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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서울역 거리에서 한 노숙인이 잠을 자고 있다.
▲ 서울역 노숙인 지난 21일 서울역 거리에서 한 노숙인이 잠을 자고 있다.
ⓒ 구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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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가 내린 지난 21일 서울역 광장은 고향으로 향하는 시민들로 분주했다. 명절 선물 보따리를 든 시민들은 삼삼오오 역사 안으로 들어갔지만, 노숙인들은 서울역 13번 출구로 향했다.

남루한 행색의 노숙인들은 시민들의 차가운 시선을 뒤로 한 채 천천히 걸었다. 이들이 향한 곳은 노숙인 무료급식소인 '따스한 채움터'였다. '따스한 채움터'는 서울시가 20억 원을 들여 건물을 짓고, 서울노숙인복지시설협회가 운영하는 실내 급식소다.

중식 배식시간인 정오가 되자 '따스한 채움터'의 자원봉사자들이 식사를 하려는 노숙인들과 독거노인들을 안내했다. 300여 명의 노숙인들은 밥을 빨리 먹기 위해 새치기하는 법이 없다.

설 연휴를 맞아 이 날은 '제육볶음, 동태국, 양파조림'이 배식되었다. 매일 고기반찬이 배식되지는 않지만, 한끼라도 따뜻한 국과 밥을 앉아서 먹을 수 있기에 '따스한 채움터'는 하루 평균 1000여 명의 노숙인들과 독거노인들이 이용한다. 이용객의 75% 정도는 노숙인이고, 나머지는 동자동 등 쪽방촌에 사는 독거노인들이다.

'따스한 채움터'의 한 관계자는 "(매 끼니) 쌀 60kg 정도의 밥을 짓는다"며 "노숙인들이 많이 몰리는 날에는 음식이 모자라 못 드시는 분도 있다"고 말했다.

배고픈 명절, 그리운 고향...하지만 갈 수 없다

"여기 밥이 맛있죠. 밥도 많이 주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여기 센터가 없으면, 밥 먹기 힘들죠."

식사를 마치고 나온 이 아무개(61)씨의 말이다.

이씨는 심장질환 때문에 직장을 그만 두고, 3개월 전 노숙인이 되었다. 가끔씩 연락이 되던 가족들도 이씨가 노숙인이 되자 연락이 끊겼다. 서울역 인근을 배회하다 끼니 때가 되면 '따스한 채움터'에서 식사하는 것이 이씨의 유일한 일과다.

그는 "명절이 되니 가족들 생각이 많이 난다"며 "다른 사람들은 명절 때가 되면 고향에 내려가는데, 너무 보고 싶다. 하지만 이 꼴을 하고 있으니까"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노숙인들이 중식 배식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노숙인들이 중식 배식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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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기자와 인터뷰하는 동안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뼈와 심장이 안 좋아 일자리 구하는 게 쉽지 않다. 변변한 치료 또한 받을 수 없으며, 현재 지내고 있는 쉼터의 규칙상 2주 후에는 떠나야 한다.

기자가 새해 소망이 무엇이냐고 묻자 이 씨는 "정부에서 노숙인들을 위해 방이라도 구해주면 밖에서 얼어 죽지는 않을 것"이라며 "아파서 일도 못하고, 돈도 없으니 노숙자가 될 수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개봉동에 사는 장아무개(84) 할머니는 식사를 하기 위해 집에서 멀리 떨어진 '따스한 채움터'를 찾는다.

장 할머니는 "여기 아니면 끼니를 해결할 수가 없다"며 "형편이 어려워 급식소를 찾는다. 많이 걸어 다니기 때문에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

장 할머니는 추위 탓에 스카프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스카프가 미처 가리지 못한 얼굴은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다른 노숙인들에 비해 활동량이 많은 할머니는 기자에게 "무릎에 골병이 들었다. 많이 아프다.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

환갑이 넘은 할머니의 아들은 경비일을 한다. 아들이 벌어오는 100만 원의 월급과 할머니 앞으로 지급되는 기초노령연금 10만 원이 네 식구의 생활비다. 월세 50만 원을 내고나면, 50만 원으로 네 식구가 한달 동안 생활해야 한다.

장 할머니는 "아들이 벌어오는 생활비로는 빠듯하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나라에서 도와주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며 "팔순이 넘었다. 더 바랄 것이 없다"고 말했다.

