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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서적을 몇 권 사려고 인터넷 서점을 뒤적이다가 "어라! 요즘도 동시집을 출판하는 시인이 있네?" 할 정도로 눈에 확 들어오는 시집이 있어 함께 주문을 했다. 나는 별나게 동시를 좋아하는데 오죽하면 윤석중 선생의 동시집 70여 권을 모았다가 30여 년 전 중랑천이 범람하는 바람에 장마에 떠내려 보낸 일도 있었다.

 

제목 : 닭 (강소천)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 한 번 쳐다 보고

또 한 모금 입에 물고

구름 한 번 쳐다 보고

 

지난여름 어린이대공원 산책 중에 항상 봐오던 강소천 선생의 시비가 눈에 뜨이기에 시비에 쓰인 동시대로 하면 뭔 좋은 일 있으려나? 궁금해서 수돗가로 달려가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또 한 모금 입에 물고 구름 한 번 쳐다본 일이 있었다. 결과는 좋은 일은커녕 지나시던 할아버지께 "별 미친놈 다 보겠네"소리는 들었지만 동시는 이런 식으로 다 큰 어른을 동심으로 되돌려 놓기도 한다. 이렇게 가끔은 순수한 아이들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 싶다.

 

내가 생각하는 동시는 어른들의 도덕교과서이다. 아이들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보면 어른들의 잘 못 된 세상이 더 쉽게 보인다. 이런 이유로 나는 어린아이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자신이 점점 없어져 간다. 그만큼 세상의 때가 묻었다는 말이다.

 

"양지꽃을 아시나요? 시골에서 봄이면 흔히 볼 수 있는 꽃인데, 양지에 밝게 피어 있다고 해서 양지꽃인지, 스스로를 밝혀 양지를 만드는 꽃이라 해서 양지꽃인지 모르겠지만요. 제가 주목한 것은 양지꽃은 아주 흔한 꽃이지만 너무 작은 데다 잔디 따위 다른 풀들 속에 숨어있기 마련이어서 일부러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좀체 발견하기 어려운 꽃이라는 것입니다."

 

오인태 시인의 말이다.

 

돌멩이 밑 『오인태』

 

햐,

요것 좀 봐라.

 

조그만 돌멩이 밑에

지렁이 한 마리

노란 새싹 하나

몰래 살림을 차렸다.

 

누가 볼까봐

 

얼른

돌멩이를 닫았다.

 

- 동시집『돌멩이가 따뜻해졌다』에서

 

그림 / 박지은

 

오인태 시인은 양지꽃이 너무 작아 주의를 기우려야 볼 수 있는 꽃이라 했지만 어린아이의 눈으로 보면 쉽게 보인다. 어른들은 높은 곳만 바라보고 앞만 보고 걷기 때문이다. 위에 소개한 시처럼 어린아이 눈높이에 맞추면 양지꽃보다 더한 작은 것도 쉽게 보인다. 어린아이와 손을 잡고 길을 가보면 알 수 있다. 자연에 대한 호기심과 생명에 대한 경외감으로 발걸음이 늦어지기 때문이다. 시집 속에 있는 재미있는 시 하나 더 소개를 한다.

 

돌멩이가 따뜻해졌다 『오인태』

 

학교 오가는 길 문방구 옆

대문도 없는 슬레이트 집 마당에 매여 있는

그 개는 나만 보면 왕왕 짖어댄다.

 

요놈의 똥개!

 

내가 만만하게 보이나보다.

안 그래도 나머지 공부 지겨워

학교 오기 싫은데

 

오늘은 짖어 대면

돌멩이로 때려 줄 테다.

 

나머지공부 마치고 교문을 나와

작은 돌멩이 하나 주워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차갑다.

 

그런데 이상하다.

똥개가 보이지 않는다.

 

개장수한테 팔려갔나 겨울인데?

병원 갔나 똥개 주제에?

 

한참 기웃거리다

그 집 지나오면서

자꾸만 뒤돌아본다.

 

돌멩이가 따뜻해졌다.

 

 

어른이 동시를 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들 생각을 가지고 사물을 바라보아야하기 때문이다. 또 그만큼 순수하기도 해야 한다. 내가 동시를 어른들의 도덕교과서라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동시는 아이들도 읽으면 좋지만 어른들에게 더 많이 읽혀져야 한다. 요즘처럼 시끌시끌한 세상에 시인의 동시집 출간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태그:#동시, #오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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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단어로 짧고 쉽게 사는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http://blog.ohmynews.com/han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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