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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유기', '안성맞춤'으로 유명한 경기도 안성시는 서울에서 불과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곳으로, 당일치기로 간단히 답사를 떠날 수 있는 동네다. 그 중에서도 안성시 죽산면은 다양한 불교 문화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도보로도 쉬이 가봄직 하니, 여기서 볼 수 있는 문화재로는 봉업사지, 매산리 석불입상, 죽산리 석불입상, 죽산리 삼층석탑 등이 있다. 좀 더 발품을 팔면 고려 때 송문주 장군이 몽골군을 격퇴한 죽주산성에도 다다를 수 있어서, 성을 한 바퀴 삥 돌면서 느낄 수 있는 선조들의 호국의 얼은 죽산면 답사를 통해 얻는 보너스다.

그러나 이러한 작은 문화재들이 답사객들에게 소소한 감동을 안겨준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들만 보기에는 살짝 싱거운 맛도 없진 않다. 이렇게 '2% 부족한' 답사객들의 허한 마음을 결정적으로 채워줄 답사지로는 그 지역의 명찰(名刹)만한 것이 없다. 이름 있는 절을 둘러보며 문화재들도 보고,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마음의 평온도 찾고, 그리고 절에서 제공하는 공양밥도 얻어먹는다면 이날 답사는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얻는 가히 화룡점정을 찍을 것이다. 죽산면은 이러한 답사객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이름난 절을 갖고 있으니, 바로 칠장사(七長寺)가 그러하다.

칠장사라는 이름이 붙은 데에는 재미난 일화 하나가 전해온다. 고려 초의 큰스님이었던 혜소국사가 이 절에 머물고 있을 무렵, 인근에 약탈을 일삼았던 흉포한 일곱 도적들 중 하나가 때마침 절의 샘터에서 목을 축이려다가 금바가지가 있는 걸 보고는 그걸 슬쩍했던 것이다. 그 후 역시 물을 마시러 온 나머지 도적들도 금바가지를 보고는 제각기 하나씩 훔친 채 자기네들 소굴로 돌아갔다. 그런데 소굴에 돌아와서 보니 그 금바가지들이 모두 평범한 표주박으로 변한 게 아니었던가. 이에 도적들은 혜소국사가 신통을 부린 것임을 알아채고는그동안 일삼았던 악행을 모두 내려놓은 채 혜소국사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열심히 수행한 끝에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니 이때부터 절 이름을 칠장사라 했다고 한다.

칠장사로 향하는 3-2번 버스... '어사 박문수 길' 걸어볼까

칠장사로 향하는 3-2번 버스의 내부. 칠장사의 여러 문화재들에 대한 사진과 설명으로 장식되어 있다.
 칠장사로 향하는 3-2번 버스의 내부. 칠장사의 여러 문화재들에 대한 사진과 설명으로 장식되어 있다.
ⓒ 한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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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차량을 이용한 답사객들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겠지만, 칠장사는 대중교통으로 가기에는 썩 편리한 곳은 아니다. 죽산시외버스터미널을 출발해서 약 15분을 운행한 끝에 칠장사에 다다르는 3-2번 버스의 하루 운행 횟수는 총 4회(오전 6시 40분, 오전 9시 30분, 오후 1시, 오후 6시 30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칠장사에서 죽산시외버스터미널로 돌아오는 버스가 오전 7시 5분, 오전 9시 55분, 오후 1시 25분, 오후 6시 55분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10분 안에 절을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구경한 후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올 수는 없다는 전제 하에 최소 3시간, 최장 5시간 반은 칠장사에 있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결국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답사객들이 칠장사를 답사하기 위해서는 사전 계획을 치밀히 짜야 한다는 얘기다. 이렇듯 답사객들로 하여금 답사 코스를 짜는 데 있어 골머리를 썩게 하는 칠장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절에는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수많은 볼거리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깃들어 있다.

칠장사로 향하는 3-2번 버스를 탈 때부터 답사객들은 지금 내가 절에 가고 있구나 하는 분위기를 금방 느낄 수 있다. 버스 내부를 칠장사에서 볼 수 있는 문화재들의 사진과 간략한 설명들로 채워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뒷문에는 합장하고 있는 귀여운 동자승 그림이 그려져 있다. 칠장사 측에서 따로 운영하는 버스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3-2번 버스를 타면 칠장사에 다다르게 됨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자기 지역의 문화재에 대한 죽산면 주민들의 애정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라 하겠다.

