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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스코틀랜드의 고도, 에든버러(Edinburgh)의 여행은 에든버러 성(Edinburgh Castle)에서 시작된다. 에든버러의 상징, 에든버러 성은 로열 마일(Royal Mile) 서쪽 끝의 요새 같은 높다란 언덕 위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해발 약 140m의 암벽으로 솟은 언덕 위에 자리한 에든버러 성은 스코틀랜드의 역사적 중심이다. 에든버러 어디에서도 눈에 띄는 이 아름다운 성은 마치 누군가가 한 예술작품으로 빚은 듯이 이국적이며 멋스럽다.

로열마일을 오가다가 스코틀랜드식 식사를 하기 좋은 곳이다.
▲ 필링 스테이션 로열마일을 오가다가 스코틀랜드식 식사를 하기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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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길을 서둘렀고 신영이가 열렬히 좋아하는 이층 버스를 탔다. 버스는 이내 낯이 익은 로열 마일에 도착했다. 에든버러 성의 장시간 답사를 시작하기 전에 스코틀랜드식으로 아침 식사를 하기로 한 내 가족은 로열 마일 한가운데 자리한 '필링 스테이션(Filling Station)'에 들어갔다. 그곳은 차에 기름을 채우듯이 사람들의 배에 맛있는 스코틀랜드식 식사를 주문할 수 있는 곳이었다.

스코틀랜드식 음식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육식을 좋아해서 아침  식사 때마다 육류와 함께 튀김이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스코틀랜드 지역에 야채와 과일이 많이 생산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살이 찌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이 스코틀랜드 아침 식사를 하면 안 된다고도 하지만 나는 여행에서 먹는 즐거움을 막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전통 스코틀랜드식 아침 식사(Traditional Scottish Breakfast)로 식사를 주문했고 조금 후에 나온 큰 접시 위에는 뜨끈뜨끈한 식사가 푸짐하게 담겨 있었다.

에든버러 가기 전 든든한 아침식사

고기와 튀김이 많아서 칼로리가 높은 식사이다.
▲ 스코틀랜드식 아침식사 고기와 튀김이 많아서 칼로리가 높은 식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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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 위에는 바삭바삭하게 구운 베이컨과 반숙 달걀 프라이 2개, 송이버섯, 구운 토마토가 가득 담겨 있고, 찐 콩을 구운 '베이크드 빈스(baked beans)', 작고 얇은 스콘(scone) 한 조각이 그릇 위에 먹음직스럽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접시 한 켠에는 까만 순대같이 생긴 블랙 푸딩이 있다. 블랙 푸딩은 돼지 피와 허브, 양파, 우유 등을 넣어 만든 소시지다. 시커먼 외모는 맛과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직접 먹어보니 고소하여 내 입맛에 맞다. 블랙 푸딩 옆에는 양고기와 야채를 다져서 만든 스코틀랜드식 순대인 '하기스(Haggis)'가 푸짐하다.

런던의 한 호텔에서 먹었던 아침 식사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양도 아주 많은 편이다. 그릇 위에 담긴 음식을 다 먹었더니 과식 후에 느낄 수 있는 거북한 포만감이 느껴진다. 에든버러의 여정을 시작하는 아침부터 배가 든든하니 에든버러 성 안에서도 배 고플 일은 없을 것 같다.

계산하러 나서는데 식당 종업원 아가씨가 휴대용 신용카드 결제기를 내민다. 내가 먹은 식사세트 3개를 결재하고 나니 또 다른 화면이 나타난다. 그 화면에는 종업원에게 '팁(tip)'을 주겠느냐고 묻고 있었다. 그리고 팁을 줄 것인지 안 줄 것인지를 음식을 먹은 사람이 직접 입력하게 되어 있었다. 순간적으로 웃기는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스코틀랜드의 팁 문화도 잘 모르고, 종업원이 팁을 줄 만큼 특별한 서비스를 한 것도 아니었기에 팁을 주지 않겠다고 입력했다. 순간, 종업원 아가씨의 약간 실망스런 눈길이 지나갔다. 우리나라와 다른 문화적 차이인가? 마음이 조금 불편하다.

