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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15일) 인터뷰 때문에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을 찾았다. 젊은이들이 정당을 만들어 직접 정치에 나서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현장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은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필 한낮 기온이 영하 4도를 밑도는, 근래 가장 매서운 찬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추위와 함께 일요일까지 영상을 마감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정신이 반쯤 나갈 지경이었다.

지난 2월 8일, 노량진 수산시장 풍경
 지난 2월 8일, 노량진 수산시장 풍경
ⓒ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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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분 만에, 나는 촬영을 포기하고 말았다. 수산시장에서 만난 민심은 추위보다도 더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인터뷰 괜찮으세요?'라는 물음에, 한 아주머니께서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쓴웃음만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이의 얼굴에서는 귀찮음과 짜증을 넘어선 체념이 짙게 묻어나왔다. 선거철만 되면 날파리처럼 달려드는 정치인들과, 카메라를 들이대며 거짓된 활기를 강요하는 데 시달려 온 수산시장 상인들의 고단한 삶에 크나큰 결례를 범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곧 촬영허가증을 반납하고 시장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태원으로 이동해 만난 젊은이들은 그래도 조금은 호의적이었다. '정치'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잘 모른다'는 말만 남기고 혜성처럼 멀어져 간 경우도 있었지만, 등록금이나 주거 문제에 관한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노량진에서 내게 손사래를 치던 그 아주머니의 씁쓸한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새로운 시도를 해보겠다는 나조차 기성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뻔한 수준에 머무르고 말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냉장고, 불빛, 생일케이크, 눈물 그리고 엄마

지난 2월 12일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있었던 청년희망플랜 첫사람(발기인)대회 기념촬영
 지난 2월 12일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있었던 청년희망플랜 첫사람(발기인)대회 기념촬영
ⓒ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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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4일, 세상 사람들이 모처럼 사랑을 고백하는 날. 하지만 매년 밸런타인데이는 내겐 그것과는 다른 의미로 특별한 날이다. 엄마가 내게 세상의 빛을 보여준 날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바깥세상을 보기 위해 죽을 힘을 다 했겠지만, 엄마가 들인 힘에 비하면 미나리꽃보다도 작을 거다.

올해도 어김없이 내 스물 다섯 번째 생일이 돌아왔다. 대개 생일은 가족들과 함께 보내곤 했는데 ―어쩌다 보니 연인과 함께 보낸 밸런타인데이 같은 건 내 인생에 한 번도 없었다― 이번엔 멀리 울진에 계신 엄마한테 전화하는 것도 까먹고 밤늦게까지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사무실 사람들이 생일을 축하해 줬지만, 솔직히 일하느라 고마운 것도 모르고 대충 넘긴 것 같아 미안하다. 결국엔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먼저 전화하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수화기 너머에서 이 이야기를 하는 엄마는 분명 웃고 있었지만, 엄마의 서운함을 눈치 못 챌 둘째 아들이 아니었다.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면서, 나는 엄마 말처럼 이미 진 거였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일하고 있는 청년희망플랜 창당준비위원회 사무실은 형과 살고 있는 자취방에서 엎어지면 지척에 있다. 집이랑 사무실 구분이 무색하게 지내다 보니 "집=잠자고 아침 먹는 곳" 정도가 돼 버렸다.

자정을 넘어 집에 들어가니 형도, 그리고 영어학원을 다니겠다고 서울로 올라와 얼마간 같이 살고 있는 사촌동생도 잠들어 있었다. 원래 저녁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었지만, 나도 일이 많았고 최근 취직한 형도 갑자기 야근이 생겨 생일파티는 '나가리'가 돼 버렸다. 잠들어 있는 식구들을 보니 미안하기도 하고 찝찝하기도 했다.

건조한 사무실 공기로 지친 목을 잡고 마른기침을 하면서 물을 마시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거의 동이 나 버린 반찬통과 어지러이 섞인 식재료들 사이에, 조그만 케이크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영수증을 고명처럼 얹은 그 상자가 왜 밤늦도록 냉장고에 처박혀 있어야 했을까. 엄마는 아들의 생일날, 왜 먼저 전화를 해야 했을까.

모두가 잠든 한밤중의 부엌 풍경. 한 쳥년은 울고, 냉장고에서 흘러나온 불빛만이 눈물을 흘리는 나를 비추고 있었다.

99%가 마음껏 꿈꿀 수 있는 나라

"청년 정당 하나 만들어 보자."

지금 청년희망플랜 창준위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오태양씨로부터 이 말을 듣던 순간 내 가슴은 크게 요동쳤다. 심장이 터져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그렇게 시작한 일이, 지난 12일 발기인대회를 거쳐 '청년희망플랜'이라는 이름의 창당준비위원회 신고까지 마쳤다. 청춘콘서트의 서포터즈가 실무와 기획을 담당한다는 소식에 언론에서는 '안철수 키즈'니, '떴다방'이니 하는 말들로 공격해댔다.

폭풍이 한 차례 지나가자, 이제는 차라리 그런 관심조차 그리워질 정도로 조용해졌다. 이제 사람들은 '청년 정당, 니들이 보여 줄 게 무어냐'며 묻고 있다. 청년희망플랜이 보여줄 정책과 구체적인 목표가 무엇이냐는 거다.

