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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9일부터 경희대학교 중앙대자보판 옆에서 학생들이 텐트를 치고 '금융자본주의와 학내 비민주, 권위적 흐름에 반대하는 occupy행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3월 19일부터 경희대학교 중앙대자보판 옆에서 학생들이 텐트를 치고 '금융자본주의와 학내 비민주, 권위적 흐름에 반대하는 occupy행동'을 벌이고 있다.
ⓒ 유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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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의 시끌벅적한 정문을 지나 높은 고개를 올라오면, 대자보가 걸린 게시판 옆에 세워진 작은 텐트 하나를 볼 수 있다. 별다른 표시가 안 되어 있어 자칫하면 지나치기 쉬운 그 텐트 속에는 사실 학생들이 있고, 만나면 인사와 함께 유인물을 받을 수 있다. 'Occupy 경희대, 아프니까 점령이다'.

이 친구들이 경희대의 한 공간을 '점령'한 지 어느덧 15일이 넘어가는 2일 오후. 도대체 이들이 학교 안에서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교 캠퍼스를 직접 찾아가 봤다.

"지난 주에도 텐트가 비바람에 날아갔어요. 다시 세우느라 힘들었는데, 오늘도 비 오는 걸 보니 세우긴 글렀네요."

경희대 Occupy 대학생 운동본부장 김재섭(22)씨의 얼굴은 텐트활동과 연이은 집회 등 힘든 일정이 겹쳐 더 수척해 보였다. 실제로 텐트를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아, 꽃샘추위와 궂은 날씨로 텐트가 유지되는 날은 얼마 없었다고 했다. "벌써 3월이 다 지나가 버렸어요. 할 일은 많고, 학생들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야 되는데"라며 그는 근심을 감추지 못했다.

"선거가 전부가 아니다"... 투표 대신 선택한 '점령'

지난 3월 2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학생들이 '1%에 맞서서 점령하자'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서강대 등 5개학교가 학내서 텐트를 통한 occupy행동에 참여중이다.
 지난 3월 2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학생들이 '1%에 맞서서 점령하자'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서강대 등 5개학교가 학내서 텐트를 통한 occupy행동에 참여중이다.
ⓒ 대학생사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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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일, Occupy 대학생 운동본부는 서울 시청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학에 텐트를 치고 적립금환수와 대학운영에 대한 참여, 시간강사 및 청소노동자 등 대학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재섭씨는 "월가 시위를 전승하여 우리나라 대학생들도  2011년 12월 여의도에서 금융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오큐파이(occupy) 공동행동을 했고, 올해는 그것이 학교 안으로 보다 세밀하게 들어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섭씨는 "올해는 모든 이슈들이 죄다 '선거'로만 수렴되어 버리는데, 정권교체만으로는 모든 것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오큐파이 운동을 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그는 "우리가 계속해서 등록금과 비정규직, 실업에 시달리는 이유는 단순히 '국회의원'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결국 금융자본주의 때문"이라며 "학내의 비민주적이고 권위적인 분위기를 지적하는 동시에 금융자본에 반대하고 경희대의 후마니타스 정신을 되살리자는 취지에서 점령을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텐트를 친다는 것은 '집이 없다', '가난하다'라는 의미의 상징이다. 재섭씨는 "아마 이 학교에서도 집을 소유한 대학생은 드물 것이다"라며 "즉 텐트를 치는 삶은 즉 우리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은 행위이고, 그것을 학교 안에서 불편하게 드러낸다는 데서 의미를 찾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서강대, 경희대, 성균관대, 부산대, 국민대 등 모두 5개 학교가 텐트를 치고 오큐파이 활동에 참여 중이며, 경희대는 3월 19일에 텐트활동을 시작했다. 각 학교는 크게는 금융자본적 흐름에 반대하되 세부적으로는 학교 내부에서 일어나는 문제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비싼 등록금 내는데, 왜 우린 학교 운영에 참여하지 못하나요?"

경희대 Occupy 대학생 운동본부에서 학내에 붙인 자보들.
 경희대 Occupy 대학생 운동본부에서 학내에 붙인 자보들.
ⓒ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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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큐파이로 무엇을 요구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재섭씨는 "구체적인 사안에 한정해 요구하는 순간 우리는 '협상'의 대상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텐트 자체에 상징성을 두고 싶지만, 요구에 있어 어느 정도의 명확함은 필요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현재 재섭씨를 비롯한 학생들이 경희대에 요구하는 사안은 '등록금 인하 후 적립금 환수'와 '학내 비정규직 줄이기', '학교 기숙사 증설' 등이다.

"저는 한 학기에 320만 원을 내고 수업을 들어요. 그런데 학교 안의 전반적 운영이나 커리큘럼에 대해 어떠한 참관권도 가질 수 없습니다. 돈만 내지 나에겐 어떠한 것도 주어지지 않아요. 우리 학교 '조씨 일가'가 총장을 내리 연임하고 학교 사업의 대부분을 맡고 있다는 사실도 많은 사람들이 아예 모르는 경우가 많고 저조차도 왜 총장이 연임되었는지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어요. 이건 문제고, 우리가 알아야 할 권리라고 생각해요."

