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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의 기소가 필요하면 그들만의 '정답'에 맞춰 얼마든지 적법 절차를 무시하고 증거를 수집하고 수사한다.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 검찰만큼 막강한 검찰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총선을 50여 일 앞두고 검찰의 최고 화력부대로 일컫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대검 중수부)가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칼끝을 잘 감시하고, 예의주시할 때다. 자칫하면 누구든 베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검 중수부는 최근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불러 조사하는 등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노정연씨 사건을 다시 들추기 시작했다. 저의가 의심스럽다. 반면 대통령 친인척 및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 등 측근 비리에 이은 나경원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의 남편인 김재호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가 '기소청탁'을 했다는 주장이 점차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데도 검찰은 우물쭈물하고 있다.

때마침 '정치 검찰'을 통렬하게 비판한 책이 출간됐다. <분노하라, 정치검찰>이란 책은 불법과 탈법으로 얼룩진 대한민국 '정치 검찰'의 행태를 낱낱이 고발해 시선을 끈다. 10년 이상 '정치 검찰'과 싸워온 야전 변호사이자 정봉주 전 국회의원의 BBK사건 재판으로 잘 알려진 이재화씨가 쓴 책이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맡았던 '정치 검찰' 관련 7가지 사건의 재판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오로지 자신들이 설정해놓은 각본대로 조사, 기소"

<분노하라, 정치검찰>(이재화 지음, 이학사 출판) 책 표지.
 <분노하라, 정치검찰>(이재화 지음, 이학사 출판) 책 표지.
ⓒ 이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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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 수사' '보복 수사' '수사 과정에서의 치졸한 피의사실 공표' '꼼수로 자백 받아 내기' '불법적인 증거수집' '편파 수사' '꿰맞추기 수사' '회유와 협박을 통한 사건조작' '공소권 남용' '재판 과정에서의 불법 진술을 합법으로 세탁' '증인 사전 교육' '증인에 대한 보복 기소' '이유없는 상소 남발'….

<분노하라, 정치검찰>이 일러주는 대한민국 '정치 검찰'의 현주소다. 이른바 '정치 검찰'이 득실대는 대한민국 검찰 상은 갈수록 정의와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것.

이 변호사는 책에서 정봉주 BBK 사건,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김현미 의원의 뇌물 수수 사건, 한명숙 전 총리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등에서 보고 느낀 '정치 검찰'의 폐해를 소상하게 밝힌다. 그는 표적 수사, 정치 보복 수사, 불법적인 증거 수집, 사건 조작 등 전형적인 '정치검찰' 행태에 분노하고, 자괴하며 그들이 지금도 저지르고 있는 불법과 탈법 행태를 국민들 앞에 고발한다. 

이 책의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잘못된 검찰의 기소가 얼마나 많은 피해와 사회 폐단을 낳는지이며, 또 하나는 '정치 검찰'이 있는 한 정의를 바로 세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이 책은 대한민국 '정치 검찰'이 철저히 정치적인 고려에 의해 수사개시 여부를 결정하고, 일단 수사를 개시하면 피의자가 어떤 주장을 하는지, 그 주장이 타당한지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이 설정해 놓은 각본대로 조사해 기소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설사 재판부에서 무죄 판결이 나더라도 길게는 몇 년이 걸리는 재판 과정에서 억울하게 피의자로 몰린 당사자들이 '범죄자'라는 낙인과 도덕성의 상처를 감내하고 살아가야 하는 기막힌 사례들이 책 곳곳에서 소개된다. 그런데 그런 사례들이 아직도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으니 '정치 검찰'은 참 지독하고 끔찍하다. 의문을 넘어 분노를 갖게 하는 사례들이 선거철만 되면 더욱 기승을 부린다. '정치 검찰'로 인한 얼토당토않은 피해 사례, 특히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의문의 사례들을 짚어본다.    

[사례①] 정책 비방했다고 104일 구속 후 무죄..."아니면 말고?"

2009년 4월 20일.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대성씨가 무죄 판결을 받고 석방됐다. 그러나 박씨는 100여 일 동안 차가운 감옥에서 영어의 몸으로 지내 만신창이가 됐다. '미네르바를 수사해야 한다'는 정부와 여권의 여론에 편승해 검찰이 무리하게 수사하고 기소했다가 망신을 당했지만 당사자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박씨는 2009년 1월 인터넷 포털 토론방에 정부의 경제정책에 관한 비판 글을 썼다가 구속돼 무죄를 선고받기까지 104일 동안 무고한 옥살이를 했다. 무죄가 확정됐지만 박씨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찾아왔기 때문. 박씨의 대리인 우종환 변호사는 "박씨가 밖에 나서면 폭행을 당할까 두려워 외출도 하지 못하고 대인기피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결국, 박씨는 사건 3년여 만인 지난 20일 '잘못된 검찰의 구속수사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박씨는 "사회생활을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간의 치료비와 정신·신체적 보상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손해배상 1억 원을 청구한다"고 밝혔다. 이날 박씨는 수척한 모습으로 나타나 더욱 시선을 끌었다. 인터넷에 허위 글을 올린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기 전보다 40kg쯤 몸무게가 빠졌다고 한다.