지난 17일 오후 2시, 위키트리 스튜디오에서 소셜방송을 진행 중인 청년희망플랜 권완수 공동준비위원장, 발기인으로 참가한 우석훈 교수, 그리고 나(왼쪽부터).
 지난 17일 오후 2시, 위키트리 스튜디오에서 소셜방송을 진행 중인 청년희망플랜 권완수 공동준비위원장, 발기인으로 참가한 우석훈 교수, 그리고 나(왼쪽부터).
ⓒ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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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희망플랜 창준위에서는 '청년자립', 경제민주화와 특권 타파를 위한 '99%의 행복', 대한민국과 한반도 전체의 미래비전에 해당하는 '체인지 포 코리아(Change for Korea)'라는 세 카테고리로 모두 열두 정책의 초안을 마련했고 2월 말에 정식으로 열릴 홈페이지(www.chungple.org)와 SNS를 통해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 이것은 초안일 뿐, 확정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단순히 정책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최초의 청년 정당이 지니는 뜻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청년희망플랜을 소개하는 말은 '99%를 위한 온라인 정당'과 '누구나 마음껏 일하고, 사랑하고, 꿈꾸는 나라'이다. SNS는 미디어 지형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자기가 원하는 바, 요구하는 바가 있으면 흔히 말하는 언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네트워크 안에서 마음껏 쏟아낸다. 기성 정치권은 뒤늦게 그런 것들을 '주워담으려고' 하고 있지만 공룡과도 같은 거대 정당이 그런 것들을 쉽게 수렴할 리 만무하다.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듣보잡' 젊은이들이 공천권을 놓고 계파 싸움에 빠져들 까닭이 없다. 청년희망플랜은 온라인을 통해 수시로 사안에 대한 토론과 의결을 진행하고, 이용자 게시판 중심으로 홈페이지를 운영할 예정이다. 온라인에서 발휘할 수 있는 기동성과 신속성은 그 어떤 정치세력보다 더 정확하고 명민하게 사람들의 요구를 수렴하고 걸러낼 수 있다.

기성 정치권의 시각으로 그게 되겠냐고 묻는 사람들에게는, 지난 10여년 간 정치권력과 무관하게 여론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고 영향력을 확대해 왔는지 되짚어보기를 권유하고 싶다. 언젠가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고 말았듯이, 지금 보이는 것이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계란이 품은 야망

▲ 청년희망플랜 창립취지 PR 영상
ⓒ 청년희망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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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 나는, 우리는 청년희망플랜의 조그만 성공이 야기할 커다란 변화를 기다리고 있다. 과거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현실로 다가왔을 때, 빈틈없이 짜여진 구시대의 정치 지형에는 큰 금이 갈 것이다. 그 판은 쪼개어지거나, 자기 욕망을 긍정하고 표출할 줄 아는 시민들이 모여 만든 새로운 판의 진입을 막을 수가 없다.

변화한 미디어 환경 속에서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고, 그 새로운 세력이 가능성을 보여주었을 때 야기할 더 큰 변화의 선순환. 이것이, 아직은 창준위에 머무르고 있지만 청년희망플랜이 지닌 잠재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수없이 몸을 던진 계란들이 바위에 금을 내고, 새 시대를 오게 했음을 국민들은 알고 있다. 빈 손에 맨 주먹뿐인 젊은이들이 한 나라의 정치를 바꾸겠다고 나섰을 때, 그것을 야망이라고 이름붙인다면 우스울 것이다. 하지만 야망과도 같은, '불가능한 꿈의 가능성'을 보고 스물 다섯 짧은 인생의 그 어느 때보다도 가슴 뛰는 순간을 살고 있다.

청년희망플랜은 4월 11일 총선에 후보를 내고, 젊은 사람들 그리고 어떤 정치적 기득권도 없는 새로운 사람들이 활동할 기반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출범했다. 하지만, 총선에 후보를 내려면 우선 창당부터 해야 하는데, 후보등록 마감과 선거준비를 위해 필요한 시간을 고려할 때 최소한 3월 초까지 5000명의 당원을 모아야 한다. 뜻있는 사람들의 가입이 절실하다. 3주 남짓한 시간 동안 발바닥에 땀이 아니라 피가 나게 뛰어야 하고, 머리에 쥐가 아니라 쥐할애비가 날 정도로 노력해야 한다.

중앙선관위에서 창당준비위원회 등록을 마치고 사무실 사람들과 한 컷.
 중앙선관위에서 창당준비위원회 등록을 마치고 사무실 사람들과 한 컷.
ⓒ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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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사무실로 출근하는 요즘,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고, 내 삶이 내 삶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 행복하다. 무관심이, 냉소가, 기성 세대의 비아냥은 견딜 만하다. 죽을 정도로 아프더라도 죽지는 않는다. 그 고통이 나를 더욱 강하게 단련시켜 줄 거니까, 나는 계속 달릴 거다.

쭈욱.

덧붙이는 글 | 청년희망플랜과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은 홈페이지 (www.chungple.org) 방문을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동의와 지지를 통해, 청년들이 한 번 뛰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마련해 주셨으면 합니다.



태그:#청년당, #청년희망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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