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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의 남항-북항연결고가도로 건설 현장에 세워진 차단벽에 지난해 공식 폐기된 신공항 유치 홍보물이 아직 남아 있다.
 부산 영도의 남항-북항연결고가도로 건설 현장에 세워진 차단벽에 지난해 공식 폐기된 신공항 유치 홍보물이 아직 남아 있다.
ⓒ 오마이뉴스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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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공항 공약은 별로 소용없지 싶네요."

25일 부산 영도. 봉래동의 한 50대 약국 사장은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약속'을 '별 소용 없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부산에 짓겠다는 약속도 아니고, 입지 결정을 다시 해보겠다는 건 공약도 아니고 약속도 아니다"라고 쏘아붙였다.

박 위원장이 총선을 맞아 첫 지방행보를 부산에서 한 바로 다음날이었지만 '영도 민심'은 별로 나아지지 않은 듯했다. 이 약국사장은 "오히려 공약으로 안 거는 게 나을 것"이라고도 했다. 입지를 언급하지 않고 원칙론만 얘기하는 건 이명박 대통령의 동남권 신공항 건설 약속을 믿었다가 배신당한 부산 민심의 흉터를 후벼 파는 것 밖에 안 된다는 말이다.

오랜 주거지역인 영선동을 찾았다. 수십 년 된 세탁소의 70대 사장은 "대통령 선거는 박 대표만한 사람이 없지만, 총선과 대선은 다르다"고 했다. 그는 "김형오(전 국회의장)만 다섯번 찍어줬는데 이번엔 잘 모르겠네"라고 했다.

세탁소 사장은 "아직 후보도 안 정해졌는데 뭘 자꾸 물어보노?"라고 핀잔줬다. 여당도 야당도 아직 영도에 나설 후보를 정하지 못해 표심을 정하기엔 이르다는 것. 세탁소 사장에게 '인물이 좋으면 야당에도 표를 줄 수 있다는 얘기냐'고 되물으니 "그렇지. 이번에는 인물을 좀 봐야 안 되겠나"라고 답했다.

새로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청학동으로 향했다. 한진중공업 조선소가 있는 바로 맞은편이다. 아파트 근처의 한 식당 여사장은 "나는 박근혜도 좋고, 안철수도 좋다"고 했다. 이 여사장은 "내싸(나야) 정치를 잘 모르지만 이번엔 좀 바뀌지 않겠어예?"라고 했다. 이 여주인이 든 근거는 수많은 영도주민들이 남항-북항연결고가도로가 영도를 통과하는 것에 반대했는데,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도 구청장도 아무런 역할을 못했고, 이에 따라 지역 여론이 악화됐다는 것이다.

택시를 타고 영도를 빠져나왔다. 40대 남성인 택시기사는 박근혜 위원장 얘길 꺼내자 "어제 왔대예"라고 짧게 답한 뒤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는 "나는 박 대표 지지자도 아니고 야당 지지자도 아닌데요, 박 대표 보면 좀 답답하대예"라고 포문을 열었다.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만 살았다는 그는 "부산 사람들은 옛날부터 정수장학회가 우째 나왔는지 알고있다 아입니까. 겉으로는 어떻게 처리됐든, 내용적으로는 김지태씨한테 뺏은 거 아입니까"라며 "다 옛날 일이지만 부산 기업인한테 뺏은 거를 부산 사람들은 넘(남)의 일로 생각 안합니데이, 그런데 부산에 와갖고 '상관이 없다'고 하던 소리만 하면 어데 부산 사람들이 좋아하겠습니까?"라고 했다.

그는 이어 "부산에도 박 대표 좋아하는 사람들 많지예. 부정부패 안 할 사람인 건 확실하고... 그런데, 뭐 이런 걸 하나 해결을 못해갖고 우짤라는지, 자기가 (정수장학회와 나는 상관없다) 한 말을 뒤집지를 못해서 그런지, 좀 그렇네예"라고 우려를 표했다. 