에든버러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요새이다.
▲ 에든버러 성 에든버러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요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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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마일을 따라 서쪽 끝까지 계속 걷자 성까지 이어지는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에든버러 성 입장권을 파는 곳은 성의 입구에 있었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섰지만 여유있게 식사를 하고 오다 보니 입장시간인 9시 30분이 지나 있었고, 입장권을 사는 줄이 어느덧 길게 이어져 있다. 조금만 더 서두를 걸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이다. 다행히 입장권 사는 줄은 조금씩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매표소 앞, 긴 줄이 에든버러 성 관광1번지답다

에든버러 관광1번지답게 아침부터 매표소 줄이 길다.
▲ 에든버러성 매표소 에든버러 관광1번지답게 아침부터 매표소 줄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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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같이 생긴 아치형 출입구는 육중한 성벽 사이를 뚫고 있었다. 성 안에 들어서자마자 신영이는 에든버러 성을 설명하는 영어 오디오를 빌려서 귀에 꽂았다. 오디오 기계는 신영이 것 한 개만 빌렸다. 각 성벽이나 성문, 대포마다 그 옆에는 번호가 적혀져 있고 그 번호에 서면 해당 유물과 유적이 설명으로 흘러나왔다. 조금 가니 전통 의상을 입은 에든버러 성의 무료 가이드가 여러 관광객에게 직접 성을 안내하고 있었다. 우리는 자유롭게 성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위해 오디오 가이드를 따라 움직였다.

성의 캐슬록(Castle rock)은 천연요새의 바위산이다. 많은 여행자가 캐슬록의 대포 사이로 머리를 내밀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성벽 아래를 내려다보니 에든버러의 중심가가 파노라마처럼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모두 에든버러 전경을 감상하며 여행의 상념을 즐기고 있다.

성의 성벽 앞에 서면 에든버러가 한 눈에 펼쳐진다.
▲ 에든버러 성 전망 성의 성벽 앞에 서면 에든버러가 한 눈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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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든버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훌륭한 지리적 요건의 요새였기에 위에서 내려다보는 전망도 수준급이다. 중세시대의 시가지를 넘어 멀리 북해의 바다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에든버러 성의 풍경 좋은 전망은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전망이다. 아름다운 풍경은 우리 가족의 발길을 움직일 수 없게 하였고 한동안 우리의 동작은 정지되었다.

성 안의 건물들 사이로는 에든버러 시내와 같이 오랜 세월을 품은 돌길이 깔렸다. 우리는 돌길을 따라 중세의 성을 올랐다. 성의 위쪽으로 올라설수록 성 바깥 에든버러 시내의 풍경이 다양한 각도로 변하며 다가선다. 오랜 역사 동안 스코틀랜드 왕가의 거처로 사용됐던현재의 에든버러성은 성벽과 왕궁만 남아 있는 성이 아니었다.

성 내부에 있던 왕가의 건물 여러 곳에는 스코틀랜드의 역사를 전시해 놓은 박물관이 가득 차 있다. 스코틀랜드와 영국을 지켜내기 위해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전쟁 관련 박물관들이 성의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전쟁박물관, 스코틀랜드답게 체크무늬 치마 군복입은 군인들

스코틀랜드를 지킨 전쟁 관련 박물관으로 에든버러 성 안에 있다.
▲ 전쟁박물관 스코틀랜드를 지킨 전쟁 관련 박물관으로 에든버러 성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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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입구에서부터 성의 언덕길을 올라가다 보니 성의 남쪽 끝에 전쟁박물관(National War Museum)이 눈에 들어온다. 전쟁박물관은 아내가 가장 싫어하는 테마 박물관이다. 아내는 전쟁 무기들을 보는 게 싫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예상외로 아내가 아무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성 자체의 풍광이 참 아름답고 그 성의 내부로 들어간다는 즐거움 때문일 것이다. 나는 여자아이답지 않게 무기와 전쟁 역사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신영이의 손을 잡고 박물관 안으로 들어섰다.

스코틀랜드 과거의 흘러간 역사 이야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시관 유리 너머에 색이 바랜 과거 군복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었다. 실제 전장에서 입고 다녔던 군복들일 것이다. 카키색과 갈색 군복들이 깔끔하게 세워져 있고, 군복 옆에는 군복 주인이 사용했을 기관총과 함께 목제 칼집에 담긴 칼이 걸려 있다.

전통 체크무늬 치마를 입은 스코틀랜드군의 치열한 전투 정면.
▲ 치마를 입은 군인 전통 체크무늬 치마를 입은 스코틀랜드군의 치열한 전투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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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무늬의 나라 스코틀랜드답게 군복에는 각종 체크무늬가 남아 있다. 그리고 벽에 걸린 전쟁기록화에도 치마를 입은 군인들이 총검을 빼든 채 적군을 노려보고 있다. 한 기록화에는 치마를 입은 채로 참호에서 적군과 육박전을 벌이고 있다. 조금 이해가 안 되는 점은 전투 중에 다리를 드러내 놓고 있으니 다리에 상처가 나기도 쉽고 움직이기도 불편할 것 같다는 점이다. 과거부터 이어져 내려온 옷을 입는 전통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일까? 

