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11년 국내서 가장 승승장구한 재벌은 단연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이다. 200조원이 넘는 사상최대의 매출과 함께 20조원에 달하는 순이익을 올렸다. 순이익 규모만 따지면 삼성을 앞설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2000년 정몽구회장이 자동차 계열사로만 그룹을 독립한 이후 처음이다. 덕분에 현대차는 글로벌 빅4 자동차회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들의 화려한 성장 뒷편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공장에선 노동자들의 밤샘노동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여전하다. 이들의 잇단 자살과 분신도 이어진다. 중소협력 하청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정 회장의 아들 정의선 사장의 일감몰아주기 등 편법 경영권 승계도 논란거리다. MB정부 최대 수혜그룹으로 꼽히는 현대차 성장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편집자말]
지난 8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문에서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이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지난 8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문에서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이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밥 먹을 만큼 주머니도, 마음도 그리 넉넉하지 않네요."

지난 7일 오후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인근 한 식당. 김정진(33)씨와 마주앉았다. 기자가 '다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요'라고 묻자 담담하게 말했다. 하루 세끼 밥을 꼬박꼬박 챙겨먹는 일이 오래다. 아침은 거의 건너뛰고, 점심도 종종 빠뜨린다. 저녁은 그나마 챙겨 먹지만 늦은 밤이나 돼야 숟가락을 든다. 꾸역꾸역 밥을 입에 넣지만, 맛을 느낄 수 없다.

김씨는 해고자다. 10년 동안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비정규직(사내하청)으로 일했다. 지난 2010년 11월 그는 울산, 아산, 전주 공장의 비정규직 동료들과 함께 파업에 참여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울산공장을 25일 동안 점거한 초유의 일이었다. 요구는 단순했다. 차별을 없애달라는 것이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 같은 일을 했지만, 거의 모든 게 달랐다.

이들의 25일간 공장 점거는 우리 사회에 '비정규직'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그리고 무엇이 변했을까. 김씨는 이듬해 2월 현대차에서 쫓겨났다. 현대차는 철저히 그들의 주장을 외면했다. 물론 이후 상여금 등 일부 처우가 개선되기도 했다. 하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후 아무도 앞장서려 하지 않았다. 공장 안 비정규직들은 '정규직'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해고자들은 생계를 찾아 하나 둘 떠났다. 하지만 김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이유다. 그는 "현대차가 더 이상 사회적 요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사내하청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해고된 김정진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비대위원장.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사내하청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해고된 김정진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비대위원장.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현대차는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자동차 406만 대를 팔아 8조755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5만7178명의 국내공장 노동자 중 생산직 비정규직 8018명이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견디지 않았다면, 이뤄낼 수 없는 성과였다. 하지만 김씨가 현대차에서 20대 청춘을 바쳐 10년간 일해 모은 돈은 200만 원이 전부였다.

금속노조 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비용은 매년 1173억 원이 비용이 소요된다. 지난해 현대차 영업이익의 1.45%에 불과하다. 정몽구 회장은 지난해 8월 저소득층 자녀의 교육 기회 부여를 위해 5000억 원의 사재를 내놓았지만, 비정규직 문제 해결 요구에는 묵묵부답이다.

김씨는 "대법원조차 현대차의 사내하청은 불법이라고 판단을 내렸다"면서 "하지만, 현실은 왜 바뀌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2001년 10월 10일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날은 김씨가 스물 두 살이던 해 가을, 현대차에 입사하던 날이다.

주 79시간 근무, 시급 2340원... 파업에 나섰지만 돌아온 건 해고

1998년 외환위기 직격탄을 맞은 현대차는 희망퇴직과 정리해고를 통해 8000명이 넘는 직원들을 내보냈다. 이후 위기에서 벗어난 회사는 2001년부터 대규모 인력을 충원했다. 하지만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 김씨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낮과 밤을 맞교대로 하루 11~12시간씩 일했다. 야간조에서는 저녁 9시부터 이튿날 오전 8시까지 일했다. 주말에는 토요일 오후 5시에 출근해 일요일 오전 8시까지 15시간씩 일했다. 당시 그는 한 시간에 2340원을 받았고, 많게는 일주일에 79시간을 일했다. 그가 한 달에 손에 쥔 돈은 80만~90만 원이었다. 그는 "140만~150만 원 받는 '보너스달'만 기다리며 일했다, 젊은 몸이 썩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자, 자신이 정규직과 다른 신분인 비정규직임을 알게 됐다. 그는 사원증을 받지 못해, 공장 입구에서 신분증을 맡겨놓아야 출근할 수 있었다. 같은 라인에서 똑같이 자동차 바퀴를 끼어 넣는데, 정규직과 왜 다른 신분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비정규직지회에 가입했다. 해고 전 월급은 120만 원에 불과했다.

"적은 월급 탓에 '마이너스 생활'을 하다가, '보너스달'에야 빚을 갚는 인생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제 동생도 비정규직이에요. 자동차와 조선 업계에서 일했어요. 몇 달에 한 번씩 직장을 바꿨어요. 어머니가 노조활동을 말렸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죠."

