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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무겁다
 시간은 무겁다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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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신문사 사장이 시집을 냈단다. 사건을 쫓는 기자였던 사람이 시집이라니. 어째 어색하다. 국문학을 전공한 걸까? 고광헌 한겨레신문사 전 사장이 쓴 시집 <시간은 무겁다>를 펼쳐 글쓴이 소개를 찾았다. 그런데 그는 국문과 출신이 아니다. 체육학과를 졸업했단다. 의외다. 체육학과, 신문기자, 시인 이 세 단어가 연결이 잘 안 된다. 궁금하다. 체육학과를 졸업하고 기자를 거쳐 경영자가 되고 또 시인이 된 고광헌 시인이 쓴 시가.

"아버지, 읍내 나오시면 하굣길 늦은 오후 덕순루 데려가 당신은 보통, 아들은 곱빼기 짜장면 함께 먹습니다. 짜장면 먹은 뒤 나란히 오후 6시 7분 출발하는 전북여객 시외버스 타고 집에 옵니다...

어머니, 읍내 나오시면 시장통 국숫집 데려가 나는 먹었다며 아들 국수 곱빼기 시켜줍니다 국수 먹인 뒤 어머니, 아들에게 전북여객 타고 가라며 정거장으로 밀어냅니다. 당신은 걸어가겠답니다.

심술난 중학생, 돌멩이 툭툭 차며 어머니 뒤따라 집에 옵니다." - 22쪽 '정읍 장날'

숨이 턱 막힌다. 따스한 아버지 사랑과 대비되는 어머니 사랑. 어머니는 왜 그러셨을까? 중학생 아이가 어머니를 앞에 두고 홀로 국수 먹기가 쉬웠을까? 왜 어머니는 자식 체면은 생각해 주지 않으셨을까? 어머니 사랑의 지독함은 당신을 완전히 헌신하지 않으면 자식을 온전히 키워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머님은 왜 그러셨을까?

"쌀 없는 저녁 밥상 차리러
봄나물처럼 달려오던 어머니
지금도
어머니의 싱싱한 달리기 이길 수가 없네"
-16쪽 '어머니의 달리기'

"앞집 굴뚝 밥 짓는 연기 오를 때" 어머니는 자식에게 봄나물로 밥상을 차려주러 집으로 달려오셨다. 어머니의 달리기는 누구도 이길 수 없다. 왜냐면 배고파 기다리고 있을 자식 걱정에 누구보다 빨리 달려오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빈한한 생활 속에서 자식을 온전히 키워내려고 고군분투하시느라 아들 체면을 생각 할 여유가 없으셨다. 결국 '정읍 장날' 중학생 아들은 홀로 버스 타고 가라는 어머니의 불편한 사랑을 따르지 않는다. 어머니의 헌신과 지독한 사랑에 눈물이 맺혔다.

진지하고 반듯한 삶을 살아 왔을 것 같은 시인은 자신이 답답했던 걸까? "겁에 질린, 취하지 못하는" 제목의 시에서 취하지 못하고 살았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늘 저만 서럽고 저만 불쌍하고 저만 용서하며 살아온
속살이 드러날까 겁나
육신과 영혼이 취하지 않으려고
동맹을 맺고 있는 것 아닐까"
- 45쪽 '겁에 질린, 취하지 못하는'

반듯하게 살아왔을 거 같은 시인도 인생을 돌이켜보면서 후회가 된 날이 있었는가 보다. '취하지 않는' 삶 역시 잘나서 택한 게 아니라 못난 것을 들킬까 봐 어쩔 수 없이 택한 것은 아닌지 고민하는 모습이 신선하다. 또한 "육신과 영혼이 동맹을 맺고" 있다는 표현이 재미있다.

시인은 용산참사 구속자 석방을 위해 일인시위를 하는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모습을 뵙고 '한열이 어머니'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

"오늘 스물한살의 아들들은
드넓은 유월항쟁을 검색하는데
늙지도 못하고, 어머니
덕수궁 앞 뙤약볕 아래 앉아 계신다

최류탄에 죽은 아들의 어머니가
오전엔 용산에서 오후엔 시청 앞
아지랑이 흐느끼는 불볕 거리에서
쉰 목소리로 노래 따라 부르신다." 
- 98쪽 '한열이 어머니'에서

젊은이들은 유월항쟁을 방에 앉아서 검색할 뿐인데, 일흔이 넘은 어머님은 늙지도 못하고 아직도 아들이 죽었던 해, 마흔 아홉 살처럼 오전엔 용산에서 오후엔 시청에 앉아 계신다. 늙어도 쉴 수가 없다.

이젠 '나 같은 늙은이는 뒤에서 구경만 하고 훈수나 두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할 수가 없다. 그래서 시인은 마지막 문장에서 "염치없는 못나 빠진 놈"들인 우리 스스로를 자책 한다. 그렇다. 어머님 스스로 집에 앉아있지 못하게 우리들이 만들었다. 최류탄에 맞아 죽은 아들을 가슴에 묻고 숯가슴이 된 어머님의 마음을  우린 아직도 조마조마 하게 만든다. 그 숯가슴 하나 마음 편히 쉬지 못하게 한다. 너무 죄송하다.

시집 속 여러 편의 시에서 어머니의 절절한 사랑을 보았다. 시인이 그려낸 어머님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나 역시 "정읍 장날" 중학생 아이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를 두고 있다. 부족하지만 내 마음에도 시인의 어머니와 비슷한 모습이 있다. 그래서 어머니의 불편한 사랑이 가슴 아프고 또 이해가 되었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어찌 자식이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도 시인의 어머님은 그 사랑을 그려 낸 아들이 있어 행복하시겠지.


시간은 무겁다

고광헌 지음, 창비(2011)


태그:#고광헌, #시간은 무겁다,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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