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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 편 기차에 탄 아이들
▲ 태국의 아이들 맞은 편 기차에 탄 아이들
ⓒ 양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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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아이들은 난생 처음으로 야간 침대기차를 탄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특히 제주에서 태어나 지금껏 살아온 몇몇 친구들에겐 기차를 타는 것 자체가 처음이기도 한 날이었다. 그래서일까. 아침부터 아이들의 얼굴에는 설렘이 가득 피었다.    

"삼촌, 우리 기차 몇 시간이나 타요?"
"음…. 15시간 정도."

"2층에서 자고 싶어요. 그래도 괜찮죠?"
"글쎄, 그건 친구들에게 물어봐야지."

"침대기차는 더 비싸겠다, 그죠?"
"아마도."

"누워있어도 가는 거죠? 맞죠?"
"그렇게 좋니?"

아이들 마음은 이미 방콕을 떠나 기차를 타고 달리고 있다. 생각해보면, 왜 안 그렇겠는가. 굳이 밤을 새워서 달려야 할 만큼 땅덩어리가 크지도 않은 나라에서 그나마 대륙으로 향하는 길목을 끊어놓았으니, 아이든 어른이든 열차 침대칸에 누워 낮과 밤을 온전히 달려 보고 싶은 로망을 한번쯤 가져보았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처음, 인도였던가. 기차를 쫒아 해가 뜨고 해가 지던 그 신비롭던 기억. 덜커덩덜커덩 2층 침대칸에 누워 올려다보던 밤하늘과 차창 안으로 수북수북 쌓여들던 달빛. 하얀 아침과 함께 "짜~이"를 외치던 소년과 그이에게서 전해진 한 잔에 2루피 하던 달착지근한 그 이국의 맛과 향. 그리고도 한나절을 더 달려야했던 들판과 시간들…. 아이들에겐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햄버거에 과자까지... 아이들의 기차 여행 준비법

아이들은 게스트하우스 앞마당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손에는 한 보따리씩의 먹거리가 들려 있다. 기차간에서 점심과 저녁을 해결한다고 했더니, 모둠별로 햄버거나 과자나 과일 등을 사온 것이다. 어떤 모둠은 용케도 컵라면까지 구해왔는데, 과연 기차에서 뜨거운 물을 어떻게 공급할 지 지켜볼 일이다. 아이들에게는 이국에서의 쇼핑이 낯설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아내가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3분씩이다."

3분이란, 한국의 부모님들께 전화하는 시간이다. 마침 숙소 바로 옆 여행사에 인터넷 전화가 있었고, 이제 방콕을 떠나면 고국으로 전화하기가 아이들에겐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터여서 안부 전화를 넣으라고 한 것이다.   

의외로 아이들은 하고 싶은 말이 많을 텐데도, 3분의 시간을 잘 지켰다. 엄마 아빠의 목소리를 듣고 훌쩍거리거나 우는 아이들도 없었다. "재미있어요. 괜찮아요." 전화기 너머 부모님들의 질문이 무엇이든 아이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아직 이틀 밤이라지만, 내가 아이들의 부모라면 조금 섭섭할 정도다.

기차 시간은 다가오고... 버스 운전사는 안 오고

단짝이 되어버린 두 녀석
▲ 형과 아우 단짝이 되어버린 두 녀석
ⓒ 양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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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줄이 배낭을 메고 기차역으로 가는 53번 버스를 탔다. 부모들이 본다면 큰 배낭을 메고 복잡한 버스를 잡아타는 아이들이 안쓰러울 법도 하지만, 택시보다는 버스를 좋아하는 우리 부부를 만난 이상, 아이들의 운명(?)은 어쩔 수 없다.

1인당 7바트 하는 버스에는 에어컨이 없었고, 방콕 특유의 후덥지근한 열기와 매연이 가득했다. 버스는 도심을 헤쳐 나갔다. 그런데 로터리를 몇 개쯤 지났을 때다. 개울 옆 도로변에 버스가 멈췄다. 손님들 반 정도가 내렸고, 잠시 후에는 운전사도 내렸다. 그는 곧장 길 건너편 식당가로 들어갔다.

