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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따당 뚱땅."

이게 무슨 소리냐고 묻는 한국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대부분 누구나 '뚱따당 뚱땅'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아! 가야금이나 거문고 소리일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왜 그럴까? 한국 사람들에게 이런 소리를 내는 악기에 대해 물으면 대개는 우리의 전통악기인 가야금이나 거문고를 연상하기 때문이다. 가야금과 거문고…. 우리는 과연 가야금과 거문고를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을까?

가야금과 거문고 연주 소리의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 소리의 차이에 대해 가장 잘 알고있는 사람 중의 하나는 누구일까? 이런 궁금증을 풀어줄 한 사람을 만나 우리 전통 줄악기(현악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최태귀 악기장이 가야금 윗판의 결을 다듬고 있다
▲ 결고르기 최태귀 악기장이 가야금 윗판의 결을 다듬고 있다
ⓒ 이장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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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궁금증을 풀어줄 사람이 바로 '악기장' 동천 최태귀다. 현재 여주군 점동면 삼합리에서 한국전통현악기연구원을 운영 중인 최태귀 악기장은 중요무형문화재 제42호 악기장인 고(故) 김광주 선생의 조카이면서 수제자로 40년째 전통악기인 거문고와 가야금, 대아쟁 등을 만들고 있다.

대중적으로는 2006년 하지원이 열연한 KBS 인기드라마 <황진이>와 2008년 SBS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 등장하여 드라마의 격을 더 높였던 현악기들이 바로 최태귀 악기장의 작품들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가야금이나 거문고는 적어도 2000여 년 전에 태어난 우리 고유의 전통 악기들이다. 격랑의 역사 속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아버지가 아들에게 대대손손 오늘까지 이어 온 귀한 악기다.

장인의 손끝으로 선조들의 지혜와 기술이 곱게 전수되어 온 우리의 전통 현악기는 어떤 비밀을 담고 있을까? 최태귀 악기장에 따르면 우리나라 현악기는 주로 명주실을 꼬아 만든 현을 사용하는데, 가야금, 거문고처럼 줄을 퉁기거나 뜯어서 소리를 내는 악기와 해금, 아쟁처럼 활로 줄을 문질러서 소리를 내는 악기, 양금처럼 팽팽하게 당긴 현을 채로 쳐서 소리를 내는 악기 등 세 종류로 나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나라 현악기에 대한 개관적인 서술일 뿐 연주자의 기량을 한껏 발휘하기 위해서 만드는 악기장의 입장에서는 연주자가 원하는 복잡다단한 음역의 소리를 낼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악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최태귀 악기장의 지론이다.

자연에서 말리는 중인 오동나무를 살펴보는 최태귀 악기장
▲ 나무고르기 자연에서 말리는 중인 오동나무를 살펴보는 최태귀 악기장
ⓒ 이장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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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소리를 내는 악기를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최고의 재료를 찾아내는 일이다. 거문고나 가야금의 주재료는 오동나무와 밤나무다. 최태귀 악기장은 전통 현악기를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좋은 나무를 고르는 것이다.

"오동나무나 밤나무는 우리나라에서 나는 것이 최고에요. 중국산 등 수입 나무에서는 절대로 이런 아름다운 무늬와 질감이 나오질 않거든요."

5년 이상을 자연건조 했다는 나무를 보여주는 최태귀 악기장은 재료 하나하나를 보물처럼 소중히 어루만진다. 최태귀 악기장이 직접 발품을 팔아 찾아낸 30년 이상 된 오동나무 등은 5~10년 정도 눈보라와 비바람을 견뎌내고 햇볕을 머금는 자연건조 과정을 거친 후에야 악기장의 손에 의해 천상의 소리를 토해내는 명기(名器)로 다시 태어난다.

거문고와 가야금의 틀을 잡기위해 사용된다
▲ 나무틀 거문고와 가야금의 틀을 잡기위해 사용된다
ⓒ 이장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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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재료로 만들어서 소리가 맑고 선명하게 울리는 악기가 최상품"이라는 최태귀 악기장은 "깨끗한 산속에서 자란 좋은 나무에 만드는 사람도 깨끗한 마음과 정성으로 작업해야 명품이 나온다"고 말한다.