독거노인들 또한 상황은 비슷했다. 쪽방촌에 사는 한 할아버지는 "집에서는 (음식을) 해먹을 수도 없고, 급식소에서 겨우 식사를 한다"고 말했다. 1평도 안 되는 쪽방촌에서는 요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 중식 배식시간 동안 노숙인들과 독거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거나 재활용품을 모으고 있었다. 또한 일부 노숙인은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줄을 섰다. 예배에 참석하면 간식을 먹을 수 있다.

노숙인 지원단체 홈리스행동은 서울역 인근의 노숙인을 250여 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서울역광장에서부터 '따스한 채움터'가 있는 곳까지가 이들을 위한 유일한 공간이다. 이 공간을 벗어나면 그들은 시민들의 차가운 시선을 견뎌야만 한다. 50m도 안 되는 짧은 거리에서 그들은 술을 마시거나, 앉아서 쉴 수 있다.

'따스한 채움터'의 관계자는 "많은 시민은 노숙인이 일 안 하고, 놀고 먹는 이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노숙인들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아프거나 갑작스럽게 실직을 당한 이들이 대부분이다"며 "이들이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14년 동안 명절에 고향 못 갔다" 

14년째 서울역 노숙인들을 위해 급식봉사를 하는 김해연 원장.
▲ 김해연 원장 14년째 서울역 노숙인들을 위해 급식봉사를 하는 김해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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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생활의 가장 큰 괴로움은 배고픔과 추위일 것이다. 서울역 인근 노숙인 250여 명의 배고픔을 일부 해결해 주는 '따스한 채움터'는 지난 2010년 5월에 문을 열었다. '따스한 채움터'를 세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서울역에서 14년 동안 노숙인들에게 무료급식 봉사를 한 김해연(53) 원장의 노력이 있다.

김 원장은 목사인 남편과 함께 14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서울역 노숙인을 대상으로 무료급식 봉사를 했다. 다음은 김 원장과의 일문일답.

- 노숙인들에게 급식 봉사를 시작한 계기는?
"남편이 목사다. 목회하다가 노숙인들을 처음으로 만났다. 그때만 해도 (노숙인들에게) 밥주는 사람이 없었다. 마음이 아파 시작했다."

- 정말 오랜 기간 동안 봉사를 했다.
"오랜만에 오는 이들은 하나같이 아주머니 예전에 예뻤는데, 지금은 많이 늙었다고 한다."

- 힘들지는 않나?
"몸이 아프고, 힘들어서 그만두려 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러지 못 했다.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생전에 아버지께서 힘드니까 급식봉사를 그만두라고 많이 말씀하셨다."

- 서울시에서는 공간만 제공하고, 식비는 지원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이다. 식비가 가장 큰 문제다. 점심, 저녁 두 번 배식하는데 하루에 200만 원 정도 든다. 헌금과 후원으로 유지하고 있다. 14년 동안 급식봉사하면서 집까지 팔았다. 그 정도로 운영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 서울시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시에서 노숙인들이 자활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언제까지 이들이 길에서 살 수는 없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치료해주고, 돌봐서 사회로 다시 내보내야 한다. 나는 밥을 줄 수 있지만, 자활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 식비 지원은 서울시에 바라지 않나?
"서울시에서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에 서울시에서 식비를 제공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 명절인데 고향에는 내려가나.
"14년 동안 한 번도 못 내려갔다. 맏며느리인데, 14년이 되니까 시댁에서도 이해해준다. 한편으로는 미안하다."

- 김 원장을 버티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신앙의 힘이다. 하나님이 나한테 주신 사명이다."

- 새해 소망이 있다면 무엇인가?
"겨울에 노숙인들이 얼어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년 겨울마다 노숙인들이 얼어 죽는다. 그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길에서 죽지 말라고 하나님한테 매일 기도한다."

김 원장은 현재 노숙인들 자활을 돕기 위해 전주에 폐교를 샀다. 폐교를 리모델링해서 노숙인들의 자활, 상담, 치료를 준비하고 있다. 사단법인이 아니기 때문에 운영에 어려움은 있지만, 김 원장은 지역 농촌과 연계해 노숙인들이 농사일로 돈을 벌게 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또 폐교에서 검정고시, 자격증 취득 등 각종 교육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태그:#노숙인 , #서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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