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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의 마지막 왕인 쇼우타이오우.
 오키나와의 마지막 왕인 쇼우타이오우.
ⓒ 위키페디아 백과사전 일본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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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대만의 중간 해역에 있는 오키나와현. 이전에 오키나와왕국(유구왕국·류큐왕국)이 지배했던 곳이다.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60여 개의 섬으로 구성된 오키나와의 총면적은 제주특별자치도의 1.2배에 달한다. 오키나와현청 홈페이지에 따르면, 2011년 12월 1일 현재의 추계 인구는 140만3995명이다.

한반도와는 별 관계가 없는 저 머나먼 남쪽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오키나와는 약 600년 전부터 한반도와 깊은 상호 관련성을 가졌다. 이 점은 그때부터 한반도와 오키나와의 운명이 함께 연동한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오키나와에 최초의 인간이 살았던 시점은 3만2000년 전으로 추정된다. 이곳이 중국·일본에 알려진 것은 고구려·백제가 멸망한 때인 서기 7세기였다. 고려가 건국된 10세기부터 '아지'라고 불린 족장들이 출현했고 12세기 후반부터 왕조 수준의 정치권력이 출현했다.

오키나와 역사서인 <중산세감>에 따르면, 오키나와 최초의 왕조는 1187년에 건국된 슌텐 왕조다. 이 왕조는 몽골제국이 한창 확장될 때인 1259년에 에이소 왕조로 교체됐다. 몽골제국이 흔들리던 14세기 중반부터 오키나와는 호쿠잔-난잔-츄우잔 삼국시대로 돌입했다.

이 삼국시대가 종결되고 통일 왕국이 들어선 뒤부터 오키나와와 한반도의 운명이 상호 연동하는 패턴이 출현했다. 이른바 '나비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통일왕국 등장의 계기는 몽골과 명나라의 교체였다.

몽골제국이 북쪽으로 쫓겨난 1368년 이후 동아시아 질서가 명나라를 중심으로 재편됨에 따라, 한반도에서는 1392년에 조선이 고려를 대체하고 오키나와에서는 1406년에 건국된 제1쇼우씨 왕조가 1429년에 오키나와 열도를 통일했다. 1469년에 제1쇼우씨 왕조를 대체한 제2쇼우씨 왕조는 1879년까지 존속했다. 두 개의 쇼우씨 왕조를 통틀어 오키나와왕국이라 부른다.

오키나와는 조선과 함께 팍스 시니카(중국 중심 국제질서)에 편입됐다. 중국과 사대관계를 체결하고 중국을 상국(上國) 즉 패권국으로 인정했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오키나와는 동북아와 동남아의 중간지대라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중계무역을 통해 번영을 구가했다. 오키나와의 무역 파트너는 조선·중국·일본·태국·베트남·인도네시아 등이었다.

15세기를 배경으로 하는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이 오키나와로 추정되는 율도국을 동경하고 결국 그곳으로 진출한 것은 당시 오키나와의 번영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오키나와는 오늘날로 치면 싱가포르나 홍콩 같은 무역허브였던 것이다.

무역허브 오키나와, 16세기부터 쇠락의 길로 접어들어

오키나와 대외무역의 거점이자 오키나와의 왕성인 슈리성의 유적지. 2000년 12월 세계유산에 등록되었다. 이 사진은 오키나와현청이 발간한 팸플릿에 실려 있다.
 오키나와 대외무역의 거점이자 오키나와의 왕성인 슈리성의 유적지. 2000년 12월 세계유산에 등록되었다. 이 사진은 오키나와현청이 발간한 팸플릿에 실려 있다.
ⓒ 오키나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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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콜럼버스, 바스코 다가마, 마젤란 등의 활약으로 전 세계의 바닷길이 통합된 16세기부터 오키나와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포르투갈·네덜란드를 비롯한 서양열강이 동아시아 해역의 무역중계권을 장악함과 동시에 일본이 변방의 지위를 벗어나 해양활동을 적극 전개하면서 오키나와의 위상이 약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기의 조선 역시, 바닷길을 통해 서양 조총을 입수하고 면모를 일신한 일본에게 대규모 침략을 당했다(임진왜란). 백제 멸망 이후 위상이 추락한 일본이 대륙을 상대로 전면 침공을 감행할 수 있게 된 것은 바닷길 통합 이후 일본이 급격히 성장했기 때문이다. 바닷길 통합이 오키나와뿐 아니라 조선에도 불리하게 작용했던 것이다.

