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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7일(토), 고향 경북 영주에서 뮤지컬 공연이 열린다고 하여 점심을 먹기 무섭게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 연우와 함께 영주국민체육센터로 갔다. 서울에서 2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길을 과속하여 달려간 것은 뮤지컬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한 도시에서 열리는 공연에 대한 작은 기대감 때문이었다.

음악과 춤이 극의 플롯 전개에 긴밀하게 짜맞추어진 연극인 뮤지컬 <부석사>는, 영주에서는 작년 순흥의 선비촌에서 공연된 <선비가>에 이어 두 번째 작품으로 순수 창작극이다.

창작 뮤지컬 부석사의 공연 포스터
▲ 뮤지컬 부석사 창작 뮤지컬 부석사의 공연 포스터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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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는 작년에 공연된 뮤지컬 <선비가>보다는 준비도 알찼고 서울대 철학과 출신으로 유명 극작가인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김태웅 교수가 직접 작품을 쓴 관계로 내용도 충실할 것 같다는 생각에 시간을 내어 공연장으로 갔다.  

이번 공연을 준비한 '장인엔터테인먼트'의 장재용 PD 또한 고향 영주를 사랑하는 애향인(愛鄕人)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을 졸업했다. 영광고 2학년 때인 지난 1993년 향토의 '소백청소년극단' 소속의 배우로 '경북청소년연극제'에서 남자연기상을 수상해 주목을 받기도 한 인물이다.

대학 재학시절 및 졸업 이후에도 오랫동안 TV드라마, 연극, 영화에 배우로 출연 및 동양대 연극영화과 출강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번 공연은 그의 애향심과 아울러 그의 대학 선후배들의 봉사(?)에 가까운 노력으로 준비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주목을 하고 있었다.

이야기꾼들의 이야기 풀이
▲ 마당극 형식으로 극을 전개하는 부석사 공연 이야기꾼들의 이야기 풀이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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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공연, 자리는 만석에 가깝게 거의 빈 곳 없이 관객들을 맞고 있었다. 중간 중간 어르신들과 어린이들이 이동하거나 퇴장하는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극을 이해하고 관람하기에는 별다른 불편함은 없었다. 종교적인 문제가 걸린 작품이라 그런지 뒤쪽에 스님들과 수녀님들의 모습도 보여 약간 놀라기도 했다.

전문 연극 공연장이 아닌 관계로 음악이나 조명 및 배우들의 목소리 전달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았지만, 그것 또한 크게 걱정스러운 정도는 아니었다.

국악을 전공한 배우 전영랑이 이야기를 노래로 풀고 있다
▲ 이야기꾼을 무대를 돌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국악을 전공한 배우 전영랑이 이야기를 노래로 풀고 있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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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극의 형식을 일부 차용한 극이 시작되고 떠돌이 이야기꾼들과 놀이꾼들에 의해 간단한 영주 소개와 부석사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있는 형식이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야기꾼들 스스로가 창작 뮤지컬 '부석사'가 다큐멘터리(documentary)가 아니라 사극(史劇)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얼마 전 역사학자 김종성 박사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주로 드라마 속의 역사적인 사실을 분석하고 평하는 역사드라마평론가다. 내가 "김 박사, 사극 속의 역사적 진실은 몇 퍼센트가 진짜요?"라고 물었더니 "형님도 참, 1%나 될까 말까 한 사실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드는 거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입니다. 절대 다큐멘터리가 아니에요"라고 답했다. 그 말을 듣고 난 웃고 말았다.

사랑을 나누는 의상과 선묘
▲ 의상과 선묘 사랑을 나누는 의상과 선묘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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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역사학자, 특히 사극비평을 하는 학자의 입에서 나오는 진실에  난 그저 웃고 만 것이다.

뮤지컬 '부석사'를 들려주는 이야기꾼들은 자신들의 목소리와 생각으로 부석사와 의상 대사, 선묘낭자에 관한 이야기를 현대적인 관점에서 풀어나갔다.

때는 고구려, 신라, 백제의 삼국이 통일되기 직전의 시기,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 신라의 승녀 의상은 배를 타고 당나라에 도착하여 신라출신의 상인 육대인의 집에 머물면서 불경공부를 하게 된다.

부석사
▲ 부석사 창건을 준비하는 의상과 대치 중인 산적 부석사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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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육대인의 수양딸이면서 이미 멸망한 나라인 백제 귀족 출신인 선묘낭자를 만나게 되고 마음을 나누고 사랑을 키워간다. 하지만 불도와 사랑 사이에서 고뇌하던 의상은 잠시 방황을 하다가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공부에 정진한다.

중간에 잠시 해설자가 나와 의상과 선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는, 관객들과 한판 논 다음, 의상의 앞길을 풀어준다. 이어 공부를 마친 의상이 육대인의 집으로 찾아와 신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리고는 길을 떠난다.

의상이 신라로 떠난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선묘 역시 의상의 뒤를 따라 신라로 떠나게 된다. 선묘는 의상이 태백산 아래 화엄종을 번창시킬 사찰 터를 찾고 있는 것을 알게 되고 봉황산 아래에서 의상과 재회하게 된다.

이야기로 푸는 부석사
▲ 이야기꾼들의 만담 이야기로 푸는 부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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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할 수 없는 승려인 의상은 선묘에게 돌아갈 것을 종용하지만, 선묘는 자신도 불도가 되어 의상의 곁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환자들을 돕는 일을 하겠다고 자청을 하게 된다. 선묘의 뜻에 감복한 의상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마음 아파하며 영혼의 결혼을 하게 된다.

