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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사찰 증거를 인멸하라고 지시한 '윗선'으로 의혹을 받고 있는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간인 불법사찰이라는 용어는 현정부를 음해하기 위한 음모이고 정치공작이다"며 반박하고 있다.
 민간인 사찰 증거를 인멸하라고 지시한 '윗선'으로 의혹을 받고 있는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간인 불법사찰이라는 용어는 현정부를 음해하기 위한 음모이고 정치공작이다"며 반박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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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기자회견이었다.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은 그동안 언론과 전혀 접촉하지 않았다. <오마이뉴스>에서도 수차례 휴대전화로 연락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거나 받더라도 말을 하지 않다가 그냥 전화를 끊곤 했다.

그랬던 이 전 비서관이 20일 공개석상에서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나섰다. 이날 처음으로 기자와 연락이 닿았다. 기자회견 사실을 전하는 그에게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 지시 의혹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짧막한 대답만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

"기자회견 때 물어보라."

하지만 이 전 비서관은 정작 기자회견 때에는 자신이 준비한 발언자료만 읽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았다.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충분한 해명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는 "내 얘기만 들어라"는 오만한 태도로 일관했다. 누군가 "이명박 대통령과 똑같다"고 수군거렸다. 기자들이 택시를 타려는 그를 끝까지 쫓아가는 진풍경까지 연출했다.

"자료삭제 지시"... 청와대가 증거인멸 주도했다는 말

이영호 "자료 삭제 지시 했다.. 내가 몸통"
ⓒ 최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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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통 기자회견'이라는 비아냥거림에도 이 전 비서관의 기자회견에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그가 "자료삭제를 지시했다"고 인정한 대목이다. 이는 지난 2010년 8월 검찰 특별수사팀이 그를 상대로 8시간 동안 조사했지만 밝혀내지 못한 부분이다.

이 전 비서관은 "KB한마음 사건이 발생한 후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이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우왕좌왕하는 것을 보고 최종석 행정관에게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있는 내용을 철저히 삭제하라고 지시했다"고 '실토'했다.

이 전 비서관은 직제상으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과 아무 관련이 없다. 직제상 지원관실의 보고라인은 청와대 민정수석실(공직기강비서관)이다. 노사관계 등을 다루는 그의 업무도 '공직사회 기강 확립'을 위해 설치된 지원관실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그는 지원관실에 '자료삭제'를 지시했다.

"자료삭제를 지시했다"는 이 전 비서관의 '양심고백'(?)은 청와대가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 과정에 개입한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주도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증거인멸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자료삭제 지시'를 인정했으면서도 '증거인멸 지시' 의혹은 부인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 전 비서관이 내놓은 자료삭제 지시의 이유도 가관이다. 그는 "그 하드디스크 안에 감추어야 할 불법자료가 있어서 삭제를 지시한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이런 해명을 내놓았다.

"저는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있는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어떤 자료가 저장되어 있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혹시 하드디스크에 공무원 감찰에 관한 정부부처의 중요자료를 비롯하여 개인신상 정보가 들어 있어서 외부에 유출될 경우 국정혼란이 야기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국가의 중요정보가 외부로 유출되어 악의적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제 책임하에 자료삭제를 지시하였던 것입니다."

직제상으로나 업무상으로 공직윤리지원관실과 거리가 먼 이 전 비서관이 왜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자료의 외부유출을 걱정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는 오히려 그가 지원관실과 아주 가까운 관계였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이 전 비서관은 공직윤리관실의 설치와 운영에 깊숙이 개입해 왔다. 지원관실 직원들을 선발하는 데 직접 면접을 보고, 워크숍과 야유회, 회식 때에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원관실의 관용차를 자주 이용했다.

게다가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작성하는 각종 보고서를 비선으로 보고받았고, 지원관실의 특수활동비 가운데 280만 원을 매달 전달받았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 전 비서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280만 원 청와대 상납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황당무계한 주장"이라고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청와대 비서관이 왜 지원관실 직원에게 돈 건넸나?

민간인 사찰 증거를 인멸하라고 지시한 '윗선'으로 의혹을 받고 있는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마친뒤 취재기자들의 질문에 외면한 채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민간인 사찰 증거를 인멸하라고 지시한 '윗선'으로 의혹을 받고 있는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마친뒤 취재기자들의 질문에 외면한 채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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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사찰 증거를 인멸하라고 지시한 '윗선'으로 의혹을 받고 있는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마친뒤 취재기자들의 질문공세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민간인 사찰 증거를 인멸하라고 지시한 '윗선'으로 의혹을 받고 있는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마친뒤 취재기자들의 질문공세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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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비서관과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밀접한 관계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더 있다. 그가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2000만 원을 건넨 사실을 인정한 점이다.

