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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가족>(2004)의 한 장면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가족>(2004)의 한 장면
ⓒ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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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연 연기 속에서 난 무언가를 찾듯이 두리번거리고 있고 저 반대편에는 사람 형체가 보인다. 느낌으로 아빠라는 걸 한번에 알 수 있었다. 연기를 손으로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는데 아빠는 점점 멀어진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빠는 내 이름만 크게 부르고 있다. 너무 화가 난 사람처럼 "혜진아! 혜진아!"를 반복해 소리를 지른다.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뿌연 연기가 거실에서 방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려 놓고 낮잠을 잔 것이다. 냄비는 이미 새까맣게 탔고 가스불은 아직 켜져 있었다. 아찔했다. 아빠는 가끔 이렇게 꿈에 나와 나를 도와주곤 했다.

나를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했던 아빠는 2000년 겨울에 돌아가셨다. 부모님의 별거, 오빠의 대형사고, 아빠의 술주정과 폭력으로 인해 세상 모든 불행은 내가 갖고 있는 것만 같았던 19세 때다.

아빠 역시 그런 삶을 증오하며 술만 마셨고 그래서 더 난폭해졌다. 그런 아빠가 싫다고 인천에서 부산으로 도망가버린 나는 아빠의 죽음 앞에 더 힘들었다. 그래서 한때는 자기 전에 늘 나를 데려가라고 아빠에게 기도했던 적도 있다. 그럴 때면 아빠는 꿈에서 항상 나를 무시(?)했다.

19살 때 돌아가신 아빠... "나도 좀 데려가"

아빠가 돌아가신 지 1년쯤 되던 스무 살 무렵, 그날도 모든 게 다 싫고 힘겨워 나 좀 데려가 달라고 기도하다 울며 잠이 들었다. 배경은 내가 3살 때 살았던 곳이다. 그냥 힘없이 길을 걷고 있는데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놀던 어린 아이가 차에 살짝 치여 다리를 절뚝거렸다. 그 아이는 엉엉 울다가 어느 대문으로 들어갔다. 아이의 상처가 걱정된 나는 대문을 따라 들어갔다.

집 마루에는 한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그 아이를 반기고 있었다. 아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 엄마로 보이는 사람 품에 안기더니 나를 보며 헤죽헤죽 웃었다. 아이의 다리가 걱정이 됐지만 그냥 뭔가에 이끌려 그 집을 나왔다.

그런데 아빠가 나와 마주 보고 있는 것이다. 금세 눈물이 쏟아지면서 "아빠, 나도 같이 가!" 하며 뛰어갔다. 빠르게 뛰어갈수록 아빠는 빠르게 멀어져갔다. 뛰어가다 지쳐 숨을 고르던 중 잠에서 깨어났다. 눈은 퉁퉁 부었고 온몸은 식은땀에 젖었다. 그 아이가 생각났다. 과연 그 아이와 아빠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아이는 다쳤지만 용기 있게 일어섰다. 그리고는 엄마 품에 안겨 해맑게 웃었다. 마치 아빠가 나한테, 외로워도 슬퍼도 남은 가족과 함께 힘차게 살라는 메시지를 꿈으로 전해준 것 같았다.

마음만 먹으면 아빠가 내 꿈에 나올 줄 알았다. 아니, 내가 매일 아빠를 잊지 못하고 생각할 줄 알았다. 하지만 살다보니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힘들거나 아프면 아빠가 생각나고, 그럼 아빠는 내 꿈에 얼굴만이라도 비쳐줬다. 그리운 아빠 얼굴을 보고 나면 한동안은 마음이 편안해지고 또 당분간 아빠를 잊고 지냈다.

딸내미 응원하려고 엄마까지 데리고 나오다니...

사진 찍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던 아빠와 나
 사진 찍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던 아빠와 나
ⓒ 신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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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자퇴한 나는 2007년에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자퇴한 지 8년이나 지난 탓에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가방끈이 짧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르바이트밖에 없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좋은 직장에 취직도 하고 당당하게 살고 싶어 도전했다. 공부하는 중간에도 '이거 한다고 내 삶이 달라질까?', '떨어지면 개망신인데' 하는 부정적인 생각만 들었다. 그 무렵 아빠가 또 나에게 힘을 줬다.

한강처럼 넓은 강이 있었다. 수심이 낮은 곳에 친구들이 있었다. 친구들 있는 곳으로 갔는데 수심도 낮고 쉽게 수영할 수가 있어서 좋았다. 작은 물고기들도 훤히 보였다. 친구들에저기 높은 다리에서 다이빙을 하자고 했는데 거긴 너무 높고 무서워서 안 된단다. 사실 나도 무섭고 두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그때쯤 한 사람이 다리에서 다이빙을 했다. 앗! 아빠다. 엄청 빠르다. 그 뒤를 이어 엄마도 다이빙을 한다. 우와, 엄청 빠르다. 다른 사람들이 뒤처진다. 그래도 난 무서웠다. 그런데 눈물이 나면서 나도 모르게 아빠 엄마가 뛰어내린 다리 위로 갔다. 가는 내내 난 '할 수 있을까?', '죽으면 어떡하지?' 하고 고민했다.

고민 끝에 결심을 하고 다리 한가운데로 간 나. 그러나 아무도 없는 넓은 다리다. 이제 아빠, 엄마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다. 몸으로 용기와 승리를 보여주신 아빠, 엄마는 이미 없어졌고,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져서 꿈에서 깼다.

꿈에서 깨고 나니 웃음부터 나왔다. 내게 힘을 주기 위해, 물을 무서워 하는 엄마까지 동원한 아빠. 그렇게 생각하니 더 이상 나약해질 수가 없었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냐는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내가 '고졸' 학력이 된 것은 나로서는 대단한 일이다.

머지 않아 아빠가 또 꿈에 나온다면, 이제는...

어느 날부턴가 아빠를 내 지갑 속 사진으로만 만난다. 꿈에도 나오지 않는다. 불현듯, '힘든 과거를 충분히 이겨내고 이제는 내가 행복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내가 어려울 때마다 늘 꿈에 나타나 힘을 줬던 아빠. 아빠가 머지 않아 꿈에 또 나온다면 이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빠! 그래도 가끔씩은 웃는 얼굴로 꿈에 한번씩 나와줘요~. 딸내미 더 힘내고 파이팅 할 수 있게 말이에요! 영원한 나의 수호천사!"


태그:#아빠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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