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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딸
 아들과 딸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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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일요일 34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대학동기생인 병희를 만나기 위해 선엽이와 창완이 그리고 상준이가 모였습니다.

그런데 특별한 한 분이 그 자리에 동석했습니다. 그분은 바로 창환이의 84세 어머님이셨습니다.

창환이의 어머님은 6년 전부터 치매를 앓고 계십니다. 증상이 아주 심한 것은 아니어서 집밖을 못 나올 정도는 아니지만 보호자가 없이 혼자 생활할 수 있는 능력은 상실된 상황입니다.

창환이는 처와 함께 일을 하는 처지라 주중의 출근길에 어머님을 주간보호센터에 의탁하고 퇴근길에 다시 모셔가는 방식으로 어머님을 모시는 상황입니다.

주말의 경우, 창환이는 어머님과 함께 보냅니다. 그렇게 지낸 지가 3년째 됩니다. 창환이는 형님도 계시고 출가한 여동생도 있습니다만 동기간에 3년씩 돌아가며 어머님을 돌보기로 했고 둘째인 창완이는 형님에 이어 두 번째로 어머님을 돌보고 있습니다.



창환이의 어머님은 우리 동기 모두의 어머님인 셈이다.
 창환이의 어머님은 우리 동기 모두의 어머님인 셈이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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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환이가 걱정하는 것은 어머님께 식사를 하시고도 또다시 그 사실을 잊고 먹을 것을 거부치 않는 섭식장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식사량을 잘 조절해드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이날은 서재의 낮은 방석에 모시고 과일과 빵을 충분하다 싶을 만큼 드렸습니다. 창환이가 껍질을 까드리고 연신 당부했습니다.

"천천히 드셔!"

동기들이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어머님의 접시가 모두 비었음을 보고 창환이가 다시 상황을 점검했습니다.

"드시다 말고 모두 가방에 담으셨네."

치매는 금방 한 본인의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했던 얘기를 반복하거나, 물건을 감추는 등 매우 다양한 증상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저녁시사를 위해 닭백숙집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어머님이 불편하지 않도록 맵지 않고 씹기도 괜찮은 것을 메뉴로 정한 것입니다.

드리는 대로 그릇을 비우는 어머님. 창환이는 다시 정도가 지났다 싶을 때 그만 드시도록 했습니다. 어머님은 계속 남은 음식을 비우지 않는다고 아들에게 성화를 대었습니다.

식당을 나와 차에 어머님을 먼저 태우고 말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나는 이 노인의 아들이었지. 그러나 지금 나는 이 노인을 내 딸이라고 여기고 있어. 나는 치매 걸린 내 엄마를 돌보면서 나도 기억할 수 없는 내가 어렸을 때를 유추하곤 해. 아마 엄마가 내게 하는 지금의 어린 행동은 내가 아마 엄마에게 했던 것의 몇 십 분의 일도 아닐 것이라고 여겨. 딸이라고 여기니 이 노인이 하는 모든 것이 참을 만해. 이제 내가 돌보기로 약속한 3년의 기한이 다 되었어. 하지만 엄마를 그 다음 차례인 내 여동생에게 보내지 않기로 마음먹었어."

어머님의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어른 뛰어와서 옷매무새와 머리를 정돈해드리는 창환이
 어머님의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어른 뛰어와서 옷매무새와 머리를 정돈해드리는 창환이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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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만에 만나는 친구와 모임에 어머님과 함께 와서 친구들이 성가시지 않았을까 하는 미안한 마음이 담긴 어조였습니다.

창환이의 말에 숙연해진 우리는 작별인사가 더디어졌습니다. 그때 침묵을 깨고 상준이가 말했습니다.

"창환아, 이제부터는 딸이 아니라 애인으로 대해라. 딸은 꾸중도 하지만 애인을 어떻게 꾸짖겠나."

창환이 어머님은 우리가 학생이던 시절에 창환이 집을 방문하면 끼니마다 밥을 차려내시던 분이었고, 직장생활을 시작하고는 때로 술도 차려주셨던 분이지요. 그러니 창환이의 어머님은 사실 우리 모두의 어머님인 셈입니다. 아니, 우리 모두의 애인이 것이지요.

덧붙이는 글 | 보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어머니, #딸, #오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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