음료수나 간식이라도 사려나? 10분이 지났다. 운전사는 오지 않고, 아이들은 유리창이나 배낭에 고개를 박고 졸기 시작했다. 20분. 다른 버스들도 한 대씩 와서 멈춰 섰다가 가곤 했지만, 우리 버스의 운전사는 돌아오지 않았다. 30분. 이곳이 버스가 쉬었다 가는 순환점이라는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다.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40분. 운전사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고, 기차 시간이 촉박해지고 있었다. 더 이상 시간이 없었다. '택시를 타야한다'고 결심하는 순간, 버스 차장이 올라탔다. 그리고 5분 후, 음료수 병 하나를 손에 든 운전사가 탔다. 아직 시간은 괜찮았다. 그런데 사거리 두 개 정도를 지나더니,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속이 바싹 타들어갔지만, 택시를 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 우리 부부만이라면 걱정할 일도 아니었다. 다음 기차의 입석이라도 몸을 실으면 그만이고, 기차 대신에 버스를 알아볼 수도 있다. 또 이왕 이렇게 된 거 방콕에서 하루 이틀 더 머물다 가도 그만이다. 일정대로라면 만나지 못할 어떤 인연을 만날 수도 있는 것이 또 여행이니까. 다만 지금은 13명의 아이들과 함께 인 것이 문제였다. 

버스는 방콕 시민들이 들어차면서 만원이 돼 있었고, 아내와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들은 편안하게 졸거나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녀석들도 많았다. 이대로라면 졸고 있는 아이들을 깨워서 한 명도 빠짐없이 내리게 하는 것만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내 마음을 알아차린 것은 오히려 버스 차장이었다. 그녀가 웃으며 손가락 두 개를 내 눈 앞에 펴 보인 것이다. 정거장 두 개가 남았다는 뜻이리라. 잠시 후, 나는 소리를 질러 아이들을 깨웠다. 

"곧 내릴 거야! 다들 깨우고, 모둠별로 인원 확인 해.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 지금 시간이 기차를 놓칠 지도 모르거든. 그러니까, 버스에서 내리면 죽을힘을 다해 달리는 거다! 다들 알겠지?"

승객들은 술렁였다. 도로는 정체 중이고 버스는 만원인데, 이방인 하나가 낯선 언어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자 아이들도 덩달아 떠들어대는 형국이었다. 누가 다쳤나? 소매치기라도 당했나? 호기심 가득 찬 승객들의 눈동자가 바삐 굴러다녔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어서 뛰어!

차장이 한국에서 온 여행자들의 급한 사정을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운전사는 고맙게도 기차역 광장 건널목 바로 앞에다 버스를 세웠다. 우리들은 내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서로의 이름을 불러대며 빨리 내리기를 독려했고, 차장을 비롯한 방콕의 시민들은 아이들이 빠져나갈 수 있게 길을 내어주며 응원의 환호성을 보내줬다.

출발시간 5분 전, 기차역을 향해 질주했다. 내가 선두에 서고 아내가 마지막에서 뛰었다. 아이들은 무거운 배낭을 메고도 잘들 달렸다. 우르르르 달리면서 기차표를 손에 들고 '치앙마이'를 외치면 철도역 직원들이 손가락으로 플랫폼 방향을 알려줬다. 아이들은 뒤따라오는 친구들에게 "여기! 여기!" 소리를 질러댔다.

"삼촌! 진짜 스릴 넘쳐요!"

그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한 편의 영화를 찍는 것처럼 신이 났다. 어떤 상황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결국 '놀이'로 만들어버리고 마는 그들이 경이로울 뿐이다. 그렇게 우리들이 우르르르 객차에 오르자마자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치앙마이로 가는 기차 안에서
▲ 잠이 든, 수경 치앙마이로 가는 기차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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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로 가는 15시간의 기차 안에서
▲ 음악을 들으며 일기를 쓰는, 상훈 치앙마이로 가는 15시간의 기차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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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기차는 방콕 도심을 빠져나갔다. 열대 지역의 숲이 지나가고 들판이 나타났다. 한 그룹의 아이들은 어느새 카드게임에 빠져들었다. 경찰관과 도둑이 나오는, 나로서는 그 게임이 왜 재미가 있는지 이해가 잘 안 되는, '이상한' 놀이를 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혼자 앉아 일기를 쓰고 음악을 듣거나 창밖을 내다보거나, 또 그러다 잠이 든 아이들도 있었다.