박씨는 이날 소장을 제출하며 "검찰의 '안 되면 말고' 식의 구속수사가 없었다면 이러한 피해를 입지 않았을 것"이라며 "다시는 일부 정치검찰이 국가 지위를 남용해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경고의 의미와 일부 피해 회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입을 다문 채 다른 이들과는 눈도 잘 마주치지 않은 그에게 법원은 과연 어떤 판결을 내릴까.

[사례②] < PD수첩 >, 대법원 '무죄'...회사선 '청부징계'

대법원이 지난 2008년 촛불정국의 핵심이었던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사진은 지난 2010년 1월 2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조능희 PD(가운데)가 심경을 밝히는 장면.
 대법원이 지난 2008년 촛불정국의 핵심이었던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사진은 지난 2010년 1월 2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조능희 PD(가운데)가 심경을 밝히는 장면.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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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2일. 2008년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한 MBC < PD수첩 > 제작진에 대해 대법원은 무죄 확정 판결을 내렸다. 촛불정국의 시발점이 됐던 논란이 3년 4개월여 만에 막을 내린 것이다. 이러한 기막힌 해프닝 때문에 대한민국 '정치 검찰'은 다시 조롱거리가 됐다. '무리한 강압 수사'라는 따가운 비판과 함께 신뢰에 큰 오점을 남겼다. 이날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에 대한 왜곡·과장 보도로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조능희 PD 등 < PD수첩 > 제작진 5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또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이날 정정·반론보도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정부 협상 태도와 관련해 원심이 허위로 판단한 두 가지 보도내용에 대해 "의견이나 평가라서 허위 여부를 따질 수 없다"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 환송했다. 사실상 < PD수첩 >의 손을 들어줬지만, 당사자들은 3년여 동안 처절한 투쟁과 지독한 번민, 숱한 갈등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이들이 검찰을 오가며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피의사실 공표 등으로 온갖 수모를 겪었다. 무죄 판결 이후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방송사의 징계였다. 대법원이 무죄판결을 내렸는데도 김재철 사장은 기어이 그들에게 무거운 형벌을 내렸다. MBC는 < PD수첩 > 제작진 5명에게 '회사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정직과 감봉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언론자유가 생명인 방송사가 입에 스스로 재갈을 물린 꼴이다.

게다가 '보도의 주요 내용이 허위'라는 엉뚱한 주장을 하며 사과방송까지 내보냈다. 회사 내부에서조차 '< PD수첩 > 보도에 내내 불편함을 느낀 청와대에 코드를 맞추려는 것'이라는 비판이 흘러나왔다. 노조는 '< PD수첩 > 징계는 '청부징계'라며 반발했다. 그러나 정치 검찰의 치졸한 피의사실 공표와 강압·편파 수사 등으로 탄력 받은 김재철 사장의 막무가내 식 경영과 무원칙 인사, 반 언론적 행태는 이미 브레이크가 파열될 대로 파열된 상태로 치달리고 있다. 그가 MBC를 'MB씨'로 만든 장본인이란 소릴 듣는 이유다.

[사례③] 정연주 전 KBS 사장, 3년여 공방 끝에 무죄 

2012년 1월 12일. 정연주 전 KBS 사장이 대법원에서 3년여 만에 무죄를 확정 받았다. 정 전 사장은 MB정부 임기 첫해 "국세청의 세금부과가 잘못됐다"며 반환 소송을 벌이던 중 법원의 권유로 조정에 응한 게 문제가 돼 배임 혐의로 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 2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기소된 정 전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정 전 사장이 개인적 이익을 위해 명백하게 불합리한 조정안을 제시하면서 조정을 추진해 KBS에 재산 손해를 입혔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2008년 7월 감사원은 KBS의 부실 경영을 이유로 정 전 사장 해임을 요구하고, KBS는 이사를 교체하는 파행 끝에 그를 해임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에 서명했다. 다음 달에는 검찰이 정 전 사장을 배임 혐의로 기소했지만 결국 무죄로 끝났다.

