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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원자력발전소 유치 문제와 관련해 삼척핵발전소유치백지화투쟁위원회가 삼척시에 제기한 행정정보공개 소송에서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삼척시는 행정정보를 공개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삼척핵발전소유치백지화투쟁위원회(이하 백지화투쟁위)는 김대수 삼척시장을 상대로 행정정보 공개 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11월 8일 1심 재판부로부터 '삼척시는 원자력발전소 유치 신청지의 도면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관련 행정정보를 모두 공개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삼척시는 이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를 제기했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 춘천재판부는 1일 삼척시장이 제기한 원자력발전소 유치 관련 행정정보공개 공개처분취소 행정소송에서 '항소 기각' 판결을 내리고 다시 백지화투쟁위의 손을 들어주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지난해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시민들의 불안감이 고조된 점, 신규 원전 유치 시 주민에게 미치는 환경적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비공개에 의해 보호되는 이익보다 공개에 의해 보호되는 이익이 더 크다"고 밝혔다.

삼척시가 비록 항소를 기각당하고 행정정보 공개 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그 판결에 그대로 따를지는 미지수다. 삼척시는 판결문을 검토한 후 상고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삼척시가 그동안 백지화투쟁위의 행정정보 공개 요구를 거부해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삼척시 맹방해수욕장. 이 아름다운 해변에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설 예정이다.
 삼척시 맹방해수욕장. 이 아름다운 해변에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설 예정이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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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수 삼척시장 "주민투표 실시하기로 합의한 사실 없다"

정보 공개의 핵심은 2010년 12월 당시 '삼척시의회에서 삼척시가 제출한 원자력발전소 유치 동의안을 가결해주는 대신, 주민수용성 문제는 주민투표를 실시해 결정한다는 조건에 시의회의원 전원과 삼척시가 서명 합의했다'는 내용의 문서를 확인하는 데 있다.

주민수용성은 원자력발전소 신규 후보지를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주민들 중에 원전 유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주민수용성은 낮아지고, 그만큼 신규 원전 후보지로 선택하기도 어렵게 되어 있다. 따라서 주민수용성을 어떤 방식으로 확인할 것인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삼척시는 시의회에서 유치 동의안이 가결된 이후, 삼척원자력유치협의회를 앞세워 주민들을 상대로 신규 원전 유치 찬성 서명을 받으러 돌아다녔다. 찬성 서명을 받는 데는 공무원들과 통반장까지 동원됐다. 그리고 지난해 3월 9일 서명 결과를 발표하고, 무려 96.9%가 넘는 주민이 원전 유치에 찬성했다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관련 기사 : 원전 유치 찬성 96.8%, 이게 가능한 일?)

주민투표와 관련해서는 시의회와 합의한 내용을 모두 부정했다. 김대수 삼척시장은 "원전을 유치하는 데 주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시의회와 합의한 사실이 없다"며, "그것은 법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원전 반대 측에서 보자면, 주민수용성을 주민투표로 파악한다는 약속을 어긴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삼척시의회 역시 합의 사실을 부정했다. 시의원들 스스로 제 손으로 직접 서명까지 하면서 합의한 문서를 부정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 후로 삼척시를 비롯한 원전 유치 찬성측은 "주민 대다수가 원전 유치에 찬성하고 있는 만큼 '주민투표를 실시하자'는 말로 시민들 사이에 혼란과 갈등을 부추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민투표 논란을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백지화투쟁위로서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문제다.

정진권 삼척 시의원 "주민투표 실시, 삼척시와 합의했다"

삼척 원자력발전소 유치 관련 주민투표 찬성서명부에 서명한 시의원들.
 삼척 원자력발전소 유치 관련 주민투표 찬성서명부에 서명한 시의원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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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지난해 3월 삼척시의회 의원 중에서는 유일하게 정진권 시의원이 '시의원 전원이 주민투표를 요구하는 친필 서명부가 존재한다'고 증언함으로써 주민투표 문제가 다시 전면에 부각됐다.

당시 정 의원은 "삼척핵발전소 유치에 관해서 주민수용성은 삼척시와 의회가 주민투표로 결정한다는 내용과 삼척시가 발의하지 않을 경우는 시의회가 발의하기로 2010년 12월 14일에 서로 협약한 문서가 남아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삼척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정 의원은 지난 해 6월에는 삼척시가 '주민투표 실시'를 언급한 또 다른 문서 일부를 공개했다. 그 문서에는 "주민수용성을 확인하는 데 '의견수렴방안(주민투표)'을 시의회와 협의해 '시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실시할 계획"이라고 적혀 있다.

이 문서는 사실상 삼척시의회와 삼척시 사이에 주민투표를 합의한 사실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삼척시는 이번에는 그 문서가 반드시 주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을 수는 없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문서에 적힌 문구대로 주민투표를 실시하려면 '시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로 실시해야 하는데, 지금은 시에 전혀 이익이 되는 방향이 아니기 때문에 실시하지 않겠다는 이상한 논리를 들이댔다. 전형적인 '꼼수'다.

백지화투쟁위, 행정정보 공개 이어 시장 주민소환운동 추진

그러다 결국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를 하루 앞둔 12월 23일 삼척시와 영덕군이 신규 원자력발전소 후보지로 선정됐다. 상황이 여기까지 오게 된 데는 그동안 주민투표 문제를 수수방관한 삼척시의회에도 상당한 문제가 있다.

삼척시의회는 스스로 주민투표에 찬성한다는 서명을 해놓고, 그 이후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다. 삼척시와 삼척시의회가 진실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정진권 시의원은 올해 1월 26일에는 "시와 시의회는 약속대로 주민투표를 실시하라"며 단식에 들어가기도 했다.

원자력발전소 유치 반대 현수막.
 원자력발전소 유치 반대 현수막.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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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삼척시는 계속 발뺌만 하고 있을 수 없었던지 1월 31일 열린 삼척시의회 본회의에서 주민투표를 시행하지 않는 것을 미리 시의회와 협의하지 않고 시가 단독으로 처리한 것에 유감을 표시하고 시의원들에게 사과한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삼척시와 삼척시의회가 함께 주민투표를 거론한 사실이 있음을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삼척시는 그와 동시에 앞으로 주민투표를 실시할 의사가 없다는 것 또한 분명히 했다.

따라서 백지화투쟁위는 계속 정보공개 요구를 통해 삼척시를 압박할 계획이다. 실제 문서는 여전히 공개되지 않았다. 백지화투쟁위는 주민투표를 언급한 문서의 실체를 확인하는 일이 삼척시에 원전을 유치하려는 사람들의 가식과 위선을 드러내는 데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문서에 적힌 대로 주민투표를 실시하지 않는다면, 삼척시에 원전을 유치하는 일 역시 정당성을 부여받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4월 11일 총선을 앞두고 신규 원자력발전소 유치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더욱더 거세질 전망이다. 삼척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규 원자력발전소 유치 반대운동은 앞으로 주민투표를 부정하고 거부해온 삼척시장을 대상으로 한 주민소환투표 운동으로 이어진다.

백지화투쟁위는 1일 논평을 발표하고, "삼척시장과 삼척시의장은 말바꾸기와 거짓말하기는 달인의 수준이다"라며, "삼척시는 핵발전소유치관련(주민투표합의사항) 서류를 공개하고 주민투표를 즉각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태그:#삼척, #원자력, #핵발전소, #정진권, #주민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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