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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내내 봄맞이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이런 날 칼국수 한사발은 세상에 그 어떤 것도 부럽지 않지요
 하루 내내 봄맞이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이런 날 칼국수 한사발은 세상에 그 어떤 것도 부럽지 않지요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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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아침부터 주룩주룩 내립니다. 겨울 찬바람도 남녘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에 밀려나고 눈보라도 봄비에 자리를 내주고 있습니다. 가는 겨울도 오는 봄도 자연의 거룩한 이치에 순응합니다. 이처럼 자연은 다투는 것 같지만 결코 욕심내지 않습니다. 지난해 성탄절을 앞두고 해고'당'했던 아내가 봄을 맞아 새로운 일을 찾아나섰습니다.

봄비 내리는 날은 칼국수가 제격

이곳저곳 전화했지만 "나이가 많네요"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내가 벌써 늙었나"라는 말로 웃어 넘겼지만 씁쓸해 하는 얼굴을 보면서 안쓰러웠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아내를 면접 장소에 실어주고 섬기고 있는 시민단체에 할 일이 있어 사무실에 갔습니다. 면접을 마친 아내가 전화를 했습니다.

"면접 다 끝났어요."
"갈게요. 정문에 나와 기다리세요."

"그래 면접은 잘 치렀어요?"
"잘 봤어요. 이것저것 묻길래 대답은 잘했어요. 비도 주룩주룩 내리는데 칼국수가 먹고 싶어요."
"칼국수?"


칼국수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내키지 않았지만 먹고 싶어하는 아내 말을 마냥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도 생활 전선에 뛰어 들기 위하여 면접까지 보았는데. 몇 년 전에 들렀던 집인데 아직도 있었습니다.

"야 아직도 칼국수를 하네. 칼국수 집을 이렇게 오래하는 것은 맛이 있기 때문 아니겠어요."
"막둥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쯤 왔을까요."
"당신이 먹자고 해서 마지못해 들어왔는데 봄비 내리고, 날씨도 조금은 쌀쌀한데 따뜻한 국물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이 집의 좋은 점은 풍성합니다. 칼국수 한 그릇이 아니라 한 대야입니다. 두 사람 먹을 것을 시켰는데 겨우 겨우 먹었습니다. 바지락, 김, 마른새우, 호박 따위 몇 가지가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국물이 시원하고 깔끔했습니다.

칼국수가 한 그릇(한 대야?) 그리고 밥알 들어간 깍두기는 무슨 맛?

칼국수 한 사발(대야?) 두 사람이 다 먹지 못할 만큼 많았습니다
 칼국수 한 사발(대야?) 두 사람이 다 먹지 못할 만큼 많았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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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가 맛있어요. 그런데 밥알을 넣은 것 같아요."
"밥알? 이것 사람들이 먹다가 남은 것을 준 것 아니예요?"
"아니예요. 밥알을 갈아 넣은 것 같아요. 맛이 독특해요."
"주인한테 물어보세요. 어떻게 담갔는지."
"깍두기 어떻게 담갔어요? 밥을 넣은 것 같은데."
"예, 밥을 갈아 넣었어요."
"깍두기에 밥 넣는 것은 자주 보지 못했어요."


정말 신기했습니다. 밥알을 깍두기에 넣다니. 먹으면 먹을수록 입안은 전혀 새로운 깍두기 맛을 느꼈습니다. 문외한이 그런지 몰라도 깍두기에 밥알을 넣는 것은 처음봤고, 먹엇습니다. 아마 옆집에도 밥알을 넣고 깍두기를 담글 것이지만 처음 먹어본 사람이라 우리 집에서도 이런 깍두기 한번 먹어봤으면 좋겠습니다.

깍두기. 주인에게 물어보니 쌀을 갈아 넣었다고 합니다. 독특한 맛이었습니다.
 깍두기. 주인에게 물어보니 쌀을 갈아 넣었다고 합니다. 독특한 맛이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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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릇(한 대야?) 정신없이 먹어

한 그릇이 아닌 한 대야라는 엄청난 양. 깔끔한 육수와 바지락과 마른새우에 호박에 들어가 맑고 깨끗한 국물도 일품이었지만 처음 먹어본 깍두기는 안경에 김이 서렸지만 정신없이 먹기 바빴습니다.

"당신 말 듣지 않았으면 섭할 뻔했네."
"국물 맛이 정말 좋아요."
"바지락도 싱싱하고, 마른새우 때문에 국물이 시원한 것 같아요."

"양도 많고, 맛도 좋고. 이런게 일석삼조인가요."
"…."
"그렇게 맛있어요?"
"응"


아내 덕에 정말 맛있는 칼국수 한 대야(?)를 먹었습니다.

안경에 김이 서렸지만 식욕을 멈출수가 없었습니다
 안경에 김이 서렸지만 식욕을 멈출수가 없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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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칼국수, #봄비,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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