이어 2012년 2월 23일. 다시 대법원 3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정 전 사장이 이명박 대통령을 상대로 낸 해임처분무효 소송에서 "해임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2003년 6월 KBS 사장으로 임명된 정 전 사장은 2008년 KBS 이사회가 부실경영 등을 이유로 한 감사원의 해임 요구를 받아들여 해임을 결의하고, 이를 근거로 이 대통령이 해임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검찰에 의해 무리하게 기소된 두 사건은 모두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3년 6개월여 만에 끝난 사건들이다.

긴 시간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그는 두 번 웃었지만, 검찰과 법원을 오가는 사이에 그의 KBS 사장의 임기는 2009년 11월 22일 부로 이미 종료됐다. 해임처분의 부당성을 확실히 한 것과 해임처분 때부터 임기만료일까지의 보수와 관련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해졌지만, 긴 시간 법정싸움으로 그의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쳤다. 만신창이 된 그의 정신적·육체적 피해를 과연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어떤 보상으로도 불가능한 일을 '정치 검찰'이 만들어 냈다.    

[사례④] 한명숙, "진실과 정의가 권력 이겼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2월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63빌딩 시더룸에서 열린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2월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63빌딩 시더룸에서 열린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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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 KBS 전 사장의 무죄 판결 바로 다음 날인 2012년 1월 13일. 한명숙 전 총리가 고등법원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성기문)는 이날 열린 항소심 공판에서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툭하면 수사를 받느라 검찰을 오가며 참지 못할 고통이 쌓였는지, 그의 미소 속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남아 있었다.

한 전 총리는 2006년 12월 서울 삼청동 소재 총리 공관에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공기업 사장 인사청탁 명목으로 5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지난 2009년 기소됐다.

하지만 2010년 4월 1심 재판부는 "곽 전 사장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되고 청탁 주장도 비현실적"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1심에 이어 5만 달러 수수 혐의로 다시 기소됐던 한 전 총리는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역시 강압 수사와 무리한 기소였음이 확인된 순간이었다.  

특히 재판부는 "곽 전 사장이 진술을 번복한 이후 검찰수사가 강도 높게 진행됐고,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며 "곽 전 사장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피폐화된 상황에서 구금의 장기화를 피하기 위해 수사에 협조하는 차원에서 허위진술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은 한 전 총리는 "저처럼 표적수사로 인한 제2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아야 한다"며 "제가 마지막이길 바란다"고 말할 정도였다.

한 전 총리는 "진실이 권력을 이겼고, 정의가 권력을 이겼다"며 무죄를 받은 소감을 밝힌 뒤 "정치검찰이 권력의 도구가 되지 않고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검찰이 되도록 하겠다"며 "검찰개혁을 통해서 건강한 검찰로 바로서는 데 앞장서겠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무섭고 끈질긴 '정치 검찰'을 실감한 때문이리라.

[사례⑤] 출판기념회 초청장은 돈봉투?

2012년 2월 2일. 민주통합당 김경협 예비후보의 '경선 돈봉투 살포 의혹' 수사에 나섰던 검찰의 체면은 단단히 구겨졌다. 김 예비후보가 돌렸다는 봉투가 출판기념회 초대장이었던 것으로 결론이 났기 때문.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이상호)는 이날 "예비경선장에서 돈 봉투를 뿌린 혐의를 받고 있던 민주통합당 부천 원미갑 예비후보 김경협씨에 대한 내사를 종결한다"고 밝혔다. 검찰이 내사종결을 선언하면서 '민주당 돈봉투 의혹' 수사는 원점으로 돌아갔지만 찜찜한 구석이 많다.

제1야당의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수사에 과잉 의욕을 보여 온 검찰이 결국 백기를 들었지만 검찰의 어이없는 '헛발질'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돈봉투 사건 파문을 잠재우기 위한 짜맞추기 수사라는 비판을 사기에 충분했다. 정치적 균형을 맞추겠다는 강박관념으로 판단력이 마비된 탓에 진행된 전형적인 정치 검찰 수사라는 비난이 검찰 스스로도 무척 따가웠을 것이다.

폐쇄회로 텔레비전 녹화 기록만을 보고 다짜고짜 민주통합당 총선 예비후보 김경협씨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더니 돈봉투가 아니라 출판기념회 초청장인 사실이 밝혀지자 즉각 수사 중단을 선언한 것은 '허무개그'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는 편향된 정치의식, 짜맞추기식 억지 수사, 인권 경시, 기본기도 제대로 못 갖춘 엉성한 수사능력 등 검찰이 안고 있는 총체적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다.

