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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마이뉴스> 첫 기사는 2004년 5월 31일에 올린 <시골학교 운동회에 흠뻑 빠지다>라는 사진 기사였다.

 

이 기사의 배경은 충북 음성군의 조그만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이다. 10장의 사진으로 구성됐고, 운동회에서 신나게 뛰고 달리는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천진한 백지 웃음이 담겼다. 또 내 새끼를 응원하는 엄마의 모습, 장난감을 파는 노점 앞에서 갖고 싶은 물건을 눈으로 만지작거리는 아이의 모습은 미소를 머금게 한다.

 

이 기사를 보고 있노라면 그때 운동장을 뒤덮었던 뽀얀 흙먼지와 아이들의 함박웃음 소리가 금방이라도 날 휘감는 듯하다.

 

그때 운동장을 뛰어 다니던 6학년 어린이는 지금 군대에 가 있거나 대학생이 됐을 수도 있고, 삶의 전쟁터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운동장엔 인조잔디가 깔려 흙먼지 내음은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그때 당시 나이트에 가면 부킹이 쇄도했던 나는 급격한 탈모에 치약국물이 중부능선에 먼저 떨어지는 몸을 지니고 40대 중반으로 달려가고 있다.

 

<오마이뉴스> 메인 첫머리에 내 기사가

 

첫 기사 후 2꼭지의 기사를 더 올렸다. 2004년 6월 4일 <오마이뉴스> 홈페이지를 열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내 기사가 메인 첫머리에 걸려 있었다. 내 눈을 의심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바로 <이게 고물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라는 기사였다. 폐철과 버려진 각종 생활 용품을 이용해 로봇과 동물 등을 만드는 정크아트 작가 오대호씨의 이야기였다.

 

당시 산길을 올라 작업장에 다다르자 어린 시절 만화영화에 출연한 로봇 태권브이가 떡하니 버디고 서 있었다. 주변에는 태권브이에게 들이대다가 흠씬 두들겨 맞고 결국 힘없이 허물어져버리는 엑스트라 로봇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이들뿐만 아니라 타조, 돼지, 닭, 기린, 사슴, 펭귄, 오리, 호랑이, 사자, 공룡 등 전시장은 마치 동물원을 방불케 했다.

 

작업복 차림에 모자를 눌러쓰고 나이에 걸맞지 않게 앞머리에 갈색 브리지를 넣고 턱수염을 기른 중년 남성이 나를 맞았다. 말투도 예술가답지 않게 투박하다. 그 사람이 국내 정크아트를 개척하고 시장을 만든 ㈜정크아트 오대호(50) 대표이사였다.

 

나는 폐품에 생명을 불어넣어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는 것이 충분히 기사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이것저것을 조합해 허접하게 만든 물건이 아니었다. 누가 봐도 시선을 떼지 못하도록 예술성을 부여했고, 치밀한 구성과 섬세함으로 완성도를 높인 예술품이었다.

 

그와 2시간 정도 인터뷰와 사진촬영을 하고 하산했다. 기사를 쓰고 사진을 추려 편집을 한 후 <오마이뉴스>에 보냈다.

 

'정크아트' 오대호 대표와 두 번째 만남

 

내가 근무하는 팀의 홍일점인 남은희씨가 내게 묻는다.

 

"형, 토계울에 흑룡이 있다는데, 알아요?"
"금시초문인데 누가 만들었대?"
"오대호씨라고, 왜 그 쓰레기로…."
"잘 알지, 전화번호 바뀌지 않았으려나…."
"흑룡의 해라는데 한번 가보죠."

 

오대호 대표에게 8년 전 휴대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자 그의 투박한 음성이 귓전을 울린다. 지난 8년 전 2시간의 인터뷰 때 벌써 그와는 허물이 없어졌다.

