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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는 이명박 대통령이 총감독으로 지휘하고, 이주호 장관(17대 국회 교육상임위 때)이 기획하고, 공정택 전 서울교육감이 현장감독으로 앞장서서 만들어낸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자사고는 이명박 대통령이 총감독으로 지휘하고, 이주호 장관(17대 국회 교육상임위 때)이 기획하고, 공정택 전 서울교육감이 현장감독으로 앞장서서 만들어낸 제도라고 할 수 있다.
ⓒ 청와대/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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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는 이른바 '창의·인성 교육 강화를 위한 중등학교 학사관리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은 서술형 평가 및 수행 평가 개선과 고교 성취평가제 도입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학생과 학부모의 주요 관심은 현행 상대평가를 성취평가제라는 이름의 절대평가로 전환한다는 것에 쏠려 있다. 방안이 발표되자 특목고와 자율형 사립고 학교와 학부모, 교총 등 보수적인 교육단체들은 찬성의 입장을 나타내고 전교조와 참교육학부모회,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경기도 교육청 등에서는 자사고 살리기 정책이라며 비판하는 양상이다. 입시 위주의 교육정책을 비판하던 입장의 단체들이 상대평가에 비해 교육적인 제도인 절대 평가로의 전환에 우려를 나타내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입학 전형 제도는 학생들을 3년 동안 가르친 교사들의 평가보다 수학능력고사와 대학에서 실시하는 논술·면접 등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입학사정관 제도가 잠재력을 갖춘 인재들을 발굴하는 제도라는 취지와는 다르게 이른바 묻지마 전형을 통해 특목고 출신 학생들에게 유리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른바 수도권의 상위권 대학들이 특목고와 자사고 출신 학생들을 모집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고 지난 2010년 입시에서는 고려대가 사실상 고교등급제를 실시했다는 게 법원 판결로 확인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고려대가 의도적으로 고교별 학력차를 반영한 점이 인정된다. 특목고 등 일류고 출신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출신 고교의 평균 점수와 표준 편차를 다시 표준화해 보정하는 방법을 써 내신 1~2등급 지원자는 탈락하고, 5~6등급 지원자는 합격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신 성적이 절대평가로 전환되면 내신의 비중이 약해지고 대학의 선발 권한이 강화되면서 대학당국의 일부 특정학교 학생들을 모집할 수 있는 권한이 더욱 막강해진다.

단순히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바꾸는 게 아니다

19개 교육시민단체들의 모임인 행복교육연대는 지난 11월 23일 오전 교과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사고 정책 폐기'를 촉구했다.
 19개 교육시민단체들의 모임인 행복교육연대는 지난 11월 23일 오전 교과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사고 정책 폐기'를 촉구했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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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방안은 단순히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바꾸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학교 단위의 내신 성적에까지 정부 차원의 기준을 적용해 학교 간 성적 차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겠다는 것이다. 교과부는 교과목별 성취기준·평가기준을 2012년 6월까지 개발해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학교 단위의 내신 성적에 국가 차원의 기준을 적용, 학업성취 수준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시스템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성적우수자들이 몰려 있는 특목고와 자율형 사립고 출신 학생들은 이 시스템을 통해 A등급을 일반계 학생보다 많이 받게 될 것이다. 기존 전국의 어느 학교에서든지 똑같은 비율로 1등급을 받던 상대평가 제도와 비교하면 어떠한 변화가 생겨날 것인가가 분명해진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정보공시제도와 일제고사 방식의 학업성취도 평가가 이 제도에 의해 보완되면서 고등학교 간에 수능성적뿐만 아니라 내신 성적차이가 전국적으로 서열화되어 정보 공시제도에 의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대학 당국은 정부 차원의 평가 결과에 의해 드러난 학교간 성적차를 반영해 입학전형에 반영하게 된다. 현재 삼불정책(고교등급제, 기여입학금제, 본고사제도 금지)에 의해 비공식적으로 암암리에 이루어져 온 고교 등급제가 공공연하게 실시될 수 있다. 교과부는 이번 방안이 자율형 사립고 살리기라는 비판을 의식해 입학사정관제 평가에서 신입생 구성의 다양성 지표를 반영하고 지역균형선발,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 입학사정관제 등을 통해 농어촌, 중 소 도시 일반고 학생들의 진학 기회를 확대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에 특목고와 자사고 출신 학생들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또 수시전형의 비중이 매년 확대되는 상황에서 대학 당국의 특목고, 자사고 출신을 확보하려는 욕망을 억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난 1995년 절대평가제도가 도입되는 과정에는 외고 등 특목고 학생들의 집단 자퇴 사태가 있었다. 내신 성적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에 반발한 학생들의 집단행동으로 내신 성적 비중을 낮추는 절대평가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반면에 2005년 참여정부에서는 수학능력고사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내신은 학교에서, 수능은 학원에서" 준비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교육비 경감과 학교 교육 정상화를 내세웠다. 수학능력고사의 비중을 낮추고 내신 비중을 높이는 정책을 추진한 것이다. 이런 정책에 대해 보수 언론과 상위권 대학이 내신의 변별력 문제를 제기하면서 고육지책으로 등장한 것이 내신등급제도다.

MB의 절대평가제도, 자율형 사립고 구하기 정책에 불과

MB 정부가 정권 막바지에 절대평가제도를 들고 나온 것은 다분히 자율형 사립고 구하기 정책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학교 다양화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연간 교육비가 천만 원이 넘는 자율형 사립고를 대량으로 도입했지만 집단 미달 사태가 매년 발생하고 있다. 

진정으로 학생들과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한 창의·인성 교육을 위해 절대평가제도로 전환하는 것이라면, 이미 실패로 드러난 자율형 사립고와 특목고를 일반계 학교로 전환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또한 수도권의 상위권 대학부터 계층 지역 할당제 등을 제도화해 농어촌 지역과 일반계 학생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현재의 고교 서열화체제를 강화하고 정부 차원의 일제고사를 강행하면서 학교 단위 평가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절대평가제도가 도입되는 것이 모순이라는 것을 교과부는 정녕 모르는가?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한만중 개포중학교 교사(전교조 부위원장)입니다.



태그:#절대평가, #자율형사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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