경솔하게 압수수색 영장을 내준 법원도 책임을 피하긴 어렵다. 법원으로서는 검찰이 영장청구서에 그럴듯하게 기재한 압수수색 사유에 넘어갔겠지만, 결과적으로 '황당드라마' 또는 '허무개그'에 검찰이 주연을 맡고 법원은 조연이 되고 말았다. 검찰의 정치적 편향성 등을 고려해 앞으로 영장 발부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실히 일깨워준 사례다.

[사례⑥] '몸통'은 불구속 '깃털'만 감옥? 

돈봉투 파문으로 물의를 일의킨 박희태 국회의장이 2월 13일 오후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후 국회 본청을 떠나고 있다.
 돈봉투 파문으로 물의를 일의킨 박희태 국회의장이 2월 13일 오후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후 국회 본청을 떠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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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21일. 민망하고 부끄러운 검찰의 수사결과가 발표됐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검사 이상호)는 이날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돈 봉투 사건 수사에서 박희태 전 국회의장과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정당법 위반 혐의로 각각 불구속 기소하고 한나라당 돈봉투 수사를 사실상 종결했다. 그러자 '빙산의 일각'만 건드린 수사였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고승덕 의원에게 300만 원이 든 돈봉투를 전달한 혐의로 박 전 의장을 불구속 기소한 게 전부였다. 다른 의원 수십 명에게도 돈봉투가 살포됐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실체를 규명하는 데 실패했음을 스스로 인정할 셈이다.

그럼에도 고 의원에게 건너간 300만 원의 출처도 대선 잔금 등 불법자금이 아니라 박 의장 개인 돈이라고 밝히는 등 박 의장 전 비서 고명진씨가 "책임 있는 분이 아랫사람의 희생만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고 '양심선언'을 했음에도, 검찰은 박 전 의장과 김 전 수석이 범행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은 밝혀내지 못했다.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은 사건의 '깃털'겪인 안병용 새누리당 서울 은평갑 당협위원장은 감옥에 갇혀 있는데, '몸통'겪인 박 의장과 김 전 수석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됐다는 점이다. 게다가 검찰은 박 의장이 의장직 사퇴의사를 밝혔음에도 온갖 예의를 다 갖춰 방문조사를 벌였다. 그러면서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여당 내부에서 불거진 돈봉투 사건의 핵심은 300만 원이 든 돈봉투 1개가 아니라 수십 개의 돈봉투가 누구에게 뿌려졌으며, 이 돈의 자금원은 어디이며, 그 자금이 불법 정치자금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있었다. 그런데 몸통은 끝내 밝히지 않은 채 슬그머니 종결됐다. 그래서 "현 정부 들어 검찰은 언제나 야당한테는 날선 칼이지만, 여당한테는 '부러진 칼'"이라는 비판이 새나오고 있다.

[시례⑦] 총선 다가오자 느닷없이 '노정연 수사'

<경향신문> 2월 28일자 1면.
 <경향신문> 2월 28일자 1면.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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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일이 바짝 다가오면서 검찰의 태도가 다시 주목을 받는다. 지난 1월 18일 극우 보수논객인 조갑제씨(조갑제닷컴 대표)가 <월간조선> 2월 호에 쓴 '노정연과 13억 돈상자의 미스터리'란 기사가 발단이 된 모양이다. 이 기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8일 후인 1월 26일 보수단체인 '국민행동본부' 서정갑 본부장은 대검찰청에 정연씨의 미국 콘도 매입자금 출처 의혹 등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그러자 검찰 또한 이례적으로 신속히 대응했다.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사실상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을 재수사해달라는 주문과 다름없다. 그런데 때를 기다린 듯 대검 중수부는 지난 25일 13억 원을 불법 환전한 혐의로 은아무개씨를 체포해 조사한 뒤 귀가시켰다. 또 이틀 뒤인 27일에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소환해 정연씨에게 13억 원을 제공했는지 조사했다. 병실에 있던 박 전 회장은 2009년 대검 중수부수사에서 노 전 대통령 비자금의 출처로 지목됐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기류가 심상치 않다.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대검 중수부가 진행했던 뇌물수사를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처리한 지 3년여 만의 일이다. 중수부는 당시 박연차 회장의 돈이 정연씨에게 건네졌을 가능성을 두고 수사하다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내사종결 했다. 그런데 검찰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민감한 사건의 관련자들을 다시 조사하는 것에 대해 정치적 의도가 짙게 깔린 수사라는 진단이 우세하다.