한편 의상이 절을 짓기 위해 자리를 잡은 터는 백제의 유민들과 결합한 산적들의 소굴로 이곳의 두목인 월산은 결코 자신들의 요새를 절터로 내어 줄 수 없으며, 의상과 신라군에게 결사항전을 해서라도 자신들의 근거지를 지키고자 한다.

어느 날 월산의 근거리 인근에서 환자들을 돌보던 선묘가 산적들에게 잡혀갔다가 두목이 자신의 오빠인 월산인 것을 알게 되고 남매를 재회하게 된다. 하지만 산적들과 전투를 준비하고 있는 신라군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선묘는 신라군과 월산이 이끄는 산적들 앞에서 전쟁을 반대하며 자결을 하게 된다.

선묘 낭자
▲ 의상을 그리워하는 선묘 선묘 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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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선묘의 자살을 알게 된 의상이 달려오지만, 선묘는 이미 죽음을 맞았고, 대치 중이던 신라군과 산적들은 그녀의 뜻에 따라 사찰 건립을 돕게 된다는 내용으로 끝을 맺는다.

70분 정도 진행된 소형 뮤지컬에서 부석사의 연기 설화를 전부 담기는 어려웠겠지만, 큰 줄거리를 이야기 식으로 풀기에는 충분했던 것 같다.

물론 당나라의 여인인 선묘를 백제인으로 설정한 것과 의상이 신라로 돌아가는 길에 동행하지 못하여 물에 뛰어들어 용이 되어 그의 귀국 길을 돕고, 부석사 창건에서 큰 힘을 보탠 이후 무량수전 아래에 석룡(石龍)이 되었다는 선묘를 신라까지 같이 와서 부석사 창건을 돕다가 전쟁을 반대하여 자살한 것으로 설정한 것은 설화와는 다른 측면이 있었다.

의상과 선묘
▲ 영혼의 결혼식 의상과 선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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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개인적으로 사극(史劇)은 분명 다큐멘터리가 아니기에 극적 재미를 위해 필요한 현대적인 해설과 설정이라고 보았다.

아무튼 뮤지컬을 보면서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의상대사역을 맡은 양준모씨의 연기력과 대단한 발성과 가창력이었다. 중간 중간 들려주는 몇 곳의 노래를 통해 눈물이 날 정도로 1500년 전의 의상 대사를 생각하게 해주었고,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참 좋았다.

선묘낭자를 연기한 박선민씨 역시도 가냘픈 몸매와 함께 표정연기가 좋았다. 특히 마지막 자살 장면은 붉은 빛으로 변하는 무대조명과 함께 순식간에 마음을 파고드는 아픔을 느끼게 했다. 아울러 이야기꾼인 전영랑씨 역시도 창을 공부한 가인(歌人)이라 그런지 끌림이 강한 목소리로 무대를 장악하고 관객들과 함께하는 재주가 남달랐다.

부석사
▲ 서로 사랑하는 의상과 선묘 부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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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중간 놀이꾼과 이야기꾼들이 풀어나가는 이야기에 집중을 할 수 있어 좋았고, 스스로가 그 동안의 연기 설화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어 흥미진진했다.

사실 내가 이번 공연에서 가장 놀란 것은 무대 뒤에 연주 팀이 따로 있다는 것이었다. 뮤지컬의 가장 기본인 생음악에 충실한 공연이 지방공연에서는 더욱 절절하게 가슴 속으로 다가왔다. 정말 뮤지컬다운 정말 사극 같은 무대가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7시 공연까지 두 번을 보면서도 몇 가지 아쉬운 것이 남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아무래도 소형 뮤지컬이 가지는 한계다. 시간 및 예산상의 문제에서 기인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한 시간이 조금 넘는 70분 정도에 이야기를 전부 풀어나가기에는'부석사와 의상, 선묘'에 관한 이야기가 너무 길다.

부석사
▲ 선묘의 죽음 부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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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20~30분 정도의 시간 연장이 필요할 것 같았다. 이런 것들은 대본을 더 늘려 추후 공연에는 수정이 필요하다. 또한 짧은 시간 때문이겠지만, 결말을 좀 더 늘리면서 클라이맥스(climax)를 더 크게 쳐 올리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아직은 덜 익은 느낌이 드는 밍밍한 결말이 아쉬웠다.

선묘의 죽음으로 새로운 다짐으로 부석사 창건을 준비하는 의상
▲ 의상대사 선묘의 죽음으로 새로운 다짐으로 부석사 창건을 준비하는 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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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체적으로 성공적이고 눈물 나는 공연을 보아서 기쁘다. 지금의 작품이 대형 뮤지컬 <부석사>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좀 더 넉넉한 시간과 자금으로 알찬 준비와 대본수정 및 공연 전용관에서 인원, 무대, 음악, 조명 등을 대폭 보강하여 내년 중에 더 큰 공연으로 영주는 물론 전국의 관객들과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창작 뮤지컬 <부석사> 공연은 영주시가 주최하고 (사)세계유교문화재단이 주관했으며 (주)장인엔터테인먼트가 제작을 담당했다.



태그:#뮤지컬 부석사 , #부석사 , #영주시 , #의상대사 , #선묘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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