경제적 위상의 약화는 정치적·국제적 위상의 약화로 이어졌다. 오키나와는 임진왜란 종전 10년 뒤인 1609년부터 일본 사츠마번의 내정간섭을 받았다. 중국에 이어 일본과도 사대관계를 체결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도 사대관계를 근거로 연고권을 주장했기에, 일본은 오키나와를 독차지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오키나와는 중·일 양쪽을 똑같이 상국으로 인정하는 양속(兩屬) 상태에 들어갔다. 양속이란 등거리 외교 같은 것이었다.

양속을 지렛대로 독립을 유지하던 오키나와의 운명을 바꿔놓은 것은 1871년 11월 동지나 해상에서 발생한 태풍이었다. 때마침 69명을 태우고 항해하던 오키나와 선박이 이 태풍에 휩쓸려 중국령 대만에 표류했고, 이들 중 54명이 현지인들에게 피살됐다.

이 사건을 세력 확장의 호기로 파악한 일본은 '오키나와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며 청나라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청나라도 오키나와의 상국이라는 사실을 무시한 채, 자국만이 오키나와에 대해 연고권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협상이 실패하자, 일본은 대만 침공(1874)을 감행했다. 기세에 눌린 청나라는 '오키나와는 일본 땅'이라고 인정하고 배상금 50만 량을 지불하기로 했다. 이 여세를 몰아, 일본은 1879년에 이토 히로부미의 지휘 아래 오키나와 합병을 성사시켰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넘어가는 것을 지켜본 청나라는 '일본의 다음 목표는 조선'이라는 판단 하에 1879년부터 '신(新)조선 전략'을 개시했다. 신조선 전략이란 조선의 자율성을 존중하던 종래의 정책을 폐기하고 조선 문제에 적극 개입하여 자국의 영향을 증대하려는 것이었다.

일본과 서양열강이 조선을 경유해서 중국을 침략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자는 것이 이 전략의 목표였다. 오키나와 합병이 청나라의 대(對)조선 전략을 바꾸는 역할을 한 것이다.

새로운 전략에 따라 청나라는 임오군란(1882)에 대한 무력 개입을 통해 조선의 내정·외교를 장악한 데 이어, 갑신정변(1884)에 대한 무력 개입을 통해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공고히 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것은 일본의 반격을 초래했다. 1886년부터 해군력 증강에 돌입한 일본은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동학농민전쟁(1894)에 개입하고 서해에서 중국 북양해군을 궤멸시켰다(청일전쟁). 이로써 청나라는 조선에서 쫓겨났다. 뒤이어 일본은 러시아와의 경쟁을 거쳐 1899년부터는 조선을 사실상 장악했고, 이것이 1910년의 조선 강점으로 이어졌다.

중국 사신을 맞이하러 나가는 오키나와 국왕의 행렬(재현 장면). 오키나와현청이 발간한 팸플릿에 실린 사진이다.
 중국 사신을 맞이하러 나가는 오키나와 국왕의 행렬(재현 장면). 오키나와현청이 발간한 팸플릿에 실린 사진이다.
ⓒ 오키나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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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오키나와 공동운명은 아직도 '현재진행형'

일본의 오키나와 합병이 청나라의 신조선 전략을 초래하고 새로운 전략이 일본의 반격을 불러오고 이것이 다시 일본의 조선 강점으로 이어졌으니, 오키나와가 망하면서 조선도 흔들렸다고 볼 수 있다. 팍스 시니카에 함께 속해 있었던 오키나와와 조선이 1879년 및 1910년에 팍스 자포니카에 편입됐으니, 몽골제국 멸망 이후 양국의 운명은 참으로 유사했다고 볼 수 있다.

한반도와 오키나와의 공동 운명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오키나와는 1945년부터 미국의 지배를 받다가 1972년에 일본으로 다시 넘어갔다. 오키나와의 지배자인 일본이 '미국의 2중대'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오키나와 역시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팍스 아메리카나에 속해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한반도와 오키나와에 똑같이 팍스 아메리카나의 군단이 주둔하고 있으니, 두 지역의 운명이 참으로 이상하리만치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오키나와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한반도에서 태풍이 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중국 중심의 국제질서와 일본의 식민 치하에 이어,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 하에서까지 한 울타리 안에 살고 있는 한반도와 오키나와를 보면서, 두 지역의 운명이 600년 전부터 고도로 연동되어 왔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태그:#오키나와, #나비효과, #유구왕국, #류큐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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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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