가격을 물어보고는 목이 말라도 바가지라고 생수 한 병을 안 사먹는 아이들이 재미있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저런 모습도 있음을 알고 있을까? 그래도 컵라면에 넣을 뜨거운 물은 안 사먹을 수가 없다. 녀석들은 그 가격이 또 바가지라고 투덜거린다. 한편으론 설레고 한 편으로 지루할 것 같다고 걱정하던 15시간의 기차여행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사람 관계를 익히는 것도 여행이란다

치앙마이로 가는 15시간의 기차 안에서
▲ 카드게임에 빠져든 아이들 치앙마이로 가는 15시간의 기차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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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유진이가 심상치 않았다. 이야기하기 좋아하고 항상 에너지가 넘치는 녀석이 그늘진 얼굴로 혼자 앉아 있는 것부터가 그렇다. 일기를 쓰는가 싶더니 담요를 뒤집어쓰고 누워버렸다. 아픈 것이다. 몸보다는 마음이다.  

전날 밤이었다. 유진이가 모둠을 바꿔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대학생 언니인 하영이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았다. 마음이 맞지 않고, 자신들의 모둠을 챙기기보다 다른 모둠인 상훈이 오빠와만 논다는 것이었다. 이해하자면 다른 모둠과는 달리 여자들로만 이뤄진데다가 조장인 하영이를 포함해 두 명이나 (아이들 표현대로 하자면) 제주 여행에 참석하지 않았던 '뉴-페이스'였다. 하지만 내 대답은 단호했다.   

"삼촌 생각에는,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익혀가는 것도 여행이다."

유진의 직설적이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점을 좋아하지만, 함께 떠난 여행에서 따로 배울 점이 있음을 생각해봤으면 했다. 하영이 역시도 힘든 모양이었다. 아이들보다 몇 살 더 많은 대학교 1학년일 뿐이었고, 스스로도 낯선 곳에서 낯은 음식과 잠자리에 적응하면서 동생들을 이끌고 이국의 거리를 다닌다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닐 것이었다. 그래서 남자친구인 상훈에게 기대게 되는 것이 아이들로부터 서운함을 주는 것인지도 몰랐다.

치앙마이 가는 기차 안에서
▲ 일기장 치앙마이 가는 기차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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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요를 뒤집어쓴 유진에게 다가갔다. "몸이 아픈 것은 아니지?" 누운 채로 고개를 끄덕인다. "마음이 아픈 거지?" 또 고개만 끄덕인다. "그래도 마음이 오래 아프면 몸도 아파지거든, 알지?" 이번에는 새알 같은 목소리로 알겠단다. 유진의 어깨를 가만히 두드려주고 돌아서는데 아내가 보고 웃고 있다. 좀 전에 똑같은 말을 유진에게 했었단다.

기차는 밤을 가르고 달려갔다. 열대의 열기는 다소 누그러져 있었다. 아이들은 침대칸 아래위로 누워서 쉬 잠들지 않았다. 덜커덩덜커덩. 막막하면서도 자유로운 이 공기. 내게도, 비로소 여행이 시작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바란다면, 내일이면 유진이가 씩씩한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일기 3] 기차타고 치앙마이로 GO! (중 2 양나운)
지금 나는 기차 안에 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차를 타보는데 장장 15시간이나 타야 한다니까 겁부터 났지만, 기차에서 밥 먹고 카드 하고 하니까 시간 가는 줄을 잘 모르겠다.

오늘 기차를 타기 전에 한국 여행사에서 엄마와 통화를 했다. 아빠랑 통화는 다음에 전화할 기회가 있으면 해야겠다. 아무튼 엄마와 통화를 했는데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었다.

통화하면서도 튀어나오는 '엄마의 자연스러운 잔소리'. 평소에는 엄마 잔소리가 엄청 싫었는데 오늘은 마냥 좋았다. 또 통화하고 싶다. 지금 기차가 흔들려서 오늘 일기는 그만 써야겠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본 연재 기사는 김향미 & 양학용 여행작가 부부가 지난 겨울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11명의 청소년과 2명의 대학생과 함께 라오스로 한 달 동안 여행한 이야기다. 이들의 저서로는 967일 동안의 세계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묶은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예담)와 라오스 여행이야기를 담은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좋은생각) 등이 있다.



태그:#여행학교, #라오스, #침대기차, #치앙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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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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