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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강풀이 그린 <으랏차차 MBC> 공연 포스터
 만화가 강풀이 그린 <으랏차차 MBC> 공연 포스터
ⓒ 강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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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욕을 먹었다. 명색이 공중파 방송사인 문화방송(MBC)의 이야기다. 왜곡·축소 보도로 국민의 지탄을 받던 MBC는 '엠XX'이라고까지 불렸다. 하지만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대신 그들은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외치며 '종결 제작 거부'에 들어갔다. 그것으로 국민들에게 참회하고 다시 태어나려 한단다. 그리고 지난 2월 17일 오후 7시 30분, 이들의 변화에 힘을 실어주려는 시민들이 장충 체육관에 모였다.

2월 8일 예약 개시 두 시간 만에 티켓을 매진시킨 2300여 명의 시민들은 17일도 장충 체육관을 뜨겁게 달궜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예정된 입장 시각보다 한 시간 이른 오후 5시부터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체육관 앞은 그때부터 축제 분위기였다. MBC 노조의 문선패가 새물 등에 맞춰 춤을 추며 흥을 돋웠고 정봉주 전 의원의 팬클럽 '미권스' 회원들은 파업 후원을 위해 <나는 꼼수다> 양말과 후드티를 팔았다.

김제동, 김미화, 공지영, 조국...
각계 인사들의 뜨거운 응원

공연은 20개의 코너로 채워졌다. 밴드 '카피머신'에 이어 두 번째로 등장한 김제동은 노조원에게 박수를 보내며 입담을 시작했다.

"내 배에 왕(王)자가 없는 이유는 공자의 '신체발부수지부모'라는 말 때문이다. (웃음) 그런데 머리카락 한 올을 상하게 하는 것도 불효이듯, 낙하산 사장을 MBC에 새기는 것도 허락될 수 없다."

"나는 술을 흘리고 '피 같은 술을 흘렸다'며 사과하는 길(가수)을 혼냈다. 어디서 피 따위를 술에 비교하느냐며. (웃음) 피는 뽑으면 되지만 술은 '사야' 하지 않느냐? (웃음) 언론도 마찬가지다. 사장은 다시 뽑으면 되지만 돈으로도 살 수 없는 MBC는 항상 국민의 것이어야 하지 않느냐!"

"북한은 방송이 하나밖에 없다. 다양성이 없다. … (그런 논리라면) 진짜 빨갱이의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관객들은 김제동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웃기도 하고,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그는 "두서없었지만, 제 진심이 전해졌으리라 믿습니다"라며 아쉬움의 아우성 속에 퇴장했다.

자신의 토크 콘서트보다 부담이 없다는 김제동씨. 이유는 공연이 '공짜'기 때문이라고.
 자신의 토크 콘서트보다 부담이 없다는 김제동씨. 이유는 공연이 '공짜'기 때문이라고.
ⓒ 박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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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도 각계각층의 유명 인사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방송인 김미화씨는 부부가 동반 출연해 '즐거운 파업'을 외치며 흥겨운 재즈 무대를 선보였다. 노래가 끝난 후 그녀는 "저 방송 짤린 거 걱정하셨을 김재철 사장님? 저는 남편이랑 이렇게 재즈하면서 너무 잘 살고 있습니다!"라며 관객의 웃음을 터뜨렸다.

뒤이어 무대에 오른 공지영 작가는 민주화 운동을 하던 과거 경험를 소개하며 "모든 포식자들은 머뭇거리고 주춤거리는 약자를 공격한다""머뭇거리지 말고 강하게 저항하고 행동하자"고 외쳤다. 김창남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기타 하나로 "김지하 시인의 시에 김민기씨가 곡을 붙인" '금관의 예수'를 열창해 좌중의 심금을 울렸다.

현장에 참여하지 못한 조국 서울대 교수, 명진 스님, 정연주 전 KBS 사장은 영상 편지를 보내 MBC 노조와 관객들을 응원했다. 또 만화가 강풀(강도영)도 공연장을 찾았다. 그는 "순결하다고 개구라를 쳐놓은" 덕에 공연 연출진이 준비한 장미 한 송이를 객석으로 던지는 이벤트에 참여하게 되었다며 투덜거렸다. 장미를 받은 관객은 강풀의 트위터로 인증샷을 보내면 캐리커처 선물을 받기로 했다.

