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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그제 이웃집 어르신과 점심을 함께했습니다. 헤이리 밖 막구수집이었지만 계절별미로 생태찌게를 하고 있었습니다. 부드럽고 매콤하고 시원한 맛은 옛 추억 속에서나 찾을 수 있는 맛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시선은 그 집의 벽에 걸린 자수액자에 가 있었습니다. '가족'이라는 글자가 수놓아진 그 액자는 세련된 멋이 아니라 포근한 맛을 느끼게 했습니다.

식당에 걸린 '가족'이라는 십자수 글
 식당에 걸린 '가족'이라는 십자수 글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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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한 밭에서 나옵니다.
거기서 인생의 싹을 틔우고
인생의 뿌리를 내립니다.
부모님의 가르치심과 보호를 받으며
형제자매가 사회를 익힙니다.
가장 진실되게
가장 따뜻하게

가족은 이 세상에서
우리를 가장 잘 알고
우리를 가장 잘 이해합니다.

세상이 제 아무리
모든 것을 갈아엎어도
없어지지 않고
없앨 수도 없는
가족은 우리의 사랑이요.
그리움 입니다.

출처도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 십자수 재료를 파는 집에 비치된 좋은 글감들에서 골라 수를 놓은 것 같습니다.

그 액자를 보면서 우리 가족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해본 적이 아득하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습니다.

#2
오늘 프랑스의 둘째딸 주리로 부터 엽서를 받았습니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Cathedral of Notre-Dame de Paris)'를 종이로 오려 만든 팝업엽서에 주리는 크리스마스와 새해의 축복보다 불만을 더 많이 써두었습니다.
주리가 짧은 크리스마스방학을 맞아 유럽을 여행하면서 가족에게 보낸 엽서
 주리가 짧은 크리스마스방학을 맞아 유럽을 여행하면서 가족에게 보낸 엽서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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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족에게

저는 지금 오스트리아 짤츠부르그에요.
이 카드는 파리에 있을 때 크리스마스 시장에 갔다가
너무 예뻐서 산 카드에요.

다들 연말에 각자 자기 일에 바쁘죠?

유럽도 크리스마스에 온 가족이 모이는데
우리가족은 다 함께 모인지가 언제지 가물가물하네요.

예전엔 고등학교 때 부터 혼자 살고,
사람들이 절 보고 독립적이다, 라고 말해주는 게 내심 좋았는데
요즘에는 이러다가 평생 가족여행 한 번 못가겠다 싶은 생각도 들고,
파리에서도 매일 가족들과 통화하고 그런 친구들이 부러워요.

예쁘고, 좋은 걸 너무 많이 봤지만
여기서 혼자 보니 우리 가족들이랑
다 같이 보면 좋았을 껄 이란 생각만 가득하네요.

그럼 다들 따뜻한 연말 보내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는 내년에 봐요.

2011/12/20
주리가

혼자 타국에서 유학중인 사람이, 크리스마스 방학을 맞아 집으로 가는 대신 적은 비용으로 경험을 사기위해 여행하기를 택한 외로운 독립여행자의 심정이 어떤지는 내가 외로워보았기에 너무 잘 안다.

그렇지만 나는 능력이 부치는 가장으로서 가족들에게 서로 만나 함께하는 시간을 나누는 데 비용을 쓰기보다 각자의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는 쪽을 택하도록 종용했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족은 늘 누군가는 가정의 울타리 밖에 있어왔다.

그런 이유인지 우리 아이들은 성장할수록 유독 가족에 대해 큰 미련을 두는 것 같다.

#3
막내인 영대도 미국에 머물면서 호스트가정의 가족들이 사는 법을 보면서 철저하게 가정적인 행복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것으로 생각이 바뀌어서 돌아왔다.

영대가 생활하던 미국의 헤이즌에는 미국인이 운영하는 태권도 도장이 있습니다. 영대는 그곳에서 주니어반을 가르치면서 무료로 어덜트반에서 태권도를 수련했습니다. 영대의 수련 시간이 끝나는 때를 맞추어 호스트패밀리가족이 영대를 픽업하러 오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호스트패밀리 전 가족이 함께 왔다는 것입니다. 

