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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방 천정에서 떨어진 물이 잔뜩 고인 플라스틱 물동이와 병.
 작은 방 천정에서 떨어진 물이 잔뜩 고인 플라스틱 물동이와 병.
ⓒ 이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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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지붕에서 물이 막 떨어져요."

지난 4일 점심 무렵. 딸 은별이가 갑자기 신이 난 목소리로 외친다.

"어디?"

작은 방에 들어서니 벌써 바닥이 흥건하다. 지붕을 보니, 두 군데에서 물방울이 줄기차게 내려온다.

"뚝, 뚝, 뚝, 뚝, 뚝, 뚝, 뚝···(중략) 뚝, 뚝, 뚝, 뚝······."

제작년 여름 장마철부터 비가 많이 오면 새곤 했다. 하지만, 겨울철에 물이 줄줄 떨어지는 건 처음이다. 모처럼 한가롭게 책을 읽던 토요일 낮이 갑자기 칙칙해졌다.

그런데도 이제 네 살이 되는 은별이 녀석(딸)은 재밌기만 한가보다.

"와~ 신기하다. 우리집 좋다."

아예 박수까지 친다.

"좋긴 뭐가 좋냐."
"아빠 그런데 왜 지붕에서 비가 와요?"
"눈 와서 얼었던 게 날씨가 좀 따뜻해지니 녹아서 그렇지."
"그럼, 이게 눈이에요?"
"눈 녹은 물이겠지. 휴~"

급하게 화장실에서 플라스틱 물동이를 가져다 놓았다. 자세히 보내 천정이 살짝 내려 않았다. 물이 고인 부분은 벽지색이 진하게 보인다. 55년 만에 찾아왔다던 강추위가 좀 풀리자 얼었던 눈이 녹아 벽을 타고 흘러들었나 보다.

'어휴, 한파가 끝나니 졸지에 수재민이 됐네. 집주인한테 연락해 봐도 소용없고, 참 난감하구만.' 혼잣말하며 물을 걸레로 닦아냈다. 그리고는 고인 물이 떠, 빨리 쏟아져 내려오도록 송곳으로 구멍을 내버렸다. 그랬더니 한꺼번에 상당한 양의 물이 떨어졌다.

천정이 센다는 건 집주인도 알고 있다. 하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다. 워낙 오래된 집이고, 조만간 재개발 된다는 '흉흉한'(세입자의 처지에서) 소문도 있기에 목돈을 들여 방수 공사를 하려하진 않기 때문이다. 집 주인에게 수리를 요구할 생각도 없다. 주인이라지만 형편이 더 나은 건 없다는 걸 다 아니까.

다만 지난 해 봄 집주인이 전세값을 좀 올려달라기에 "비가 새는 걸 먼저 고쳐주셔야죠" 하고 퉁명스레 대꾸한 적이 있다.

작은방 천정에서 물이 새는 걸 즐거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은별이가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철 없는 게 오히려 다행이다 싶다.
 작은방 천정에서 물이 새는 걸 즐거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은별이가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철 없는 게 오히려 다행이다 싶다.
ⓒ 이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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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새는 걸 즐거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은별이가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한 채 졸라댄다.

"아빠, 사진 찍어주세요."
"카메라 고장 났는데."
"휴대폰으로 찍으면 되잖아요. 네."
"그래, 알았어."

문득, 유년시절 서울 답십리에 살던 때가 떠올랐다. 사상 최악의 물난리로 당시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겼다. 주민들은 학교 교실로 대피했다. 이불과 솥단지 따위만 챙겨 허겁지겁 몰려들 사람들. 당연히 골목에서 어울리던 친구, 형들도 한 교실에 모였다. 철없던 우리들은 왁자지껄 재밌어 하기만 했다.

그런 시절도 지금은 아련한 추억이 됐다. 둘째 녀석에게도 이번 사태가 유년시절의 사진첩을 장식할 작은 기억이 되길 바란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 온 첫째 한별이(초등학교 3학년)는 방안을 들여다보더니 심각한 얼굴이다.

"아빠, 비 안 새는 집으로 이사가요."

잇따라 오전 근무 뒤 퇴근한 주영이(아이들 엄마)도 "나도 천장 안 새는 집에서 살고 싶다"고 거든다. 어쨌든, 올해 우리 네 식구의 목표가 하나 더 추가됐다. '비 안 새는 집으로 이사 가기.' 쉽진 않지만 더 많은 땀을 흘려보자고 다짐해 본다.

물이 고인 자리는 벽지 색이 진하다. 이와 물 떨어지는 거 빨리 나오라고 송곳으로 구멍을 냈다.
 물이 고인 자리는 벽지 색이 진하다. 이와 물 떨어지는 거 빨리 나오라고 송곳으로 구멍을 냈다.
ⓒ 이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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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기중앙신문(www.ggjapp.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한파, #수재민, #한별이, #은별이, #전세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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