지난 8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승용차 생산라인에서 노동자들이 부품 조립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8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승용차 생산라인에서 노동자들이 부품 조립 작업을 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2010년 7월 비정규직 지회는 큰 반전을 맞이했다. 현대차 비정규직 해고자 최병승씨가 낸 부당해고 구제 소송에서 대법원이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므로, 2년 이상 근무하면 정규직으로 간주해야 한다"며 파기환송 판결을 내린 것이다.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비정규직들이 지회의 문을 두드렸다. 970명이던 지회 조합원 숫자는 순식간에 2370명으로 늘었다.

비정규직지회는 현대차에 불법 파견에 대한 시정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결국 비정규직 550여 명은 2010년 11월 15일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울산1공장을 점거했다. 김씨는 대의원으로서 파업을 이끌었다. 하지만 현대차는 끝내 이들의 요구를 외면했다. 25일 만에 공장을 나왔다.

곧 회사의 보복이 시작됐다. 104명이 해고됐고, 1092명이 징계를 받았다. 187명에게는 200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제기됐다. 김씨 역시 2011년 2월 해고통지를 받았다. 그의 통장은 곧 현대차에 의해 가압류됐다.

해고된 지 1년, 낭떠러지로 내몰리는 그들..."정몽구 회장 결단해야"

지난 8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문에서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이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지난 8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문에서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이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지난 8일 오후 5시 30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문 앞. 김씨는 칼바람 속에 이곳에 섰다. 해고·징계자 50여 명과 함께였다. 복직과 정규직화를 외쳤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굳게 닫힌 정문을 가로막고 선 경비원들과 경찰만이 이들을 지켜봤다.

해고된 지 벌써 1년이다. 많이 지쳐 있다. 하루 종일 함께하는 해고자들은 서로 아침이나 점심을 먹자는 얘기를 꺼린다.

"월 3만 원씩 모아 사무실에서 밥을 해먹자고 제안할까 했지만, 재정 문제도 있고 그런 얘기를 꺼내기 힘들어요. 다들 막노동이나 이삿짐 나르는 일을 해요. 가정 불화를 겪기도 하고, 다들 심적으로 힘들어요. 본인이 암에 걸렸거나 아이가 불치병에 걸린 해고자도 있고요. 전 어머니한테 해고됐다는 말은 못했어요. 설에 만나, 회사 잘 다니고 있는 척했죠…."

이들에게 현대차는 역시 '거대한 벽'이다. 최병승씨는 2010년 7월 대법원 판결에 이어 2011년 2월 서울고등법원의 파기환송심에서도 복직 판결을 얻어냈다. 하지만 그는 회사로 돌아가지 못했다. 2010년 11월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수배 상태다. 현대차는 고등법원의 파기환송심에 대해 다시 대법원에 재상고를 해놓은 상태다. 아직 법원 판결이 끝나지 않았다는 입장만 되풀이 하고 있다.

김씨는 "현대차는 정규직 전환에 대한 의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의 근거가 된 고용의제 조항에 대해 헌법 소원을 냈다. 또한 회사는 공장 안의 소식지를 통해 "자동차 산업은 시장경기에 따라 수요변화가 크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경기변동에 따른 생산량 조절이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8일 오후 '꿈과 희망과 미래가 있는 공장' 구호가 붙은 울산 현대자동차 3공장에서 노동자들이 부품 조립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8일 오후 '꿈과 희망과 미래가 있는 공장' 구호가 붙은 울산 현대자동차 3공장에서 노동자들이 부품 조립 작업을 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부당노동행위 심판 등 노사문제를 다루는 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도 비정규직에게는 기댈 곳이 못 된다. 부산지노위는 지난해 12월 울산공장 해고자 45명 중 9명만이 정규직 복직 대상자라는 결정을 내렸다. 나머지 해고자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제소했다. 대법원 판결까지 시간이 얼마나 더 필요할지 모른다.

작년 강성노조로 바뀐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역시 지난달 30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회사쪽에 공식 제안했다. 조합원의 비정규직에 대한 문제의식 역시 높았다. 노조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83.7%가 비정규직 해결을 위해 지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기도 했다.

김씨는 정몽구 회장이 결단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현대·기아차는 내년 주간 연속 2교대를 도입하기 위해 1400명을 신규 채용한다고 한다"면서 "이에 앞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법원도 현대차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으로 인정했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말에 진정성이 있다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돌리는 것부터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010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5일간 글로벌 자동차 생산라인을 멈춰 세웠다. 정부와 기업, 사회는 떠들석했다. 당장이라도 뭔가 해법이 나올 법했다. 그리곤 시간은 흘렀다. 현대 비정규직은 더욱 늘었고, '정규직'은 아예 금기시됐다. 그렇게 공장은 다시 돌아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받습니다. 현대차와 거래했던 하청업체나, 자동차 품질문제로 곤란을 겪으신 분들은 <오마이뉴스>로 연락을 주세요.



태그:#현대차 그늘, #비정규직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