가장 독특한 코너의 주인공은 소설가 이외수씨였다. 그는 경상남도 합천에서 아이폰의 '페이스타임'(화상통화기능)을 이용해 무대에 올랐다(?). 그는 네 가지 명언을 준비했는데 첫 번째는 고 김수환 추기경의 말이었다.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면 국민들은 빛 속에서 살 것이고 언론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면 국민들은 어둠 속에서 살 것이다."

숙연해진 장내에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지난 시간을 어둠 속에서 살아왔는지, 빛 속에서 살아왔는지 고민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어둠 속에서 살 것인지, 빛 속에서 살 것인지도 고민하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나온 것은 제 3대 미국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의 "신문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신문 중 하나를 택하라면. 주저 없이 후자를 고르겠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바로 공자로 넘어갔다.

"백성의 소리를 막는 것은 강물을 막는 것보다 어렵다. 하지만 강물은 이미 막았다(4대강 사업 비유). 저 이외수는 글이나 쓰는 시정잡배이므로 그냥 한 마디만 하겠다. 방송이 니 거니? (웃음)"

가수들의 신나는 공연에 나는 꼼수다까지

객석 한 가운데서 앵콜곡을 열창하는 이은미
 객석 한 가운데서 앵콜곡을 열창하는 이은미
ⓒ 박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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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들의 공연도 흥겨웠다. 밴드 '카피머신'은 첫 타자로 분위기를 한껏 띄웠고 '이한철' 역시 "유일한 히트곡" '슈퍼스타'를 부르며 관객의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맨발의 디바' 이은미는 이 날의 인기상 감이었다. 그녀는 "공연을 가장한 집회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감사하다"며 사람들을 웃겼다. 하지만 노래를 시작한 그녀는 가수 그 자체였다. 객석을 휘저어 다니며 관객을 열광시키더니 이날 최초로 터져나온 '앵콜' 요청에는 '애인있어요'로 화답했다.

'델리스파이스'는 "모든 게 상식적으로 됐으면 좋겠고 MBC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며 '고백', '차우차우', '슬픔이여 안녕'을 열창했다. 그리고 공연의 마지막, 20번째 코너를 장식한 것은 '강산에'였다. 첫 번째 노래 '삐딱하게'와 두 번째 노래 '연어'가 끝난 직후, 조명은 메인무대에서 왼쪽의 작은 무대로 옮겨 갔다.

그 곳에는 MBC 보도국 입사 3년차의 아직 풋풋한 기자가 한 명 서 있었다. 그녀는 차분하게 무언가를 읽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녀가 시민들에게 쓴 글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목소리에는 울음이 차올랐고 객석 여기저기에서도 손수건이 눈가를 닦았다. 그녀는 말했다.

"이기고 싶습니다. 파업하고 힘이 들 때마다 대학 시절 제가 바라던 MBC를 떠올렸습니다. 고마운 시민 여러분, MBC를 사랑해주세요, 그리고 지켜주세요."

그녀의 눈물어린 편지는 사람들의 마음을 적셨다. 그리고 그 때 강산에의 마지막 공연이 시작됐다. 노래는 '넌 할 수 있어'. 파업 중인 MBC 노조원들이 떠오르는 가사였다.

<으랏차차 MBC> 공연장에 등장한 <나는 꼼수다>팀. 이날 공연에서는 MBC와 나꼼수 간의 인기 경쟁도 볼만했다.
 <으랏차차 MBC> 공연장에 등장한 <나는 꼼수다>팀. 이날 공연에서는 MBC와 나꼼수 간의 인기 경쟁도 볼만했다.
ⓒ 박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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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꼼수다' 3인방도 빼놓을 수 없다. 폭발적인 환호를 받으며 등장한 김어준, 주진우, 김용민은 특유의 유머로 관객을 쓰러뜨렸다. 특히 김용민의 성대모사 열전이 일품이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성대모사) 자~ 다들 한번 따라해보는 겁니다잉. 자~~ 재철이 좀마니~"

이 외에도 많은 '구수한' 표현들이 있었으나 지면에 옮길 수 없어 아쉽다. 나꼼수 멤버들은 MBC의 회복을 기원하며 마이크를 넘겼다.

