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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을 보러 온 건지, 사람을 보러 온 건지. 마치 개미떼의 행렬을 보는 것 같았다.
▲ 2010년 여름, 자금성의 패키지 여행객들 자금성을 보러 온 건지, 사람을 보러 온 건지. 마치 개미떼의 행렬을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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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여행사들 어지간히 게으른데다 무척이나 후졌다. 고객들을 위한 다양한 상품 개발 노력도, 치열한 경쟁도 없는 탓인지 여행사마다 내놓는 상품이란 게 하나같이 그 나물에 그 밥이다. 해외여행의 경우, 여행사마다 일정도, 가격도 거의 같다보니 이른바 수익을 낼 수 있는 최소 출발 인원이 다 채워지지 않으면 서로 고객을 빌려주는 일도 공공연하다.

고객들의 여행에 대한 기호는 나날이 다양해지고 있는데, 여행사는 그에 발맞춰 변화하기는커녕 이름만 그럴듯하게 바꿔달 뿐 옛날 방식 그대로다. 여행사마다 자사의 실적을 신문 등에 광고할 때 '송출 1위'라는 용어를 뽐내듯 내거는 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질보다는 양으로 당장의 수익을 내려 한다.

많이 '송출'하려면 모객이 쉬워야 하고, 그러자면 우선은 가격이 싸(게 보여)야 한다. 상품 소개란에 세부 일정보다 가격이 더 굵은 글씨로 앞서 적혀있는 건 그래서다. 더욱이 어떤 상품이든 하나같이 9만9000원으로 끝난다. 고작 천 원 차이일 뿐인데, 무조건 고객에게 싸게 느껴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꼼수 같은 상술이 모객에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까마는, 큰 맘 먹고 계획한 해외여행을 나름 저렴하게 다녀오려는 사람들은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에 우선 눈길을 주게 된다. 비자를 발급 받고, 세부 일정을 짜는 등 개별적으로 여행을 준비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고, 무엇보다도 패키지로 가면 비용이 적게 든다는 '편견' 때문이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면 1원(한화 약 200원)짜리 시내버스를 타고 남경 시내를 돌아다녔다. 친절한 중국인들로부터 자리를 양보 받았고, 아이들은 마냥 신나 했다.
▲ 중국에서 시내버스도 타고...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면 1원(한화 약 200원)짜리 시내버스를 타고 남경 시내를 돌아다녔다. 친절한 중국인들로부터 자리를 양보 받았고, 아이들은 마냥 신나 했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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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기대만큼 패키지 상품은 쌀까. 우선 개인에 견줘 단체 비자 발급 비용이 훨씬 저렴하다는 것과 여행사가 선점해 놓은 할인 항공권, 게다가 현지 호텔의 단체 할인 등을 감안하면 개인적인 여행과 단순 비교하는 건 곤란하다. 하지만 광고마다 제시된 '9만9000원' 가격 뒤에 조그맣게 적혀있는 '부터'라는 두 글자에 주목해야 한다.

경험에 비추어 보면, 싼 게 비지떡이다. 같은 일정이라도 가장 싼 가격의 상품에는 쇼핑센터 방문 같은 옵션이 수차례 더 추가되거나 별도의 초과 비용이 늘 따라붙는다. 결국 같은 조건에서 놓고 비교하면 별반 차이가 없다. 실제로 턱없이 싼 동남아 여행 패키지 상품 중에는 종일 쇼핑센터만 찾아다니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또, 어느 여행사의 어떤 상품이든 가격에 꼭 빠져있는 게 있다. 바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항공사의 유류할증료와 인솔 가이드의 수고비, 그리고 현지 관광지마다 별도로 '권장'되는 팁들이다. 실제로 이들을 합하면 제시된 상품 가격에 이를 만한 큰 액수인데다, 그런 부수비용들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적용되어 서너 살배기 코흘리개들조차 지불해야 한다.

심지어 패키지여행이 보편적인 몇몇 나라들의 경우, 쇼핑센터를 방문할 때 '인두세 제도'라 하여 쇼핑센터가 해당 가이드에게 공식적인 알선료를 지불하도록 돼 있는데, 고객들의 평균 연령이 낮으면 구매력이 낮다는 이유로 알선료가 줄어들어 그 몫만큼을 고객들에게 떠넘기는 사례마저 있으니, 그야말로 수익을 내기 위해 별의별 조건을 다 내건다.

고객 입장에서 보면 언뜻 사기당한 기분이지만, 엄연히 약관에 적혀 있는 합법적 상행위로 이를 문제 삼기는 곤란하다. 어쨌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루가 멀다 하고 국내 최저가라고 대문짝만하게 광고하는 여행사들의 패키지 상품은 우리가 생각하고 기대하는 만큼 싸지 않다는 사실이다.

특히 아이들을 동반하고 가족여행을 가는 경우, 이른바 개별적으로 준비하는 자유여행과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과의 비용 차이는 거의 없으며, 씀씀이에 따라서는 외려 적게 들기도 한다. 패키지여행 상품의 경우, 만 2세 이하의 유아가 아닌 경우 대부분 성인 요금과 동일하게 적용하기 때문이다.

