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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엠립1

붉은 황토, 꾀죄죄한 어린이들, 풀썩풀썩 날리는 붉은 먼지와 남루한 도시. 그런가 하면 전통식으로 지어진 멋진 공항 건물과 은근히 다가와 뇌물을 요구하는 공무원들, 세련된 현대식 호텔이 즐비한 거리와 바로 건너편의 한가한 툭툭이. 부조화의 조화, 처음 씨엠립은 그런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5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 온 머나먼 이곳 캄보디아의 날씨는 후텁지근했고 여기에 앙코르와트가 있다는 사실이 별로 믿기지 않는 생경스러운 도시에 우리 가족은 도착했다.

여장을 풀 호텔은 이름도 거창한 ROYALE EMPIRE HOTEL. 호텔로 들어서니 열대지방 특유의 향료(음식에 넣거나 건물에 배어 있는) 냄새가 살짝 거슬렸지만 이국땅이라는 것을 떠올리며 적응하기로 하며 짐을 풀고 저녁식사를 하기위해 압살라 춤과 함께 먹는 현지식 뷔페식당으로 갔다. 음식은 그런 대로 먹을 만했다. 압살라 춤도 유난스럽지 않은 모습이었다. 단지 조금 느린 춤사위와 단조로운 악기소리 그리고 가끔씩 이어지는 정지동작이 어색했지만 이 모든 것이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씨엠립의 밤길을 보았다. 거기에는 이삼십년 전 쯤 내가 살던 용주면 고품이나 안의면이나 별반 차이 없는 어둡고 칙칙한 밤 풍경 그대로였다. 우리 아이들은 호텔방에서 신이 났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저들의 태도와 나의 이 태도는 어찌 이리 다르다 말인가? 첫날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씨엠립2

아침, 우리나라보다 2시간 늦다는데 별 느낌이 없다. 밤새 비가 왔었는지 거리는 살짝 젖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침 기온은 높지 않았다. 조식 뷔페를 먹었는데 쌀국수 국물이 의외로 시원했다. 처음이라 그런가 아니면 본래 이런 것이 내 구미에 맞았는지 좀 의아해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오늘 드디어 앙코르를 본다"는 생각을 하니 새로운 것과 위대한 창조물이 대한 궁금함에 조금 흥분됐다.

오기 전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여행기를 통해 앙코르와트가 얼마나 위대한지에 대해, 또 얼마나 놀라운지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내 눈으로 보는 것만 하랴! 가이드의 이런 저런 설명을 들으며 앙코르 와트 유적 중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는 반데스레이로(정말 보지 않았더라면 두고두고 후회할 뻔 했다) 향했다.

반데스레이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진 사원입구
▲ 반데스레이 사원 입구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진 사원입구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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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사암으로 된 작은 사원이었다. "여인의 성곽"이라는 뜻의 이 사원은 앙코르에서 2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사원으로서 쟈야바르만 5세의 스승인 바즈나바라하라에 의해 건립된 사원이다. 입구부터 보이는 돌들이 심상치 않다.

붉은 색 돌에 알 수 없는 문양과 꽃들이 즐비하게 부조되어 있다. 몇 개의 떨어져 나온 돌덩이에서 벌써 나는 압도당하고 말았다. 우리의 인동 당초문을 닮기도 했고 어쩌면 연화문을 닮은 듯 했지만 엄밀히 그것과는 사뭇 다른 문양과 함께 인체의 비례를 완벽하게 유지한 체 조각되어 있는 인물들의 부조는 경이와 신비 그 자체였다.

반데스레이 사원 탑 상단의 부조 가운데가 부처의 모습이다.
▲ 놀라운 부조 반데스레이 사원 탑 상단의 부조 가운데가 부처의 모습이다.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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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의 모든 기둥과 벽면 그리고 지붕까지 모두 어디 한 군데도 허술하게 비워두지 않는 놀라운 부조(더군다나 각 부조마다 왕의 역할 또는 왕의 위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부조)를 보니, 석굴암 본존불의 세계 외에는 또 다른 경지를 알 수 없었던 나에게 또 다른 세계가 열리는 듯 했다.

과연 놀라운 것들이었다. 사암은 모래가 굳어서 된 돌이다. 그것도 이곳 특유의 황토색 모래가 굳어서 된 그 돌에 1000년 전 쯤 이 땅에 사람들은 그들의 이야기와 신념과 혼을 저 붉은 돌에 이렇듯 섬세하고 이렇듯 화려하게 새겨놓았다.