 

"형님, 오랜만입니다. 한 번 찾아뵈려는데 작업장 가는 길 좀 알려주세요."
"찾기 쉽지 않을 텐데. 동네 들어와서 농협창고 지나 좌회전해서 과수원길 지나 산중턱에 보면 내 작업장 있어."
"네, 찾아갈게요. 내일 가도 되나요?"
"아냐, 오늘밖에 시간이 없어. 내일은 바빠."
"알았어요. 지금 갈 테니까 기다리세요."

 

그의 실력을 알기에 흑룡이 몹시 궁금해졌다.

 

'검은색 고철로 웅장하게 만들었겠지, 누워있을까 서 있을까, 몇 마리나 있을까?'

 

길이 12미터, 무게 0.5톤... 진짜 '흑룡'이다!

 

충북 음성군 음성읍의 한적한 시골마을에 있는 나지막한 산을 깎아 만든 그의 작업장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커져 있다. 지난번 작업장이 동네 구멍가게였다면 지금은 백화점 정도랄까. 지난 8년 동안 음식점이나 호프집에서 우연히 마주쳐 눈인사를 한건 몇 번 있었지만 작업장에서 보는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어, 동생 진짜 오랜만이여, 잘 찾아왔네."
"형님보다 흑룡 보고 싶어서 왔어요. 하하하."
"그려 따라와."

 

작업장 앞 공터에는 그동안 그가 출산한 작품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고 각색의 용 몇 마리도 눈에 띄었다.

 

"이놈이 흑룡이여."
"와, 진짜 흑룡이네요!"

 

그가 만든 흑룡은 자동차 폐타이어로 만들어졌고 높이 2.5m, 길이 12m, 무게 0.5톤에 달하는 대작이다. 폐타이어 500개와 오토바이 발판, 가스통, 폐철 등이 이용됐다. 흑룡의 해를 맞아 지난 한 해 동안 작품을 준비했단다.

 

"기사 실리고 난리 났어, 얼마나 많이 찾아오는지"

 

오 대표는 <오마이뉴스>에 굉장히 고마워했다.

 

"<오마이뉴스>에 기사가 실리고 난리가 났었어. 방송사, 신문사에서 얼마나 많이 왔는지 내가 연기자가 되어 버렸다니까, 사람들도 귀찮을 정도로 많이 찾아오고. 하하하."
"돈도 많이 버셨겠네요."
"그럼, 작품당 500만 원부터 1억 원까지 팔아봤어."

 

그의 작품에 매료된 미국 워싱턴주 터코마시의 한 수집가가 '야수'라는 작품을 1억 원에 구입했단다.

 

오 대표는 지금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다. 마치 소풍을 떠나는 아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올해 3월 1일 충북 보은 속리산 입구에 대지 4만9500㎡, 건물면적 3300㎡ 규모로 그의 작품 1500여 점이 전시된 '펀(fun) 파크'가 문을 연다. 예산이 자그마치 180억 원(국비100억 원, 도비 50억 원, 군비 30억 원)이 투입됐다. 또 2013년 중국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현재 그의 매니저가 현지를 실사하는 중이다. 중국의 한 사업가가 그의 작업장을 방문하고 작품에 반해 조성을 제안했단다.

 

이와 함께 평화의 섬 제주도에 환경 테마파크 조성도 계획하고 있다.

 

"형님, 판을 너무 크게 벌이시는 건 아닌가요?"
"난 운영을 몰라. 만드는 게 재미있지."
"이러다 음성 떠나는 건 아니에요?"
"음성은 내 고향이여, 더 깊게 뿌리를 내려야지."

 

8년 전에 비해 눈가에는 나이테가 늘었고 턱수염엔 눈이 내렸지만 친환경 예술에 종사해서인지 그의 인상은 더욱 자연을 닮아가고 있다.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2012년 흑룡 기운 받아 복 많이 받으세요!

 


태그:#오대호, #충북 음성군, #정크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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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이 세 아이가 학벌과 시험성적으로 평가받는 국가가 아닌 인격으로 존중받는 나라에서 살게 하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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