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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무신>.
 MBC 드라마 <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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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 주인들이 여자 노비의 결혼, 쌍수 들고 환영한 이유

고려 무인정권 시대를 다루는 MBC 드라마 <무신>. 요즘 이 드라마의 볼거리 중 하나는 월아(홍아름 분)와 김준(김주혁 분)의 결혼 문제다.

월아와 김준은 무인정권 지도자 최충헌의 장남인 최우의 노비들이다. 어려서부터 절에서 함께 자란 두 사람은 친남매 같기도 하고 연인 같기도 한 사이다. 최우의 노비가 된 뒤에도 이들의 우정 같은 사랑은 식지 않았고, 이에 감동한 최우의 부인이 두 사람의 결혼을 추진하고 있다.

두 사람을 바라보는 여자노비들의 시선은 한마디로 동경과 부러움 그 자체다. 이성교제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드라마 속 여자노비들로서는 그런 시선을 보내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많이 개선됐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용주들은 여직원의 결혼을 매우 불편해 했다. 그래서 결혼을 앞둔 여직원이 혼례 준비에 앞서 사표부터 제출하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런 문화를 경험한 우리 시대의 관점으로 보면, <무신> 속 여자 노비들의 분위기가 당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고려시대 노비 주인들도 '여직원들'의 결혼을 싫어했을 것이기 때문에, 결혼도 못한 채 늙어가는 여자 노비들이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점에 있어서 고려시대 노비 주인들은 '아주 좋은 고용주들'이었다. 그들은 여자노비들의 결혼을 아주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단순한 이성교제에 대해서는 더욱 더 그러했다. 그들은 여직원들의 결혼이나 이성교제를 아주 열렬히 환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고려사>에서 그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고려사> '형법지'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정종 5년, 천것은 어머니를 따르도록 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건국 121주년인 1039년에 제정된 이 법률의 취지는 '여자노비가 낳은 아이에 대한 소유권을 여자노비의 주인에게 부여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제도는 1039년 이전에도 있었다. 다만, 그 이전에는 관행의 형태로 존재했을 뿐이다. 

여자노비, 월아(홍아름 분).
 여자노비, 월아(홍아름 분).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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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들의 '연애'에 집안 가세가 달렸다?

여자 노비의 자녀에 대한 소유권을 여자 노비의 주인에게 부여하는 법률은, 노비 주인들이 '직원'들의 이성관계에 적극 개입하도록 만들었다. 자본주의 시대의 고용주들은 여직원의 임신이 초래할 생산 감소를 고려하지만, 고려시대 노비 주인들은 그로 인한 '사세(社勢) 확장'에 더 신경을 썼다.

'사세 확장이라니? 이것을 기업문제에 비유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19세기 이전만 해도 동아시아의 '집안'은 오늘날의 기업과 유사했다. 집안이란 개념 속에는 노비들도 포함되었다. 그래서 집안은 혈연공동체이기보다는 경제공동체였다. 그렇기 때문에 집안이 오늘날의 기업처럼 사세 확장을 고민하는 것은 당연했다. 

주인의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할 때, 고려시대 노비의 결혼이나 이성교제는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경우로 나뉘었다.

(1-1) 자기 집 여자노비와 남의 집 남자노비의 혼인 혹은 이성교제.
(1-2) 자기 집 여자노비와 남자 양인의 혼인 혹은 이성교제.
(2-1) 자기 집 남자노비와 남의 집 여자노비의 혼인 혹은 이성교제.
(2-2) 자기 집 남자노비와 여자 양인의 혼인 혹은 이성교제.
(3-1) 자기 집 여자노비와 자기 집 남자노비의 혼인 혹은 이성교제.

(2-1)과 (2-2)는 노비 주인에게 손해였다. 여기서 태어난 아이는 남의 집으로 갔다. 이런 혼인이 증가하면, 장기적으로 자기 집 노비 숫자가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노비를 구매하지 않는 한, 남자 노비가 사망하면 노비 자리 하나가 공석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비 주인들은 자기 집 남자 노비가 자기 집 여자 노비와 사귀기(3-1)를 희망했다. 이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자기 집 노비가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 노비들은 주인의 미움을 받지 않으려면 무조건 '사내 연애'를 해야 했다. 

