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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4일, 강원도 고성 화진포에서 진부령을 넘어 집(경기도 안양)으로 돌아가기 전에, 아무리 비가와도 바닷가에 한번은 가까이 가봐야 되지 않겠냐는 생각에 무작정 해안가 마을로 차를 몰았습니다. 아주 잠시나마 빗줄기가 약해진 틈을 타서 바다의 비릿함을 느껴볼 요량이었죠.

그런데 낯선 마을이라, 길이 제대로 바닷가로 이어져 있는지 차를 몰면서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차창 오른편으로는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가 보이는데, 길은 계속 좁은 골목으로만 이어지네요. 그렇게 잠시 차를 돌려야 되냐, 말아야 되냐 실랑이를 벌이는 순간, 넓어진 길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앞은 바로 해수욕장이었죠.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오니 ‘반암해수욕장’ 이라는 해변이 나타났습니다.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오니 ‘반암해수욕장’ 이라는 해변이 나타났습니다.
ⓒ 방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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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반암해수욕장은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에 있는 자그마한 해변입니다. 백사장은 길지만, 군사지역 안에 있어서 실제 개방은 200미터 정도만 된답니다.

보슬보슬 내리는 보슬비를 맞으며, 저희 가족은 해변으로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성난 바다가 무서워 가까이 다가 설 수는 없었습니다. 바람이 세지도 않은데, 파도가 거칠었기 때문이죠. 이런 파도를 너울이라고 부르던데, 맞나 모르겠습니다.

해수욕장 옆에는 이렇게 멋진 바위가 파도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해수욕장 옆에는 이렇게 멋진 바위가 파도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 방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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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무섭게 보이는 건, 살아오면서 죄를 많이 지어서 그럴까요?
 파도가 무섭게 보이는 건, 살아오면서 죄를 많이 지어서 그럴까요?
ⓒ 방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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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는 거침없이 해안가를 향해 전력질주를 합니다. 하지만, 파도에 맞선 단단한 바위는 쉽게 파도를 넘겨 보내지 않습니다. 자신의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죠. 이번만큼은 매서운 파도도 바위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고 마네요. 하지만, 아마 다음번을 기약하겠죠. 더 힘센 놈들을 몰고 올, 언젠가를 말이죠.

아무리 성난 파도라도 저 바위를 넘어서지 못하고 부서집니다.
 아무리 성난 파도라도 저 바위를 넘어서지 못하고 부서집니다.
ⓒ 방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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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줄기가 다시 굵어지려고 합니다. 저희는 다시 차로 돌아갑니다. 이제 따뜻한 봄이 되면, 다시 찾아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조그마한 어촌마을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진부령을 향해 달려갑니다.

진부령 고갯길에서 느낀 단상

강원도 인제, 영통을 지나 한계교차로(삼거리)에 이르면 길은 '한계령'과 '미시령'으로 나눠집니다. 여기서 직진하면 한계령이고 좌회전하면 '미시령'으로 가게 되죠.  만약 여기서 좌회전을 한다면, 다시 용대삼거리에서 길이 나눠집니다. '미시령'과 '진부령'으로 말이죠.

한계령을 넘어가면 '양양'이고, 미시령을 넘어가면 '속초'입니다. 또한 진부령을 넘으면 고성군 '간성'이지요.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이렇게 넘어야할 고개가 다릅니다. 고성 통일전망대에 가는 사람이 굳이 터널이 뚫렸다고 미시령 고개를 넘어간다면 많이 돌아가게 되지요.

이렇게 길도 목적지에 따라 달라지는데, 하물며 인생은 어떻겠습니까? 저마다 다 다른 곳을 향해 달려가는데, 죄다 동일한 길로만 가라고 하면, 어찌합니까? 말이 안 되죠. 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우리 옆엔 친숙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친구들을 만나도, 지인들을 만나도 아이들 교육 방식은 죄다 비슷합니다. 집에선 학습지, 밖에선 학원. 이렇게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에게 똑같은 길을 가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학원 안다니는 저희 아이가 부럽다는 아이 친구들 얘기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가 그것이지요. 요즘 상황에서는 제 아이만 완전히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참! 갑자기 교육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요. 간성에서 진부령을 넘어 집으로 가려는데, 아이가 갑자기 7번 국도를 타고 강릉방면으로 가다가 고속도로를 타고 집으로 가자는 얘기를 하지 뭡니까. 아니, 왜 가까운 길을 놔두고, 빙 돌아가자는 얘기를 하는지, 아이와 잠시 언쟁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좀더 바다를 보고 싶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나왔는데, 벌써 돌아 가냐? 이거죠. 하지만 전 피곤했기 때문에 그냥 진부령을 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흐르는 차안의 정적! 그래서 전 말꼬리를 내리고....'여기는 비가 오니까, 저 고개를 넘어서 비가 안 오는 곳에서 더 놀다가 가자'며 아이와 협상을 했습니다. '아이고, 힘들다!'

간성읍에서 진부령으로 가는 길, 비가 어느덧 눈으로 바뀌고 있는데....
 간성읍에서 진부령으로 가는 길, 비가 어느덧 눈으로 바뀌고 있는데....
ⓒ 방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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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동안 치열하게 눈과 싸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도로 양 옆은 보기만 해도 엄청난 양의 눈이 쌓여있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길을 치워준 사람들 덕에, 아무 문제없이 저희는 진부령을 넘을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요. 그런데, 내리던 비가 조금씩 눈으로 바뀌고 있네요. 빨리 서둘러서 고개를 넘어야겠습니다.

진부령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진부령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 방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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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만 빼고는 죄다 눈입니다.
 도로만 빼고는 죄다 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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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서서야 잠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이제 다시 내려갑니다. 이곳 진부령은 대관령이나 미시령 옛길에 비하면 참 편한 도로입니다. 한계령이나 미시령처럼 급하게 올라가는 언덕이 덜하죠. 고개 정상에 올라서도 숨 한 번 길게 뱉을 필요 없이 그냥 지나갈 수 있습니다.

고개를 내려가면서 보이는 황태덕장
 고개를 내려가면서 보이는 황태덕장
ⓒ 방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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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희 가족의 모습. 아이는 이제 기분이 좋아진 듯.
 그리고 저희 가족의 모습. 아이는 이제 기분이 좋아진 듯.
ⓒ 방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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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진부령 고개를 넘어서 용대리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는 유명한 매바위라는 인공폭포가 있는데, 여름에는 시원한 폭포가 흐르고, 겨울에는 꽁꽁 얼어있습니다. 예전에 저곳에서 빙벽을 오르던 사람들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아찔한 광경을 넋 놓고 봤던 기억이 이곳을 지날 때마다 항상 납니다.

"자! 이제 어디로 갈까?"
제 물음에 아들은 춘천에 가자고 말합니다. 하긴 여기서 춘천은 가깝지요.
"그래 가보자!"

제 아이 만큼은 남들이 가는 '똑 같은 길'을 걷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직까지는 말이죠.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에 가면, 어떻게 변할지 지금은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자신만의 길'을 걷게 도와줄 것이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태그:#반암해수욕장, #진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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