울림통의 미세한 두께 차이로도 음색이 달라지는 것이 전통악기의 특성상 전기대패로 손쉽게 갈아내서는 정교한 작업이 어렵기 때문에 손으로 갈고 닦으면서 한 번 작업이 끝날 때마다 꼼꼼하게 확인해야 하는 전통악기의 제작과정은 최태귀 악기장의 말처럼 '수도(修道)에 가까운 공정의 연속이다.

나무의 결을 내기 위해 공을 들여야 나문의 원래 무늬가 보인다
▲ 나무결 나무의 결을 내기 위해 공을 들여야 나문의 원래 무늬가 보인다
ⓒ 이장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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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은 오동나무 바탕의 공명반(共鳴盤) 위에다 명주실로 된 12줄을 매고 기러기발로 부르는 안족(雁足)을 세우는데, 첫째 줄이 가장 굵고 차차 가늘어진다. 거문고는 오동나무 앞판의 속을 비우고 그 3, 4줄에 얇은 괘 16개를 세우고 그 위에 줄을 얹는데 가야금과 달리 거문고는 6줄로 소리를 낸다.

애절하면서도 슬프지 않고 단순하면서도 울림이 신비한 가야금과 깊은 성음과 장중한 선율의 거문고는 각각 우리나라의 남쪽과 북쪽에서 탄생되었다. 가야에서 만들어져 가야금 또는 '가얏고'라고 불리는 가야금과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남아있고 예로부터 모든 악기의 으뜸이라 하여 '백악지장(百樂之丈)'이라고 불리는 거문고는 격랑의 역사를 이겨내온 우리민족의 역사와 함께 신비로운 혼과 한을 가락에 싣고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오늘도 2000년이 넘는 가야금과 거문고 등 전통악기의 역사를 작품으로 이어쓰고 있는 최태귀 악기장은 "한 부모에게 태어난 형제도 외모나 품성이 모두 다르듯이 한 나무에서 잘라낸 재료로 한 사람이 같은 솜씨로 만들어도 소리는 똑같지 않은 것이 전통 현악기"라며 전통을 이어가는 어려움도 내비친다.

여러 종류의 대패는  공정에 따라 그 쓰임새가 조금씩 다르다
▲ 대패 여러 종류의 대패는 공정에 따라 그 쓰임새가 조금씩 다르다
ⓒ 이장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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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그래도 우리 여주의 점동초등학교와 점봉, 세종, 천남 등 초등학교 4곳과 여주군농업기술센터에서 국악과 가야금을 가르치고 즐기고 있는 것이 참 고맙다"며 "우리 여주군의 많은 사람들이 전통 악기뿐 아니라 우리의 전통문화에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는 최태귀 악기장.

문화와 역사의 고장이라는 여주군이지만 전통 문화예술과 제대로 된 전문전시장조차 갖추진 못한 여주의 척박한 문화환경에서 최태귀 악기장은 오늘도 한 땀, 한 땀 말 그대로 죽은 나무에 혼신의 정성을 담아 12줄 가얏고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 최태귀 악기장은 1984년부터 1989년까지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서 연속 6회에 걸쳐 가야금과 거문고 제작부문에서 수상하였으며, 2007 그랑프리 미술대상(청년작가상) 문화관광부장관상'을 수상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한 수상경력과, '서울특별시 전통명장'과 '경기 으뜸이'에도 선정된 전통악기 제작의 명인이다. 올해 봄부터 여주군 강천면 이호리 목아박물관(관장 박찬수)에서 최태귀 악기장의 가야금과 거문고 등 명품 전통 현악기들은 상설 전시될 예정으로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남한강신문.월간여주사람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여주군, #악기장, #최태귀, #가야금, #거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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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여주에서 지역신문 일을 하는 시골기자 입니다. 지역의 사람과 역사, 문화에 대해 탐구하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이런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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