반데스레이 사원 중앙탑 기단부의 부조
▲ 탑 기단부의 부조 반데스레이 사원 중앙탑 기단부의 부조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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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셔터를 눌렀지만 사진이라는 것이 한정된 프레임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내 눈조차 한정된 프레임에 갇혀 있으니 이 사원의 아름다움은 딱 내 분량만큼 느끼고 간직할 수밖에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먼저 온 이들은 석양에 장밋빛으로 빛나는 이 사원 이야기를 했지만 석양이 아닌 오전에도 저 붉은 빛은 나의 모든 것을 마비시킬 만큼 강렬했다.

무엇이 문화의 경계를 넘어 시간의 경계를 넘어 먼 먼 이국의 여행자에게 이토록 감동을 주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완벽에 가까운 조화의 아름다움이요, 또 피와 땀을 쏟아 부은 그들, 천 년 전 석공의 魂혼을 지금 우리가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이드는 시간이 없는 관계로 다른 목적지로 이동하자고 했지만 나는 여기서 그냥 하루 종일을 보내도 좋을 것 같았다.

반데스레이 사원의 건립자가 왕에게 남긴 가르침을 형상화한 중앙탑의 부조
▲ 왕에 대한 스승의 가르침 반데스레이 사원의 건립자가 왕에게 남긴 가르침을 형상화한 중앙탑의 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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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고 가는 길에 캄보디아 아이들의 큰 눈망울을 자주 본다. 남방인 특유의 큰 눈과 가무잡잡한 피부, 그리고 풀썩 거리는 황토먼지와 그들의 맨발, 동시에 입에서 언제나 나오는 원 달러 소리, 학교 갈 나이들인데 학교는 꿈도 못 꾸고 하루 종일 외국인들에게 물건을 팔고 있으니 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따 프롬

크메르의 미소가 보이기 시작하는 얼굴 탑
▲ 따 프롬의 입구 크메르의 미소가 보이기 시작하는 얼굴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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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 프롬은 앙코르의 위대한 건축왕인 자야바르만 7세가 자신의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브라흐마 신에게 헌납한 사당 겸 사원이다. 힌두교의 성전인 셈이다. 이곳 앙코르는 불교와 힌두교의 복합 사원이다. 불교는 처음 불전을 결집하고 종교로서의 모양을 갖춘 인도의 아소카왕의 다른 종교를 존중하라는 칙령을 바탕으로 성장해 왔기 때문에 그것이 힌두교든 무엇이든 모두 그속에서 융화되고 또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해 갔다. 따라서 이 앙코르 와트 전체 사원에는 정확하게 불교 사원인지 힌두교 사원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뚜렷한 경계가 없다.

두 종교의 정신이 모두 반영된 사원인 셈이다. 자야바르만 7세라는 왕은 보기 드문 효자였던 모양이다. 어머니를 위한 보석의 방과 함께, 돌아가신 뒤에 마음껏 울기 위해 만든 통곡의 방등이 있는 것을 보면 효자였을 것이다. 물론 후세의 호사가들이 부친 의미 없는 이름일 수도 있겠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머니에 대한 애정은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년동안 밀림속에서 나무와 한 몸이 된 사원
▲ 거대한 나무에 휘감긴 따 프롬 사원 천년동안 밀림속에서 나무와 한 몸이 된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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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원의 첫 모습은 폐허였다. 온갖 종류의 돌덩이들이 부서진 상태로 입구에 쌓여있고 거대한 나무들은 사원을 휘감고 있었다. 영화 촬영지가 될 만큼 기괴한 모습의 나무들은 인간이 자연을 결코 지배할 수 없음을 조용히 그러나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렇지만 현재 저 나무들은 안타깝게도 더 이상 생장을 할 수 없도록(건물을 더 파괴하지 못하도록) 매년 약물을 주사한다 하니 그 또한 자연을 거부하려는 인간들의 행동인지라 언젠가는 그 역시도 중단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압살라(춤 추는 무희)의 완벽한 부조
▲ 따 프롬의 비너스 압살라(춤 추는 무희)의 완벽한 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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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여기저기를 돌면서 크메르인들의 예술적 감각이란 의외로 단순하다는 것을 슬며시 느끼며 조금 안도의 마음(사실 나는 굉장한 문화적 우월주의자인 모양이다)이 들기도 했다. 그들의 조각은 늘 한결 같았고 그들의 집도 언제나 한결 같다는 단순성과 조각의 놀라운 정교함의 바로 이어져 있는 진부함과 나른함 등이 느껴졌다. 단순 강직하며 간결한 동북아 문화권의 이방인인 내가 보기에는 그런 것들이 이들의 한계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의 문화재들 중 이들의 것과 비교할 만한 것은 거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는 심오하며 동시에 강건한 정신을 지니고 있는 반면 이들의 문화는 정교함과 화려함 그리고 거대함 등으로 요약될 수 있지만 정교함과 화려함속에서 정신문화의 깊이는 쉽게 느낄 수 없었다. 이 또한 문화적 국수주의에서 나오는 생각이리라. 우리는 따 프롬을 뒤로하고 이번에는 앙코르 톰으로 향했다.