칠장사 철당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어 있다.
 칠장사 철당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어 있다.
ⓒ 한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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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류장에 도착하여 일주문을 통과하기 전에 꼭 봐야 할 것이 있으니 바로 칠장사 철당간이다. 해당 절을 표시하는 깃발을 내걸 때 사용한 당간은 현재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으며, 대개 그 당간을 지탱한 지주석 한 쌍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드물게도 칠장사는 높다란 철당간이 아직까지도 현존한 채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철당간을 구성한 철통의 수가 원래는 28개였다가 지금은 14개로 줄어든 상태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사진 한 장에 다 담아내기가 벅찰 정도로 그 높이는 여전하다.

철당간을 둘러본 뒤 일주문을 통과해서 얼마 안 오르면 널따란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시선을 왼쪽으로 돌려보면 안내문이 붙어 있는 자그마한 산길을 볼 수 있는데, 이름하야 '어사 박문수 길'이다. 수 차례 과거를 보았지만 연거푸 실패해서 크게 상심한 박문수에게 그의 어머니는 칠장사 나한전에서 기도를 드리는 건 어떻겠냐고 권했다.

그래서 1723년에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향하던 도중 칠장사에 들러 기도를 드렸는데, 그날 밤 부처님이 박문수의 꿈에 나타나 과거시제의 답 8줄 가운데 7줄을 가르쳐주고는 사라지셨다고 한다. 다음날 칠장사를 나선 그는 '어사 박문수 길'을 통해 한양 시험장에 도착하여 부처님이 일러주신 7줄과 자신이 손수 마련한 나머지 한 줄을 답안지에 써서 급제에 성공하니, 이후 칠장사와 '어사 박문수 길'이 유명해졌음은 말할 필요가 없겠다.

칠장사 소조사천왕상.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5호로 지정되어 있다.
 칠장사 소조사천왕상.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5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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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에게 짓밟힌 악인상(像). 벌을 받는 악인들의 모습이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다.
 사천왕에게 짓밟힌 악인상(像). 벌을 받는 악인들의 모습이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다.
ⓒ 한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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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 박문수 길'을 지나친 채 계속 오르다 보면 천왕문에 다다르게 된다. 다른 절들과 마찬가지로 칠장사의 천왕문 안에도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으나, 이 절의 사천왕상은 좀 특별하다. 대개 사천왕상은 나무를 깎아 만들지만, 칠장사의 사천왕상은 진흙을 빚어 만든 소조상이기 때문이다. 답사객들은 진흙으로 저렇게 웅장하고 생동감 있는 사천왕상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대해 놀라워 하면서 사천왕상을 흥미롭게 바라볼 것이다.

설사 이 사천왕상이 진흙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모르더라도, 사천왕상의 면면을 찬찬히 뜯어보면 그것만으로도 답사객들은 엷은 미소를 띄울 수 있다. 특히 사천왕들이 밟고 있는 악인의 모습들이 재미있다. 사천왕의 발에 짓눌려 금방이라도 비명을 지를 것 같은 사람에서부터, 사천왕의 다리를 부여잡은 채 제발 용서해달라고 빌고 있는 것 같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상을 띠고 있는 악인들의 상(像)을 보면 절로 키득거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림으로 만나는 궁예와 임꺽정 그리고 병해대사

봉업사지 석조여래입상. 보물 제983호로 지정되어 있다.
 봉업사지 석조여래입상. 보물 제983호로 지정되어 있다.
ⓒ 한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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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을 통과해서 요사채를 지나치면 대웅전 영역에 이르게 된다. 중앙에는 삼층석탑이 있으며, 대웅전 오른편으로는 섬세하게 조각된 석불입상 한 기가 서 있다. 보물 제983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불상은 본래 봉업사지에 있던 것을 죽산중학교에 옮겨 놓았는데, 학생들의 손길을 너무 많이 입어 훼손의 정도가 점점 심해지자 이 곳 칠장사로 다시 이전되었다고 한다. 얼굴 부분의 마모가 심한 게 안타깝긴 하지만, 세세하게 표현된 법의(法衣)와 광배의 화려한 무늬를 보고 있자면 보통 불상은 아님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대웅전 주변에는 지장보살상과 시왕상을 모신 명부전이 있다. 그런데 명부전 외벽에 그려진 벽화가 재미있다. 혜소국사와 일곱 도적이 그려진 건 그렇다쳐도, 후삼국시대 때 큰 세력을 일궈냈던 궁예의 그림에서부터 조선 중기를 주름잡던 의적 임꺽정과 그 무리들의 그림까지 그려져 있으니 말이다.