가장 많이 들은 말... "이번엔 누구 찍을지 모르겠다"

자갈치에서 바라본 부산 영도. 안개가 끼어 흐릿하게 보인다.
 자갈치에서 바라본 부산 영도. 안개가 끼어 흐릿하게 보인다.
ⓒ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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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를 벗어나서 들은 말도 비슷했다.

부산진갑 지역구에 속하는 당감동의 한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다 40대 식당 여주인에게 물었더니 대뜸 "그건 와예(왜요)?"라는 퉁명스런 대답이 돌아왔다. '이번 총선에 부산에서 야당세가 강해지고 있다는데 부산진구쪽은 어떠냐고 물어보려 그런다'고 했더니 "아이고 마 모르겠네예"라고 다시 짧게 답했다.

여주인은 퉁명스런 대답이 미안했던지 "진짜로 이번에는 잘 모르겠네예, 한나라당(새누리당) 찍어줘도 좋아지는 건 없는 거 같고, 민주당은 부산에 확실하게 뭐를 해 주겠다 이것도 없다 아입니까"라고 덧붙였다.

지하철 부암역 근처의 한 약국 사장은 '이번엔 야당이 좀 어떨 것 같냐'는 질문에 "많이 댕기기는 합디다"라고 했다. 이 지역에 출마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후보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는 "(누구에게 표를 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만 했다.

또다시 택시를 탔다. 50대 박아무개 기사는 "얼마 전에 화명동 가는 손님이 문재인씨 얘기를 많이 한 거 말고는 별로 (총선 관련) 별로 얘기가 없다"고 했다.

유력한 대선주자로 떠오른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출마해 전국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는 사상지역구에는 관심이 높은 모양이다. 민주당은 이외에도 민주당은 문성근 최고위원을 부산 북·강서을에, 최인호 부산시당위원장을 사하갑에 공천하기로 하고 이른바 '낙동강 전선'을 형성했다.

'낙동강 전선'과 대비되는 부산의 동쪽과 북쪽 즉 해운대구와 기장군, 금정구, 동래구, 연제구, 남구 등은 여전히 여당세가 강한 것으로 분류된다. 이 동-서 분할 구도에서 중간쯤에 있는 부산의 중심 서면 일대를 나눠가지는 부산진 갑구와 을구는 '낙동강 전선'만큼 관심을 받고 있진 않다.

그러나 부암역의 약국 사장이 말한 것처럼, 부산진갑 지역구의 야당 예비후보들(민주당은 김영춘 전 최고위원, 통합진보당은 이성우 전 하야리야기지 우리땅 찾기 운동본부장)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고, 유권자들이 이를 눈여겨보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러나 부산 표심은 '아직 잘 모르겠다'였다.

"이렇게 조용~한 건, 부산이 바뀌긴 바뀌었다는 것"

앞서의 택시기사 박씨도 "다르긴 한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고 했다. "승객들이 이번 선거 얘기를 잘 안 한다"는 게 판단 보류의 근거다. 그는 "지난 번 대선처럼 '와 이번엔 경제대통령이다' 뭐 이런 것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이번엔 야당 찍자' 이런 것도 없고"라고 했다.

그는 이어 "확실한 건, 사람들이 이렇게 조용~한 게, 바뀌긴 바뀌었다는 것"이라며 "여당 텃밭만 하던 사람들이 아무 말도 안하고 있는 건 이번엔 한나라당(새누리당) 어렵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부산은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57.9%의 표를 몰아줬고(민주당 정동영 13.5%, 창조한국당 문국현 5.4%, 민노당 권영길 2.8%), 지난 18대 총선 비례대표 선거에서 여권에 66.1%(한나라당 43.5%, 친박연대 22.6%)를 몰아준 곳이다(민주당 12.7%, 선진당 5.2%, 민노당 5.3%, 창조한국당 3.8%).

그랬던 부산이 이명박 정부 출범 4년 만에 다시 치르는 총선을 앞두고 '아직 잘 모르겠다'는 말을 하고 있다. '제2의 도시' 부산은 야당에게 '열심히 하면 뽑아줄 수도 있다'고, 또 여당에겐 '실망했지만 아직 완전히 돌아서진 않았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걸까.


태그:#부산, #총선, #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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