장 전 주무관은 지난해 8월 포항 출신의 공인노무사 A씨가 "이영호 비서관이 마련한 것인데 걱정하지 말고 쓰라"며 자신에게 2000만 원을 건넸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건네진 2000만 원이 '입막음용'이었다는 의혹이 일었다.

이 전 비서관은 "장 전 주무관에게 2000만 원을 준 것은 사실이나 이는 선의로 준 것일 뿐 입막음용은 아니다"라며 "장 전 주무관에게는 그 어떠한 회유도 하지 않았고, 그의 경제적 어려움 등을 고려해 선의의 목적으로 건넨 것이며 업무와는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청와대 비서관이었던 그가 왜 공직윤리지원관실 소속 직원의 경제적 어려움을 걱정해 돈까지 건넸는지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와 지원관실이 밀접한 관계가 아니었다면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민간인 사찰 의혹 사건이 터졌을 때 최종석 전 행정관을 통해 자신이 사용하던 대포폰을 전달한 것도 이러한 관계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그가 이날 기자회견에서 내놓은 해명은 매우 궁색해 보인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는 제 주관부서인 고용노동부 소속 직원들이 몇명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 분들과는 평소에도 가끔씩 만나 노동현안에 대해 논의하던 사이입니다. 당연히 이 사건이 언론에 공개된 후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왔습니다."

또한 청와대 비서관이었던 이 전 비서관이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자료 삭제 행위를 적극적으로 옹호한 점도 눈에 띈다. 이를 위해 그는 민주파 정부들까지 끌어들였다.

이 전 비서관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시절에 존재하던 '국무총리실내 조사심의관실'의 명칭를 바꾼 조직일 뿐"이라며 "노무현 정부도 조사심의관실에 있던 모든 자료를 소위 '디가우징'을 비롯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철저하게 삭제했다"고 주장했다.

민주파 정부에서도 공직윤리지원관실과 같은 조직은 존재했고, 특히 노무현 정부는 정권이 교체되자 자료까지 삭제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자료삭제 지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투다.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월권행위조차도 인정하지 않는 강변이다.

이 전 비서관은 야당의 의혹 제기에는 "정치공작"이라고 맞섰다. 그는 "청와대나 제가 민간인 불법사찰을 지시한 적은 결코 없다"며 "민간인 불법사찰이라는 용어는 현 정부를 음해하기 위한 음모이고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의혹을 피하기 위해 시선을 외부로 돌리는 수법이다. 하지만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 등을 사찰한 혐의로 이인규 전 지원관과 김충곤 전 점검1팀장, 원충연·김화기 전 조사관이 모두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조차도 '민간인 사찰'이 있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내가 몸통이다" 강조하며 '꼬리 자르기'에 나서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를 인멸하라고 지시한 '윗선'으로 의혹을 받고 있는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마친뒤 회견장을 나서다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부딪쳐 쓰러진 뒤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를 인멸하라고 지시한 '윗선'으로 의혹을 받고 있는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마친뒤 회견장을 나서다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부딪쳐 쓰러진 뒤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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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비서관은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대로 '꼬리 자르기'에도 나섰다. 그는 "자료삭제에 관한 제가 바로 '몸통'이니 저에게 모든 책임을 물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 대목을 읽을 때 목소리가 크게 올라갔고 "몸통"이라는 단어를 반복해 소리쳤다. "제 책임 하에 자료삭제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전 비서관은 "청와대와 저는 김종익씨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아울러 민정수석실도 무관하다"고도 했다. 민간인 사찰과 증거인멸 등에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차단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장석명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이인규 전 지원관의 후임자 류충렬 전 공직복무관리관을 통해 5000만 원을 건넸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게다가 임태희 전 청와대 대통령실장이 민간인 사찰 의혹 사건으로 사법처리된 이인규 전 지원관과 진경락 전 과장에게 금일봉을 전달한 사실도 확인됐다. 청와대 전체가 이 사건에 개입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정황들이다.

이 전 비서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명감을 갖고 국가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공직자가 아닌 민간회사의 대표를 사찰하고, 사찰과 관련된 자료들을 인멸하고, 증거인멸 지시 사실을 폭로하려는 사람을 돈으로 회유한 것이 과연 "국가발전"을 위한 일인지는 의문이다. 


태그:#이영호,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 지시 의혹, #장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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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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