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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분신사망한 고 신승훈씨의 장례식이 7일 오전 울산영락원에서 엄수된 가운데 발인 도중에 부인이 오열하고 있다.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분신사망한 고 신승훈씨의 장례식이 7일 오전 울산영락원에서 엄수된 가운데 발인 도중에 부인이 오열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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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내부가 이만큼 썩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지난 6일 밤 울산 남구 한 장례식장에서 만난 허아무개씨의 말이다. 그는 지난달 현대차에서 분신해 목숨을 잃은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조합원 신승훈(44)씨의 부인이다. 허씨는 "남편이 분신 직전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다"면서 "아직도 명쾌한 답은 얻지 못했다, 내가 죽어서 남편을 만나야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회사와 만나 보상협의를 마무리했다. 7일 고인의 영결식을 앞두고 허씨는 상당히 지친 표정이었다. 그는 "회사로부터 사과 한마디 듣지 못했다"며 "하지만 법적으로 가면, 현대차와 같은 거대기업에 100% 질 거라고 생각했기에 사인했다"고 전했다.

허씨는 또 앞으로 대의를 위해서라도 분신하는 노동자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남편이 죽었지만 회사는 바뀐 것이 없다"며 "그렇게 죽을 마음을 가졌다면, 살아서 노조활동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주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편, 고인은 지난달 8일 자신이 일하던 엔진 공장에서 분신했다. 신씨는 자신이 맡은 엔진 공장의 품질 불량 문제를 제기한 이후, 회사 쪽으로부터 현장 근무 이탈 금지 명령 등의 과도한 간섭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분신 후 온몸에 3도 화상을 입은 신씨는 15일 생을 마감했다.

"남편의 분신? 현대차 내부 썩은 것 보여주기 위해서 아닐까"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분신사망한 고 신승훈씨의 장례식이 7일 오전 울산영락원에서 유가족과 현대차노조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되고 있다.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분신사망한 고 신승훈씨의 장례식이 7일 오전 울산영락원에서 유가족과 현대차노조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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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8일, 남편의 사고가 있던 날, 어디에 계셨나?
"그때 친구를 만나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부산에 갔었다."

- 남편으로부터 특별한 언급 같은 것은 없었나?
"그날 아침에도 그냥 서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다. 그는 원래 자상하고 꼬박꼬박 전화하는 사람이라, 사고가 나기 1시간 30분 전인 오전 10시 30분에 마지막 통화했다. '(남편이)맛있는 거 먹고 오라'고 했다. 분신할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다."

- 사고 소식은 어떻게 알았나?
"남편의 동료가 (부산 기장군에 있는) 하나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물었지만, 사고가 일어났고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밀을 들었다. 다른 동료로부터 전화 왔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말은 없었다. 별일 아닌 줄만 알았다." 

- 하나병원은 화상전문이라고 하던데, 놀랐겠다.
"중환자실에 가서 남편을 보니…. 얼굴은 붕대로 감지 않아, 망가진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입이 엉망이었고 눈도 잘못됐을 것이라고 했다. 손가락 관절도 모두 잘못됐으니, 저 고통을 어떻게 견딜까 싶었다."

허씨는 "(병원에서) 남편이 의식을 깨면 고통이 너무 크니까, 수면상태로 뒀다. 한때는 보지도 먹지도 냄새맡지도 못할 테니 살아도 지옥일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했다"며 "그러다가도 꼭 버티고, 이겨냈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 바뀌었다"고 말했다.

허씨는 아직도 남편이 왜 죽었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현장탄압이니, 민주화니 하는 말들은 잘 모른다"며 "현장 탄압 때문이라고 하는데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죽은 남편은 말이 없다"며 말을 이었다.

"남편과 대화를 많이 하고 둘이서 술도 자주 먹었다. 하지만 일반 직장인들이 말하는 수준에서 사측과 '트러블'이 있다고만 했다. 안 좋은 일 있으면 안 좋다고 하는 사람이 저도 모르게 분신할 줄 몰랐다. 현대차 내부가 썩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었을까 싶은데, 아직도 명쾌하게 왜 죽었는지는 모른다."

"현대차는 거대한 벽... 남편 죽은 후 회사 바뀌었나?"

'고 신승훈 노동해방열사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노동조합장'이 엄수된 7일 오전 울산 현대자동차 매암동 엔진5부에서 유가족과 동료들이 고인이 분신한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고 신승훈 노동해방열사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노동조합장'이 엄수된 7일 오전 울산 현대자동차 매암동 엔진5부에서 유가족과 동료들이 고인이 분신한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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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씨는 회사와 보상협의를 하면서 많은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공장장이나 사장 등 회사 사람들 중에서 빈소를 방문한 사람은 없었다"며 "또 회사에 사과를 요구했지만, 끝내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 회사 쪽과 만나는 자리에서 어떤 말이 오갔나?
"회사에서 나온 사람들은 (회사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위로금을 지급하기 위해 마주 앉았다고 했다. 내가 22년 일한 남편은 가족이 아니냐고 하자, 회사는 가족이라고 했다. 가족이 그런 일 당하면 그렇게 행동하느냐고 따졌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너무 떳떳했다. 회사가 유족에게 사과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면, 회사 관계자들은 그 주장에 반박했다. 그러면서 막말과 고성이 오갔다."

- 끝내 보상협의를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인가?
"법적 소송으로 하려 해도, 개인은 현대차와 같은 대기업에 100% 질 것 같았다. 협의하면서 일반인이 약자일 수밖에 없고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느꼈다. 협의 관련 문서를 봐도 모르는 내용이 많았다. 현대차와 같은 큰 거대기업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너무나도 큰 벽이었다. 노조에서도 나를 도와주는 데 한계가 있었다."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었다. 인터뷰 말미, 그는 "다시는 노동자들이 목숨을 끊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했다. 인터뷰 도중 엄마에게 뭔가를 말하려는 듯 아이들이 잠시 얼굴을 내비쳤다. 그는 "당장 내일 교복을 누가 다려줄 것이냐고 물으려고 한 것 같다"고 전했다. 허씨는 "얘들 아빠는 항상 아이들 교복을 직접 다려줄 정도로 아이들을 좋아했다, 그런 아이들을 두고 떠난 게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고 고개를 떨구었다.

눈물샘도 마른 듯했다. 하지만 아이들 이야기를 할 때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러면서 "죽을 맘이 있으면 살아서 노조활동을 열심히 하면 되지 않겠나"면서 "남편이 죽은 후 회사는 무엇이 바뀌었느냐"고 반문했다.


태그:#신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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