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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같이 공부하다가 심심해서 페이스북에 접속했다. 방학임에도 할 일이 있어 혼자 서울에 머무르고 있는 내게 페이스북은 대구에 사는 중고등학교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고 빠른 통로다.

뉴스피드를 훑어 보다 친한 친구 A가 올린 게시물이 눈에 들어왔다. 게시물의 제목은 '아... 일단 하나는 건졌군!! 박원순 시장님 사랑해요~' 였다. 나는 요즘이 대학들 정시 전형 발표 시기다 보니 '대학에 붙었는가 보다'라며 A를 축하해 주기 위해 게시물을 클릭했다.

게시물의 내용은 예상대로 합격의 기쁨을 전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후보 12번이 된 것이지만, 예년을 기준으로 봤을 때 합격 안정권이라고 적혀 있었다. 게시물의 주인공은 이번에 재수를 해 성공했던 친구. 나는 힘든 재수를 이겨내고 마라톤을 완주한 A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친구 A의 게시글을 보며 나는 설날 이틀 전 그의 말들이 떠올랐다.
 친구 A의 게시글을 보며 나는 설날 이틀 전 그의 말들이 떠올랐다.
ⓒ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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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가 이 게시물 제목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합격 소식보다는 '박원순 시장님 사랑해요~' 라는 말이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나는 속으로 '아니 얘가 이럴 애가 아닌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혹시 이 말이 비꼬는 말이 아닌가라고 의심해봤다. 하지만 정황상 정말 진심에서 나오는 말인 듯했다. A의 말을 의심하는 이유는 설날 이틀 전 모임에서는 A가 박원순을 칭찬했던 내게 원색적인 비난을 했기 때문이다.

일주일새 박원순 시장에 대한 태도가 돌변한 친구 A

설 연휴를 맞아 오랜만에 대구로 내려간 나의 명절 일정에는 동향 친구들과의 모임이 추가됐다. 평소 각지로 흩어져 있던 친구들이 한 번에 모일 수 있는 기회가 명절 말고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거기다 올해는 작년에 재수한 친구들도 함께 만나는 자리라서 더욱 기다려졌다. 친구 A의 박원순 시장에 대한 비난은 설날 이틀 전 술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 나의 정치적 성향을 잠시 밝히자면, 고등학교 때까지는 정치 자체에 별 관심도 없었다. 다만 아버지께서 과거 운동권 출신이고 해서 대구사람 치고는 보수적이지 않은 정도였다. 그러다 서울로 대학 온 이후로는 전공과목이 국사다 보니, 우리나라 현재 기득권 결합체의 탄생과 성장 과정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왼쪽'으로 움직이게 됐다. 특히 <나꼼수> 현상과 10.26 서울시장 선거를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박원순 시장에 대해서는 상당한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박원순 비난'이라는 사건의 발단은 박원순 시장의 저서에서 비롯됐다.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친구 B가 명절이라고 선배로부터 <세상을 바꾸는 천 개의 직업>이라는 박원순 시장의 저서를 선물로 받은 것을 자랑했다. 친구들은 책을 선물로 주는 자상한 선배도 있냐면서 부러워하며 그 선배가 여자냐고 장난삼아 캐묻기도 했다.

나는 서울서만 보던 박원순 시장을 대구에서도 봐서 반가운 마음에 박원순 시장을 추켜세우며 친구 B에게 그 책 꼭 읽으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젊은 세대들의 박원순 시장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에 적응돼 있던 나는 자연스럽게 거리낌 없이 이 말을 했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에 대한 칭찬을 들은 친구들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다들 '얘가 갑자기 웬 헛소리지?' 라는 반응이었다. 나는 아무리 대구라지만 이제 갓 20살이 넘은 아이들이 폐쇄적인 보수적 생각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으나 내 생각과는 달리 친구들은 무관심하거나 보수적인 마인드에 익숙해 있었다. 친구들은 나보고 서울 가더니 '빨간 물' 먹었다며 걱정(?)하는 투로 얘기하기도 했고, '홍어'나 '오오미' 같은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단어들을 연발하며 나를 비꼬기도 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박원순 시장에 대한 조중동식 원색적 비난을 하는 친구 A

이렇게 나의 발언을 대부분의 친구들이 장난스럽게 넘어가는 가운데 친구 A는 진지한 얼굴로 나에게 박원순 시장의 비리들을 열거하기 시작했다. 친구 A는 '월세 250만원' '병역기피' '학력 위조' '아내에게 일감 몰아주기' 등 조중동이 선거기간 동안 많이 동원하던 내거티브 선거 전략용 구어들을 마구마구 나에게 쏟아냈다.

