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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옥씨
▲ 최고령 여고생 이상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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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이 되면 누군가는 졸업이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출발을 꿈꾼다. 여기, 73세의 나이에 조금은 특별한 졸업과 동시에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는 이가 있다. 서울 일성여자고등학교 3학년 2반의 왕언니, 이상옥(73)씨다.

지난 2월 17일, 매서운 바람을 뚫고 찾아간 일성여고 3학년 2반. 바깥 날씨와 다르게 교실 안에는 훈훈한 기운이 돌고 있었다. 졸업식을 일주일 남기고 학생들이 담임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사은회 준비가 한창이었기 때문. 사은회 동안에도 헤어짐에 아쉬워 편지를 읽다 눈물을 훔치고, "선생님 사랑해요"를 외치며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는 학생들의 모습은 여느 고등학생과 같았다.

하지만 사실 이 학생들은 '아줌마'들이다. 일성여자중고등학교는 제때에 학업을 마치지 못한 40대에서 80대까지의 주부 만학도를 위해 설립된 학력인정 평생학교다. 학생들은 일성여중에서 2년, 일성여고에서 2년 동안 공부한다. 이상옥씨는 올해 학교를 떠나는 310명의 학생 중 '최고령 졸업생'이다.

사은회에서 선생님께 감사의 선물을 전하는 이상옥씨
 사은회에서 선생님께 감사의 선물을 전하는 이상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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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여중고를 다닌 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졸업을 앞둔 이상옥씨는 이 학교를 다닌 시간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손꼽았다. 일성여중에 입학해 일성여고까지. 장장 4년의 시간이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몸담았던 둥지를 떠나듯, 졸업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투였다.

졸업을 앞둔 사은회에서
▲ 눈물을 훔치는 이상옥씨 졸업을 앞둔 사은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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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학교에 들어왔을 때는 지금처럼 고등학교까지 졸업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중학교나 나올 수 있을까…. 그런데 학교를 다녀보니 정말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에 이르렀고, 남들처럼 학교를 마친 것만 해도 기분이 무척 좋아요. 다만 아쉬운 건 선생님과 반 학생들이랑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죠."

이씨가 일성여중에 입학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2008년, 당시 나이 69세였다. 평소 등산을 즐겨하는 이 씨는 산에서 우연히 일성여중고 이야기를 듣고 귀가 번쩍 뜨였다.

"산에서 만난 어떤 한 아저씨가 자기 부인이 다닌다며 주부학교를 소개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싶은 사람 있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 말을 듣자마자 제가 그 자리에서 손을 얼른 번쩍 들었죠. 이후 학교 약도랑 전화번호를 받았고, 제가 학교에 원서를 직접 내러 찾아갔어요."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포기했던 공부, 60년 만에 다시

이씨는 어렸을 때 너무 가난해서 공부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쉬움이 늘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초등학교 시절 공부를 꽤 잘했단다. 덕분에 담임선생님은 그녀에게 중학교 입학을 권유했으나 집안 형편상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초등학교 때 공부를 무척 좋아했어요. 하지만 제가 5남매의 맏딸이었기 때문에 동생들을 돌봐야 했죠. 당시 저희 집 담벼락 너머로 책보자기가 자주 넘어갔어요. 애들을 돌보라는데 책을 보고 있으니 아버지가 책을 담 너머로 버린 거죠. 초등학교를 졸업할 쯤 아버지가 직장을 잃었고, 집안 형편이 더 어려워졌어요. 중학교에서는 입학금을 나중에 내더라도 오라고 했는데…. 결국 사정상 포기했죠."

70에 가까운 나이로 다시 배움에 도전한 것이 어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이상옥씨는 단 한 번도 나이가 문제가 된 적은 없다고 답했다. 그저 즐거움만 가득했다는 말뿐이었다.

"제가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하도 좋아서 방실방실 웃고 다녔어요. 매일매일 선생님과 반 학생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즐거워서 말이죠. 공부를 하면서 새롭게 하나씩 배워 가는 것도 너무 재밌었고요. 그래서인지 나이로 인한 장벽은 느끼지 못했어요. 모두가 너나할 것 없이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충분히 동질감과 친근함을 느낄 수 있었죠.

사회와 학교에서의 나이 차이는 참 달라요. 지금 우리 반에 20대 학생이 있는데, 저와 50년 차이가 나는데도 서로 언니, 동생하면서 사이가 정말 좋아요. 반에서 모두가 언니, 언니하면서 저한테 얼마나 잘 대해주는지…. 언니 소리를 들으니 저야 늘 좋았죠."

한자 실력만큼은 '내가 제일 잘 나가'

이씨는 공부에도 편식이 없었다.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은 한문. 물론 옛날 초등학교 3학년 때 접했던 한자를 세월이 훌쩍 흘러 다시 공부하려니, 처음엔 쓰는 것도 어려워 그림 그리듯 했단다. 하지만 매달 치러지는 학교 시험에 합격해 지금은 네 과목에서 모두 최고 등급인 '특2급'에 올랐다. 자타가 공인하는 '한자 4관왕'인 셈. 현재는 한자 공인인증시험 2급까지 준비하고 있을 정도로 한자 공부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다.

"우리 손자가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됐어요. 제가 학교에서 한자 자격을 딴 것을 알고 '우리 할머니가 한자를 잘하는 구나' 알고 있죠. 자기가 한자를 잘하는 것도 다 할머니를 닮아서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정말 뿌듯했지요.(웃음) 학교에 가서도 할머니 이야기를 자랑한다고 하더라고요."

