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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강 : 26일 오후 6시25분]

"판결 끝나고? 술 먹었어요, 그냥. 술 한잔 먹고 털어버려야죠. 다시 또 싸울 준비 해야죠."

24일, 수화기 너머 이인근 금속노조 콜텍지회장(47)의 목소리에서 씁쓸함이 묻어났다. 2007년 정리해고 이후 5년간 이어진 복직투쟁. 그중 2년 넘게 기다린 23일 대법원 판결. 재판부는 콜텍지회 조합원 24명이 ㈜콜텍을 상대로 낸 해고무효 확인소송에서 해고노동자 측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반면, 같은 날 콜트악기지회는 최종심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다. 같은 사장 밑에서 같은 일을 하다 해고돼 5년을 함께 싸웠지만 판결은 엇갈린 것이다. 이 지회장은 "대전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했더니 집에 오지 말라고 하더라. 이기고 오라고"라면서 "(대법원에서) 이기고 바로 끝날 거라고 생각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고법으로 사건이 환송되었으니 판결까지는 또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콜텍은 ㈜콜트악기의 자회사다.

'교도소' 같았던 공장... 노조 만든 지 1년 만에 폐업

대법원이 금속노조 콜텍지회의 부당해고에 따른 임금지급 청구소송과 해고무효 확인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가운데,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콜트악기 노동자들과 콜텍 지회 노동자들이 대법원의 판결에 실망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대법원이 금속노조 콜텍지회의 부당해고에 따른 임금지급 청구소송과 해고무효 확인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가운데,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콜트악기 노동자들과 콜텍 지회 노동자들이 대법원의 판결에 실망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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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회장을 비롯한 콜텍 노동자 4명, 콜트악기 노동자 2명은 콜트악기 공장이 있던 인천 부평 공장에 천막을 치고 농성 중이다. 콜텍 노동자들은 평일에는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주말이 되면 집이 있는 대전에 간다. 이 지회장은 대전 콜텍 공장에서 10년을 일해왔다.

"콜텍은 노조가 없다보니까, 인원정리하고 이러는 게 그동안은 수월했어요. 생산물량이 많으면 (사람을) 뽑았다가, (일감이) 줄면 사직서 쓰라고 강요해서 사직시키고. 그런 것들이 비일비재했어요. 하루 생산량이 300개면 300개, 280개면 280개. 이렇게 목표가 정해져 있는데 생산량이 안 나오면 연장근무 수당도 안 주면서 막 시키고. 그런 것 때문에 박영호 사장은 대전공장을 '꿈의 공장'이라고 했던 거예요. 노동자들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반항하지 않으니까.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거예요.

사장한테는 '꿈의 공장'이고 노동자들한테는 '죽음의 공장'이었던 거죠. 교도소처럼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도 못하고, 조퇴라든지 월차휴가라든지 그런 것들도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임금도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요. 10년 근무한 남성 기본급이 100만500원밖에 안 되니까요. 여성은 더 낮았어요. 그러면서 관리직들은 임금도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보다 월등히 높고 특별 보너스도 많이 받아갔어요."

콜텍 공장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든 것은 2006년. 그로부터 1년 후인 2007년, 콜텍 사측은 '생산량 저하'를 이유로 3개월 동안 휴업을 한 뒤 그 해 7월 정리해고와 함께 공장을 폐업했다. 이후 사측은 중국과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기타를 생산하고 있다. 이 지회장은 10년간 일해 온 공장이 문을 닫던 그 날을 잊지 못한다.

"4월 9일이 월요일이었는데 아침에 통근버스 타고 출근하니까 회사 정문은 쇠사슬로 잠겨 있고, 옆에 조그맣게 공문을 붙여놨더라고요. 관리자들은 보이지도 않고. 노조랑은 협의도 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공장을 폐쇄한 거예요."

텅 빈 공장에 농성장 꾸리고 5년 간 '길바닥 투쟁'

금속노조 콜텍지회 이인근 지회장
 금속노조 콜텍지회 이인근 지회장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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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뒤, 이 지회장을 포함한 노조 간부 3명은 '불법 파업을 주동했다'며 징계 해고를 당한다. 정리해고 방침 발표 이후 농성에 들어간 인천 콜트악기 공장 투쟁에 연대했다는 이유였다.

이에 인천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를 인정했고, 임금지급 청구소송에서도 2심까지 승소했다. 하지만 지난 23일 오전 10시 대법원은 해고무효 확인소송과 함께 임금지급 청구소송도 원심을 깨고 고법으로 환송했다.

공장이 문을 닫은 후, 콜트악기·콜텍 노동자들은 텅 빈 인천 부평공장에 농성장을 꾸리고 '길바닥'에서 투쟁해왔다.

콜트악기, 콜텍 지회 모두 그간 진행된 소송만 해도 수십 건이 넘고, 소송비용은 1억 원에 달한다. 이인근 지회장은 지난 2008년 10월, 15만4000볼트의 고압전류가 흐르는 송전탑에 올라가 한 달 가까이 고공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이동호 콜트악기지회 사무장은 2007년 12월 분신을 시도하기도 했다.

투쟁을 위해 '국경'도 수차례 넘었다. 이 지회장은 "2008년 말까지는 사측에 대한 투쟁을 주로 진행했는데 조합원들만 다치고 경찰서 드나드는 일이 많아져서 안 되겠더라"면서 "해외 바이어들과 뮤지션들을 찾아다니면서 콜트·콜텍 기타의 부당성에 대해 알렸다"라고 말했다. 이 지회장의 목소리가 한 톤 정도 높아졌다.

