능합니다. 하늘이란 지고한 권좌로부터 스스로를 추방해 구체적인 곳으로 내려가는 눈이 시인의 정신을 상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요."

강 박사는 "김수영은 젊은 시인들에게 눈을 보고 배우라고 외친다"며 "시가 하늘로 올라가는 추상으로의 비약이 아니라 땅으로 내려가는 구체로의 비약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설명했다. 그는 "눈이 내리는 날 세상의 모든 존재는 빈부, 미추, 선악, 강약을 넘어서 동등하고 평등하게 변한다"며 "하늘과 땅이 지배와 피지배를 상징한다면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이러한 구도를 극복하고 구체로의 비약을 도모하는 시인의 정신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수영의 이러한 성향이 잘 드러난 시가 바로 <폭포>다. 강 박사는 "김수영은 비와 눈처럼 구체적인 삶으로 하강하는 분위기를 가졌지만 동시에 강인함도 갖춘 상징을 찾아냈는데, 그것이 바로 <폭포>"라며 "그는 폭포의 이미지를 통해 비나 눈이 가진 일말의 낭만성까지 극복하는데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강 박사는 "시인의 시가 난해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이 추상적이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구체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기가 삶을 제대로 살고 있는지 의심하고 자신이니까 살 수 있는 삶을 살아내려는 결단의 순간을 맞이할 때, 비로소 자신보다 먼저 그런 결단을 실행했던 시인들의 목소리가 들릴 것"이라고 말하며 강의를 마쳤다.


태그:#김수영, #강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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