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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면서 '워낭'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어떻게 불렀는지 모르나 내가 자란 고향에서는 '핑경' 혹은 '핑갱'이라고 했다.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워낭이 절집의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風磬)과 비슷하여, 풍경을 토속적인 '핑경' 혹은 '핑갱'으로 부르지 않았나 싶다.

정확한 명칭조차 모르고 세월을 넘었던 '핑경' 혹은 '핑갱'이가 현실적인 명칭 문제로 떠오른 것은 몇 년 전 <워낭소리>라는 영화 때문이었다. 영화로 인해 졸지에 나는 '핑경' 혹은 '핑갱'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워낭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만나게 된 것이다.

<워낭소리>라는 영화로 인해 이제 소의 목에 걸었던 방울은 '워낭'이라는 국민적인 명칭을 갖게 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아직도 워낭이라는 명칭의 유래가 정확하게 고증된바 없는 것 같은데 연구자들의 과제가 아닌가 한다.

구조는 매우 간결하다.
▲ 워낭의 얼개 구조는 매우 간결하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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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 목에 매단 워낭은  놋쇠로 만든 작은 종(鍾)이다. 워낭의 구조는 반원의 형태를 갖추고 꼭지 부분에 구멍이 뚫린 놋쇠통을 몸통으로 한다. 구멍을 통해 유기통의 안과 밖을 연결한 8자형 철사와 놋쇠통 안쪽의 철사에 매달린 무쇠공이로 이루어졌다.

워낭은 구조가 단순하고 세 가지 부품은 헐겁게 연결되어 각자 따로 노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중 한 가지만 빠져도 완전한 '워낭'이 될 수 없다. 즉 재질과 형태가 유기통, 철사, 무쇠공이 이렇게 다른 세 가지 부품이 모여 소리를 내는  완벽한 '워낭'이 되는 것이다.

오른쪽은 손으로 만든 방짜유기워낭이고 왼쪽은 기계로 다듬은 것이다.
▲ 워낭 오른쪽은 손으로 만든 방짜유기워낭이고 왼쪽은 기계로 다듬은 것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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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워낭은 작고 앙징스러우면서도 소리가 맑은 것이 특징이다. 크게 때리나 작게 때리나 울리는 소리의 크기에 별로 차이가 없고, 또 사람의 소리가 다르듯 모든 워낭은 각자의 소리를 가지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오래되어 까맣게 녹이 슬어도 처음의 소리를 잃지 않은 점 또한 특기할 사항이다.

워낭은 기계로 만든 놋쇠통과 두드려 만든 방짜 놋쇠통이 있다. 기계로 다듬은 놋쇠통은 원이 정확하고 표면이나 안쪽의 면이 매끄러운 반면 방짜 놋쇠통은 두들긴 자국이 남아 있으나 놋쇠의 결이 고우며 소리가 맑고 깨끗하다. 물론 방짜 유기로 만든 놋쇠 워낭의 소리가 훨씬 멀리까지 퍼지는 사실도 금방 알 수 있다. 요즘에는 소에 워낭을 다는 경우를 찾을 수 없지만 옛날에는 큰 소에 크기별로 다는 세 개의 워낭을 달았다고 한다.

워낭도 작은 것은 요즘 관광상품으로 나온 물건 정도의 크기이다.
▲ 크기 비교 워낭도 작은 것은 요즘 관광상품으로 나온 물건 정도의 크기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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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말에 다는 방울은 소의 워낭과 얼개는 같으나 생김새는 다르다. 말의 목에 다는 방울은 서양의 종처럼 생겼는데 말이 서양에서 더 많이 이용했었기 때문에 목에 단 방울도 서양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말방울은 소리가 쩡쩡하나 워낭보다 여운도 짧아 깊은 맛이 덜하다. 때문에 말의 방울은 한국적인 정감을 주는 워낭이라기보다 그냥 말방울이라고 부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구조는 워낭과 비슷하지만 모양이 서양식이다.
▲ 말방울 구조는 워낭과 비슷하지만 모양이 서양식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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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워낭은 철로 만든 공처럼 생겼는데 자갈 밭에 돌이 구르는 소리가 난다. 스위스 워낭은 서양종을 납작하게 눌러 놓은 모양이 특이하였으나 우리의 워낭에 비해 소리가 탁했다. 관광 상품이이기 때문인지 값도 생각보다 턱없이 비쌌다고 기억한다.