처음, 영대는 그 점이 이상했습니다. 도대체 왜 운전하는 아빠나 엄마만 오면 될 텐데 제이슨과 네이슨과 매튜까지 함께 오는지…….

영대는 그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효율성을 기준으로 본다면 그것은 시간의 낭비에 불과하지만 좁은 한 차안에서 가족들이 함께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점에서 그것은 행복을 버는 일입니다. 제가 앞으로 가정을 이룬다면 효율성이 아니라 가족이 모두 함께 행복한 방법으로 가정을 이끌 것입니다."  _이안수

#4
주리도 이번에 동유럽을 여행하면서 가족과 함께하는 일이 여행의 경험보다 소중하다는 글을 보내왔었다.

가족과 함께하기 위해 비싼 비행기 삯을 아끼지 않는 유학생들

프랑스 대학교(Universite)는 12월 중순이면 크리스마스 방학이 있고 1월 초에 시험이 끝나면 한학기가 끝나게 된다. 이맘때면 다들 크리스마스 '방학 때 뭐할 거야?'라는 질문이 꼭 오가는데, 프랑스 친구들은 99퍼센트 가족들과 함께 보내고,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으로 교환학생 온 유럽 친구들조차 다들 가족들과 보내기위해 자기나라로 돌아간다. 심지어 어학원에서 만난 미국친구도 2주 동안의 짧다면 짧은 방학 동안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보내기위해 미국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한국에서 교환학생 친구들과 지낼 때를 다시 생각해봐도 유럽, 미주 친구들은 1년 동안 한국에서 지내는 친구들조차 크리스마스를 위해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나는 내심 그런 친구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비행기 삯을 주고 집으로 돌아갈 바엔 그 돈으로 인접 지역의 문화를 탐험하는 여행을 하는 게 낫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유럽에 와보니 크리스마스가 유럽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 같다. 물론 종교적인 의미도 크겠지만 크리스마스는 1년에 한번 온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선물을 주고받고, 같이 식사하면서 그 동안 못 나눴던 이야기를 하는 가장 중요한 가족행사였다._이주리

#5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모체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원칙이고 서로가 사는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우리아이들도 그 기준으로 훈육해왔다.

자식을 사랑하는 서로 다른 두 가지 방법

세상에는 두 종류의 부모가 있습니다. 

한 경우는 자녀들을 집 밖으로 등을 떠밀어서 여행을 보내는 부모와 다른 경우는 절대 집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부모입니다.

두 경우의 부모는 모두 자녀를 지극히 사랑하지만 그 방법이 다른 경우입니다. 

전자는 약간은 불안하지만 어차피 독립된 한 객체로서 홀로 세상을 헤쳐 나가야하는 만큼 일찍 세상을 경험하게 하는 독립심을 더 중하게 여기는 부모의 자녀교육방침이고 후자는 독립심보다 자녀의 안전에 더 방점을 둔 자녀사랑인 것입니다. 

아무튼 세상에 발붙인 모든 생명들은 일정한 육추의 시간이 지나면 2세를 매몰차게 내칩니다. 새들조차 스스로 날아서 집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먹이조차 주지 않습니다. 모든 식물들의 씨앗은 온갖 수단으로 모체로부터 멀리 보내는 방식으로 진화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이쁜 자식도 결국은 슬하를 떠나는 것이 원칙입니다._이안수

생태탕을 먹다 본 그 십자수 시와 주리의 엽서를 보면서 다시 가족을 생각해봅니다. 밖으로 내치기만 했던 생각이 얼마간 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아이들이 모체로 부터 더 멀리 가서 건강하게 자신의 뿌리를 내리기위해서라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참 소중하다는…….

가족과 함께한 그 시간들은 그들이 더 멀리 비상하기 위한 에너지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주리가 가족과 합류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6개월을 기다려야합니다. 그리고 다른 녀석은 또다시 출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게 현실인가 봅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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