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강제징용 당하여 고향을 떠나기 전 소년의 모습들, 전쟁에 참여하기에는 아직 너무 어려보입니다.
▲ 강제징용 강제징용 당하여 고향을 떠나기 전 소년의 모습들, 전쟁에 참여하기에는 아직 너무 어려보입니다.
ⓒ 경기도청

관련사진보기


"돌아보니 내 손엔 어머니 치맛단만..."

"어린 마음에도 뭔가 느낌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왠지 어머니가 날 두고 떠나실까 싶었던지 어머니 옆에서 잠이 들면서도 저도 모르게 어머니 치맛자락을 꼭 손에 쥐고 잠들곤 했지요."

일제 강제 징용으로 끌려간 아버지 얼굴조차 모르는 김삼형(광주·72)씨.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헤어질 때의 기억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일제의 검은 마수가 농촌의 힘없고 가난한 김씨 가정을 비켜갈 리 없었습니다. 태평양전쟁 막바지 부친에게도 결혼 직후 징용통보를 받았습니다. 1944년 어느 봄날이었다고 합니다. 

날벼락같이 집안 장손을 일제에 빼앗긴 할아버지는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나 하소연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집오자마자 아들 하나만을 남겨두고, 어디로 떠난 지도 모르는 남편을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신세인 어머니는 더 말할 것 없었습니다. 세월만 무심할 뿐이었습니다. 1945년 8월. 일제의 패망으로 드디어 징용자들이 하나 둘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김씨의 부친만은 소식이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돌아오는데, 이제나저제나 기다려도 아버지만 소식은 없었던가 봐요. 시아버지 밑에서 살 때라 그렇다고 내색 한 번도 못하고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고…. 어머니는 해 질 녘이면 마을 입구 언덕에 나가 매일 무심히 서 있다 허망하게 돌아오곤 했죠."

그러기를 5년여가 지났을까요.

"하루는 잠결이었지만 왠지 옆이 빈 것만 같더라고요. 돌아보니 어머니가 없는 거예요. 내 손에 어머니 치맛단만 있고…. 차마 말은 못하고 어린 내가 깰까 봐 입던 치마를 그대로 벗어 놓고 간 모양입니다. 원망이야 왜 없겠어요. 그러나 나를 두고 가야 하는 어머니 마음이야 더 오죽했겠어요…."

해방 67년 동안 일제 강제동원 문제 해결 안 돼

어린 나이에 미쓰비시중공업 군수공장에서 강제노역을 당한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 원고들이 2007년 5월 30일 나고야 고등재판소로부터 패소 판결을 받은 직후, 패소 판결 결과에 실망한 나머지 고개를 떨구고 있다.
 어린 나이에 미쓰비시중공업 군수공장에서 강제노역을 당한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 원고들이 2007년 5월 30일 나고야 고등재판소로부터 패소 판결을 받은 직후, 패소 판결 결과에 실망한 나머지 고개를 떨구고 있다.
ⓒ 이국언

관련사진보기


비단 이것뿐 이었을까요? 일제 징용 피해자는 말할 것 없지만, 그 유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도 그에 못지않은 것이었습니다. 해방 67년 동안 일제 강제동원 문제가 해결되고 있지 않는 원인은 두말할 것 없이 반성 없는 일본정부의 태도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정부의 책임이 결코 가벼워질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심지어 박정희 정권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고통 받은 조상들의 목숨 값, 피 값을 돈 몇 푼과 바꾸기까지 했고, 그 뒤 역대 정권 역시 일본정부에 그 책임을 돌린 채, 해방 67년 동안 경제협력을 구실로 동북아 안보를 명분으로 일본정부를 상대로 일제피해자 문제에 등을 돌려 왔기 때문입니다.

팔순 구순에 이른 강제동원 생존자들에게 의료지원금이라는 명분으로 한 달에 7만 원도 못되는 1년에 고작 80만 원을 쥐어 주고 그 책임을 다했다고 손 놓고 있는 정부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일제피해자공제조합'과 함께 지난달 30일과 지난 2일 2차례에 걸쳐 19대 총선을 맞아 전국의 약 600여 명의 총선 후보에게 일제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해 지난달 30일 17개 항목의 정책 질의서를 보낸 바 있습니다.

17개 문항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과중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각 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간단히 이에 대해 '찬성'과 '반대' 표시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정해진 답을 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혹여 입장이 정해지지 않거나 다른 의견이 있는 경우 '입장유보'라고 표시하도록 했고,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개인 의견을 적어 보낼 수 있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총선 후보 대상, 일제 강제동원 문제 관련 설문 보내

불과 13~15세 어린 나이에 '조선여자근로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동원된 광주전남 출신 어린 소녀들이 1944년 5월 말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 기숙사에 도착하는 모습.
 불과 13~15세 어린 나이에 '조선여자근로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동원된 광주전남 출신 어린 소녀들이 1944년 5월 말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 기숙사에 도착하는 모습.
ⓒ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

관련사진보기


전국의 후보 1천여 명 중 600여 명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전국 모든 후보들의 연락처를 확인하는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초 중앙선거관리위원회나 각 정당에 19대 국회 총선 후보들의 연락처와 e-mail을 문의해 봤지만 진보신당 등 일부 정당을 제외하고는 모든 후보의 연락처나 e-mail을 확인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고, 특히 무소속 후보들의 경우 질의서를 보낼 곳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국 개인 홈페이지를 일일이 뒤져 확인할 수 있는 후보들을 찾다보니 그나마 600여 명 정도였습니다.