에든버러 성의 오랜 전통은 전쟁박물관 외에도 곳곳에서 느껴진다. 성의 성벽 등 곳곳에 잘 보존된 대포들은 성의 중세시대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준다. 대포들은 워낙 기름칠을 잘해 놓아서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것 같이 느껴질 정도이다. 에든버러 성 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성 마가렛 예배당(St Margaret's Chapel)을 나오자 바로 앞에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의 대포가 '떠억' 버티고 있다.

잉글랜드 군에 대항하던 대포로 무게가 6톤에 달하는 헤비급 대포다.
▲ 자이언트 대포 잉글랜드 군에 대항하던 대포로 무게가 6톤에 달하는 헤비급 대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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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이언트 대포는 제임스 2세(James II) 때 만들어진 '몬스 멕(MONS MEG)'이다. 무게가 6톤이나 나가는 이 대포는 스코틀랜드 군대가 잉글랜드 군대에 대항하여 싸울 때 사용되었던 대포이다. 15세기 중엽에 이 정도 크기의 대포를 만들었으니 당시의 기술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성을 상징하는 어느 화려한 보석보다도 이 자이언트 대포가 성의 역사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이 성에서 가장 유명한 대포는 또 따로 있다. 매일 오후 1시가 되면 실제 발사를 시연하는 대포가 있다. 하루에 단 한 번만 시연되는 장면이라서 성에 오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그럴듯한 볼거리다. 이 성의 대표 이벤트를 보기 위해서 나는 올라왔던 언덕길을 뒤돌아서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대포 앞에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다. 얼마 전만 해도 이 대포 주변은 한가했었는데….  대포 주변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어야 했었던 것이다. 순간, 자이언트 대포가 있던 언덕 위에서 보면 더 잘 보였을 것 같은데, 괜히 언덕에서 내려왔다는 생각이 든다. 괜한 후회가 잠시 마음을 어지럽힌다.

신영, 작은 몸집 이용해 대포 발사 장면 동영상 촬영

오후 1시가 되면 포 발사 시연을 하는 유명한 대포이다.
▲ 1시 대포 오후 1시가 되면 포 발사 시연을 하는 유명한 대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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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큼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신영이는 작은 몸집으로 사람들 사이를 이미 비집고 들어섰다. 신영이는 대포 발사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으려는 것 같다. 나는 사진기를 들었지만 덩치 큰 앞사람들에 가려 대포가 렌즈 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앞에 선 사람들 사이로 난 조그만 공간을 통해서 대포의 포신을 겨우 보고 있었다. 포신은 검은데 발사구 부분은 은색 광택으로 빛나고 있었다.

언덕 아래의 대포 쇼를 보기 위해 관광 인파가 이동 중이다.
▲ 에든버러 성 인파 언덕 아래의 대포 쇼를 보기 위해 관광 인파가 이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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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이 잘 잡힌 검은 군복을 입은 멋진 구레나루의 군인 아저씨가 절도 있게 대포를 향해 걸어 나오고 있었다. 견장과 바지 옆 재봉선 그리고 군모에 띠를 두른 붉은색이 검은 제복 위에 어울리는 멋진 군복이었다. 허리에 찬 흰 가죽 허리띠는 기가 막히게 깔끔했다. 그의 가슴 위에 달린 3개의 훈장이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알 길이 없었다.

나는 대포 발사가 순식간에 끝날 것을 알고 있었다. 여행 전에 읽어 본 여행 자료들에 의하면 순식간에 대포 한 발만 발사하고 끝나는 이벤트라는 것이다. 오늘도 대포 앞에 모인 사람들은 잔뜩 기대하고 있지만, 대포는 '퐁' 소리 한 번만 남긴 채 그대로 끝이 났다. 주변의 여행자들은 조금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흩어지고 있었다. 나는 오후 1시마다 대포를 쏘아 시간을 알리던 그들의 전통이 군더더기 없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포도 크지 않다. 전혀 과장하지 않으려는 이벤트 그 자체였다.

깔끔한 한 방! 그 한 방을 기대 속에 한참 기다리는 여행자들. 순간에 불과한 볼거리지만 사람들은 짐짓 깜짝 놀라며 웃는다. 그 깔끔한 한 방이 간결하면서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280편이 있습니다.



태그:#영국,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에딘버러성, #필링 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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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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