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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연대 좌초위기. 언론에서는 이미 거기까지 나아갔다. 역사적인 전국적 야권단일화의 환호성이 채 끝나기도 전에 터져 나온 경선불복, 상호비방, 각종 도덕성 시비. 여기에 관악을 이정희 통합진보당 의원과 김희철 민주통합당 의원의 경선과정에서 이정희 의원 보좌관의 연령대 허위 응답 요청 문자메시지 캡처 사진이 공개되면서 논란은 정점을 찍었다.

결코 길지 않은 합당 역사 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통합진보당은 원내교섭단체 실현을 눈앞에 두고 최대의 시련을 맞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각종 의혹과 사건들에 당이 통째로 휘청거리는 느낌이다. 

성추행 전력이 있는 통합진보당의 후보가 결국 사퇴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면서 이제 논쟁의 초점은 통합진보당의 간판스타 이정희 의원이 사퇴해야 하느냐 마느냐로 모아지고 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지난 20일 서울 관악을 경선에서 일부 당원들에게 나이를 속여 여론조사에 응하라는 취지의 '거짓 투표' 독려 문자 발송이 있었던 사실을 시인하며 사과했다.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김희철 민주통합당 의원이 원한다면 재경선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지난 20일 서울 관악을 경선에서 일부 당원들에게 나이를 속여 여론조사에 응하라는 취지의 '거짓 투표' 독려 문자 발송이 있었던 사실을 시인하며 사과했다.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김희철 민주통합당 의원이 원한다면 재경선을 하겠다"고 밝혔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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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퇴해야 한다 vs. 사퇴할 일 아니다 

두 종류의 격렬한 반응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사퇴를 주장하는 쪽은 도덕성을 생명으로 해야 할 진보정당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음으로, 이정희 의원의 사퇴는 당연하다는 것이다. 재경선을 수용하지 않고 이정희 의원의 사퇴를 요구하는 민주당 쪽 반응이야 무시할 수 있다 쳐도, 진보정당의 성장과 발전을 바라고 있는 이들도 이런 반응을 보인다. 이정희가 사퇴해야 진보정당이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는 이런 허물을 안고 가 봐야 본선 승리도 장담할 수 없을뿐더러, 이정희 의원의 이미지에도 맞지 않다는 애정 어린 시선이 있다. 또한 진보정당이 구태와 완전히 결별하길 원하는 바람도 반영되어 있다. 

<오마이뉴스> 이승훈 기자가 '취중진담'(부정경선·성추문 뭉개기... 진보 교섭단체 물거품?)에 썼듯이, "참신하고 유능한 진보세력"이 되기 위해서는 새누리당을 비판했던 잣대를 똑같이 당내에도 적용해야 하며 "선명하고 힘 있는 진보정당으로 정치혁신을 주도"하려면 고통이 따르더라도 당내의 구태를 먼저 털고 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절대 사퇴까지 갈 일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도의적 책임은 있다 하더라도 이번 일로 사퇴까지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요구라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블로거 아이엠피터는 자신의 블로그(이정희, '사퇴 vs. 재경선' 무엇이 옳은가?)에서 이정희 의원에게만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똑같이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웠는데, 어떤 사람은 5만 원짜리 범칙금 고지서를, 어떤 사람은 구속하는 일"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공정한 경선을 관리할 '야권후보 단일화 경선관리위원회'에서도 '재경선 실시'를 제안한 만큼, 이 권고안을 따르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정치권의 사퇴 요구가 불편한 이유

