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소리에 놀란 원앙새가 물길을 차고 힘찬 날갯짓으로 날아오르고 있다.
▲ 원앙새 소리에 놀란 원앙새가 물길을 차고 힘찬 날갯짓으로 날아오르고 있다.
ⓒ 정도길

관련사진보기


얼마 전 어느 언론사에 난 사진 한 장이 마음을 사로잡은 적이 있다. 화려한 색으로 치장하고 연못에 평화롭게 노니는 원앙새 무리를 담은 모습이었다. 촬영지는 함양군 상림 숲 인근이라는 정보 밖에는 없다. 지난 5일. 휴일을 맞아 휴식을 취하고 싶었지만, 원앙을 보러 거제에서 함양으로 향했다. 한 시간 반을 달려 함양 숲에 도착, 관리사무소에 알아봤건만, 구체적인 장소는 잘 알 수 없다고 한다.

할 수 없다 싶어 원앙을 찾으러 무작정 상림 숲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숲길도 갈래갈래 나 있어 도무지 어느 길을 가야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연못을 찾아야 하는데 숲속 그 어디에도 연못이 보이지 않았다.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처음 듣는 얘기'라며, 돌아오는 답은 잘 모르겠다는 것.

연못에 원앙새가 놀고 있다.
▲ 원앙새 연못에 원앙새가 놀고 있다.
ⓒ 정도길

관련사진보기


한동안 숲을 헤맨 끝에 작은 연못을 발견하고 가까이 갔지만, 철망으로 울타리가 쳐져 있다. 갑자기 후드득하는 소리가 귓가를 때려 눈을 돌리니 원앙새 한 무리가 날아가고 있다. 알고 보니, 묵직한 발걸음 소리와 낙엽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놀라 물가에서 날아올랐던 것. 연못에 앉아 노는 모습도 보지 못한 채, 결과적으로 나 자신이 원앙새를 쫓아 버린 셈이 되고 말았다.

'참, 허탕하다'는 기분이 머리에 꽉 차는 느낌이다. 결코 가까운 거리도 아닌 곳으로, 원앙새 사진 한 장 찍으려고 달려온 것을 생각하면 기가 차고도 남는 기분이다. 그래도 어쩌랴. 다시 날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한 번 더 기다려 보는 수밖에. 그러고를 한참이나 기다렸다.

쌀쌀한 날씨에 숨을 죽인 채, 철망 너머 연못만 바라보는 시간은 하염없이 길어지고 있다. 차라리 일정한 시간을 정해 놓고 기다린다면, 그래도 괜찮은 편. 어떻게든 정해진 그 시간만 기다리면 되니까. 사람이나 그 무엇을 무작정 기다린다는 것은, 그만큼 무한한 인내심을 요구하는 모양이다.

연못에 원앙 무리가 놀고 있다.
▲ 원앙 무리 연못에 원앙 무리가 놀고 있다.
ⓒ 정도길

관련사진보기


얼마나 기다렸을까. 저 멀리 원앙새 한 무리가 날아와 물위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원앙은 내가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조용히 카메라를 꺼내들고 초점을 맞추는데, 갑자기 날갯짓을 하며 놀란 듯 물살을 가르며 하늘을 나는 원앙 무리.

이번에는 발걸음도 옮기지 않았는데, 왜 날아가 버리는 걸까 궁금해 하는 순간, 느껴지는 것이 있다. 바로 자동으로 맞춘 카메라 렌즈 돌아가는 소리라는 것을.

원앙새 한 마리가 연못에서 유유자적 하고 있다.
▲ 원앙새 원앙새 한 마리가 연못에서 유유자적 하고 있다.
ⓒ 정도길

관련사진보기


겨우 사진 몇 장을 찍었지만, 초점도 맞지 않고 밝기도 엉망인 볼품없는 수준이다. 그냥 포기하고 돌아설까 생각을 하다 그래도 오기가 생긴다. 다시 한번 기다려 보기로 하고 차가운 땅에 낙엽을 깔고 앉았다. 엉덩이가 눌려지고 차가운 기운이 느껴질 쯤, 아까 그 무리로 보이는 원앙들이 다시 날아들고 있다.

'이번에는 꼭 몇 장을 찍어야지'라는 다짐이 온 몸으로 번진다. 그러나 다짐과는 달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현실이 아니던가. 이번에는 렌즈를 수동으로 놓고 몇 장을 찍었으나, 큰 성과는 없었다. 결론적으로 원앙새 사진 촬영은 실패로 끝이 나고 말았다. 180mm 렌즈로는 가까이 근접 촬영하기가 어렵다면서, 결국 장비 탓으로 돌리고 마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대고.

맑은 연못이지만, 겨울 차가움이 느껴진다.
▲ 맑은 연못 맑은 연못이지만, 겨울 차가움이 느껴진다.
ⓒ 정도길

관련사진보기


돌아서는 발길이 무겁다. 멀리까지 와서 원앙새인지 아닌지, 분간이 잘 안가는 새 사진 몇 장 찍으려고 이 고생을 했는지 한심한 생각이 밀려온다. 그래도 어쩌랴. 원앙새와 숨바꼭질하며 마지막 가는 겨울과 함께 지낸 두세 시간 잘 놀았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기분 좋은 일.

원앙은 천연기념물 제327호(1982년 11월 4일 지정)로 지정된 보호조류로, 부부의 금술이 아주 좋은 조류로 알려져 있다. 신혼집 원앙금침이나 목각원앙을 보더라도 백년해로 하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그런데 원앙이 금술 좋은 조류라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수컷 원앙은 대단한 바람둥이라고 한다.

원앙무리가 연못에서 놀고 있다.
▲ 원앙무리 원앙무리가 연못에서 놀고 있다.
ⓒ 정도길

관련사진보기


화려한 색으로 치장한 수놈은 암컷 옆에서 온갖 아부와 교태를 부리며 환심을 사 짝짓기에 성공한단다. 그리고는 뒤돌아보지 않고 암컷을 차버리는 수컷 원앙. 몇 해 전, 텔레비전에서 본모습이다.

하지만 원앙새를 몇 십 년 동안 키운 조류 전문가들은 원앙이 바람둥이라는 괜한 오해(?)를 받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는 바람둥이가 아니라 금술 좋은 조류라는 것. 어느 말이 맞는지 직접 보지 않은 나로서는 더 이상 결론은 낼 수 없는 일.

창경궁 춘당지는 사진작가들의 원앙사진 출사지로 유명하다. 그곳 원앙은 사람이 가까이 가도 날아가지 않고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준다고 한다. 야생 상태의 원앙이 사람과 친해지려면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할까. 그것도 모르고 원앙의 아름다움만 쫓아 덤빈, 하루 원앙사진 출사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거제지역 언론인 <거제타임즈>와 <뉴스앤거제> 그리고 제 블로그에도 싣습니다.



태그:#원앙새, #원앙무리, #함양 상림숲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알찬 여행을 위한 정보 제공과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