주인들이 가장 선호한 것은 (1-1) 및 (1-2)였다. 여자노비가 남의 집 남자노비나 남자 양인과 사귀면, 거기서 태어난 아이는 자기 집 노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형태는 (3-1)과 비교할 때도 분명히 이익이었다. (3-1)에서 자녀가 1명만 출생하면, 노비주에게 장기적으로 손해가 된다. 지금 세대의 노동자 2명이 다음 세대에는 노동자 1명으로 감소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1) 및 (1-2)는 그렇지 않았다. 여자 노비가 자녀 1명만 낳아도, 최소한 '본전'은 건질 수 있었다. 여자 노비가 죽는다 해도, 그 자녀가 어머니의 자리를 채울 것이기 때문이다.

남자노비, 김준(김주혁 분).
 남자노비, 김준(김주혁 분).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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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 배후조종 하에 이 남자 저 남자와 교제

그래서 노비 주인들은 여자 노비가 남의 집 남자 노비나 남자 양인을 가급적 많이 유혹해주기를 희망했다. 남자 노비에게는 사내 연애를 강요했지만, 여자 노비에게는 '사외 연애'를 적극 권장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여자 노비의 사외연애가 가장 확실한 '사세 확장'의 길이었다. 주인들의 관심사는 여자 노비가 가급적 많이 출산하는 것이었다. 여자 노비가 결혼식을 올리느냐 마느냐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저 '미래의 노동자'만 많이 낳아주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려시대에는 여자 노비들이 주인의 배후조종 하에 이 남자 저 남자와 교제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무신>의 여자 노비들은 남자를 가까이할 수 없는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지만, 실제의 여자 노비들은 자신들의 '양다리 애정행각'으로 사고라도 터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해야 할 정도였다. '행복한 고민'이라 해야 할까.

이 때문에 고려시대에는 노비가 급증하고 양인이 급감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여자노비와 교제하는 남자 양인들이 계속해서 늘어났기 때문이다. 조선 태종 14년 6월 27일자(1414년 7월 13일) <태종실록>에서는 그 같은 고려시대의 사회현상을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려시대 노비제도는 양인과 노비를 결혼시켜 노비를 늘리는 데 중점을 두는 한편, 어머니를 따라 노비가 되도록 했기 때문에, 노비가 날로 증가하고 양인은 날로 감소했다."

주인들이 사세 확장을 위해 자기 집 여자 노비와 남자 양인의 이성교제를 적극 권장하다 보니, 국가 전체적으로 노비의 숫자가 급증하고 양인의 숫자는 급감했다는 지적이다.

학계에서는 이런 현상이 고려 멸망을 부추긴 원인 중 하나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고 병역을 제공할 양인이 줄어든 것이 고려 멸망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고려 말에 특권층 집안의 사병 부대들이 기승을 부린 것은, 그런 가문에서 태어난 남자 노비들이 사병으로 대거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처럼 노동자 1명을 배출하는 데 최소 20년 이상이 소요됐다면, 고려시대 노비주인들의 판단은 좀 달라졌을 것이다. 여자 노비의 임신으로 미래의 노동자를 얻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미래의 노동자를 위해 20년씩이나 투자하는 것은 반갑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비싼 교육비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농업사회에서는 예닐곱 살만 되어도 보조 노동력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애기 노비에게 6~7년만 투자하면 노동자 1명을 평생 공짜로 부릴 수 있었다. 게다가 교육비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고려시대 노비주인들로서는 자기 집 여자노비가 열심히 일을 하는 것 못지않게 열심히 남자를 유혹하는 것도 적극 권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신>의 여자노비들은 부엌에서 열심히 일만 하고 있지만, 이런 모습은 고려시대 노비주인들이 진정으로 바라던 바가 아니었다. 오로지 일만 하는 여자노비가 있다면, 주인은 그를 보고 "저런 게으른 것!" 하며 분통을 터뜨렸을 것이다.


태그:#무신, #노비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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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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