나는 적어도 정치권에서는 이정희 의원에게 사퇴를 요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다른 기사에서도 썼지만("승부처는 번호 따기"... 이정희 발목잡은 불편한 진실), 여론조사 과정에서 이런 일은 만연되어 있다. 심지어 이정희 의원 보좌관이나 김희철 의원을 도와주고 있는 시의원이 기록에 남는 문자를 별 생각 없이 돌린 것도, 당사자들이 이것을 잘못으로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여론조사 경선에서 흔히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민참여경선이 도입취지와는 달리, 이제는 어차피 조직력 싸움이라는 것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고, 자유롭지도 않은 민주당이 마치 자신들은 완전히 결백하다는 듯 "야권연대 후보 단일화 경선과정에서 불거진 사태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충격적인 사건", "통합진보당과 여론조사 기관 등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식의 반응을 내보내고 있는 모습에서 진정성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이정희 의원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그녀에게 사퇴를 요구해야 한다면, 단언컨대 여·야를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후보가 사퇴해야 옳다. 물론 이정희 의원은 사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의원의 정치적 판단에 의한 것이지, 그것을 공정의 이름으로, 혹은 한나라당 디도스 공격과 동급에 있는 잘못으로 요구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정희 의원이 사퇴하면, 그 이후는?

내가 민주당의 이정희 의원 사퇴요구를 불편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공범들이 '걸린 사람'에게만 죄를 덮어씌우는 것 같기 때문이다. 후보자 등록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민주당의 주장대로 이정희 의원이 사퇴하면, 그래서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김희철 의원이 당선되면 해결되는 문제인가? 

물론 민주당만이 아니라 <오마이뉴스> 기사처럼, 설령 이정희 의원이 억울한 측면이 있더라도 이를 교훈삼아 진보정당이 구태정치와 결별할 수 있는 계기로 삼기를 바란다는 바람이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단지 이정희 의원의 사퇴만 요구하는 것은 진보정당이 구태와 손을 끊게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한국 정치의 구태는 그대로 방치하는 결과다. 먼저 걸린 이정희는 반성하고, 나중에 걸린 김희철은 떳떳하게 의정활동을 펼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썩 유쾌한 결과 같지는 않다. 

이정희 의원에게 사퇴를 요구하기에 앞서, 한국 정치권 일반의 구태를 먼저 비판함이 옳다. 그리고 그 구태에 급격히 적응해 들어가는 진보정당의 행태에 경고해야 함이 옳다. 그리고 이정희 의원의 잘못에 대한 조치는 야권후보 단일화 경선관리위원회의 재경선 결정 수준이 적절하다. 사퇴는 이정희 의원 쪽에서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지만, 강요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야권단일후보 경선과정에서 패한 민주통합당 관악을 김희철 의원과 고연호 은평(을) 후보, 박준 덕양(갑) 후보, 이동섭 노원(병) 후보가 지난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야권연대 경선과정에서 여론조사가 조작이 됐다고 주장하며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를 비롯한 심상정, 노회찬, 천호선 후보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야권단일후보 경선과정에서 패한 민주통합당 관악을 김희철 의원과 고연호 은평(을) 후보, 박준 덕양(갑) 후보, 이동섭 노원(병) 후보가 지난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야권연대 경선과정에서 여론조사가 조작이 됐다고 주장하며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를 비롯한 심상정, 노회찬, 천호선 후보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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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뼈를 깎는 반성해야

그러나 정치는 적정 수준의 조치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사퇴를 요구하는 이들을 제외하더라도 믿을 수 있는 조치는 취해야 한다. 진보정당에 대한 애정을 실망으로 바꿔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단지 선거 패배의 가능성 정도로 치부한다면, 앞으로 주류가 되는 진보정당의 모습은 기대할 수 없다. 관악을 사건 이외에도 무수히 터지고 있는 잡음들은 진보정당에 대한 애정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의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이정희 의원에 대한 사퇴 여론 또한 단순히 이번 사건 때문만이 아니라 그간 진보정당 활동에 대한 누적된 불만과 실망이 반영되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정치는 현실'이라는 담론이 최근 진보정당 내에서 회자되고 있는 현실은 이런 결과와 무관하지 않다. 때로는 악마의 수단과도 손을 잡을 줄 알아야 한다는 현실정치론과 진보정당이 만나는 순간에서 이런 문제들의 씨앗이 싹튼다. 중대한 경고로 받아들이길 기대한다.


태그:#이정희, #여론조사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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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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