워낭이라는 명칭이 주는 친근감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소방울이다. 
크기도 타조알만하다.
▲ 중국워낭 워낭이라는 명칭이 주는 친근감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소방울이다. 크기도 타조알만하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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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을 소에 달았던 이유를 정리해놓은 글은 보이지 않는다. 어릴 적 할아버지로부터 "소는 겁이 많은 동물이라 '핑갱'이를 달아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개인의 생각이지만 일차적으로는 핑갱이가 현실적으로 소도둑을 막아준다는 말로 이해한다. 그보다는 할아버지는 워낭이 질병 같은 액운, 귀신 등을 막아주는 물건이라고 믿으셨지 않았나 싶다. 원래 일월성신 산천 나무 등 모든 사물에 정령이 있었다고 믿었던 우리전통 종교의 측면에서 볼 때 워낭도 주술적인 기원(祈願)의 소산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워낭 소리는 주인과 소가 교감하는 매개였으리라는 짐작도 해본다. 되새김질 하는 소의 방울 소리가 일정하게 들리면 주인은 안심하고 잠들었을 것이다. 배고픈 소가 여물이 빈 구시를 바라보며 워낭을 흔들면 주인은 외양간으로 달렸을 것이다. 워낭소리가 거칠면 주인은 소의 상태가 다름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워낭이 들리지 않으면 헛기침하며 봉창문을 열었을 것이다.

워낭은 자신을 지켜줄 무기가 변변찮은 소에게 워낭은 구원의 신호였고, 쇳소리를 싫어하는 산짐승에게 자신을 방어하는 무기가 되었을 것이다. 한 마디로 워낭소리는 소를 지켜주는 신성한 소리요, 외양간에서 들리는 워낭소리는 가난한 시절 농촌에서 부를 상징하는 소리이기도 했을 것이다.

워낭을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다는 기록은 없다. 개인적으로 일반 대장간에서 주문 생산하였는지 아니면 유기 대장간에서 대량 생산하여 전국에 유통시켰는지도 알 수 없다.

서재의 문에 달아놓은 워낭. 소리가 맑다.
▲ 워낭 서재의 문에 달아놓은 워낭. 소리가 맑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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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골에 소는 늘었지만 워낭소리는 듣기 어렵다. 소의 기록을 알려주는 바코드가 귀에 달려 있을 뿐이다. 침묵의 외양간이 된 것이다.

나에게 '핑경' 혹은 '핑갱'이라는 명칭으로 남은 워낭소리는 고향의 소리이다. 어릴 적 뒷골에서 소를 먹이며 들었던 동무들의 다툼과 울음과 웃음 소리, 소를 몰고 돌아오는 길에 보았던 노을을 떠올리게 하는 소리이다. 밤에는 외양간 옆의 측간에 앉은 나에게 무섬증을 쫓아주던 워낭소리. 할아버지의 할머니의 기억을 살려주는 소리. 젊은 시절부터 워낭을 한 두 개씩 모았던 까닭은 고향과 어린 시절을 향한 추억 때문이었다. 지금도 서재로 들어오는 문에 달아놓은 워낭은 드나드는 사람을 반겨주고, 책상 위 손 닫는 곳에 둔 워낭은 헝클어진 생각을 모아주는 좌종(坐鐘)의 기능을 한다.

워낭. 없다고 해도 사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는 물건이다. 이제 주술적인 효험을 기대하는 사람도 없다. 관광지의 상품이 되어버린 워낭. 그러나 돌아갈 고향을 잃은 사람들에게 워낭을 하나쯤 곁에 두기를 권하고 싶다. 워낭을 가만히 흔들면 쏟아지는 고향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 필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워낭소리, #말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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