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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 도급, 특수고용 등 간접고용 문제는 개별 기업이 아닌 법과 정책으로 해결해야 한다.
 파견, 도급, 특수고용 등 간접고용 문제는 개별 기업이 아닌 법과 정책으로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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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대법원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므로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확정판결을 내렸다. 이를 계기로 사내하도급을 비롯한 간접고용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실 이는 현대차 사내하청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비정규 노동자의 수는 599만5천명에 달한다.

지난해 8월 통계청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늘어난 일자리 46만개 중 31만개가 비정규직이다.

"환경 파괴로 빙산이 녹는 것처럼 노동권이 파괴되며 일자리가 녹고 있다. 정규직 같은 중심부 노동을 없애고 그 빈자리를 사내하도급으로 대표되는 주변부 노동으로 채우고 있다. 이번 판결은 특정 기업이나 업종에 국한된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 한국 노동의 현실 전체에 대한 문제제기이자 방향 선회를 요구하는 보편적인 목소리이다." -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조돈문 가톨릭대학교 교수는 "문제의 핵심은 비정규직 고용이 남발되고 그 규모가 줄지 않는 상태에서 정규직-비정규직의 노동조건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점"이라고 했다. 그 중심에 간접고용이 있다.

간접고용 노동자는 불법파견과 위장도급 등 위장된 형태로 급속히 늘고 있다. 사용자가 법적 책임을 회피하면서 인건비를 줄이고 상시적인 구조조정을 할 수 있어서다. 간접고용이 '직접고용'을 원칙으로 하는 노동법의 근본 취지를 훼손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기간제나 파견제를 제한할수록 간접고용이 증대되는, 이른바 비정규직 풍선효과를 막기 위해서라도 간접고용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주변부 일자리'엔 탈출구가 없다

"A전자 마크 찍힌 옷 입고 A서비스센터에서 일 하니까 어디 가면 우리도 A전자 직원이라 하죠. 사실은 그냥 하청이에요."

김주혁(가명·34)씨는 ㈜A전자서비스 산하 AS센터의 출장수리기사(서비스 엔지니어)다. 국내 대기업인 A전자는 서비스업무를 별도 법인으로 분리시키며 몇몇 직영센터를 제외한 나머지 AS센터를 산하 협력업체(하청업체)에 맡겼다. 수리기사들은 ㈜A전자서비스 본사에서 직무교육을 받고, 계약과 근무는 협력업체에서 한다. 1년 단위 계약직이다. 센터에 정규직은 한 명도 없다.

고객이 A전자서비스 홈페이지를 통해 수리 서비스를 신청하면 수리기사들이 매일 아침 PDA를 통해 담당지역 내의 업무를 전달받고 출장을 나가는 식이다. 김씨는 PC, 노트북, 프린터를 수리한다. 하루에 많으면 10건, 적으면 1~2건씩 맡는다.

단 고정된 기본급이 없다. 수리업무 건당 수수료가 임금이다. 유상수리는 고객이 내는 수리비용의 60%를, 무상수리는 회사로부터 일정 금액의 '대행료'를 받는다.

"성수기랑 비수기 차이가 커요. 일이 없으면 98만 원까지도 받았어요. 성수기에는 300만 원까지 받기도 하는데, 자동차 기름값 같은 건 개인 부담이라서 100만 원 넘게 또 나가죠. 여름이 성수긴데, 그때 외엔 좀 불안하니까 생활을 설계하기가 쉽지 않아요. 특히 에어컨 기사들은. 여름엔 엄청 버는데 그 외 계절엔 거의 못 번다는 얘기도 하시더라고요. 수입이 불규칙하니까 지난해까진 개인적으로 영업을 뛰는 경우도 꽤 있는 거 같았는데, 요즘은 회사에서 통제를 강하게 해요."

업무시간도 들쭉날쭉해진다. 성수기엔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도 일한다. 그래도 휴가나 휴무를 마음대로 쓸 수 없다.

"뭐라고 하기 애매한 게, 회사가 저희한테 동의서를 받아갔거든요. 갑-을 관계인데 안 쓸 수는 없잖아요."

10년 일한 사람도 1년마다 재계약...미래 없는 삶

지난 3월 15일 정리해고, 사내하청, 특수고용노동자들로 구성된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99%의 희망광장'이 각 정당에 정리해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지난 3월 15일 정리해고, 사내하청, 특수고용노동자들로 구성된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99%의 희망광장'이 각 정당에 정리해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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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을 응대하는 감정노동에 실적주의가 얽히면서 이들이 받는 스트레스도 크다. 직무평가는 직원의 친절도와 수리 실적을 통해 이뤄진다. 상위 5%안에 들면 보너스 수당 20만 원이 나온다. 그 외에도 평가순위를 누적해 포상금을 주기도 한다. 언뜻 좋아 보이나 쉽지 않다. 일단 상대평가다. 더구나 무작위 고객들의 평가에 달려 있다.
"일단 저희는 규정에 따라 하는 건데, 그걸 설명 드려도 서비스비용이 너무 비싸다거나, 환불해달라거나 항의를 세게 하시는 분들이 간혹 있어요. 그럼 회사는 기사들 실적을 깎아요. '너희가 설득을 잘 해야지, 그거도 너희 능력이야' 이러면서. 좀 그렇죠. 회사는 서비스비용을 많이 책정해서 물건을 더 비싸게 팔고, 고객은 비싸게 샀으니 더 많은 서비스를 받으려 하고, 저희는 실적에 벌벌 떨면서 그 중간에 끼어 있고..."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김씨도 술로 스트레스를 푼다. 최근엔 집에 가서도 종종 혼자 술을 마실 정도로 음주량이 늘었다. 무엇보다 미래가 없다는 점이 김씨를 지치게 한다.