이씨는 한자를 공부하며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정말 크다고 했다. 수업시간에 꾸준히 써왔던 한자 쓰기 노트를 펼쳐 보여주는데, 정갈한 글씨의 한자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자만큼은 '자신있다'며 펼친 노트. 정갈한 한자들이 빼곡하다.
▲ 한자만큼은 일등! 한자만큼은 '자신있다'며 펼친 노트. 정갈한 한자들이 빼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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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다. 이상옥씨는 공부뿐만 아니라 반 친구들과의 관계 역시 으뜸이었다. 그녀는 반에 대한 애정이 유독 깊다. 반 학생들끼리 굉장히 돈독한 사이라고.

"우리 반은 학교에서 하는 행사에 나갔다 하면 대상을 휩쓸었어요. 팝송 부르기 대회, 영어 말하기 대회, 환경정리까지. 반 전체가 단합이 잘 돼 항상 화기애애한 분위기죠. 선생님도 늘 다정하게 학생들을 모두 평등하게 대해줘 학생들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죠."

반 친구들과 환하게 웃고 있는 이상옥씨
▲ 즐거운 한때 반 친구들과 환하게 웃고 있는 이상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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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학생들과의 추억을 더 듣고 싶어 수학여행은 다녀왔는지 물었다. 지난해 5월, 제주도에 다녀왔다고 말했다.

"이전에 제주도는 두어 번 다녀왔지만, 수학여행처럼 재밌었던 적이 없었어요. 다 같이 잠도 자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아무리 한 반이라도 잘 알지 못하고 친하지 못했던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서로 더 알게 되고 친해질 수 있는 좋은 계기였죠."

당시 학생들이 모두 모여 강당에서 오락시간도 가졌는데, 이상옥씨가 반 대표로 앞에 나가 노래실력을 뽐내기도 했단다. 이씨는 왕언니라고 대우해줘서 뽑혔다며 쑥스러워했다. 지난해 11월에는 학교에서 졸업여행을 떠났는데, 당시 이씨는 동참하지 못했다. 지난해 여름 다친 허리가 완쾌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입원으로 쉴 때도 학교 생각뿐

이상옥씨는 지난 7월 중순 경, 사고로 학교를 한 달 정도 쉬었다. 늘 일찍 등교하며 4년 동안 개근을 노렸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이씨는 입원해 있는 동안 학교가 너무 그리웠다고 한다. 무엇보다 같은 반 학생들과 선생님을 보고 싶었던 마음이 정말 컸다고.

"제가 미끄러져서 허리에 금이 가 입원하는 바람에 학교를 중간에 빠지게 됐어요. 그런데 입원 다다음날이 바로 중간고사였죠. 의사 선생님한테 시험을 보기 위해서 2시간만 학교에 갔다 오면 안 되겠냐고 하니까, 앞으로 허리를 꼬부리고 다녀도 될 것 같으면 갔다 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죠."

이씨는 한 달 후 퇴원을 하자마자 학교에 나갔다. 비록 허리가 아파서 오래 앉아있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한두 시간이라도 수업을 꼬박꼬박 듣고 갔다. 30분 이상 앉아있지 말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도 불구하고, 아픔보다 배움에 대한 열망이 더 컸기 때문이다.

새봄, 그녀는 이제 12학번 새내기

웃음 가득한 이상옥씨
 웃음 가득한 이상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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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명지전문대학 사회복지과에 진학하기로 했다. 복지에 관심이 있기도 하고, 며느리가 유치원을 운영하기 때문에 도움이 될까 싶어 선택했다고 한다. 지금은 합격 소식에 웃을 수 있지만, 수능시험을 볼 때까지도 허리가 아파서 수업을 제대로 못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학교에 들어온 이상 수능 시험장에는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단다.

"대학 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는 정말 기뻤어요. 학교에 와서 뭔가 하나를 제대로 이룬 것 같았죠. 학교를 다니면서 남들만큼은 못해도 따라는 가야겠다 생각하고 정말 열심히 했어요. 졸업도 무사히 하고 지금은 대학까지 가게 됐으니, 학교를 다녔다는 뿌듯함과 자부심이 더욱 생겨요."

마지막으로 이상옥씨에게 일성여중고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냐고 물었다.

"일성여중고는 '나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학교'라고 말하고 싶어요. 학교에 오지 않았으면 졸업을 앞둔 제가 성취감이나 이런 기분을 못 느껴봤겠죠. 제가 이전에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도 잘 못하고, 고등학교나 대학교 나온 사람들과 어울리면 주눅이 들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사람들 앞에서 이제 되든 안 되든 간에 말을 잘 해요. 집에만 있었으면 지금처럼 자신감을 얻지 못했을 거예요.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몰라도 괜찮으니까 학교에 한번 꼭 와보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저를 보세요. 나이는 정말 상관이 없어요. 학교에 오면 저 같은 할머니들도 와서 다 공부하고 있어요. 선생님들이 열심히 가르쳐주고 하나라도 알게끔 해주죠. 만약에 한글을 못 깨치고 와도 학생들에게 보조 교사를 붙여줘 천천히 다 알도록 해줘요. 졸업을 하는 선배 입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꼭 저 같은 기쁨을 맛봤으면 좋겠어요."

인터뷰가 끝난 후, 칠판 위에 걸려 있는 한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가능이란 노력하는 자의 몫이다.'

일성여고 3학년 2반의 급훈이다. 마치 이 학교에서 구슬땀을 흘렸던 '아줌마' 학생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3월부터 이씨는 '12학번'으로 대학 새내기의 삶을 새로 시작한다. 이제 그녀는 '여고생'이 아니라 어엿한 '여대생'이다.


태그:#일성여중고, #만학도, #졸업, #최고령 여고생, #주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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