앙코르 톰

앙코르 톰으로 진입하는 다리 난간의 조형물
▲ 나가(큰 뱀)를 잡고 있는 선신들 앙코르 톰으로 진입하는 다리 난간의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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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톰은 이를테면 조선시대 한양성 내부이다. 왕이 거주하던 궁궐로부터 백성들이 살던 민가에 이르기 까지 또 각종 관공서 건물들 그리고 빠지지 않는 사원들이 즐비하던 곳이었다. 대략 규모는 3Km 의 정사각형 성곽으로 둘러싸인 곳이니 그 규모는 상당하다. 우리와는 삶의 공간이 다르니 비교할 수는 없지만 조선시대 수도 한양성보다 조금 큰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입구의 부처님 상으로 보이는 얼굴은 이 나라 사람들의 얼굴을 그대로 조각해 놓은 것 같아 별안간 경주 남산의 부처 얼굴이 떠올랐다.

다리에 조각되어진 선신과 악신의 얼굴에서 선, 악을 구별하는 기준이라는 것이 포악한지 또는 순한지로 구분되는 단순함에 속으로 좀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선신들은 모두 순하고 근엄했으며 악신들은 모두 포악해 보였지만 좀 더 자세히 보니 장난기 많은 아이들 얼굴 같아 오히려 악신 쪽이 더 친근해 보였다.

이 별스러움이란! 또 그들이 모두 몸통을 잡고 있는 "나가"란 동물(큰 뱀)을 보며 그들이 모두 일련의 공통성을 소유한 존재라는 것을 암시하는 듯 했다. 선신도 악신도 따지고 보면 모두 하나의 기준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라면 선과 악이란 결국 범위가 너무 좁아지고 따라서 선도 악도 아닌 것이 너무 많아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으로 확산되는 생각을 접고 이곳저곳에 셔터를 눌러 댔다.

앙코르 톰 입구의 다리 난간 조형물
▲ 반대편의 악신들 앙코르 톰 입구의 다리 난간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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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란 풍토를 바탕으로 하여 성장하므로 이 모든 것이 이 나라 풍토와 무관하지 않음을 본다.

왕들이 거닐었다는 그 테라스. 기둥이 코끼리 코다.
▲ 코끼리 테라스 왕들이 거닐었다는 그 테라스. 기둥이 코끼리 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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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거닐었다는 코끼리 테라스, 로얄 테라스(모두 후세의 형편없는 상상력의 소유자가 명명한 이름)를 보며 옛 제국의 영화를 본다. 왕이 실제로 이 위를 거닐었는지 그것은 지금 중요하지는 않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 건조물위에 지금 내가 서 있다는 사실과 그 당시의 화려함을 추측해 본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경이로울 뿐이다.

화려하고 놀라운 부조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들의 문화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요구 했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 보았다. 화려함 뒤의 가혹한 노동과 웅장함 뒤의 피땀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앙코르 톰 내부 왕의 테라스에서 바라본 풍경. 사이 사이 보이는 건조물은 개선장군들의 문.
▲ 테라스에서 바라본 앙코르 풍경 앙코르 톰 내부 왕의 테라스에서 바라본 풍경. 사이 사이 보이는 건조물은 개선장군들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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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한편으로 먼 먼 세월 뒤에 이 건조물위에 서 있는 이국의 여행자는 그 모든 것을 가볍게 무시하고 단지 이렇게 느끼고 있다. "넓은 초원과 붉은 사암의 건조물들, 그리고 파란 하늘 이 모든 것들이 이리도 잘 어울리다니 정말 아름다운 풍광이다." 그 사이에도 가이드는 길을 재촉한다. 하기야 가이드는 매일 봐서 질리는 지도 모르겠다.

