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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또' 바뀌었다. 새해맞이 독서를 무엇으로 시작해볼까 곰곰이 고민하다가 무심코 가장 가까이 두고 읽던 책을 꺼내 들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하지현 씨가 쓴 <도시 심리학>. 이 책은 고전이나 두꺼운 인문학 도서와는 달리 읽기에 대한 부담이 비교적 가벼운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흔히 접할 수 있는 처세용 심리학 도서들과는 다른 무게감이 있다.

곁에 두고 짬이 날 때마다 편하게 읽을 수 있으면서 현대 도시인들의 심리(그것은 또한 나의 심리)를 꿰뚫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미덕을 지녔기에 자주 읽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나는 이 책을 주변 지인들에게 추천하곤 한다.

왜 도시에서는 사주카페가 성행하지?

저자는 말한다. 도시의 속도를 따라 도시인의 욕망도 진화하고 있다고.
▲ 하지현 <도시 심리학> 저자는 말한다. 도시의 속도를 따라 도시인의 욕망도 진화하고 있다고.
ⓒ 해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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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이 책의 주인공은 '도시'에서 살고 있는 바로 우리들이다. 지난날 우리는 무엇을 바라며 고향을 버리고 도시로 몰려들었던 것일까.

사연은 다르지만 고향을 버리고 도시로 갔던 세 사람이 비정한 현실에 좌절하고 마는 내용을 다뤘던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부터 우연히 도시의 선술집에서 함께 술을 마시게 되지만, 익명성 뒤에 숨어 각자의 진실을 숨긴 채 이야기를 지속하다 자살을 결심한 사내를 알면서도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버린 세 남자의 이야기 <서울, 1964년 겨울>(김승옥)까지.

2012년 현재, 산업화·도시화에 떠밀려 전락의 길을 걸어야만 했던 우리의 자화상은 얼마나 많이 달라져 있을까. 이 책은 욕망의 집결지인 '도시'를 배경으로 사람들의 심리를 다뤗기에 훨씬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도시인들은 원하지 않아도 강요된 결속력으로 인해 회식 자리에서 폭탄주를 나눠 마신다. 하지만 우리는 직장 밖에서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직 자신만의 스타일에 맞게, 개인의 취향을 살려 종류조차 헤아릴 수 없는 맞춤형 커피를 골라 마신다. 사회에서 강요된 자아는 훨씬 더 강력하게 타자와의 분리를 요구한다. 타의에 의해 훼손됐던 개성을 지키려는 방어본능이 작용한 결과다. 사회화와 개성화 사이에서 살아가야 하는 도시인들의 두 얼굴(자아)인 셈이다.

"사회화는 인간의 생존과 연관되기에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확일화라는 불편감을 느끼면서도 더 큰 집단의 문화를 습득하고 내재화한다. 물론 한켠에서는 끊임없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차이를 인식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인간은 이 두 과정을 반복하면서 사회적 안정감과 개인적 정체성의 균형을 이뤄 나가며 '참자기(true self)'를 만든다." (주디스 리치 해리스의 <개성의 탄생> 중에서)

과학의 진보로 디지털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도시에서 어째서 사주카페가 성행하는 것일까. 저자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과학의 발달은 안타깝게도 우리의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 하나, 바쁜 일상으로 인해 예전만큼 깊고 따뜻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우리들은 빠르고 간편하게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기계에 의존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자신의 컴퓨터나 휴대전화에 하나씩 깔려있는 '메신저'다. 자신이 규정한 시간의 흐름에 허락받지 않고 끼어드는 '침범'을 막기 위해서 최대한 자신에게 편리하게 '다른 작업 중' 혹은 '자리 비움' 등으로 설정해 놓고는 어떻게든 얇아지는 관계의 끈을 놓지 않으려 발버둥친다. 이런 기계의 도움은 아이러니하게도 외로움의 두께를 훨씬 더 두껍게 만들지 않을까.

도시인의 욕망은 진화하고 있다

까페 '네스트 791'에 걸린 작품.
▲ 어떤 도시인들 까페 '네스트 791'에 걸린 작품.
ⓒ 국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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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넘쳐나는 '노래방' '게임방' '멀티방'들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친목'을 도모해주는 곳일까? 번쩍이는 단란주점 네온사인들이 화려한 거리에서 우리의 친밀감은 얼마나 더 깊어지고 있는 것일까. 밥을 먹고 난 다음에도 이유 없이 배가 고플 때에는 차라리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하거나, 그조차 어렵다면 '말하지 않아도 정이 쌓이는' 초코파이라도 한 입 베어 물라는 저자의 너스레는 읽는 이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저자의 너스레가 씁쓸하게 전해지기도 한다. 우리는 그 이유를 정말 '말하지 않아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연말연시에 호칭 하나 넣지 않고 보내온 '단체문자'에 반갑기보다는 도리어 떨떠름한 표정을 짓게 되는 이유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정서적인 교감을 통한 깊은 관계보다 인맥 관리나 인맥 넓히기에만 급급한 우리들의 쓸쓸한 자화상 아닐까!

저자는 말한다. "도시의 속도를 따라 도시인의 욕망도 진화하고 있다"고. 자본주의적인 삶은 인간의 욕망에 충실할 수 있도록 진화와 성장을 거듭하고, 그것은 어느덧 우리의 미덕이 돼 버렸다고 말이다.

동물적 본능과 즉각적 만족의 노예가 돼가는 우리는 이 도시에서 어떻게 정서적 허기와 불안들을 해소해 나갈 것인가.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원인을 철저히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인생이란 수수께끼를 지혜롭게 풀어내기 위해서 우리 도시인들은 자신을 지배하는 것이 무엇인지 낱낱이 파헤쳐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내면 깊숙이 숨겨진 욕망의 정체와 만나기를 바라는, 그로부터 그동안 반복되는 삶의 피폐함으로부터 탈출하기 바라는 저자의 의도는 너무 무겁지 않게 전달돼 거부감 없이 친근하다.

지금처럼 산다면... 어떤 자화상이 그려질까

이 도시에는 집이 넘쳐나지만, 집을 구하려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 어떤 벽보 이 도시에는 집이 넘쳐나지만, 집을 구하려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 국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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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도시인들은 훨씬 더 발전된 문명을 가지고 살고 있지만, 훨씬 더 얕은 정서적 교감을 나누며 산다.
▲ 신호 현대 도시인들은 훨씬 더 발전된 문명을 가지고 살고 있지만, 훨씬 더 얕은 정서적 교감을 나누며 산다.
ⓒ 국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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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앞으로도 수많은 환자들과 만나 상담을 하고 대화를 나눌 것이다. 또한, 외로움에 몸살을 앓으면서도 겉으로는 세련되고 화려해만 가는, 우리 자살공화국의 도시인들을 치유하고자 할 것이다. 지금처럼 '안'보다 '밖'의 일에만 치중해 살고자 한다면 치유 받고 싶은 환자들은 날로 늘어갈 것이 뻔하다. 그리고 우리는 또다시 훨씬 더 우울한 자화상을 그려내야 할지도 모른다.

하던 일을 멈추고 앉아서 마음까지 쉴 수 있는 휴식이 우리에겐 너무 그립다.
▲ 쉼 하던 일을 멈추고 앉아서 마음까지 쉴 수 있는 휴식이 우리에겐 너무 그립다.
ⓒ 국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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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도시 심리학> (하지현 씀 | 해냄출판사 | 2009.05 | 1만2000원)



도시 심리학 - 심리학의 잣대로 분석한 도시인의 욕망과 갈등

하지현 지음, 해냄(2009)


태그:#도시심리학, #하지현, #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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