"매년 미국, 일본, 독일, 중국에서 악기 박람회가 열리거든요. 200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악기 박람회에 다녀왔고, 미국 같은 경우에는 3번 정도 방문을 했는데 처음에는 우리 돈으로 갔는데 두 번째는 미국 연대단위들이 티켓을 구매해줬고, 또 한 번은 미국에 '스틸 워커스(Steel Workers)'라고 우리나라로 치면 금속노조에서 초청을 해서 갔어요. 일본도 요코하마 악기 박람회는 우리 돈으로 갔다 왔는데 2010년에는 후지록페스티벌 사무국에서 초청을 받았어요. 중국은 못 갔어요. 거기는 시위 같은 거 잘못하면 공안한테 잡혀간다고 해서(웃음)."

기타를 만들 줄만 알았던 콜트악기·콜텍 노동자들은 밴드도 결성했다. 이름하야 '콜밴'. "한 달에 한 곡씩 연습해서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마다 공연을 하는데 쉽지 않더라"며 이 지회장은 멋쩍게 웃었다.

"대법원에만 2년 넘게 계류... 판결문 읽어봐도 오리무중" 

대법원이 금속노조 콜텍지회의 부당해고에 따른 임금지급 청구소송과 해고무효 확인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가운데,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콜트악기 노동자들과 콜텍 지회 노동자들이 대법원의 판결에 실망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대법원이 금속노조 콜텍지회의 부당해고에 따른 임금지급 청구소송과 해고무효 확인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가운데,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콜트악기 노동자들과 콜텍 지회 노동자들이 대법원의 판결에 실망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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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23일 오후, 콜텍 노동자들의 판결 소식을 전해들은 콜트악기 노동자들은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방종운 콜트악기지회장은 "콜트악기와 콜텍은 한 자본 밑에서 자본의 횡포로 길거리에 내쫓겨 5년을 싸워왔다"면서 "당연히 같은 결과를 예상했는데…"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인근 지회장은 이번 대법원 판결에 중노위 패소가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지회장은 "정리해고 후 1년이 지난 2008년에 공장 문을 닫은 콜트악기와 달리, 콜텍은 2007년 정리해고 이후 닷새 만에 공장을 폐쇄했다"면서 "당시 중노위 판결 당시 콜트악기 공장은 가동되고 있었기 때문에 중노위가 '구제 실익'을 따져 콜트악기에만 해고자 복직과 함께 밀린 임금을 지급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콜텍의 경우 이미 공장이 폐업한 상황이기 때문에 구제를 하더라도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이 지회장의 설명이다.

이러한 중노위 결정에 대해 이 지회장은 "해고의 정당성을 따지면 될 일이지 왜 심판 기관(중노위)에서 구제 실익을 따지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정치적 판단"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 지회장은 "대법원 판결문을 보면, '기업 전체(㈜콜트악기) 실적이 흑자라도 일부 사업부분(㈜콜텍)이 경영악화를 겪는 경우 해당 부문을 축소·폐지하고 잉여인력을 감축하는 것은 불합리하지 않다'라고 하는데, 만약 이게 합당한 것이라면 일부 사업장에서 적자가 났다고 해서 사업장을 폐쇄시키고 정리해고를 하는 게 일상화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콜텍의 모회사인 콜트악기는 2006년을 제외하고는 1996년부터 10년 간 순이익 누적액이 170억 원에 이르는 국내 굴지의 기타 생산 업체였다.

이 지회장은 이어 "대법원에서는 고법에서 대전공장이 영업 손실을 낸 원인이 뭔지, 전체 경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공장 폐쇄 결정이 불가피한 것인지를 제대로 심리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 사안이 대법에만 2년 넘게 계류됐다"면서 "고법에 환송되면 또 몇 년을 기다려야 할지 모르는데 차라리 대법원에서 판결이라도 빨리 내려줬더라면…. 노동자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처사"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 지회장은 "판결문을 아무리 읽어봐도 왜 파기환송된 건지 이해가 안 간다"면서 "오리무중"이라고 덧붙였다. 

이 지회장은 "(23일) 오전에 임금지급 청구소송이 파기환송됐을 때 찝찝하기는 했다. '(오후에도) 잘못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면서 "그래도 그렇지 않기를 내심 기대를 했는데…. 저보다도 조합원들이 많이 실망을 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 지회장은 "큰 애가 올해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가고, 작은 애가 고1 올라가는데 애들한테 많이 미안하다"며 "친구들 다 가는 학원도 못 보내고…"라고 착잡해했다. 이 지회장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투쟁을 시작하면서 '5년 동안 해야지', '6년 동안 해야지' 하는 건 아니잖아요. 저희들도 회사가 바로 손 들 줄 알았고, 회사 역시 노동자들이 바로 각자 삶 찾아갈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오게 된 거예요.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신념 때문 아니었나 싶어요. 다시 싸워야죠. 고법 재판에 필요한 자료부터 모아야죠." 

한편, 노조가 요구하고 있는 공장 재가동과 복직에 대해 박영호 콜트악기·콜텍 사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불가'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태그:#이인근, #콜트악기, #콜텍, #콜트콜텍,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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