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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박정희를 용서했는가>를 읽으며 '용서'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했다. 소학교 교사, 군국주의 일본군 장교, 광복군, 남로당 군사조직 프락치, 국군장교, 5.16 구데타로 권력 장악, 유신 구데타를 통한 종신집권까지…. 끝없이 변신했던 박정희는 절대 권력의 피해자들 앞에서, 역사 앞에서 용서를 구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졌다.

<누가 박정희를 용서했는가> 책표지
 <누가 박정희를 용서했는가> 책표지
ⓒ 책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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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그를 대신해서 참회하고 용서를 구한 사람들도 없다. 오히려 자신들의 권력과 기득권 유지를 위해 죽은 그를 앞세우거나 그가 남긴 유산을 유용하게 활용해왔다. 그렇게 30여 년 세월이 흐른 지금. 그가 남긴 유산은 '우상'이 되고 '신화'가 돼 여전히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정희에 대한 '용서'는 가능한 걸까.

고문이 횡행하던 그때를 기록하다

박정희 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고문은 일제시대 고등경찰이나 헌병대에 의해 자행된 고문 이상으로 잔인하고 끔찍했다. 알몸으로 팔다리를 교차해 묶고 그 사이에 큰 막대기를 끼우고 책상 사이에 매달고 얼굴에 주전자로 물을 쏟아 붓는 '통닭구이' 고문, 진공실 고문, 구타….

이런 고문들은 이내 의문사로 이어졌다. 야당 정치인, 종교인, 학생운동 간부, 실세의 측근 등 고문 피해자들도 다양했다. 박정희 권력이 1인 독재를 중심으로 하는 공포정치를 기반으로 유지됐기 때문에 집권 세력의 중심 인물조차 말 한 마디 실수로도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중앙정보부와 군부가 자행했던 고문과 테러의 뿌리는 무엇일까. 박정희는 일본군 장교 출신이었던 점을 생각한다면 일제 통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박정희가 비명횡사한 후에도 고문은 한동안 이어져 박종철, 김근태, 권인숙 등 피해자들을 양산했다. 5.16 구데타에 뿌리를 둔 후계 체제인 또 다른 군부 통치가 상당기간 이어졌기 때문이다. 고문당한 사람들은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고 세상을 떠났지만, 고문을 자행했던 사람들은 위풍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권을 탐한 것도 아니고 배운 대로 민주주의를 지키자는 어린 대학생을 그렇게도 모질게 다루었다. 감옥에 가는 대신 군대로 강제징집당해 3년 내내 행정반 근무를 금지당한 채 소총수만 하다가 제대했다. 나중에 신문기자를 하다가 광주시민항쟁의 자유보도운동으로 강제 해직당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본문 중에서)

저자 김재홍(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도 박정희 권력의 피해자였다. 1971년, 대학가에 위수령이 선포된 상태에서 서울대 총학생회장 김상곤(현 경기도 교육감)과 함께 체포됐다. 그는 동대문경찰서를 거처 중앙정보부로 압송돼 처참하고 굴욕적인 고문을 받았다.

박정희 시대를 살아가면서 온몸으로 고통스럽게 부대낀 저자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취재를 했다. 그는 <오마이뉴스>에 '5.16 구데타 50년, 박정희 권력 평가'를 연재했고, <누가 박정희를 용서했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엮어냈다.

"특히 그 시대를 살지 않은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잘못된 신화와 우상을 깨고 우리 스스로 바른 길을 찾아 나서기 위한 염원에서 내가 가진 모든 열정을 바치는 마음으로." (본문 중에서)

잘못된 신화와 우상을 깨고...

박정희 대통령 덕에 '근대화'도 이뤘고, '경제 성장'으로 이만큼 살게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향수처럼 그 시절을 회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박정희가 추구했던 '근대화'나 '경제성장'은 물론 인륜까지도 자신의 장기독재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

헌법을 뜯어고쳐 종신집권의 길을 열고, 복수 후보의 경쟁조차 허용하지 않는 찬반투표로 대통령을 뽑았다. 그런 유신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정치인, 대학생, 교수, 종교인, 언론인들이 영장도 없이 잡혀가 고문 당하고 투옥되고, 의문사로 생을 마감했다. 자신에게 반대하는 그 누구도 용납하지 않았다.

박정희는 사흘에 한 번 꼴로 이름이 알려진 스타 연예인, 연예계 지망생 신참 연예인을 양 옆에 앉히고 비밀 요정에서 술판을 벌이면서도 건전한 미풍양속을 명분으로 가위를 동원해서 장발 단속을 했다. 또한, 무릎 위 몇 센티를 기준으로 미니스커트 단속을 감행하기도 했다. 소설과 영화는 물론 대중가요도 체제 비판이나 허무주의를 조장한다는 명분으로 철저하게 단속했다.

눈에 거슬리는 사람을 체포 구금하고 고문하는 데서 머무르지 않고 사유재산까지 강탈한 박정희. 1962년 그는 중앙정보부에 지시해 부일장학회의 재산을 강제기부 받았고, 부일장학회는 5.16 장학회를 거쳐 정수장학회로 이어져 사유재산처럼 관리돼 왔다.

진정한 용서의 의미

'용서'란 무엇인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반성하고, 피해자가 이를 받아들일 때 성립된다. 하지만 우리 근현대사에서는 이런 진정한 '용서'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일제에 빌붙어 일신의 영달과 부귀 영화를 탐했던 친일파, 영구집권을 탐했던 독재 권력, 독재에 빌붙어 일신의 영달과 부귀영화를 탐했던 세력, 그들은 역사 앞에서 진심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구한 적이 없다.

우리는 친일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탓에 독재 과거에 대한 청산도 이뤄지지 못했다.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하면서 권위주의적 지도자와 일사분란한 정치 질서를 갈구하는 신드롬도 그런 배경 속에서 여전히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이런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저자가 던져주는 메시지가 가슴을 울린다.

"독재 권력자가 아버지든 아니든 그가 벌인 '더러운 전쟁'의 전리품에서 이득을 취한 정치인이 유력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는 나라에서 사는 국민들이 불쌍하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무엇보다 먼저 박근혜 의원은 그 불법 '장물'부터 깔끔하게 처리한 후에 차후 정치 행보를 도모할 일이다." (본문 중에서)

덧붙이는 글 | <누가 박정희를 용서했는가> (김재홍 씀 | 책보세 | 2012.01 | 1만5000원)



누가 박정희를 용서했는가 - ‘동굴’ 속의 권력 ‘더러운 전쟁’

김재홍 지음,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2012)


태그:#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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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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