춘절(중국 설) 기간, 어렵사리 표를 구해 허셰호라고 명명된 초고속열차를 탔다. 아이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거리가 됐다.
▲ 지난 겨울, 허셰호를 타고 여행을 다니다. 춘절(중국 설) 기간, 어렵사리 표를 구해 허셰호라고 명명된 초고속열차를 탔다. 아이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거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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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둘을 포함한 4인 가족이 여행을 한다고 치자. 호텔 방을 굳이 두 개 사용할 필요가 없고 비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현지 관광지 입장료 역시 아이들은 무료이거나 절반 가까이 할인된다. 식비 또한 별도의 추가 비용이 들지 않으며 여행사가 '권장'하는 온갖 팁의 부담은 애초 걱정할 필요조차 없다.

우리 가족도 처음에는 비용 걱정에 여행사 패키지를 통해 해외여행을 다녀왔지만, 추가 부담이 생각보다 많았을 뿐만 아니라 깃발 따라다니느라 일정 내내 헉헉거렸다. 남는 건 현지 관광지에서 찍은, 쓸데라곤 하나 없는 사진 몇 장뿐이었다. 두 아이들은 금세 지쳐 버렸고, 그들에겐 오직 무척 힘들었다는 기억만 남았다.

그 이듬해 우리 가족은 비자 발급부터 항공권 예매, 호텔 예약, 세부 일정 짜는 것까지 스스로 하고 실행에 옮겼다. 어린 아이들을 감안해 낭비는 줄이되 자린고비처럼 추레한 여행이 되지 않도록 예산을 넉넉히 잡았다. 주제를 정해 방문할 관광지를 정하고, 동선을 따라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했으며, 현지의 잘 알려진 식당을 찾아가 특산물을 먹어보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언어 장벽으로 인한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다소 불편할 뿐 여행에 크게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미리 여행할 곳에 관한 믿을만한 최신 정보를 꼼꼼하게 챙기고, 영어를 비롯해 기본적인 현지 생활회화 몇 마디만 익혀 가면 된다. 굳이 문제될 게 있다면, 그건 외국이라는 땅과 외국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아닐까 싶다.

이후 해외로의 가족여행은 해마다 계속되었지만, 여행사들의 그 나물에 그 밥인 패키지 상품은 더 이상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보다는 차라리 항공사의 유류할증료 변동 상황에 더 관심이 가고, 이따금씩 일부 신문에 소개되는 주제별 답사기행에 마음이 끌리곤 한다. 비용이 더 들더라도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여행사들마다 모객을 위한 꼼수 광고가 횡행하고 여전히 천편일률적인 패키지 상품만 넘쳐나는 상황을 이제 반성해 볼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후지고 게으른 여행사들의 행태는 기실 고객, 곧 여행 상품의 소비자가 조장한 측면이 크다. 이모저모 따져보지 않고 일단 해외여행을 오로지 싸게만 다녀오려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탓이다.

이참에 해외여행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꿔보면 어떨까. 경험 상 단언하건대, 여행을 준비하며 분주히 발품을 판다면 얼마든지 패키지 상품 못지않은 저렴한 비용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올 수도 있고, 여행사 깃발을 따라 순례하듯 유명 관광지를 찾아 따라다니지 않아도 훨씬 더 기억에 남는 멋진 해외여행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적어도 여행사와 몇몇 할인 항공권과 호텔 예약 판매 사이트를 비교하며 계산기 누르는 수고만 있어도 충분하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교통편과 숙박할 곳, 여행할 곳 등을 챙기면서 스스로 맞춤 예산을 세우고 여행 동선을 짜보는 건 그 자체로 크나큰 경험이 되고 설렘과 함께 즐거움을 준다. 여행은 준비하는 맛이라지 않던가.

'남는 건 사진뿐'이라며 여행 내내 카메라에서 손을 떼지 못한 채 유명한 관광지만 찾아 찍고 다니는 여행은 도심의 고층 빌딩 보며 감탄하는 것만큼이나 촌스럽다. 해외여행 해봤다고 남들 앞에서 뽐내려는 게 아니라면, 에펠탑과 오페라하우스, 만리장성 앞에서 찍은 사진이 훗날 자신에게 무슨 감동을 주게 될까.

해외여행? 잘만 준비하면 그렇게 비용이 많이 들지도 않으며, 생각만큼 어렵지도, 위험하지도 않다. 깃발만 졸졸 따라다니면 되는 '편리함' 뒤에는 다녀온 뒤의 '허무함'이 기회비용처럼 자리하게 될 것이다. 흔히 말하듯, 여행이 가장 좋은 교육이고 삶의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일이라면, 용기를 내어 자신만의 색깔 있는 여행을 만들어보자.

남경의 명 효릉 가는 길, 출출해서 중국 라면을 함께 먹었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니 아이들과 별의별 경험(?)을 다 해보게 된다. 이게 다 여행의 재미 아니겠는가.
▲ 한국의 컵라면 맛과 비교도 하며... 남경의 명 효릉 가는 길, 출출해서 중국 라면을 함께 먹었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니 아이들과 별의별 경험(?)을 다 해보게 된다. 이게 다 여행의 재미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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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참고로, 중국 인민폐의 환율이 198원까지 뛰었던 지난 겨울(1월 초), 우리 가족(4인)은 9일간 중국 남경과 무석 주변을 여행했다. 4성급 호텔에 개인당 450원(한화 약 9만 원)짜리 입장료를 받는 값비싼 관광지, 허셰호라고 불리는 초고속열차까지 타며 꽤 '사치스럽게' 보냈지만 총경비는 340만 원이 채 들지 않았다. 적은 돈은 분명 아니지만, 그 어떤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보다 적게 들었다고 본다.



태그:#패키지 여행 상품, #해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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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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