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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주의 창부거리
▲ 창부 고성주의 창부거리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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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기다리다 못하여서 잠이 잠깐 들었더니 새벽별 찬바람에
문풍지가 펄렁 날 속였네. 행여나 님이 왔나 창문열고 밖을 보니
임은 정녕 간곳없고 명월조차 밝기만 한데 생각 끝에 한숨이라

한숨 끝에는 눈물이라 마자마자 마자더니 그대 화용만
어른거려 긴긴 밤만 지세노라
얼씨구 절씨구나 지화자 좋네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경기민요 창부타령의 사설이다. 소리만 들어도 절로 흥이 난다. 거기다가 한 손에는 꽹과리를 들고, 머리에는 전립을 쓰고, 창부의대를 떡하니 걸친 몇 사람이 굿판에 휘어잡는다. 음악이 자지러지게 울리는데 흥이 나지 않으면 이건 아예 흥을 모르는 사람이 아닐가 싶다.

수원 고성주의 맞이에서 보이는 창부굿. 창부들이 떼로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창부 수원 고성주의 맞이에서 보이는 창부굿. 창부들이 떼로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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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부거리에서는 술 상을 받아놓고 재담을 하면서 논다
▲ 창부굿 창부거리에서는 술 상을 받아놓고 재담을 하면서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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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의 신인 창부, 굿판에서도 한량

창부신은 예능의 신이다. 무당은 누구나 창부신을 모신다. 하지만 다 창부신을 모신다고 해서, 예능에 뛰어난 것은 아니다. 창부를 잘 놀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학습을 해야만 한다. 그래서 무당은 음악과 춤, 소리를 다 배워야만 한다. 그야말로 만능엔터테이너다. 그들이 하는 말 한마디는 모두 재담이다. 그리고 구성지게 타령조의 소리를 해야만 한다.

그런 것들을 다 익혀야만 비로소 창부다운 창부가 되는 것이다. 창부가 들어왔다고 다 같은 창부일까? 수원시 팔달구 지동 고성주의 맞이굿에서 늘 창부 한 거리를 갖고도, 한 시간 이상씩 흥에 겨울 수 있는 것은 그러한 뛰어난 예능을 익혔기 때문이다. 춤은 어릴 적부터 재인청의 재인이자 발탈의 예능보유자인 이동안 선생에게서 익혔다. 그리고 내로라 하는 경기민요의 소리꾼들에게서 소리를 익혔다.

고성주의 창부는 예능의 모든 면을 다 갖춘 만능엔터테이너로서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 고성주 고성주의 창부는 예능의 모든 면을 다 갖춘 만능엔터테이너로서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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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소, 내가 누군가하면 전라도 남원창부여. 내가 남원을 떠나올 때 남원골 그 잘난 기생들이 날 못 가게 얼마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졌는지, 이 바리 가랑이가 헐러덩 한 것이 그 때문이지."
"아니 그런데 어떻게 떼어 놓고 왔소?"
"그러게 말이지. 남원을 떠나서 부여, 공주를 거쳐 천안 삼거리라 주막에서 술 한 동이를 다 마시고 안성을 거쳐 광주대목안으로 들어갔지. 남한산성을 썩 오르니 바람도 시원하고, 저그 밑에 강물이 아른아른 거리는데 그냥 갈 수가 있나?"
"그래 어쨌나? 창부양반."
"한양성내를 쑥 들어가 윗대궐 아랫대궐 한 바퀴 돌아 노량진 노들로 내 달았겠다."
"아이고 빨리도 다니셨소."
"그도 그랄 밖에 수원이라 화성은 정조대왕이 근본이라, 팔달산 앞 거북당에 가서 머리를 딱 조아린 후, 이곳 못골이라 떵덕쿵 소리에 바쁜 걸음으로 쫒아왔겠다."
"정말 잘 오셨소. 이왕 예까지 걸음을 하셨으니 한 상 차려 드릴 테니, 한 잔 드시고 질펀하게 한 바탕 놀구나 가셔." 

술을 마시고 노래와 춤, 그리고 재담으로 이끌어 간다
▲ 신명 술을 마시고 노래와 춤, 그리고 재담으로 이끌어 간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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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부 한 자락 제대로 못 놀면 어디 무당이 간디?

2012년 3월 28일. 수원시 팔달구 지동의 고성주 맞이굿 장. 이쯤 되면 굿판을 그야말로 난장판이 된다. 술을 마시면서 거나하게 소리 한 자락씩을 이어간다. 소리는 끝없이 이어진다. 구성지게 넘어가는 소리에 피리와 젓대, 해금이 호응을 한다. 곁에 있던 사람들도 괜히 술상을 기웃거린다. 그 상에서 한 잔 얻어 마셔야 놀이판에서 놀았다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안산창부 밖산광대 아니시랴
전라도로 남원창부씨 아니시랴
삼천전안 육천진중에 창부대신 아니시랴
만 조상에 조상창부 창부씨 광대씨 잘 놀고나서
열두달 모진 수액이나 막아 주시마
오늘은 창부씨가 놀다가는 자취없이 도와주시마

창부거리에서는 질펀하게 놀아진다. 술을 서로 먹여주고 있다
▲ 먹고 먹이고 창부거리에서는 질펀하게 놀아진다. 술을 서로 먹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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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또 다시 타령조의 홍수맥이로 이어진다. 일년 헝수를 달달이 창부씨가 다 막아준다는 것이다. 곁에서 흥이나 어깨춤을 추던 한 어르신, 참고 있던 한 마디 툭 던지신다.

"창부 한 자락 제대로 못 놀면, 그것이 어디 무당이 간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수원인터넷뉴스와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창부, #예능의 신, #굿, #고성주, #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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