바이욘

바이욘 부처의 미소. 흔히 말하는 크메르의 미소
▲ 아! 바이욘 바이욘 부처의 미소. 흔히 말하는 크메르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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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개의 얼굴, 그 웅장한 얼굴들 사이로 이어지는 사원의 구석구석에서 우리는 인간이 지상에 건설해 놓은 또 하나의 용화세계를 본다. 부처는 제 각각 모습을 달리하며 언제나 빙그레 웃고 있지만 네게는 정확하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기야 천 년이 지난 뒤 타국의 여행자가 그 뜻을 어찌 알겠는가?

단지 그것 자체로 하나의 놀라움이요 신비일 뿐. 여러 개의 돌을 쌓아올려 거기에 다시 부처상을 조각한 그들의 놀라운 솜씨는 차치하고 인간의 종교에 대한 신앙심의 한계와 그 신앙심을 이용해서 이토록 화려한 건축물을 지어낸 권력의 이중구조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독일을 통일한 비스마르크의 정책이 "철과 피"라면 아마 이 건축물을 만든 왕의 정책은 "돌과 피"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철과 피나 돌과 피 모두 힘없고 여린 백성들에게는 고난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태평성세의 또 다른 이면에는 백성의 소리 죽인 신음이 있다. 그런 생각의 혼란스러움도 이 석조 건축물의 위용 앞에 그저 휙 스쳐갈 뿐 그저 탄성의 연속이었다.

특히 우리가 간 날은 푸른 하늘이 배경이 되어 더욱 신비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말 그대로 아름다운 탑이었다. 인간의 내면과 외부를 연결하는 통로가 언어라면 나는 이 거대한 탑 속에서 통로를 잃고 한 참을 헤매고 다녔다.

앙코르 왓트

마침내 중심의 건물에 도달했다. 앙코르 와트의 핵심은 의심의 여지없이 긴 회랑의 부조다.

왕들의 전투 장면
▲ 내부 회랑의 부조 1 왕들의 전투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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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양식은 다들 대동소이하고 구조물이나 외벽의 부조등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긴 회랑의 부조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확인하러 가는 참이다. 과연 긴 회랑에는 회백색의 결이 더욱 촘촘한 사암에 놀랍도록 아름답고 세밀하게 이야기의 파노라마를 새겨 놓았다.

과연 인간의 작업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정확하고 동시에 아름다우며 또한 거대했다. 안타깝게도 남쪽 회랑은 공사 중이어서 보지를 못했지만 한 면의 회랑부조로도 전체를 충분히 짐작할 만큼의 감동을 주었다.

전투장면 2
▲ 내부 회랑의 부조 2 전투장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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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승리하고 개선하는 왕
▲ 내부 회랑의 부조3 전쟁에 승리하고 개선하는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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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핵심은 이를테면 종교적 설화이며 왕에 대한 찬미이며 세상의 질서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히 내용을 적시하는 것과 부조를 보는 것은 너무나 다르다. 앞서 말한 나의 영혼과 나의 육체를 연결하는 통로의 마비로 해서 그 감동을 충분히 글로 옮기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거의 수 십 미터에 이르는 긴 회랑 벽을 채운 부조는 단 한 명도, 단 하나의 부조도 같지 않으나 또 전체는 완벽한 통일성을 보이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이것을 조각하고 어떤 영광을 위해 이 힘든 일을 했을까? 이 일은 아마도 어떤 강압으로도 아무리 비싼 대가를 주더라도 이렇게 완벽하게 이루어 놓을 수는 없다.

석공 스스로 자신의 작업에 미치고 마침내 황홀경에 빠져 내부의 모든 힘을 모두 쏟아내서 이루어 놓은 인간의 경지를 넘는 그 무엇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것들이었다. 세월에 의해 사람의 손에 의해 부조의 깊이와 면이 많이 평평해지고 있었다. 이 아름답고 위대한 유산이 오래 전해지길 빈다.

해질 무렵의 풍경
▲ 석양의 앙코르 와트 해질 무렵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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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휴식하는 동안 사원 뒤편에서 저물어 가는 노을과 함께 앙코르 와트의 실루엣을 감상했다. 지구상에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놀라운 유적 중에 내가 와 있는 느낌과 그 유적의 생성과 소멸에 대한 생각과 늘 함께 이 사실을 공유할 수 있는 우리 가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조명을 켜 놓아 신비롭다.
▲ 앙코르 야경 조명을 켜 놓아 신비롭다.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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