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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1000조를 넘고 전 국민의 반 이상이 자신을 하층민이라고 답하는 요즈음 어려운 이웃에 대한 기부가 망설여지기 십상이다. 새해 첫 주부터 불어 닥친 강추위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더욱 움츠려들게 한다. 그래도 돈뿐만이 아니라 재능과 열정으로 기부하는 이들의 소식이 있어 새해 벽두의 강추위에 잠시나마 온기를 느껴본다. 

발로 뛰고 가슴으로 글을 쓰는 젊은 작가 소재원

지난달 31일 삼성생명서초타워 대강당에서 열린 자선바자회에서 초청강연 후 신간 <아버지 당신을…>사인회 중인 소재원 작가
▲ 발로 뛰고 가슴으로 글을 풀어놓는 작가 소재원 지난달 31일 삼성생명서초타워 대강당에서 열린 자선바자회에서 초청강연 후 신간 <아버지 당신을…>사인회 중인 소재원 작가
ⓒ 최승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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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재원(30)은 이제 갓 서른이 된 젊은 작가다. 문학상을 받거나 신춘문예로 화려하게 등단한 경우는 아니지만 '발로 뛰고 가슴으로 글을 풀어놓는' 스타일로 주목받고 있다.

첫 작품 <나는 텐프로였다>(2008)는 영화 <비스티 보이즈>(하정우·윤계상 주연)로 제작되었고, 나영이사건(일명 조두순 사건)을 소재로 한 <희망의 날개를 찾아서>(2010)도 현재 영화 제작 논의가 한창이다.

<아비> <형제> 등 가족을 소재로 한 소설을 주로 써온 소 작가는 그동안 소설을 쓰며 연을 맺은 취재원들을 위해 작품 활동으로 기부를 해왔다.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 살며 그들의 삶을 글로 풀어 위로하기도 했고, 나영이 아버지와는 아동 성범죄 근절을 위한 캠페인을 계속 펼쳐왔다.

그리고 얼마 전 내놓은 신작 장편소설 <아버지 당신을…>(2011.12.25 발행) 수익금 일부는 인세 기부 방식으로 아동 성범죄 예방기금 마련을 위해 어린이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

"나영이 아버지와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잊히지 않는 이름 '나영이'를 지켜주겠다고 말입니다. 나영이 아버지는 견딜 수 없는 현실을 견디며 살아가면서도 가족과 나영이를 위해 버티고 계십니다. 나영이 아버지야말로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버티고 있는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모습이 압축된 진정한 '국민 아버지' 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재원 작가와 정대진 책마루 대표가 의기투합하여 인세기부를 하기로 작정하고 출간한 <아버지 당신을…>. '국민아버지' 최불암과 나영이 아버지가 추천하여 화제를 모으고 있다.
 소재원 작가와 정대진 책마루 대표가 의기투합하여 인세기부를 하기로 작정하고 출간한 <아버지 당신을…>. '국민아버지' 최불암과 나영이 아버지가 추천하여 화제를 모으고 있다.
ⓒ 책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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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이 아버지도 소 작가의 신작 <아버지 당신을…>을 보고 "현실은 여전히 녹록치 않지만 소 작가의 작품을 보고 아버지로서 역할을 다시 깨닫고 꿋꿋하게 살아갈 힘을 얻었다"며 직접 추천사를 써주었다. 또 인세 기부의 뜻에 동참하여 '국민 아버지' 최불암도 추천사를 섰다.

<아버지 당신을…>은 치매 판정을 받은 노년 퇴직교사 아버지와 명예퇴직을 당한 중년 아들이 하루차를 두고 가족의 추억이 담긴 장소를 찾아가며 동행 아닌 동행을 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치매와 명예퇴직이라는 큰 벽에 직면한 두 사람을 통해 견디기 힘든 현실을 묵묵히 견뎌나가고 있는 우리 시대 아버지들 모습을 담아냈다.   

소 작가는 앞으로도 작품 활동을 통해 사회적 약자와 가족의 가치를 위협하는 현실에 문제제기를 하며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소재원은 작가도 아니라는 악플에도 시달립니다. 아마 대학도 못 나오고, 제대로 된 문학수업도 못 받은 탓이겠지요.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무엇보다도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 글로 일으킬 수만 있다면 이 길을 계속 갈 겁니다. 제 작품 활동 자체가 누군가에 도움이 된다면 멈출 수 없겠죠."   