선거는 곧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합니다. 사실 선거만큼 민의가 표출되는 다른 장은 없으며, 특히 국정을 다룰 후보들에게 정견을 묻고 후보들의 생각을 살펴보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과정이자, 주권재민의 원리에 비추어도 당연한 국민의 권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애초에는 총선 전에 수합된 결과를 일제피해자들에게 알려 후보 선택의 기초를 삼으려던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실상 포기해야 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응답을 보내 온 후보가 워낙 적기 때문입니다. 2차례에 걸쳐 협조를 구했지만, 4일 오후 7시 현재 수합된 응답자는 145명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는 상대적으로 소수정당 후보이거나 무소속 후보로 정책질의서 한 장 답할 여유가 없는 가운데서도 고맙게도 정성들여 응답을 보내온 반면, 이번 총선에 제1당을 노리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후보들의 경우 회신율이 극히 저조합니다.

2차례에 걸쳐 협조를 구했지만, 5일 오전 10시 현재 수합된 응답자는 160명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는 상대적으로 소수정당 후보이거나 무소속 후보로 정책질의서 한 장 답할 여유가 없는 가운데서도 고맙게도 정성들여 응답을 보내온 반면, 이번 총선에 제1당을 노리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후보들의 경우 회신율이 극히 저조합니다.

5일 오전 10시까지 응답을 보내온 후보자 160명의 면면을 구체적으로 보면 ▲새누리당 21명 ▲민주통합당 81명 ▲자유선진당 2명 ▲통합진보당 33명 ▲진보신당 16명 ▲정통민주당 2명 ▲국민행복당 1명 ▲친박연대 1명 ▲무소속 3명 등입니다.

특별한 것은 마치 약조라도 한듯 서울지역 총 46명의 후보들 중 새누리당에서 회신을 보내온 후보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총 12명의 후보를 낸 인천 역시 마찬가지며, 광주, 강원, 충남, 전남, 경북, 제주 지역 역시 단 한 명 없긴 마찬가지입니다. 이 정도면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 후보들이 아예 '찬밥' 취급 하고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응답해 온 후보는 160명... 새누리당 서울지역 후보는 0명

태평양전쟁 피해자 및 유족들로 구성된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제정 추진위' 소속 회원들이 지난 2003년 8월 13일 오전 청와대 부근 한 식당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때 결창이 식당으로 향하는 골목길 양쪽을 가로막고 있다.
 태평양전쟁 피해자 및 유족들로 구성된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제정 추진위' 소속 회원들이 지난 2003년 8월 13일 오전 청와대 부근 한 식당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때 결창이 식당으로 향하는 골목길 양쪽을 가로막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아직 회답을 주지 않은 후보들을 싸잡아 이렇다 저렇다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e-mail 주소를 미처 파악하지 못해 혹여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없지 않았고, 어떤 면에서는 선거철 이 문제가 아니고도 이곳저곳에서 정책질의서가 쏟아졌을 것으로 짐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례대표를 제외한 전국의 새누리당 후보 230명 중에서 회답을 준 숫자가 21명에 불과(9% 회신)한 것은 적잖이 당황케 합니다. 총 후보자 54명 중 33명이 답한(61% 회신) 통합진보당, 총 23명의 후보 중 18명의 후보들이 응답(78%)한 진보신당 후보인들 꼭 여유가 있어서였을까요? 설마, 일제에 강제 징용 피해자 800만 명 중, 이제 국외로 동원된 생존자라야 이제 4만 명 정도 밖에 남지 않아, 표가 되지 않는다는 계산을 한 것은 아니었겠죠?

전국의 모든 총선 후보님들, 애초 계획은 포기하는 대신, 회신은 투표 전날까지 마감 시간을 연장해서라도 끝까지 기다려 볼 생각입니다. 국민을 대표하겠다며 지금 여의도를 노크하는 후보님들께 찬성이든, 반대든 개인의 정견을 들어보겠다는 것이 결코 과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죠.

일제로부터 해방 된 지 67년, 그러나 아직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내 조국 하늘 아래서조차 해방의 기쁨을 맞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미 80대~90대에 이른 피해자들의 연령을 고려할 때, 19대 국회는 일제 식민지가 남긴 유산과 상처를 치유하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입니다.

"전국의 총선 후보님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촌각을 다투시느라 바쁘시죠? 그러나 일제피해자들은 지금 피눈물이 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국언 기자는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19대 총선 후보 일제 피해자 관련 정책 설문지를 혹시 못 전해 받은 후보나 선거 관계자님께서는 연락 주십시오. 062) 365-0815, FAX 062)361-6076



태그:#일제, #징용, #19대 총선, #일제피해자, #강제동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