"저희 센터 직원이 30명인데 그중 2/3가 3년 넘게 일한 사람들이에요. 10년씩 일한 분들도 좀 있어요. 그런데 여전히 1년마다 재계약해요. 정규직 된 사람 한 명도 못 봤어요. 직급이 없으니까 승진 같은 것도 없어요. 그래도 다들 '여기 나가면 또 어딜 가겠냐... 개인사업밖에 못하지 않겠냐'면서 참는 분위기예요. 그런데 솔직히 업무관리나 기술교육, 신제품 교육 같은 업무에 필요한 교육도 본사가 맡아 하고 있는데, 그럼 기사들을 직접 고용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전에는 백화점 계약직원으로 일했다. 주차관리와 사은품 증정 업무였다. 용역업체에 도급료만 주고 책임을 피해가면서 최저임금만 주는 백화점이 싫어서 이직을 택했다. 그래도 '임금이 좀 더 나은' 하청업체를 피하지 못했다. 그나마 이런 폭 좁은 '이동'도 젊고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백화점에서 같이 일했던 나이든 단기계약직들은 여전히 그 자리거나 거기서도 밀려날 것이다.

300인 이상 대기업 54.5%, 아웃소싱 활용

상승구조가 없는 노동시장은 자꾸만 노동자를 주변으로 밀어낸다. 노동자가 취약해질수록 더하다. 그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지방 조선소 하청업체에서 일하세요. 공구 관리 같은 거 하는데 업체들이 많이 망하니까 월급 떼인 적이 많아요. 그래도 나이가 많으니까 딴 거 하기 힘들죠."

정규직 역시 불안하다. 안전한 '중심부 일자리'가 계속 줄어드는 탓이다. 1997년 이후 기업들이 정규직을 정리해고 하고 아웃소싱, 즉 비정규직으로 대체하는 전략을 채택한 탓이다. 300인 이상 대기업의 54.5%가 사내하도급 등 아웃소싱을 활용하고 있다. 동시에 정리해고를 일상적으로 진행한다.

대표적인 것이 KT다. KT는 민간기업으로 전환한 후 비용절감을 최우선으로 하며 1995년부터 2009년까지 2만6555명을 정리해고 했다. 더불어 인력퇴출시스템을 통해 상시적으로 인력을 퇴출시켰다. 그 자리를 간접고용으로 메웠다. 12.0%의 기업이 정리해고를 실시했던 2009년 대기업 정규직 수는 1993년과 비교했을 때 61%가량 줄어든 13.7%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2011년 연말에도 10조 이상의 이익을 낸 우리은행, 농협, 하나은행, SC제일은행이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활용이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 없이 일종의 관행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비정규직 해결하겠단 정당들, 메스 들 수 있을까

19대 국회의 쟁점은 비정규직, 특히 간접고용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19대 국회의 쟁점은 비정규직, 특히 간접고용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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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간접고용의 입구부터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위와 같은 기업의 간접고용 사용을 제한해 비정규직의 수를 줄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노동조건 개선, 정규직 전환을 순차적으로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조돈문 교수는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 ▲고용보험제 확충 ▲초기업단위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제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 등의 정책을 제시했다. 특히 "비정규직을 줄이려면 상시업무의 비정규직 사용을 막고 임시적인 비상시 업무에만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을 비타협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건비 절감을 통한 기업경쟁력 강화'라는 표어는 이미 무색해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OECD는 한국에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권고했다. 고용불안으로 인한 삶의 불안이 결국 한국사회의 생산성을 해치고 있다는 것이다.

은수미 연구위원은 정규직 전환이 비용·생산성 측면에서 오히려 유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은 연구위원은 "공공부문의 경우 합리적인 사업자대신 비리사업자만 살아남거나 부정부패가 일어나는 역효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꽤 많다"며 "또 하청업체에 인건비와 중간마진을 보장해줘야 하기에 예산절감 효과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민간부문에서는 인건비 절감 효과가 있어도 생산성이 떨어져서 영업이익에 차이가 없다는 연구결과도 있다"며 "비용적 문제도 최소 20%의 중간마진을 보장해야 하는 외주화비용을 정규직 전환비용으로 쓰면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12 총·대선을 앞두고 노동계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정당들 역시 여야를 막론하고 문제 해결을 약속하고 있다. 과연 한국사회는 비정규직이라는 거대한 암세포에 메스를 댈 수 있을까. 여기엔 두루뭉수리한 처방보다는 문제를 정면 돌파하는 정책과 강력한 실현의지가 필요한 듯하다.


태그:#비정규직, #정리해고, #간접고용, #사내하청,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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