'생활의 십일조'를 실천하는 '글 쓰는 자영업자' 정대진

소재원 작가가 작년에 자신의 신작 소설 <아버지 당신을…>을 출간할 출판사를 물색할 때의 일이다.

"제가 <아버지 당신을…> 출판계약논의를 하면서 출판사에 내건 조건이 출판사도 인세 기부에 동참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만나본 출판사 대표 중 단 한순간의 주저함도 없이 수락한 분이 바로 책마루의 정대진 대표였습니다."

말과 글로 먹고 사는 '글 쓰는 자영업자' 생활을 하며 그 생활의 일부를 나누는 '생활의 십일조'를 실천하고 있다.
▲ <아버지 당신을…>을 펴낸 책마루 정대진 대표 말과 글로 먹고 사는 '글 쓰는 자영업자' 생활을 하며 그 생활의 일부를 나누는 '생활의 십일조'를 실천하고 있다.
ⓒ 최승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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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진(35) 책마루 대표는 "내 생활 자체가 이웃과 사회에 대한 기부로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습니다"면서 "때마침 소 작가가 인세 기부 제안을 해왔고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고 말한다.

정 대표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대학생 시절 학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논술강사 경력이 10년을 넘어가면서 사교육 업계에서도 나름 잔뼈가 굵었다. 그런데 그 경험을 강사료 올리는데 쓰지 않고 오히려 사교육 현장에서 느낀 문제의식을 토해낸 <개천에서 용 나지 않는 시대에 고함>이라는 책을 쓰는데 썼다.

"제가 서울의 낙후지역인 금천구 출신인데 그곳 학원과 강남 대치동 학원 일을 동시에 한 적이 많았습니다. IMF 이후 10년 가까이 지내며 보니 두 지역 사이의 지리적 거리는 그대로인데 사회적 격차는 점점 벌어져만 갔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 양극화와 이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불안한 미래를 함께 고민해보자는 제안을 책에 담았습니다."

몇몇 언론과 인터뷰도 하고 기사도 났지만 생활인으로서의 정대진은 그 일을 확대해 사회운동에 매진하지는 못했다. 대학 시절부터 관심을 가져온 통일과 북한 분야 연구를 위해 연세대 통일학 박사 과정에도 진학했고, 결혼 이후 30대 가장으로서 생계도 책임져야 했다.

"박사공부도 하고 출판사 운영과 논술강사, 프리랜서 글쟁이 생활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것만 해도 벅찼습니다. 용감하게 모든 걸 내던지고 사회운동에 뛰어들 만큼 영웅적이거나 선구자적이지도 못했고요. 대신 학업과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이 모두 말과 글에 연관되어 있어서 이 분야의 소질을 살려 기부와 사회적 실천을 하며 '생활의 십일조'를 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기독교 신자인 정 대표는 자신의 전공인 통일학 분야를 살려 다니는 교회에서 탈북자 선교와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자신이 소속된 사랑의교회 북한사랑선교부에 처음 찾아온 남한 신도들에게 따로 할당된 교육시간에 강사로 나서 북한의 종교 활동이나 현실을 소개하며 탈북민 이해를 돕고 있다. 또 교회에서 운영하는 탈북 청소년 대입준비학교에서도 탈북 청소년을 위해 논술 과목을 무료강의하고 있다.

이번에 자신이 몸담고 있는 출판사에서 내놓은 <아버지 당신을…>도 인세 기부 방식으로 좋은 일에 쓰일 수 있으니 또 하나의 '생활의 십일조'를 하게 되었다며 만족한 표정이다.

"기부는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기부에 대한 인식변화가 서서히 이루어져서 재능기부와 다양한 형태로 나눔이 확대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많이 가진 자, 배운 자가 충분히 내려놓고 동참하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의구심을 가지고 있죠. 그분들의 동참을 촉구하면서도 동시에 우리는 각자 삶의 영역에서 '생활의 십일조'를 실천해 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저 같은 사람도 하니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태그:#소재원, #정대진, #아버지 당신을, #개천에서 용 나지 않는 시대에 고함, #책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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