친구 A는 한발 더 나아가, 박원순 시장의 공약들은 다 복지 포퓰리즘이라며 '반값등록금'이나 '무상급식' 등을 비난했다. 사람들이 '헝그리 정신'이 없어서 자기가 노력할 생각은 안하고 사회 탓만 하니까 이런 복지 포퓰리즘이 생긴다고 말했다. 또 그런 복지정책들이 결국 우리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이라며 전혀 도움이 안 될 거라는 주장을 거듭했다.

특히 반값등록금 관련해서 A는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등록금이 많다고 생각하면, 자기가 노력해서 성적을 잘 받아 장학금 받을 생각을 해야지 왜 무작정 등록금 내려달라고 주장하냐"고 반값등록금을 반대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너도나도 다 대학교를 가려고 해서 4년을 허비하고 취업도 못하는 사태가 반복된다"며 "등록금을 내리면 더 많은 학생들이 대학교를 가려고 할텐데 그러면 이러한 악순환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친구 A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분위기상 내가 반박한다고 해서 받아들여질 분위기도 아니고, 조금 전의 충격이 가시지 않을 상태라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러고는 친구 A에게 "어떻게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됐느냐"고 묻자 A는 자랑스럽게 "내가 매일 <조선일보>를 꼬박꼬박 챙겨봐서 시사 상식이 넓어졌다"고 대답했다. 나는 더 이상 이 주제에 대해 토론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고, 얼른 다른 화제로 넘어가기로 했다.

그러다 일주일 뒤 페이스북에서 박원순과 복지 포퓰리즘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던 친구 A의 게시물을 보게 된 것이다. 나는 친구의 합격 소식에 기뻐하다 곧바로 왜 친구가 갑자기 사랑해요~'라는 표현에서 보여주듯 박원순 시장을 대하는 태도가 돌변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게시물을 읽기 시작했다.

친구 A의 정치적 성향을 바꾸게 한 시립대의 반값등록금

읽어보니 친구 A의 태도가 돌변한 이유는 서울시립대의 반값등록금 때문이었다. A는 형제가 셋인데다 올해 동생이 고3이 되고 자신은 재수를 한 다음 대학에 입학하는 처지여서 등록금이 큰 부담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서울시립대에서 올해부터 반값등록금을 실시한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됐고, 갑자기 돈 150만원을 받은 것 마냥 기뻤던 것이다. 그리고 A는 이 정책이 박원순 시장의 공약이었고 실제로 이행됐기 때문에 이뤄졌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됐다. 한마디로 A는 박원순 시장이 자신의 큰 부담이었던 등록금을 반이나 줄여준 것에 감동했고 이에 박원순 시장의 '안티'에서 '팬'으로 돌아선 것이다.

A의 이러한 태도 변화를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를 돈 주고 표를 산다는 복지 '표'퓰리즘의 한 예시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가 말했 듯, 정치가 '내 일상생활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활동'이라는 것을 입증한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서울시립대의 반값등록금 정책은 사회적 통합과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 필요한 생산적인 복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거시적으로는 국공립대 지원을 통해 국공립대 경쟁력 제고와 다른 사립대에 자극을 줘서 전체적인 등록금을 내리는 목적을 지닌다.

미시적으로, 특히 지방학생들에게는 서울에서 자취하는 데 들어가는 돈에다가 등록금 때문에 서울까지 와서 알바를 해야 하는 비효율적인 일들을 줄이는 목적이 있다. 이 목적은 합리적이고 정당하다. 이는 사회초년생 대학생들로 하여금 사회적으로 안전망을 제공받으면서 사회적 유대감과 책임감을 느끼고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양분이 된다. 나는 이러한 사회적 안정망 속에서 창의적인 사고와 다양한 선택의 폭이 보장될 수 있고, 이것이 복지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생활의 변화가 사람의 정치적 판단을 좌우

친구 A가 이전에 가지고 있던 보수적인 사고방식은 그의 삶의 경험에서 얻어진 가치관이 아닌, 주입된 허구적인 가치관이었다. 단지 직접적인 경험이 없던 그는 조중동에게 지배를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A는 허구적인 세계 속에서 허구적인 담론들에 파묻혀 살았던 것뿐이다. 이런 허구적 가치관은 '현실에서의 변화'와 이를 체감하는 과정을 통해 모래성과 같이 쉽게 무너지리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실제로도 A에게는 그러한 일이 일어났다.

진보정치의 힘은 바로 '현실에서의 변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상의 수도승이 아니라, 혁명가가 아니라, 사람을 위한 복지, 필요한 사람에게 정당하게 분배하는 정의,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진보정치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내 친구의 태도변화는 이러한 진보정치가 '자신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일' 이라는 말이 공허한 말이 아니라 현실에서 입증된 하나의 일화이다. 앞으로 진보정치가 더욱 뿌리 내려 이러한 일화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태그:#반값등록금, #진보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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