MBC 노조원들이 직접 준비한 무대

이처럼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으랏차차 MBC> 공연장을 빛냈다. 하지만 가장 빛났던 건 역시 MBC 노조원들이 직접 준비한 무대였다.

먼저 시범을 보인 것은 '고참'들이었다. '검사와 스폰서'로 유명한 최승호 전 <PD수첩> PD와 제작 거부를 처음 시작한 MBC 기자회 박성호 회장이 바로 그들이다. 둘은 개그맨 못지않은 입담을 뽐내며 웃음 속에 파업 전까지 MBC에서의 '압력'이 어떠했는가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

- 최승호 PD
"'4대강 수심 6m의 비밀' 방영 때에도 압력이 있었다. 그리고 방송이 나가고 6개월 뒤, 김재철 사장이 연임됐고 신임 국장이 회의에서 이런 얘길 꺼냈다. '최승호 PD를 이제 편안하게 해주자.' 난 이미 편했기 때문에 극구 사양했지만 결국 난 다른 곳으로 가게 됐다."

"(김재철 사장이 들어선 후 변화에 대한 질문에) 압력은 항상 있었으나 '질적 차이'가 생겼다. 예전과 달리 아이템 자체가 킬 당하고, 다 완성한 기사도 툭툭 빠졌다. 노무현 정부 당시 한-미 FTA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방송을 했었다. 그때 정부에서는 '제작진과 토론을 하고 싶다. 그리고 그 토론을 방송으로 내보내달라'고 부탁했었다. 하지만 MB는 이렇게 반응하지 않잖나?"

- 박성호 기자
"(국민들의 '왜 이제야 파업을 시작했냐'는 질타를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질문에) 예상했다. 그래서 김재철 사장 퇴진 요구 성명서를 낼 때도 사과를 꼭 넣었다. 서운하지 않았다."

"(왜 파업을 지금 했냐는 질문에) 이대로 총선·대선을 보도했다간 '떡이 방송이 될 순 없어도 방송이 떡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실제가 될 것 같았다. 그만큼 절박했다."

최승호 PD는 MB 정부의 언론 장악을 4대강 사업에 비유하며 대화를 마쳤다.

"보를 세우듯 자기 사람을 집어넣고, 강을 막듯 언론을 막으려 하는 것 같다."

이 외에도 많은 공연들이 있었다. MBC 사내 노래패인 '노래사랑'은 가요 '마지막 승부'를 '마지막 파업'으로, '당돌한 그녀'를 '당돌한 사원'으로 개사해 부르며 실력을 뽐냈다. 또 'Strike Project Band(파업 프로젝트 밴드)'를 줄인 'SPB'도 5번의 파업으로 본의 아니게 다져진 무대 매너를 맘껏 뽐냈다. 참고로 이들은 "이번 싸움을 끝으로 웃으면서 해체하길 바라고" 있다.

MBC 노조 위원장도 직접 무대에 섰다. 정영하 위원장의 발언은 본인이 했던 말 한마디로 압축된다.

"고화질 편파방송으로 돌아가느니, 저화질 공정방송으로 남겠습니다(파업 중인 노조원들이 손수 제작한 'MBC 제대로 뉴스데스크'를 지칭)."

공연이 모두 끝난 후 시민들과 사진을 찍는 MBC 노조원들. 이 웃음이 언제쯤 '진짜'가 될까.
 공연이 모두 끝난 후 시민들과 사진을 찍는 MBC 노조원들. 이 웃음이 언제쯤 '진짜'가 될까.
ⓒ 박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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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시민의 소원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2월 17일은 영하의 날씨였다. 바람도 거세 체감 온도는 더 낮았다. 하지만 2300명의 열기 때문이었을까? 장충 체육관은 내내 따뜻했다. 공연은 예정보다 훨씬 늦은 시간인 오후 11시 반이 넘어서야 끝났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날 새벽 광주광역시 행 버스를 타려 한다는 김석현(24)씨는 "MBC와 국민의 사랑이 다시 이어지길 바란다"며 지하철에 올랐다. 새벽차를 타면서까지 공연을 마친 시민의 마음은 MBC에, 김재철 사장에게 닿을 수 있을까?


태그:#으랏차차 MBC, #MBC 파업, #MBC 제작 거부, #김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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