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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편으로도 이렇게 속이 후련해 질 수 있다. 특히 약자가 절대 권력을 가진 강자를 상대로 싸워나가는 과정은 늘 관객에게 감동을 준다. 영화 포스터 카피처럼 '상식없는 세상을 향한 한 남자의 통쾌한 한방'이 비록 카운터펀치는 아닐지라도 권력자에게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날리는 헛방에도 관객은 함께 분노하고 통쾌해 한다.

 

이런 점에서 <부러진 화살>은 영화적 재미와 사회적 메시지가 조화롭게 담긴 웰메이드 영화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이 영화가 논란이다. 이 논란의 중심에는 주로 전문가들이 있으며 핵심은 이 영화의 사실성 판단 여부다. <부러진 화살> 제작진은 기본적으로 법정 실화극을 표방하며 재판장면은 100% 사실을 재구성 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 이 주장은 파워 트위터 이용자들에 의해 재생산 되면서 순식간에 확산되었다.

 

기본적으로 사실에 입각한 영화가 맞다. 제작진의 주장대로 영화상의 재판과정은 대부분 실제 재판과정의 녹취록을 토대로 구성되었다. 영화의 재판과정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실존인물이기도 하고 영화의 주인공이기도 한 김명호는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한 박 판사를 단순히 겁만 주려고 했다.

 

재판과정, 100% 사실을 재구성한 것인가?

 

하지만 돌발적 상황으로 박 판사가 전치 3주의 상해를 입게 되면서 김명호는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집단, 흉기상해)으로 재판을 받게 된다. 그런데 논리적으로 너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다. 활에 직접 맞았음에도 고작 2센티미터의 얕은 상처만 난 점, 입고 있었던 와이셔츠에는 피가 묻지 않았다는 점, 또 가장 중요한 증거자료인 부러진 화살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점 등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결국 영화를 통해 관객들은 박 판사의 자작 상해극일 수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된다. 영화에서나 실제 재판 녹취록에서나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한 어떠한 입증도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재판과정이 100% 사실을 재구성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기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영화에서는 시간적인 제약 때문에 실제 긴 재판과정을 상당 부분 생략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 많은 사실 중 필요한 부분을 선별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영화에서는 재판부가 모든 재판을 일방적이고 독선적으로 진행하며 피고나 변호인이 주장하는 것은 모두 기각 또는 보류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실제 항소심 마지막 공판에서 재판장이 바뀌기 전까지 - 재판장이 바뀐 뒤로는 녹취록이 없어 실제 내용을 확인하기 어렵다 - 판사는 피고인과 변호인의 대부분 주장들에 대해서 타협하고 수용하려는 자세를 보였다. 또한 김명호는 단 한 번도 석궁을 들고 계획적으로 범행을 자행 또는 모의 한 것에 대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핵심은 자신이 10명을 살인했어도 증거가 없으면 무죄라며 검찰은 자신이 상처를 입혔다는 증거를 대야 한다"고만 주장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사실과 진실 사이

 

이번 사건에서 분명한 사실은 김명호는 석궁을 들고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한 판사를 계획적으로 찾아갔다는 것이다. 또 어찌되었든 해당 판사는 그로 인해 상해를 입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반면에 우리는 김명호가 실제로 위협만 하기 위해서 석궁과 회칼 등을 챙겨서 갔는지 아니면 진짜로 응징을 하기 위해서 찾아갔는지 진실을 알 길이 없다.

 

또 그 과정에서 생긴 사고가 김명호의 우발적 범행인지 아니면 홍 판사의 자작극인지의 진실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 사건의 진실이 꼭 밝혀지길 바란다. 하지만 진실의 결과와 상관없이 김명호는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범죄는 성립된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약자의 입장에서 억울한 측면이 많겠지만.

 

'법감정'이라는 말이 있다. 실정법이나 법권위자의 유권해석과는 상관없이 어떠한 사안이나 사건에 대해 대중들이 가지게 되는 법률적인 견해를 말하는 것이다. 이번 영화를 통해 드러난 많은 대중들의 법감정은 사회적 약자의 대한 절대 권력의 부당함일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사법체계를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분노다. 하지만 절대 권력의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이라면 혹시 이번 영화는 조준부터 잘못되었거나 불완전 장전으로 인해 화살이 엉뚱하게 빗나가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선다.

 

김명호는 "자신의 권리를 빼앗기고도 분노하지 않은 인간은 인간답게 살 자격이 없다"며 자신이 석궁을 들고 간 것에 문제제기 하는 사람에 대해서 "'날 죽여주시오' 하고 가만히 있는 무골충 병신이라며 자신의 비겁함에 대해서 자책이나 하라"고 했다. 어쩌면 한 사람의 극단적인 영웅주의에 휩쓸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우리는 대부분 법에 대해서 잘 모르는 문외한이다. 다만 대부분 불의에 반드시 불의로 맞서는 것이 정의라는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조금 멀고 시간이 더 걸려도 합법적으로 싸우는 것이 '무골충 병신'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를 계기로 사법당국의 무소불위 권력에 대한 경종이 울려진다면 그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폭력은 절대권력자뿐만 아니라 약자라고 해서 정당화 될 수는 없다. 


태그:#부러진 화살, #석궁사건,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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