일단 궁예의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자면 어린 궁예가 활을 쏴서 과녁을 백발백중 맞추는 장면을 그린 것도 있고, 성인이 된 궁예가 조용히 참선하는 모습을 그린 것도 있다. 전해 내려오는 일화에 따르면 궁예는 10살이 될 때까지 유년기를 칠장사에서 보냈으며, 그때 활쏘기를 했던 활터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고 한다. 선뜻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궁예가 처음 의탁했던 기훤의 세력이 칠장사 근방인 죽주산성에 근거지를 마련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명부전 외벽에 그려진 임꺽정과 그 무리들.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칠장사만의 벽화이다.
 명부전 외벽에 그려진 임꺽정과 그 무리들.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칠장사만의 벽화이다.
ⓒ 한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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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의 그림을 다 봤으면 이제 임꺽정의 그림을 감상할 차례다. 임꺽정과 스승 병해대사 및 부하들이 쭉 늘어서 있는 그림도 있고, 말을 탄 임꺽정의 그림도 있으며, 거대한 바위를 들어올리며 힘자랑을 하는 임꺽정의 모습을 그린 것도 있다. 임꺽정과 칠장사 간에는 어떠한 연관이 있을까. 임꺽정의 스승이었던 병해대사는 본래 갖바치인 사람이었다. 가죽신을 만드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 갖바치는 당시 양반들로부터 지독한 멸시를 받은 대표적인 천민 출신이었다.

병해대사는 이 곳 칠장사에 상주하면서 지역 백성들에게 가죽신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줬다. 당연히 백성들은 병해대사를 깊이 존경하게 되었으며, 임꺽정 또한 병해대사를 정신적 지주로 삼은 뒤 그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얻는다. 자신의 스승을 만나기 위해 임꺽정이 칠장사를 수시로 드나들었음은 물론이다. 후에 병해대사가 85세에 입적하자 백성들은 그를 기리며 목상을 만들어 칠장사에 모셨다고 전하니, 칠장사는 당시 핍박받던 백성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유서 깊은 절이라 하겠다.

칠장사 혜소국사비. 보물 제48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 비신, 귀부, 이수가 분리되어 있는 상태다.
 칠장사 혜소국사비. 보물 제48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 비신, 귀부, 이수가 분리되어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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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나한전 옆에 있는 혜소국사비가 임진왜란 당시 왜장 가토 기요마사에게 신통력을 부린 이야기, 아버지 김제남과 아들 영창대군이 사사된 뒤 광해군으로부터 폐모의 위기에 몰려 급히 칠장사에 피신한 인목대비의 구구절절한 사연 역시 놓치기에는 아까운 칠장사와 관련한 일화들이다.

이렇듯 칠장사에는 보물 문화재들뿐만 아니라 재미난 일화들도 많이 깃들어 있어, 답사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준다. 더욱이 오후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 여는 공양간에서는 방문객들 누구나 절밥을 얻어먹을 수 있기에, 허기진 뱃속 또한 포만감으로 채워넣을 수 있다. 그리고 절 경내를 어슬렁거리는 커다란 검정 개와도 장난치면서 놀다 보면, 죽산으로 향하는 3-2번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릴 것이다. 이렇게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가 많은 칠장사를 가까이에 두고 있는 서울 및 수도권 시민들은 분명 커다란 행운을 늘 옆에 두면서 살고 있음이라.

덧붙이는 글 | 지난 17일에 다녀왔습니다. 필자는 현재 네이버에서 '입실론의 인터넷으로 떠나는 문화역사여행'이라는 인기없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차가 없어도 교통비만 있으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쉽게 해당 답사지에 가게끔 하는 것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저의 목적입니다.



태그:#칠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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