재섭씨는 "학생이 학교 운영과정에 직접 참여하게 할 것"을 주장하며 동시에 경희대의 '후마니타스 정신'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후마니타스 정신(후마니타스 칼리지)'은 경희대학교가 대학교육의 본질 목적을 되찾고 학부생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마련하고자 2011년부터 선택한 학부과정이자 학교의 기조다.

"인문학 정신, 좋습니다. 그러나 그 '후마니타스'를 위해 또다시 비싼 돈을 내고 수만 원에 달하는 교과서를 사야 합니다. 최소한 이 비용은 이미 우리들의 등록금 속에 포함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신들이 마음대로 바꿔 놓고, '교양'을 명분으로 학생들에게 비용부담을 맡길 수 있습니까? 사실 그 외에도, '후마니타스 정신'을 외치는 우리 학교 안에서 비정규직 하청업체의 노동자가 일을 한다는 모순도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텐트 첫날 교수님한테 멱살 잡히기도... 참 어렵다"

경희대 Occupy 대학생 운동본부를 이끌며 텐트활동 중인 김재섭씨.
 경희대 Occupy 대학생 운동본부를 이끌며 텐트활동 중인 김재섭씨.
ⓒ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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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텐트 생활 중에 교수님한테 멱살을 잡힌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맞아요. 첫날 점심시간에 학생들 앞에서 선전전을 했는데, 어떤 교수님이 오셔서 뭐라고 막 소리를 지르고 가셨어요. 그때 저는 발언하느라 그걸 미처 몰랐는데, 갑자기 얼마 후에 다시 오셔서 '시끄럽다고 (텐트) 치우라고 했지, 너 내가 누군줄 아냐'며 다짜고짜 제 멱살을 잡으셔서… 놀랐어요."

경희대 오큐파이 첫날, 트위터를 통해 '텐트에 있는 학생들이 교수에게 멱살을 잡혔다'는 멘션이 올라왔다. 이에 대해 묻자 재섭씨는 "근처 단과대의 화학과 교수님이었는데, 확성기를 강제로 가져가려고 하셔서 그걸 막다가 계속해서 사과한 끝에 간신히 찾아올 수 있었다"며 "활동이란 게 참 어렵다"라고 씁쓸히 웃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활동을 독려해주는 분들도 적지 않았다고 했다. 재섭씨는 "어떤 분은 말도 없이 텐트 안에 들어와 음료수를 내밀고 가기도 했고, 어느 외국인 교수님은 '사진을 찍어서 나한테 보내주면 미국에 뿌려주겠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고 말했다.

"어느 날은 텐트를 세우고 있는데 어떤 분이 '우리 자식도 대학생인데 남 일 같지 않다, 힘내라'고 하고 가시기도 했어요. 알고보니 늦은 나이에 대학원을 다니는 분이셨어요. 아시겠지만, 대학생들이 운동하다가 '힘내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거의 손에 꼽을 정도로 없잖아요. 참 큰 힘이 됐어요."

그들은 왜 '점령'을 선택했나... "99%가 되찾아올 언어, occupy"

텐트를 학교 안에 치고 '점령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이며 어떤 효과를 미칠까. 재섭씨의 생각을 들어 봤다.

재섭씨는 우선 오큐파이가 '자본주의' 자체를 지적한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운동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동안 우리의 싸움은 '임금 협상, 해고, 등록금 해결'과 같이 대개 지엽적인 운동이었지만, 오큐파이는 모든 의제를 아우르며 좀 더 상징적이고 큰 규모로 시작하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다음으로 그는 '(오큐파이가 갖는) 언어의 주도성'을 설명했다. 본디 'occupy : 점령하다'라는 단어는 사회의 주도권을 가진 지배계층이 전쟁 등에서 주로 사용하던 어휘였다. 이것을 99%를 대변하는 일반인들이 이용하며 의미를 '전복'시키겠다는 것이다.

"그간 보수계층이 선점해온 언어프레임은 정말 놀랄 정도로 절묘했어요. '망국적 포퓰리즘', '종북', '좌빨'. 다시 생각해봐도 기막힌 어휘입니다. 그에 대한 또 하나의 대항적인 언어로 '오큐파이'를 내세운다는 것, 1%가 사용하던 어휘를 99%가 다시 '되찾아' 온다는 것. 그 언어의 주도권이 갖는 효과에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재섭씨를 비롯한 학생들은 19일 이후 지금까지도 텐트 앞에서 선전전을 하고, 대자보를 붙이거나 유인물을 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성균관대 오큐파이 대학생들의 텐트가 철거당하는 등 어려움이 잇따르는데, 우리는 아는 사람들끼리 자발적으로 도와주는 형편이라 역량 미달을 느낀다"며 막막함을 토로한 재섭씨는 "그래도 앞으로 오큐파이 대학생들의 활동을 더 많이 알려내고, 총학생회나 학내 단체들과 함께 4월부터 다양한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3월 한 달 동안 우리가 미친 영향은 크진 않았다 생각하지만, 사람들의 '의지'는 충분히 확인한 것 같아요. 모두들 이 문제에 공감하고 있고, 이제는 어떤 방법으로 나아갈지 생각하려 합니다. 학생운영권을 좀 더 증가시킬 수 있게 힘쓸 것이고, 설령 텐트를 치지 못한다 해도 계속해서 행동할 생각입니다."


태그:#OCCUPY, #대학생, #경희대, #점령, #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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