일각에선 12월 대선까지 사건을 끌고 가다가 검찰에 최대한 유리한 결론을 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건 총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수사 재개를 강행했다는 점이다. 어떤 정치적 파장을 불러올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진정서 접수 뒤 얼마 되지 않아 수사를 재개한 데에는 분명 다른 뜻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 검찰'이 다시 칼을 빼 든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사례⑧] 나경원 남편 기소 청탁, 왜 머뭇거리나?

MB정권의 임기 말 권력형 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연루의혹을 사고 있는 인물이 바로 MB의 친형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이다. 그는 갖가지 사건에서 청탁과 함께 돈을 받아 챙긴 전 보좌관 박배수(구속기소)씨로 인해 연이어 구설수에 올랐지만 검찰은 우물쭈물 머뭇거리기만 하는 형국이다. '의혹 백화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지지부진한 수사과정에서 의혹의 자금은 박 씨가 모두 유용한 것으로 밝혀졌을 뿐, 이 의원과의 연관성은 드러나지 않았다. 이런 검찰을 과연 누가 믿을까.

나경원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지난해 9월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나경원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지난해 9월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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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도 이 의원은 저축은행 퇴출 저지를 위한 4억 원대 금품 로비의혹까지 받고 있지만 혐의를 부인하며 당당히 맞서고 있다.

그런가 하면 MB의 멘토로 알려져 온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정용욱 전 방통위 정책보좌관을 통해 국회의원 보좌관에게 돈 봉투를 전달했다는 폭로가 제기돼 이를 수사하라고 촉구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사법당국은 미적거리다 언론단체의 고발장이 접수돼서야 마지못해 수사를 착수해 묘한 느낌을 준다. '방통대군'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그는 '만사형통' 이상득 의원과 함께 현 정권을 이끈 쌍두마차였다. 초기, 문제가 제기되자 검찰은 "언론 보도로 의혹이 갓 제기된 단계여서 수사에 착수하기 어렵다"고 몸을 사려 속을 훤히 보여주기도 했다.

이처럼 자가당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검찰에게 중대한 고민거리가 생겼다.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나꼼수>)는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나경원 전 한나라당 후보 남편 김재호 판사가 나 후보를 비방한 네티즌을 기소해달라는 청탁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에 대해 해당 검사가 청탁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검사의 실명을 공개했다. <나꼼수>는 28일 업로드 된 방송에서 "인천지검 부천지청 박은정 검사가 공안수사팀에 자신이 김 판사로부터 기소 청탁을 받은 사실을 말했다"고 밝혔다.

사회적 의혹과 수사를 촉구하는 여론이 빗발치는데도 그토록 민첩하던 검찰은 당사자 조사도 하지 않고 있다. 당사자인 박 검사와 김 판사만 조사하면 쉽게 결말이 날 단순한 사안인데도 뭉그적거리고 있다. 민주당 돈봉투 의혹 사건에서 보여준 저돌적인 자세는 다 어디로 증발했는가.

백혜련 전 수석검사, "현 정부 들어 검찰은 한쪽 손만 들어줬다"

정치 검찰의 특징 중 하나는 집권세력에 반대되는 세력에 대해선 매우 민첩하고 저돌적으로 반응하면서도, 정작 살아 있는 권력 앞에선 느릿느릿 게걸음질 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보아주기 수사논란에 이어 MB정권의 실세 또는 친인척 비리수사에서 전형적인 느림보 행보로 실망을 던져 주고 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을 지적하며 사직한 백혜련 전 대구지검 수석검사가 밝힌 내용이 그래서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백 전 검사는 지난해 말 대구지검 검사 시절 검찰 내부전산망에 올린 글에서 "검찰이 국민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고 비판 대상이 되는 가장 큰 원인은 국민적 관심사가 집중되는 큰 사건들을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지키며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데 있다"고 비판하고 검찰을 떠났다. 그는 <주간경향>(964호)과의 인터뷰에서  "검찰이 '정치 검찰'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가 무엇인가"란 질문에 '정치 검찰'이 사라져야 하는 이유를 명쾌하게 제시했다.

"우리나라에서 검찰이 정치로부터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키는 것은 어렵다. 검찰은 기본적으로 (대통령이 행정부 수반인) 행정부 소속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는 특히 더 어려웠다. 중도적인 시각을 가진 국민들조차도 검찰이 너무나 편향돼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현 정부 들어 검찰은 진보와 보수 또는 여·야의 대립구도가 형성된 사건들에서 한쪽의 손만 들어줬다. 정연주 KBS 전 사장 사건, MBC < PD수첩 >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태그:#정치검찰, #총선, #노정연, #나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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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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